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활동경험담

특명! "우즈베키스탄에 IT 우정 네트워크를 구축하라."
글쓴이 김진선     소속 건국대학교 커뮤니케이션디자인과

날짜 09.10.01     조회 4771

  ‘합격’ 학교 가는 길에 통보받은 결과이다. 그때까지 얼마나 조마조마했는지 모른다. 가슴이 벅차올라서 우리 팀원 모두는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1차 서류전형과, 2차 면접시험. 우리 팀은 용기와 절실함에 목말라 결성되었다. 함께 모여서 열정은 더욱 커졌다. 곧바로 우리는 구체적인 준비에 들어섰다. 현지인들에게 더 많은 무언가 들을 주고 싶어서, 현지기관에 계신 한국인 담당자분과 계속 연락을 주고받으며, 현지상황과 교육받을 학생들에 대한 파악을 계속해갔다. 언어담당자가 2년간 공부해온 대학교에 파견이 되는 것이었기에, 현지파악이 훨씬 수월했다.
그리고 협찬 물품을 최대한 많이 받기 위해 기업리스트를 작성하고 전화와 이메일, 그들에게 소개할 PPT도 만들어서 직접 찾아다니며 해외인터넷봉사단에 대한 소개와 앞으로의 계획을 프레젠테이션 하며 무거운 노트북과 함께 많은 시도를 하였다. 그리고 그만큼의 노력의 결실이 생겼다.
   또 특별활동계획서를 써서 내 받은 예산으로 한국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한지공예 서예도구등을 구입했다. 가장 중요한 IT교육을 위하여 남은 시간동안 교육계획표에 맞추어 이것저것 경우의 수를 두고 수업분량을 짜고 간단한 예행연습도 했다. 준비하며 현지에서 교육하고 경험할 일을 떠올리니 절로 웃음이 났다.
어떠한 일을 할 때 ‘준비’의 시작점의 중요성은 엄청나다. 이렇게 차근차근 더 밝은 빛을 낼 수 있는 힘을 갖추었다. 투철한 봉사정신, 철저한 교육내용 및 계획 문화홍보 방안 등을 가지고 우리 팀 열정으로 닻을 올렸다.

#1. 열정으로 닻을 올리다.

  출국 날만을 손꼽아 기다려왔다.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쉬켄트로.
출국심사를 받기 전까지 걱정했던 것은 수화물 중량이었다. 그래서 개인용품은 최대한 줄이고 많은 협찬 품과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주고 싶은 문화 활동 용품들 때문에 최대한으로 기내로 가져가는 방향으로 하여 짐을 붙였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하였다. 우리 짐에 반입불가물품이 들어있다는 것이다. 협찬 품이 손상될까봐 일명 “뾱뾱이”로 이중포장을 하고 테이프로 꽁꽁 감싸두었는데, 다시 다 열어봐야한다는 것이다. 문제의 용품은 ‘본드’ 한지공예 시간 종이 틀을 붙일 때 사용할 본드였는데, 스프레이나 본드 같은 가연성의 것들은 금지인 것이다. 하는 수없이 현지구매를 생각하고 눈물을 머금고 다 빼내었다.
  6-7시간을 날아 어느덧 타쉬켄트 도착. 밤 10시쯤 늦은 시간에 도착하였다. 벌써 현지기관담당자들은 차량을 가지고 공항에 우리를 마중 나와 있었다. 환한 웃음과 함께 우리를 맞이해 준다. 언어담당자에게 비행기 안에서 간단히 습득한 현지어 인사를 하면서 차에 올랐다. 다민족 국가라 현지사람들끼리도 서로 다 다른 국적을 가진 것처럼 생김새가 너무 달라서, 신기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우리가 사용할 숙소는 타쉬켄트 세계 언어 대학교의 기숙사였다. 기숙사 방에는 과일, 과자, 빵등의 간단한 간식과 음료가 마련되어 있었다. 우리들이 온다고 차려놓은 것이다. 이런 소소한 배려를 보면서 시작이 너무 좋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처음 우리가 맞이한 기숙사의 시설은 생각보다 많이 열악했다. 창문사이로 벌레들도 많았고, 삐거덕거리는 바닥에, 방학이라 학생들 대부분이 없는 황량한 복도가 무섭기도 하였고, ‘화장실’은 우리를 더욱더 경악하게 하였다. 비교적 깨끗하긴 하였지만, 칸마다 문이 없이 다 뚫려 있었던 것이다. 물론 이런 것보다 더한 것들도 감수하고 온 것이긴 하지만, 문화적 충격에 생소함에 팀원끼리 웃어대기 바빴다.
봉사 초중반이후로는 너무나 익숙하고 편하게 생활했던 기숙사였고, 지금은 그리운 기숙사가 되어버렸지만, 초반의 ‘낯섦’ 때문에 첫날만은 언어담당자가 알고 있는 분의 집에 신세를 져야했다.

