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활동경험담

나의 여름, 인도와 사랑에 빠지다 - 인도
글쓴이 이상언     소속 이화여자고등학교 2학년

날짜 09.10.01     조회 3679

#인도, 그리고 문화

   ‘인도는 큰 나라’라고 인도를 정의할 수밖에 없던, 인도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던 나에게 인도가 다가온 것은 작년 호주에서였다. 몇 달 째 영어 책 밖에 읽지 못해 한국 책을 그리워하던 나에게 한 친구가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책을 빌려주었다. 이 책은 ‘제 친구들 하고 인사하실래요?’ 인데, 우리나라 한 봉사자가 인도 캘커타에서 봉사하면서 바라본 인도의 모습, 인도인의 아름다움을 묘사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인도의 아름다움보다는 자원봉사자들의 순수함, 열정에 감명을 받았다. 그리고 ‘나도 이들처럼 자원봉사를 해야지’ 라는 단순한 꿈을 가졌다.
  호주에서 다닌 학교에서 사귄 친구들 중 Kitty라는 인도 친구가 있었는데, 이 아이는 평소 조용하고 친절한 아이였다. Kitty는 가끔 점심에 인도 음식을 싸왔는데, 난 인도 음식은 어떨까 궁금하여 가끔 먹어보곤 했다. 강렬한 향으로 입맛에 맞지는 않았지만 새로웠고 독특했다. 어느 날, 학교에서 Year 10 캠프를 갔는데, 그날 밤 장기자랑 시간이 열렸다. Kitty가 참가 한다 길래 “조용한 Kitty가?” 하며 의아해했다. 그리고 Kitty의 무대가 시작되었을 때 모든 아이들이 일어나 환호하였고, 나 또한 함께 일어나 그 황홀한 매력에 빠져들었다. Kitty는 인도 전통의상을 입고 몇 년 동안 연습한 인도 춤을 추었다. 리듬, 몸짓, 의상 모두 화려하였고, 나에게 충격을 주었다. 그리고 이것이 내가 인도에 대해 더 알고 싶고, 인도에 가고 싶은 계기가 되었다.
  또 호주에 있는 동안 나는 우리나라 문화 알리기를 적극 실천하였는데, 친구들, 호스트 가족들이 한국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게 아쉽기도 하고, 또 빅토리아 주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학교가 한군데도 없다는 사실에 마음이 상하기도 했다. 그래서 친구, 손님들을 한국 식당에 데려가 맛있는 한국음식을 맛보기도하고, Year 10 담당선생님께 부탁드려서 Year 10 assembly 시간 때 내가 가지고 있는 한국 사진으로 ppt를 만들어 한국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또 girl guides (우리나라의 걸 스카우트) 모임 시간에 내가 한국의 날을 주최하여서 윷놀이, 우유 송 배우기, 한복입기, 달고나 만들기, 숫자배우기를 통해 아이들에게 한국 문화를 알리기도 했다. “한국어도 언어야?” 라고 묻던 아이들이 한국의 음식, 인사말, 노래, 의상을 알게 되는 기쁨의 시간이었다. 이와 같이 나는 호주에서 한나라의 문화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되었고, 문화를 알리는 즐거움을 배우게 되었다.

#글로벌 리더 양성프로그램과의 만남

   몇 년 전 중국어 과외 선생님의 소개로 알게 된 Mizy에 나는 거의 일주일에 3번 이상씩 접속한다. 대부분 대학생을 위한 프로그램이 많이 소개되지만, 고등학생이 참가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소개되어 Mizy를 통해 좋은 기회를 많이 찾게 되었다. 서울시 글로벌 리더 양성프로그램도 Mizy 사이트에 들어갈 때 알게 되었다. 나는 Global 과 Leader 라는 단어를 참 좋아하는데, 그 단어를 보고 클릭해 보았더니 고등학생 프로그램 중 ‘인도: 문화산업을 통한 국가 영향력 확대’를 보고 ‘아! 이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몇 일간의 자기 소개서 작성을 거쳐 신청하게 되었다. 이 때 까지는 ‘서울시내 몇 백 명의 고등학생 중 40명을 뽑는데 내가 될까?’ 라는 의심 가득 찬 ‘안 되면 그만이지 뭐.’ 라는 생각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1차 서류 심사를 통과하고 면접 준비를 하면서 인도에 관해 몰랐던 점을 알게 된 나는 ( 나는 인도의 영화 산업이 발전해 있다는 것을 이 때 처음 알게 되었다.) ‘정말 뽑히고 싶다.’ 라는 생각으로 간절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내 자신의 리더십을 되돌아보고, 다른 친구들의 리더십을 배우고, 세상에 대한 넓은 더 넓은 시각을 가지고 싶었다. 그리고 2차 면접 발표 날 엄마에게서 문자가 왔다. “딸, 축하해”
 

#글로벌 리더 강연 - 글로벌 리더가 되기 위해!

