국제활동경험담

무더운 8월, 캄보디아에서 쓴 일기
글쓴이 이호석     소속 휘문고 1학년

날짜 09.11.04     조회 3397

8월 10일 (1일차)

4, 5시간의 비행은 복잡한 삶에 얽혀있던 나에게는 길게만 느껴졌다. "처음 경험하는 캄보디아는 어떤 모습일까?" 이러한 궁금증으로 비행 내내 가득 차 있었다. 비행기 바퀴가 땅에 닿기 전, 화려한 한국의 상공과는 달리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캄보디아의 첫 모습에 많이 놀랐다.
캄보디아에 처음으로 발을 내딛는 순간, 나는 씨엠립 공항의 지하철역 같은 아담한 사이즈에 다시 한번 놀랐다. 세계 최빈국인 것은 알았지만, 그 동안 인생의 대부분을 발전하는 한국에서 살아왔기에, 처음 보는 캄보디아의 모습은 놀라움으로 다가왔다.
 

캄보디아 생활 1일째, 이제 시작이다.

 

8월 11일 (2일차)

간밤에 나의 새우잠을 괴롭히던 수십 종류의 벌레들이 아침에 다시 보니 친숙하게 느껴졌다. 오늘은 캄보디아의 더위를 처음으로 경험한 날. BWC Center의 아이들과 스텝들을 처음 만났던 날, 그리고 내가 얼마나 약한 사람인지 깨달은 날이다. 캄보디아로 출발하기 전의 각오와는 달리 눈을 뜨자마자 내가 캄보디아에 있다는 현실이 너무도 짜증났다.
4시간 남짓 밖에 자지 못한 터라 내 방에 있는 침대가 너무도 그리웠다.
노력 봉사 시간의 삽질도, 왜 이러고 있어야 하는가라는 의문도 들었다.
아이들과의 대면식, 이것은 내가 오전에 들었던 모든 감정들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아이들의 천진난만함과 웃음은 이곳에 온 이유와 목적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켰다. 내가 이 아이들에게 많이 배워가야겠다, 다른 사람에게서는 받을 수 없는 무언가를 이들에게서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캄보디아는 벌써 나를 변화시키고 있는 것일까.
 

캄보디아 생활 2일째, 변화를 찾았다.

 

8월 12일 (3일차)

처음 눈을 뜬 순간 내가 본 것은 다름 아닌 도마뱀이었다. 같은 상황이 한국에서 일어났다면 미친 듯 소리를 질렀겠지만, 이곳 캄보디아에서는 도마뱀도, 각종 벌레들도 아무렇지도 않다.
노력봉사 시간, 전 날에는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별다른 진전이 없었는데, 봉사단원 모두 하루만에 노하우가 생겨서인지, 빠른 속도로 길가 한 쪽을 잔디로 매꿨다. 살이 타버릴 것 같은 태양 아래 땀과 선크림이 뒤섞여 있음에도 불평 하나 하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모습에 놀랍기도 했다. 오후에는 교류활동팀이 계획한 활동을 아이들과 했다. 두 나라의 국기를 같이 만들고 국가를 불러주며 마음의 거리를 좁혔다. 처음으로 대화를 하고 간단한 놀이도 하면서 이 나라 아이들도 우리나라 아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아이들의 웃음을 보며 열악한 상황에서도 꿈을 키우는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은 강한 욕구가 들었다.
 

캄보디아 생활 3일째, 친구를 찾았다.

 

8월 13일 (4일차)

오늘은 모든 것이 정신없이 진행되듯 바쁜 날이었다. 식사당번, 노력봉사, 교육활동까지 쉴 틈 없이 진행된 하루였다. 내가 식사당번을 맡게 된 오늘은 준비하기가 까다로운 메뉴가 있었다. 바로 제육볶음. 큰 덩어리의 고기를 잘게 썰고 양념장을 만들어 재여 놓아야 했기에 자유시간에도 식사준비를 해야 했다. 생전 처음으로 진정한 요리를 해보는 것도 새로웠다. 교육팀이 준비한 교육활동은 정말 재미있었다. 교육자의 입장이지만, 아이들과 같이 즐기는 심정으로 활동을 한 것 같다. 유리컵에 물을 채워 실로폰을 만들어 우리나라의 '비행기' 노래를 부르는 캄보디아 아이들을 보며 뿌듯해하기도 했다. 물로켓 날리기는 지금까지 한 활동 중 가장 많은 사람이 즐거워하며 활동하지 않았나 싶다. 옷을 젖어가며 아이들의 로켓들이 날아가는 것을 보는 것은 제 아무리 빨리 펌프질을 하고 양동이에 물을 퍼 담아도 힘들지 않을 정도로 즐거웠다.
 