#3. “한국에 가고 싶어요.”

  그들에게 한국이라는 나라는 꿈의 나라였다. 한국이란 나라에서 공부하고, 한국이란 나라에서 일하는 것, ‘비자’문제도 있고 여러 가지로 가기 참 어려운 일이란다. 한류열풍은 우즈베키스탄 그곳에도 많이 번져있었고, 그곳에서 한국인이라는 것이 매우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왜냐하면 그곳에 ‘한국’이라는 나라의 영향이 너무도 컸기 때문이다.
공항에서 들어서면서 보이는 LCD모니터부터 한국기업의 것으로 도배되어 있었고, 중간 중간 보이는 메트로역 또한 한국의 기업 로고가, 또 제일 놀라운 것은 도로위의 자동차들이었다. 자동차의 절반가량이 한국차량이었다는 것. 우리나라의 경차들이그곳에서 신나게 달리고 있었다. 마치 80년대 한국의 모습 같기도 한 것이 내 눈에는 마냥 신기했다. 그리고 가슴 속에 뿌듯함보다 더한 무언가가 꿈틀거리는 듯했다. 국가 간의 영향력을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

#4. “천천히 설명해 주세요”

  우리 팀은 팀원전부가 각자의 분야로 IT 교육을 할 수 있게 결성된 것이 장점이었다. 컴퓨터 공학과의 IT 담당자들은 전반적인 컴퓨터와, 프로그래밍, 오피스 프로그램등, 그리고 문화담당이었던 나는 그래픽디자인 쪽으로 포토샵 수업을 맡았다. 주 4일은 IT교육을, 그리고 문화는 일주일에 한번 꼴로, 전반적으로 다 같이 진행하였다.
학생들의 수준은 천차만별이었다. 그 대학교 학생들을 비롯하여 학교관계자분들도 모두 모여서 수업을 들었다. 컴퓨터의 대수 때문에 60명가량의 인원을 절반으로 나누어 오전반은 홈페이지 수업과 포토샵 수업, 오후반은 씨프로그래밍과 포토샵 수업을 넣었다. 오기 전에 현지기관과 연락 중에는 전반적으로 컴퓨터에 익숙하다고는 했는데, 막상 와서 보니 컴퓨터에서 더블클릭하여 프로그램을 실행하는 못하는 학생도 있었고, 한명은 3D프로그램까지 원했다. 3D프로그램을 알려주고 싶었지만, 프로그램 자체를 공수해오지 않아서, 그렇지 못했던 것에 아쉬움이 아직도 남는다.
  수업방식은 각 수업별로 주강사를 정하고 나머지 두 명이 보조강사의 형태를 취하며, 언어담당자는 앞에서 계속 설명을 통역했다. 다행히 영문과 학생들, 한국어과학생들과는 언어 담당자 외에 우리들과도 의사소통이 가능하여 훨씬 수월했다.
  그들은 예상대로 포토샵수업에 많은 흥미를 가졌다. 처음에는 어려워 해보였지만, 제법 잘 따라왔다. ‘생활에서의 필요성’과 ‘흥미’를 얻게 하기 위해 학생 한명씩 사진을 찍어 각자 자신의 증명사진을 만드는 수업부터 시작했다. 자신의 얼굴에 민망해하기도 하고, 다시 찍는다고 하고, 우리들과 다를 바가 없어서 더욱 친숙했다.
처음, 그들을 보았을 때 다들 어른스러워 보였는데, 외관상으로 나이가 들어 보이는 학생들도 알고 보면 우리보다 어렸고, 알수록 장난꾸러기인 친구들도 많았다. 포토샵에서 작업한 소스들을 홈페이지수업과 연계하여 인터페이스를 구축하게 하였다. 헷갈려도 했지만 보조강사들이 옆에 가서 일일이 다 봐주었다.
  그런데, 어느 날 문제가 생겼다. 학생들이 수업과목중의 c프로그래밍을 매우 어려워하며, 약간은 지루해하면서 그것의 필요성에 문제를 내었던 것이다. 문과학생들이 직접적으로 그것에 대한 필요성을 못 느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몰랐던 것이다. c프로그램 담당팀원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 필요성을 설명하려는 데도 전문화된 용어 때문에, 통역에도 문제가 있었다. 많이 답답해보였다. 아니 우리 팀 전체가 긴급회의에 들어갔다. 이대로 진행할 것인가 수업의 변경이 있을 것인가.
  많은 이야기와 학교관계자들과의 협의 끝에, 오전, 오후반 둘 다 일상생활에서 가깝게 쓸 수 있는 홈페이지 수업과 포토샵 수업, 이원화하기로 결정하였다.
  점점 수업을 해가면서 어려운 사항은 보완되가고, 어느 정도 노하우도 생겼다. 더운 날씨에 교실안 에어컨은 틀어져도 분간이 안되었지만, 우리는 열성을 다해 가르쳐 주었다. 그러면서 점점 그들과 가까워졌고, 교감을 나누게 되었다. 오전, 오후반 수업을 두 번씩 하다 보니, 수업을 하면 하루가 다 갔다. 그리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은 마음은 뿌듯했지만, 더운 날씨에 신체적으로는 지치고 무거운 몸으로 와서 그대로 누워버렸다.
  하지만, 새벽에 매일매일 눈이 자동으로 떠지는 것이 신기했다. 오히려 봉사활동에 와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너무도 규칙적인 생활에 기분은 좋았다. 아침에 준비해서 학교에 가면, 담당자 분들이 매일 아침식사도 차려 주셨다. 부엌이 있었는데, 그곳에 그들이 주식인 빵 ‘논’과 ‘솜사’ 각종 과일 쨈 음료 등을 차려두었다. 그쪽 나라 음식이 기름이 많아서, 잘 맞지는 않았지만, 맛있게 먹고 힘을 냈다. 항상 고마웠다. 교육 후 간간히 찾아가던 한국식당에서 체력도 보충하였다.