   ‘글로벌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어떠한 자질이 필요할까?’ ‘나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내가 지금 학교 공부와 생활에 충실한 것만으로 글로벌 리더에 가까이 다가 갈 수 있을까?’ 나는 항상 이것들을 궁금해 했다.
   김효은 씨는 글로벌 리더가 되기 위해 필요한 자질을 하버드 모 교수의 ‘미래를 위한 5가지 마음’을 이용해 설명해 주셨다. 첫 번째로 최소 15년 매일매일 자신을 훈련하여 어느 한 분야에 있어서 정통한 지식을 쌓는 ‘훈련된 마음’ 나는 지금껏 전문 지식은 대학교 때부터 쌓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가끔 ‘이 과목은 고등학교 졸업하면 책도 안 펴볼 것 같은데, 이거 시간 낭비 아닌가?’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모든 과정이 리더가 되기 위한 훈련과정이라는 김효은 씨의 이야기를 들으니 마음이 놓였고 자신감이 생겼다.’난 지금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리더가 되기 위해 훈련 중이다. ‘라고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두 번째는 ‘종합하는 마음’으로 나무가 아니라 숲을 보는 능력, 즉 공부할 때 하나만 보는 것이 아니라 연결해서 보는 노력이다. 이외에도 글로벌 리더가 되기 위해 필요한 마음에는 훈련을 통해 창의력을 기르는 창조하는 마음, 타인을 배려하는 존중하는 마음, 리더로서 책임을 가지는 윤리적인 마음이 있다. 이 강연을 듣고 하루하루의 내 생활 태도가 리더가 되는 것을 결정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이 주위 사람들을 사랑하고, 더 많이 내 일에 책임감을 가져야 겠다.
   두 번째 강연은 유니세프에서 일하시는 김경희 씨의 기아와 빈곤에 대한 강연이었다. 우리는 가난에 대한 속담을 떠올리는 시간을 가졌는데, 다른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나는 생각나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김경희 씨는 우리가 가난을 경험해 보지 않아서 가난에 대한 속담이 떠오르지 않는다고 하셨는데, 맞는 말 같다. 우리는 또 기아와 가난을 해결하기 위한 다른 나라와 타국 학생들의 노력을 보았는데, 다른 나라 친구들은 근로 봉사의 날에 일한 임금을 유니세프에 기부하고, 패션쇼를 열어 기금을 마련하는 등 여러 모금 활동을 주체적으로 열고, 스웨덴은 정부개발원조의 배율이 1.03%나 된다. 실제로 내가 호주에 갔을 때 학교에서 많은 친구들이 직접 만든 케이크를 팔거나, 영화 보기 행사를 주최하거나, 그림을 그려 팔면서 많은 기금 운동을 벌였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어떠할까? 우리나라는 정부개발원조가 0.05% 밖에 안 된다고 한다. 또 학교에서도 보면 아이들은 불우 이웃돕기를 할 때 “내가 불우이웃인데.” 하며 강요에 의해서 돈을 내는 듯하다. 개인주의의 원조인 서양도 이렇게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데, 우리는 어쩌다가 이렇게 좁은 마음을 가지게 되었을까? 우리가 세계의 가난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좁은 생각으로부터 탈피해야 할 것이다.