캄보디아 생활 4일째, 즐거움을 찾았다.

 

8월 14일 (5일차)

오늘은 진짜 캄보디아의 모습을 경험했다.
오전에 갔던 다일공동체에서는 BWC center에 있는 아이들과는 달리 어떠한 기관에 의해 보호를 받지 못하는 캄보디아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무료 배식을 하며 한 끼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사람들이 밥을 먹는 모습을 보며 이들의 삶을 짐작할 수 있었다. 맛을 느끼지도 않고 허겁지겁 먹는 사람들. 스탭들의 눈을 피해 배식을 여러 번 받기를 시도하는 사람들, 다른 사람들의 남은 음식을 모아 봉지에 싸 가는 사람들.... 이러한 모든 모습들이 이들의 삶이 얼마나 열악한지 영상처럼 머리속을 지나갔다.
오후에는 동양 최대 호수인 똔래샵과 재래시장인 올드마켓을 관광했다. 호수 위에 집을 짓고 사는 사람들, 달리는 배에서 배로 넘어와 음료를 파는 사람들, 구걸을 하는 사람들, 친숙하게 내 손을 잡아 준 사람들, 물건들 값을 깎기 위해 싸운 사람들....
사는 방식은 다르지만 느끼는 감정은 모두 "같은 사람"들이었다.
 

캄보디아 생활 5일째, 진짜 캄보디아를 느꼈다.

 

8월 15일 (6일차)

타국에서 맞게 된 광복절, 나는 오늘 조국의 독립을 기념하는 대신 땀을 흘렸다. 이곳 캄보디아는 수십년간 계속된 내전으로 오랫동안 경제가 침체되었고 전 국민의 1/4을 죽인 킬링필드로 인해 고급인력도 부족한 상황이다. 우리나라가 겪었던 일제강점기와 6.25 전후의 상황이 이러하지 않았을까? 이곳 캄보디아는 경제발전을 안 한 것이 아니라 할 기회조차 있지 못했다. 실제로 모든 내전이 종결된 98년 이후 캄보디아 경제는 급속도로 발전했다. 우리나라가 6, 70년대에서 세계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 냈듯, 이곳 캄보디아도 가능성은 충분히 열려있다. BWC center를 포함한 모든 지역의 캄보디아 아이들의 모습에서 이들의 미래가 보인다. 너무도 따뜻하고, 너무도 순수하고, 너무도 적극적인 이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앞으로 몇 십 년 이내에 캄보디아의 기적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캄보디아 생활 6일째, 캄보디아의 미래를 찾았다.

 

8월 16일 (7일차)

처음 캄보디아에 도달했을 때는 언제 이곳을 벗어날까 하고 걱정했는데, 막상 한국으로 돌아갈 때가 얼마 남지 않으니 섭섭해지려 한다.
우리가 머무는 이곳, BWC center의 어느 한 교실은 기본적인 먹고, 자고하는 문제가 개선되기가 어렵다. 씨엠립 시내에서 6km 정도 떨어져 있는 이곳은 전력이 닿지 않아서 자가발전을 한다.
때문에 전력이 가동되는 시간은 정해져 있고, 전력이 가동되는 시간보다 가동되지 않는 시간이 더 많다. 따라서 우리가 자는 동안은 당연히 전력이 가동되지 않고 그나마 더위를 식힐 수 있었던 팬도 가동되지 않는다. 너무 덥다. 자는 시간은 항상 공포의 시간이다. 피곤해서 자고 싶은데 더위 때문에 잘 수 없는 이 고통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알 길이 없다. 화장실과 샤워실은 모두 밖에 있어서 이 문제 또한 자유롭지 못하다. 천막 하나 달려있는 샤워실에서 옷을 벗고 샤워를 하는 것조차 힘든데 물이 나오는 수도도 하나밖에 없다. 남자들은 그나마 다행이지만 이 고통을 당해야 하는 여자애들을 생각하니 한숨만 나온다.
화장실은 물을 내리는 장치가 없다. 우리가 물을 퍼서 부어주는 방식으로 압력을 주어야만 배설물들이 빠져나간다. 도마뱀, 바퀴벌레, 각종 곤충들이 같이 있는 활동에서 배설 활동을 한다는 게 정말 힘들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게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에서도 우리 단원들은 불평하지 않는다. 남자들보다도 더 심한 고통을 당하고 있을 여자들은 오히려 남자들보다도 이 상황에 대해 무덤덤하다. 우리가 이러한 상황을 참고 견딜 수 있었던 것은 결국 봉사활동에 대한 열정이 있어서가 아닐까.
 