#5. 캘리그라피“고맙습니다. 수업 고맙습니다”

  자연스러운 문화교류와 한국에 대한 홍보를 통하여 U-KOREA를 알리고, 영상과 체험을 통해 IT발전의 모델적인 양상을 보여주었다. 앞으로 우즈베키스탄의 미래에 꿈을 갖길 바라면서,
한국 문화에 대한 수업을 제법 많이 준비했었다. 그리고 차질 없이 거의 수행하고 온 듯하다. 영상과 사진으로 그날 할 문화에 대한 전반적인 소개를 시작으로 그것을 직접 체험해보게 하는 방식이었다.
  한지공예품을 만드는 것에 집중력 있고 흥미 있게 임했고, 몇몇 학생들은 개성적이고 창의적인 결과물을 보여주었다. 다 만들고 가져가도 되냐고, 그들에게 선물이라 했더니 매우 좋아했다. 재정상 한 학생당 한 개씩 만들 수 있도록 하였는데, 몇몇 학생들은 여러 개 가질 수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학생들에게 매우 미안했다. 한국드라마, 음악의 인기는 생각보다 많아서 다 같이 따라 부르고, 한 학생은 나서서 겨울연가 주제곡을 불렀다. 너무도 신기했다. 한류열풍이 중국, 일본등지만 열렬한 줄 알았는데, 중앙아시아까지도 진출했다니……. 자랑스럽고, 이런 활동을 통해 서로에 대한 믿음과 친밀감을 더할 수 있었다.
 제일 기억에 남는 문화수업은 ‘캘리그라피’라는 수업이다. 이는 서예로 붓글씨를 써서 포토샵수업과 연계하여 편집하는 수업이었다. 간단히 낱말이나 이름들을 한국어로 가르쳐주었는데, 그들은 오히려 ‘사랑합니다. 수업 고맙습니다. 한국인들을 사랑합니다.’ 등의 메시지들을 우리에게 전달해주어 가슴이 너무나 뭉클했다.
그에 답변 또한 우리들이 붓글씨로 써서 주었다. 마치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듯이 말이다. 그들이 우즈벡어도 붓글씨로 써서 우리에게 알려주기도 하고, 그림도 그리고, 복도 중앙에 전시회도 열고, 몇몇 우수학생들에게 상품도 전달하였다.
  또한 젓가락질 게임도 하였는데, 콩집기를 통해 한국의 젓가락 문화를 체험하게 해주려는 의도였다. 시간을 재면서 누가 더 많이 넣다 내기도 하고 1,2,3등을 뽑아 소정의 상품을 주었다. 엄청난 승부욕과 작은 콩을 집기위한 집중력이 발휘되었다.
  한주간의 상대적으로 딱딱할 수 있는 IT교육을 마치고 하는 문화강의는 학생과 우리들을 더욱 가깝게 교감할 수 있게 해주는 매개였으며, 문화와 인류애를 교류할 수 있는 장이었다. 교실 문밖으로 하염없이 흘러나오는 학생들과 우리들의 웃음. 그것은 교육동안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어도 우리가 견딘 다기 보다 이를 즐길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행복을 가져다주었다. 그리고 시간이 가며 그들과 쌓아진 정이. 헤어짐이라는 것이 기다리고 있을 나중에는 후회가 될 정도로. 깊어졌다.