#글로벌 리더 강연 - 전쟁 그리고 지구온난화

  이번 강연의 첫 번째 주제는 전쟁이었다. 나는 전쟁해 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 전쟁의 복잡한 갈등 원인가 잔인한 전쟁의 모습을 알고 싶지 않았고, 나와는 상관이 없는 것이라고 생각해 외면해 왔다. 이렇게 전쟁에 대해 기초 지식이 없다보니 신문 기사를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고, TV 뉴스를 보아도 이해가 안가서 더 전쟁이라는 것과 멀어지게 되었다. 그런데 김재명 씨가 ‘전쟁이란 무엇인가’의 전쟁의 규명부터 원인, 현실, 해결책을 차근차근 영상과 함께 소개해 주셔서 이해가 너무 잘되었고 전쟁이 현실로 느껴졌다. 이렇게 전쟁에 대한 기초 지식을 배우니 앞으로 TV, 뉴스에서 전쟁 소식을 들을 때 더 관심 있게 볼 것 같다.
   두 번째 강연의 주제는 지구온난화였다. 나는 이 강연을 들으면서 “아, 이 강연을 나 혼자가 아닌 우리 학교의 모든 친구들, 대한민국의 모든 학생들이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호주에 있었을 때 Resource Management라는 과목을 수강하였는데, 지구 온난화에 대해서만 한 달을 배웠다. 이 과목을 통해서 나는 지구온난화의 현상, 문제점, 원인, 영향, 해결책, 세계의 대응을 배웠고, 각각 학생들은 지구온난화에 관한 주제를 하나씩 조사해 PPT를 만들어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렇다 보니 학생들이 지구온난화에 대해 관심이 많고, 문제점도 잘 깨닫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 내가 이번 년도 지리시간에 지구온난화에 대해서 배우는데 한 수업시간 50분이 걸렸다. 우리는 현재 세계가 마주하고 있는 문제를 알고, 해결하기 위해 배우는 것이 아니라, 시험을 보기 위해 배우는 것 같았다. 점수를 위해 교과서만 달달 외우는 상황 속에서 아이들은 지구온난화의 심각성을 알 수 있을까? 지구온난화가 우리가 해결해야 할 과제라는 것을 느낄 수 있을까?
 

7월 27일

#출발: 인도야 기다려

   지금은 공항! 짐까지 다 맡기고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아직도 떠난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인도에 도착해서 뜨겁고 습한 공기를 만나면 ‘ 아! 인도다.’ 라는 느낌이 들까? 출국장 안으로 들어오는데 문제가 발생했다. 선생님께서 선생님의 E-ticket을 가져오지 않으신 것이다. 선생님이 너무 태연하게 “어떡하죠? 박사님들?” 하셔서 선생님이 장난을 치시는 건지 아니면 진짜로 안 가져오신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진짜인가보다! 선생님은 우리에게 해결책을 찾을 것을 요구하셨다. 우리는 그냥 무작정 들이대기, 공항에 있는 무료 컴퓨터 이용하기 등 다양한 제안을 냈다. 수화물을 확인하시는 분께 여쭈어보니 그분께 E-ticket을 안 가져온 것을 말하고, 다른 곳에 가서 프린트해오면 된다고 한다. 만약 E-ticket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우리나라에서는 몰라도 도착지 인도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한다. 좋은 것 배웠다.
   면세점에 들어와서 비행기를 처음 타는 재현이는 신이 났다. 재현이는 활기차게 민준이와 함께 면세점을 활보하였고, 경아, 보현이, 선생님, 나는 의자에 앉아 신종 플루에 대비하여 체온도 재고 전세현 선생님께 인사 전화도 드렸다. 모든 준비 완료!
  

7월 28일

#도착: 나마스떼, 인디아!

   한 숨도 못잔 8시간의 긴 비행을 마치고 드디어 인도에 도착했다. 까무잡잡한 인도인들 사이에 둘러싸이니 드디어 인도에 왔다는 실감이 난다. 난 지금 신나는 건가? 걱정 되는 건가? 모르겠다. 그냥 즐기자!
   우리를 가이드 해주기로 한 오빠들과 약속한 3시보다 한 시간 반이나 일찍 도착해서 걱정했는데, 마침 오빠들이 나와 계셨다. 박시용 오빠는 뭄바이에서 1년, 임정식 오빠는 7개월을 사셨는데, 영어도 잘하시고 키도 크신 걸 보니 인도 여행 동안 멋진 가이드와 보디가드가 되어주실 것 같다.
   숙소까지는 택시를 2대로 나누어 타기로 했다. 그런데 택시에 트렁크가 없어서 캐리어를 택시 천장에 달아야 하고 문도 자꾸 열린다. 숙소까지 무사히 갈 수 있을까? 새벽 2시에 여자 셋이서 처음 보는 남자 둘과 함께 타국에서 택시를 타고 어딘지도 모르는 숙소로……. 그것도 사이드 미러도 없고 속도계마저 고장 난 택시는 총알택시처럼 초스피드로 달리고……. 겉으로는 표를 안냈지만, 두려움의 30분이었다.
   내 걱정과 달리, 우리는 무사히 YMCA International 숙소에 도착했다. 이때는 새벽 2시였다. 한국 시간으로는 5시 반인데, 지금까지 안자고 버틴 게 대단하다. 그 후에도 우리는 시용, 정식오빠와 앞으로의 일정에 대해 회의를 나누고 4시 반에 잠들었다. See you tomorrow, India!