캄보디아 생활 7일째, 열정을 느꼈다.
 

8월 17일 (8일차)

집으로 가는 시간이 다가올수록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열정을 이곳, 캄보디아에 쏟고 싶은 마음에 한 걸음이라도 더 뛰고, 한 마디라도 더 하게 된다. 17년이라는 적지 않은 삶을 살면서 나는 이제껏 내 자신을 남들보다 더 고집이 세고 더 이기적인 존재로 생각해왔다. 그러나 이 곳 캄보디아는 나 같은 사람들도 적어도 여기 있는 10일만큼은 나 자신보다는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오늘 마무리된 교류, 교육활동이 나를 아쉽게 한 이유다. 난생 처음 교육자의 입장으로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 노력했고, 그들에게 나 자신을 이해시키려 노력했다. 이번 활동에서 말로 표현하기 힘든 무언가를 배웠는데, 그 무언가를 완벽히 느끼지 못한 것 같아서 아쉬운 것이다. 이것이 내가 할 다음 봉사활동이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캄보디아 생활 8일째, 무언가를 배웠다.

 

8월 18일 (9일차)

나는 이번 봉사활동을 떠나기 아무런 기대 없이 학교에서 하는 형식적인 봉사활동과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난 이곳에 와서 얻어가는 것이 이곳에 준 것보다 더 많다. ‘내가 캄보디아에서 이러한 것들을 베풀고 와야겠다.’라고 계획했던 것에는 많은 오만함이 섞여 있었다. 나는 이들보다 더 우월한 존재이기에 봉사를 가는 것이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곳에 온 후, 이들은 남들이 보기에 열악한 환경에서 살 뿐, 그들 스스로는 자신들의 삶에 만족하며 살아간다는 사실을 알았다. 경제규모 20위권의 한국에서는 조금이라도 더 경제적으로 잘살아보려고 안간힘을 쓰는 이들이 많은데, 캄보디아에 사는 이들이 더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며 사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캄보디아의 때 묻지 않은 웃음은 한국에서 보던 가식적인 웃음과 너무도 다르다. 이 웃음, 인생에서 몇 번이나 볼 수 있는 웃음일까. 영원히 간직하면서 삶이 힘들 때마다 머릿속에서 한번씩 꺼내봐야겠다.
 

캄보디아 생활 9일째, 캄보디아를 기억하겠다.

 

8월 19일 (10일차)

-비행기 안에서-
너무 피곤하다. 그런데 참을 수 없는 웃음은 왜 자꾸 나오는 것일까. 너무도 기쁘고 행복하다. 그냥 두 손 두 발 달린 동물에서 진짜 인간이 되었다고 할까. 내가 생각하고 과거의 철학자들이 생각했던 바람직한 인간상에 가까워진 느낌이다. 그만큼 캄보디아는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경험을 만들어주었다. 지난 10일을 되돌아보면, 기쁘고 행복한 순간도 많았지만 그만큼 아쉬운 순간도 많았다. 매번 이러한 아쉬움이 자꾸 나를 다른 봉사활동을 하게끔 만든다. 더 열심히 하라고, 더 많은 것을 배우라고.
자야겠다. 오랜만에 느끼는 휴식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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