  하루는 오전오후반 학생들을 한데 모이게 하여 윷놀이 경합을 벌였다. 우리 팀원 한명씩 앞세워 4팀을 나누었다. 놀이문화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어린아이들처럼 웃고 즐겁게 만드는 것 같았다. 조별로 협동심이 발휘되며 조원끼리 격려와 응원 속에 시간가는 줄 모르고 했다. 그들의 승부욕 또한 대단하여, 우즈벡의 미래도 이러한 근성들이 모여 잘 다듬어 진다면, 더욱 밝아질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6.“ Don't cry.” 4번의 눈물.

  내 생일이 우즈벡 교육 기간 중에 있었다. 팀원끼리 내 생일겸사 저녁식사를 하고 기숙사로 돌아가서 피로를 풀려고 하는데, 팀원이 저쪽 방에서 학생이 부른단다. 그쪽 방으로 들어선 순간, 깜깜한 방안에 비춰진 손전등으로 내 이름을 크게 쓴 케이크와 정성스레 차린 빵과 과일, 샴페인과 화한만한 꽃다발. 그리고 우즈벡 전통모자……. 가 비춰졌다. 전혀 상상도 못했던 일이었다. 학생과 학교관계자들이 미리 와서 우리가 들어올 때까지 차려놓고 기다린 것이다. 감동이 밀려와서 나는 그만 눈물을 왈칵 쏟고 말았다. 우즈벡에서 생일을 맞이한, 나는 진정 행운아가 아닌가 싶다.
  이 눈물을 시작으로 부끄럽기도 하지만 나는 수업을 마감하고 수료식 때 소감을 얘기하다가 우리가 교육했던 현장, 수업시간, 학생들과 함께했던 모든 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 또한 주체할 수 없었다. 내가 이렇게 감수성이 풍부했던가. 슬픈 영화를 보아도 눈물을 잘 흘리지 않던 나인데, 감정표현에 한없이 무딘 나였는데…….
  정말 우즈벡과 작별인사를 마지막 날 공항으로 마중 나온 학생들, 학교관계자들과 인사하며 오늘은 꼭 울지 않아야지 몇 번이고 다짐했지만, 막상 시간이 다되어 공항으로 들어가야 할 때 또 눈물이 나서 울고 말았다. 아직도 생각나는 학생들의 말 “Don't cry."
  내년에 꼭 다시 오라며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으라며 간직하란다. 밤새 전날 학생들에게 쓴 편지를 주며, 헤어진 그날을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아프다. 울음을 멈추고 비행기에 타서 타슈켄트공항 활주로를 달리며 허공으로 날아 오를 때 왜 그렇게 또 눈물이 났는지 모르겠다. 인류애를 실감한 것이다. 상황이 된다면 올겨울에 학생들을 보러 우즈벡에 와서 자체봉사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7. “여기서 살아요”