#늘어짐

   개가 땅바닥에 늘어져 누워있는 곳, 고양이가 쥐를 보아도 사냥 욕구를 느끼지 않는 곳. 내가 처음 본 인도는 겉으로 보기에는 수많은 사람들로 분주해 보이지만 그 속에는 분명히 ‘늘어짐’이 있었다. 길거리에 내려앉은 사람들은 목적의식 없이 누군가의 지갑이 열리기를 바라고 있었다. 이들의 내일은 오늘과 무엇이 다를까? 내일도 이들은 이 자리에서 허공을 바라보며 앉아 있을 것이다. 왜 이 사람들은 노력하지 않는 거지? 왜 노력해서 변화를 추구하지 않는 거지? 이렇게 살아서 30년 뒤의 이들의 삶이 지금과 무엇이 달라지는 거지? 질문을 던져본다.
   차를 타고 이동하는데, 갑자기 어떤 여자가 차를 향해 달려왔다. 길을 건너는 사람인가 했더니 아기를 안고 우리 아기 먹을 게 없다며 돈을 요구했다. 이 모습을 보고 시용이 오빠가 한 이야기를 해주셨다. 어떤 한두 살 되어 보이는 어린 아기가 돈을 구걸하는데, 돈을 받고 좋아했다는 것이다. 이 한 살 된 아이가 돈이 뭔지는 알까? 이 종이가 어이다 사용되는 것 인줄을 알고 좋아했던 것일까? 가난한 부모의 인생이 자식에게 한 살 때부터 대물림 되고 있는 것이다. 안타깝다. 이 사람들을 어떻게 구원할 수 있을까? 그저 방관하는 것? 돈을 주어서 잠깐의 허기를 채워주는 것? 답이 안 나온다. 한숨만 나올 뿐이다.

#모두 나마스떼!

   우리의 이번 뭄바이 여행 이동수단은 8인승 자동차이다. 앞의 두 줄은 일반 자동차처럼 앞을 바라보고 있고 뒷좌석은 지하철처럼 두 의자가 서로 마주보고 있다. 어디를 탈까 고민하다가 ‘언제 또 이렇게 타보겠어’ 생각하며 뒷좌석을 택했다. 뒷좌석은 좁긴 했지만, 차 뒤에 넓은 창으로 인도를 바라볼 수 있어서 좋았다. 탁 트인 느낌이랄까? 그 창으로 우리 차 뒤 운전수에게 웃으면서 손을 흔들었더니, 그 남자도 함박웃음을 띄며 손을 흔들어 준다. 순수하고 예쁘다.
   실제로 우리는 방문하는 곳곳마다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얼굴 하얀 동양 여자들 셋이 다니니 신기한가 보다. 쳐다보는데 그냥 쳐다보는 게 아니고 목이 돌아갈 때까지 쳐다본다. 처음에는 부담스러웠는데 나중에는 그러려니 했다. 옛날 우리나라에 미군들이 왔을 때 어린아이들이 신기해서 쫄래쫄래 따라다니던 것과 같은 거겠지. 길거리에 앉아서 손을 흔드는 사람들에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니 해맑게 웃는다. 나도 저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하지알리 무덤