 수업중반쯤 되는 때부터 학교관계자와 학생들이 하루는 진지하게 “비자 연장해 줄 테니 더 있어주세요.”라는 것이다. 방학이 끝나, 한국에서 학기가 시작된다고, 학교에 다녀야 한다고 하니, 타슈켄트대학에서 공문을 우리대학교로 보낼 테니, 더 있어달라는 것이었다. 또 학생들이 그냥 여기서 살라고, 하루는 우리 집, 하루는 아무개 집에 재워 줄 테니 살아버리라는 말에 현실은 그럴 수 없었지만, 그들이 이런 말을 할 만큼 우리를 믿어주고, 수업도 잘 따라오고, 좋아해준 것 같아서 정말 고맙고 감사했다.

#8. 내 소중한 친구들을 소개합니다.

-이브러험-

  우리가 가르치는 학생 중에 한국어를 귀엽게 잘하는 ‘이브라힘’이라는 친구가 있다. 수업을 하다 보니 학생들과 친해지고, 특히 이브라힘은 적극적으로 우리들을 많이 도와주었다. 우리가 시장을 볼 때, 따라와서 무거운 짐도 다 들어주고, 우리가 쉬는 시간이 있으면 자발적으로 찾아와 도시 곳곳을 구경시켜주는 가이드 역할도 하였다.
교육이 모두 끝나고 3-4일 쉬게 된 우리 팀에게 밤낮으로 전화하여 우즈벡 명소 이곳저곳을 알려주며 같이 가자고 하고, 아침 11시만 되면 우리 숙소 앞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더운 땡볕아래, 현지인들은 별로 안 좋아하는 바자르(시장)같은 곳도 구경시켜주고, 항상 숙소 문 앞까지 데려다 주었던, 우즈벡 문화를 많이 알려주려 했던, 고마운 친구이다.

-쇼크르-

 주말이면 학교에서 우리 팀을 가까운 지방이나 근교로 데려가 우즈벡 문화유적을 경험하게 해주었다. 한편으로는 제법 빡빡한 수업을 5일간 마치고 주말에 잠도 많이 자며 쉬고 싶었지만, 학생들과 학교관계자들은 우리들에게 언제나 많은 것을 보여주고 싶은가 보다.
  첫째 주에는 타슈켄트 시내 티비 타워, 디즈니랜드, 철수 바자르, 티무르 박물관등을 구경시켜주었는데, 학교관계자뿐만 아니라 학생들도 자발적으로 나와서 우리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2시간동안 광장에서 우리를 찾아 해맨 학생도 있었다. 대부분 한국어과 학생들에게 한국어 원어민인 우리들과 장기적인 대화를 통하여 도움을 줄 수 있었으리라.
  둘째 주에는 사마르칸트라는 지역에 갔는데, 차로 4-5시간이 걸리는 곳이다. 학교에서 차와 기사, 관계자를 동원하여 같이 가는 일정이 잡혔다. 그러나 우리 팀원 중 한명이 장시간 차속에서 멀미가 심해, 차를 탈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였다. 그리하여 팀원 두 명은 기차를 타고 가게 되었는데, 학생이 서로 자기가 같이 기차 안내해주면서 사마르칸트까지 가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사마르칸트에 도착하니 다른 학생들이 먼저 도착하여 아버지 차까지 몰고와서는 운전사역할을 톡톡히 해주었다. 이 친구는 우리가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 학교관계자가 차를 대절했음에도 미리 아버지 차를 몰고 와서는 숙소 앞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렇듯 우즈베키스탄에 있으면서 한 달간의 일상을 말하고 웃던, 현지인들과의 함께한 시간 속에서 행복을 발견하는 열락. 머나먼 이국땅, 낯선 곳에서 우러난 소박,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가 느끼는 안식이 훨씬 맛이 있었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10.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