   성지 순례 후 머리를 메카를 향해 두고 죽은 이슬람교 성자, 하지알리. 그의 무덤은 바다 위에 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바다를 향해 있는 500m 둑길 끝에 위치해 있는데, 밀물 때가되면 바다 위에 떠있는 듯 하고 썰물 때가되면 길이 생긴다.
   우리가 그곳에 갔을 때는 밀물 때여서 파도가 자꾸 둑 위로 올라와 무덤으로 가는 사람들을 젖게 했다. 둑길에 걷기 시작할 때는 괜찮겠지 싶어서 잘 걸어갔는데, 걸으면 걸을수록 파도치는 게 점점 더 심해졌다. 파도가 나를 위협하니까 어렸을 적 안 좋은 기억이 떠올랐다. 몇 년 전 가족과 바다에 가서 사촌동생과 함께 바다 안에서 놀고 있었다. 그런데 파도가 너무 거세서 파도에 밀려가 도저히 밖으로 나올 수 없었다. 둑 위에서 고스톱을 치는 아줌마, 아저씨들에게 도와달라고 소리쳤는데, 내가 장난을 치는 줄 알았는지 물위에서 허우적대는 나를 보고 웃기만 하셨다. 나는 이렇게 죽는구나……. 생각했다.
   파도가 둑 위에 올라와 치는 게 너무 무서워서 소리를 지르니까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날 보고 웃는다. 외국인 여자 아이가 물에 젖어서 소리를 지르니 웃긴가 보다. 나는 심각했는데……. 그래도 고마운 것은 어떤 할머니께서 나를 잡아주시며 파도가 올라올 때는 멈추라고 해 주시고 파도가 진정되었을 때는 같이 걸어주셨다. 나보다 체구도 작으신 가녀린 할머니의 손이 큰 의지가 되었다.
   500m 길이 얼마나 길게 느껴지는지 무덤에 도착했을 때는 머리와 옷이 다 젖어서 망신창이가 되었다. 무덤 안에 신발을 벗고 들어가니 돌로 된 침대 위에 비단이 여러 겹 포개어져 있고 사람들이 그 앞에서 기도를 하며 비단에 입을 맞춘다. 이 의식이 어떤 의식인지 궁금하여 옆에 있는 사람에게 묻고 싶었지만, 엄숙하고 진지한 그 분위기 속에서 그들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 조용히 나왔다.
   돌아가는 길은 경아와 민준이가 옆에서 잡아준 덕분에 덜 무섭게 갈 수 있었다. 이래서 친구가 좋다. 차에 돌아와 생각을 하니, 내가 신성한 곳에서 난리를 친 것 같아 부끄러웠다. 하지말리 성자를 만나기 위해 천민이든, 엘리트든, 남자든, 여자든 다 존엄한 마음을 가지고 오는 곳에서 무섭다고 소리 지르고 날뛰다니. 정말 진심으로 죄송하다.
 

7월 29일

#Mumbai 대학교

   인도 최고의 대학. University of Mumbai를 방문했다. 세계 100위 안에 드는 대학이라고 해서 우리나라 상위권 대학같이 화려하고 깨끗한 건물을 기대했는데, 이런! 캠퍼스 안에는 분주한 오토릭샤들이 거리를 채우고, 건물은 어두침침한데다가 심한 자연재해만 만나면 곧 쓰러질 것 같다. 수업은 우리나라처럼 ppt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교수님이 강의를 하면 공책에 그 내용을 다 받아 적는다고 한다. 그래서 지나다니는 학생들은 노트를 한 가득 들고 있다. 이 열악한 환경에서 천재들이 배출된다. NASA에서 일하고, 노벨상을 받고.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는 일 년에 몇 백 만원이나 되는 학비를 내고, 에어컨 빵빵하고 최첨단 설비를 갖춘 좋은 환경에서 공부를 하는데, 열악한 환경에서 공부하는 인도만큼 뛰어난 인재들을 많이 배출하지 못한다. 왜 그럴까?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더 좋은 환경에서 공부하고 있는데……. 시용오빠와 정식오빠의 말을 들어보니 인도인들의 대학생활은 우리나라처럼 놀고 즐기는 문화가 아니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학교 끝나면 미팅하고, 놀러가고, 술 먹으며 즐기는 문화인데, 여기는 학교가 끝나면 고등학교처럼 집에 가서 공부를 하거나 취미생활을 즐긴다고 한다. 비록 모든 한국 대학생들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젊은 시절을 즐기고 있는 동안 열심히 공부하는 인도인들이 있다. 20년 후 한국과 인도의 모습은 어떨까?

#같은 인도. 너무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들

   Samyak 씨를 인터뷰하기 위해 간 곳은 Coffee bean이 있는 백화점 인데, 들어가려면 옷과 가방 수색을 받아야 한다. 이곳은 마치 서양처럼 푸드 코트에 Subway, 젤라또 가게, 스무디 가게가 있고 브랜드 옷가게가 있다. 이 안에 온 사람들은 길거리에서 본 인도 전통 옷을 입은 사람들이 아니라, 정장, 청바지의 세련된 옷차림을 한 소위말해 ‘엘리트’들이었다. 내가 인도에 온 것인지, 아니면 한국에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시용, 정식오빠와 함께 숙소 근처에 있는 빈민촌을 향해 걸었다. 5분도 안 걸었는데 바로 눈앞에 보이는 슬럼가. 땅 바닥에 주저앉은 사람들, 바람 불면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한 집, 길거리에서 말리고 있는 빨래들, 길 위에 앉아 먹는 밥. 같은 인도인데, 불과 차타고 20분도 걸리지 않는 거리인데, 너무나도 다른 삶의 인도가 존재한다. 부자와 빈민의 차가 극심한 인도. 이들은 서로 같은 인도인이라는 동질감을 느낄까?
   그래도 인도의 빈민가에서 희망이 보이는 것은 길거리에서 본 어린 소녀들 때문이다. 흙으로 뒤덮인 길 위에서 자기 이보다 하얀 책을 놓고 쭈그려 공부하는 아이들. 그 모습이 너무 예쁘고 기특해 카메라를 가까이 하니 손을 흔들며 환하게 웃는다. 애기야, 세상이 네 신분과 환경을 무시하더라도 절대로 희망을 잃지 말고 지금처럼 열심히 공부해. 그래서 네 가족의, 네 마을의 빛이 되어줘.
 