 우즈베키스탄이라는 나라. 그때 마침 아프가니스탄 사태로 인해, 아프가니스탄과 국경을 접한 그곳 또한 위험하지 않을까 내심 걱정도 했지만, 그곳은 너무나 따뜻하고 아름다운 곳이었다. 순박한 사람들, 넘치는 정. 현실적으로도 좋았던 치안 수상한 매력이 있는 그곳, 우즈벡.
  우즈베키스탄 하면 또 고려인들을 떠올릴 수 있다. 고려인들이 상당수 강제 이주당하여 고려인 3세까지 살고 있다. 고려인들을 보면 한국인과 영락없이 같은 외모이지만, 구분이 확연할 만큼, 지난시간들을 말해 주는 듯한 무언가 어두운 그늘이 드리워져 있는 듯도 했고, 접근하기도 힘들어보였다.
우리 학생들 중에도 고려인이 꾀 있었다. 그러나 이내 그들과 친해져, 그들이 안내해준 한국식당에서 같이 음식도 먹고, 고려인이신 한국어과장님도 만나서 이런저런 도움도 받고, 한국어과 교실과 현황들을 살펴보았다. 여러 곳에서 후원받은 한국 책들과 한국물품들로 채워져 있었다.
수업막바지에 우즈벡 방송국에서 우리의 취재를 약속 했었지만, 스케줄이 맞지 않아서 아쉽게도 무산되었다. 그리고 학생들이 자기 집으로 와서 대접한다는 ‘초대’도 많이 받아서, 우즈벡 현지집의 가족생활과 식생활등을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
  드디어 마지막 수료식 날이 왔다. 많은 학생들이 한자리에 모였고, 대학교 총장님부터 관계자분들도 모두 오셨다. 그들에게 준비한 선물도 드리고, 학생들에게 수료증과 함께 수업과 전반에 걸친 표창과 함께 ‘도움상’등의 특별한 상들도 트로피, 상품을 주었다. 총장님께서는 수고하였고, 고맙다고 우즈벡 전통 의상과 모자를 선물로 주셨다. 큰 사고 없이 나름의 성공적인 마무리에 뿌듯했고, 돌아온 숙소에는 몇몇 친구들이 케이크와 함께 송별 깜짝 파티를 준비해 주어 너무나 고마웠다.
  그리고 우리를 기다린 헤어짐. 아쉬움. 그리고 지금 한국에서의 그리움.
우즈베키스탄이 앞으로 정보화의 발전을 이룩하기에는 정부차원이나 여러 가지 상황들에서 열악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 타쉬켄트대학생들의 배움의 열정과 가능성이 앞으로의 미래의 환한 빛이 되어 줄 것이라 믿는다. 한 달이라는 짧은 시간동안의 우리들의 활동이 그들에게 IT에 관한 관심과 꿈을 키우는데 에 여지를 마련해 주었으면…….
MBC 프라임, KADO 국제정보격차해소협력사업 소개 프로그램 방영

TV에 방영된 우리팀 활동 종료 모습
MBC의 시사교양 프로그램인 'MBC 프라임'에서 한국정보문화진흥원의 국제정보격차해소협력사업을 소재로 2007.11.20 (화) 밤 12시 35분 TV 프로그램을 방영하였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IT Korea 브랜드화와 관련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으로, 해외인터넷청년봉사단 활동을 포함하여 개도국 정보접근센터 구축, 해외 IT전문가 초청연수 사업 등 한국정보문화진흥원의 주요 국제협력사업을 담고 있습니다.
참가국
우즈베키스탄
기간
2007년 7월 24일 ~ 8월 25일 (약 1달간)
비용
국가전액지원(항공료, 체재비, 문화활동지원비, 숙박비, 보험료등)
 2007년 여름에 정보통신부, 한국정보문화진흥원에서 IT코리아로써, 세계 정보격차해소를 위한 사업 중에 하나인 해외인터넷청년봉사단의 일원으로, 우즈베키스탄 타쉬켄트 세계 언어 대학교에 파견되어 한 달간 컴퓨터교육 및 한국문화교육 등에 대한 봉사활동을 하고 왔습니다.
 
 21세기 사회 변화 현상의 핵심은 세계화와 정보화이다. 유, 무선 통신기기와 인터넷 등 각종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로 전 세계가 하나의 거대한 네트워크를 구축 하고 있으며 세계 경제는 정보의 생산과 활용능력이 경제발전의 원동력으로 작용하는 지식기반경제로 전환되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세계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국가 간의 정보통신기술의 균형 있는 발전이 요구 된다.
  그러나 이러한 정보화 물결 속에서 현재 선진국과 후진국의 정보 격차는 새로운 사회적 불평등과 불안요소로 점점 심화되는 양상을 띠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정보통신(IT) 강국으로 평가받고 있는 우리나라로서는 정보격차해소에 이바지할 책임과 과제가 있다. 이 책임을 지고 과제를 수행하는데 에 필요한 구성원들이 팀을 이루었다.
  대한민국의 건장한 청년으로서, IT와 관련한 전공을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이러한 정보화 빈국을 지원하는 것은 IT 코리아의 구성원으로서의 의무이자 기회였다. 언어담당자. IT담당2명 ,문화담당, 이렇게 4명이 하나의 팀을 이루었다.
  현재 정보 격차의 실상을 느낄 수 있는 중앙아시아 지역, 구소련에서 독립한 초기에 통제경제체제에서 시장경제체제로 전환됨에 따라 다른 독립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생산이 감소하고 높은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여 지금까지 경제난이 지속되고 있다. 그 중에 특히 우즈베키스탄의 수도인 타슈켄트, 과거의 실크로드의 중심지였던, 중앙아시아 제국에서 자원이 가장 많은 이 도시는 현재 중앙아시아 교통 허브로 크게 성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 나라의 IT분야는 많이 열악한 실정이다. 2003년 UN산하 국제정보통신연맹(ITU) 발표 자료에 따르면 우즈베키스탄의 정보통신기술 수준은 전 세계 178개국 중 121번째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가정에서는 전화모뎀을 사용하여 속도가 56k 인데 실제속도는 56k 도 제대로 나오지 않고 자주 끊긴다. 이 와중에, IT분야의 발달을 위하여 IT강국인 한국과의 교류, 도움 통하여, 이 나라의 경제, 산업 및 여러 분야에 걸쳐 전반적인 발전을 돕는다면, 국가 간에 상부상조 하는 좋은 기회 일 것이다.

<해외인터넷청년봉사단이란?>

 정보통신부와 한국정보문화진흥원에서 추진하는 해외인터넷청년봉사단은 정보화후발국가의 정보격차해소, 한국의 정보화현황및 IT산업홍보, IT인적네트워크 구성을 통한 국내 IT산업의 해외진출 기반 구축 및 디지털 한류확산에 기여하고 있다.
  개도국의 정보격차해소를 위해 대학생, IT전문가 등 IT인력으로 구성된 해외인터넷청년봉사단은 전 세계 개도국에 파견되어 정보화교육 및 u-KOREA홍보등 다양한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해외인터넷청년봉사단은 2001년 20개국에 175명이 처음 파견된 이래 2009년까지 총 61개국 1,973명이 파견되어 현지공무원, 학생, 주민을 대상으로 컴퓨터 및 인터넷 활용교육을 실시해 왔다.
  2009년에는 36개국에 323명의 봉사단이 파견되어 우리나라의 선진 정보기술을 개도국에 전파하여 국제정보격차해소에 기여하고 우리나라의 국제적 위상을 높였을 뿐만 아니라 인적 문화적 교류활동을 통해 국가 간 친선도모에도 크게 도모했다.
개요
우리의 전략대상국가중 정보화 후발국 30여 개국에 대학생, 교수 등 IT전문가로 구성된 200여명의 정보화 전문가를 파견
파견규모 30여 개국 300여명 파견
파견지역 아시아, 태평양, 구소연방(CIS권),동유럽, 중동, 중남미 및 아프리카 등 전 세계 개발도상국
파견시기

기간
7,8월 중(약1개월)
팀 구성 4인 1팀(IT담당 2명, 언어담당1명, 문화담당1명)
봉사활동내용 컴퓨터, 인터넷교육,PC 및 네트워크 정비, 홈페이지 제작 지원, IT Korea 및 우리문화홍보, IT분야 인적네트워크 구축
 
지원내용
왕복항공권 왕복항공권 지원
가입내용 여행자보험/긴급의료 서비스가입
체재비지급 약 60만원
지원 장비 노트북 컴퓨터, 디지털 카메라, 각종 소프트웨어 ( 활동 종료 후 현지 봉사대상기관에 기증)
교재 및 홍보자료 정보화 교재 및 한국어 교재, 봉사단 가이드북, 정 보화교수법, IT코리아 홍보 CD, 한국문화 홍보CD등
봉사단소모품 유니폼, 모자, 배낭, 명찰, 태극기, 봉사단기, 현수막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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