7월 30일

#대조영함

   소말리아 해적을 제압하러 고국을 떠난 대조영함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청해 부대의 대조영함이 소말리아의 해적을 퇴치하러 아덴만으로 향하는 도중에 인도를 거쳐 가는 것이다. 자랑스러운 우리 해군들을 멀리 타국에서 환영하기 위해 인도의 교민들이 모였고, 우리도 그 자리를 함께 했다. 그 자리에는 총 영사관님과 두산 중공업 주재원 가족들이 계셨다. 환영 행사 준비를 하는데, 너무 감사하게도 우리가 꽃다발을 전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이 자랑스러운 자리를 함께 할 수 있는 것도 영광인데 꽃다발까지 전달할 수 있다니! 인도에서 정말 좋은 경험하고 간다.
   팡파레 소리와 함께 등장한 대조영함은 우람한 체격을 가지고 있었다. 선착장에 들어오는 배 위에서 흰 제복을 입고 떳떳하게 서있는 군인들을 보니, ‘내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 이들이 이렇게 우리나라를 위해 헌신하고 있구나.’가 느껴졌다. 선착장에 대조영함이 도착했고 우리는 그들을 따뜻한 박수로 맞이했다.
   배 위에서는 군인들이 인도에 도착한 것을 축하하는 식이 열렸다. 인도 제독, 총영사님, 김승우 함장님께서 군인들을 격려하셨고, 한국과 인도 간 우호적인 협력관계 발전을 위해서 힘쓸 것을 약속하셨다. 식이 끝나고 함선 내부를 구경할 수 있었는데, 함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넓었다. 대함, 대공, 대지 공격용으로 이용되는 5“/62 함포도 직접 보았는데 전투가 현실이 아닌 영화 속 이야기로 느껴져서 ”이거 진짜 쏴져요? “ 하고 여쭈어 보니 장교님께서 웃으시면서 ”그럼요. 당연히 나가죠. “ 하신다.
   함선을 구경하다가 다음 교수님과의 인터뷰 약속이 있어서 나가려하니 해군 분들께서 ”아이고. 여기까지 오셨는데 점심 드시고 가셔야죠. 비빔밥 준비해 놓았으니 조금이라도 드시고 가세요. “ 라며 친절을 베풀어 주신다. 어떻게 할지 고민을 하다가 그분들의 친절이 너무 감사하고 또 비빔밥도 먹고 싶어서 잠시 쉬다 가기로 했다. 타국에서, 그것도 군함 안에서 먹는 비빔밥은 꿀맛이었다. 비빔밥이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었다니! 식사를 마치자 장교님은 우리에게 게토레이 음료수까지 챙겨주셨다. 끈끈한 한국인들의 정. 같은 한국인이라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된다.
   장교님은 우리를 밖에까지 나와 마중해 주셨다. 군인하면 딱딱하고 냉정한 이미지가 떠올랐는데, 힘든 여정에도 불구하고 인자한 미소로 우리를 대해주신 청해 부대 해군 분들께 감사드리고 앞으로의 여정도 평안하셨으면 좋겠다.

#릭샤

   뭄바이의 교통수단 릭샤. 릭샤는 자전거 릭샤와 오토바이가 달리는 오토릭샤가 있다. 자전거 릭샤는 요새 잘 찾아 볼 수 없고, 길거리에는 셀 수 없는 오토릭샤들이 자동차 사이를 요리조리 달린다. 항상 이동하는데 자동차를 타고 다녀서 릭샤를 차안에서 구경만 했다. ‘타고 싶어.’ ‘인도에 와서 릭샤를 안타면 제대로 된 인도여행이 아니지.’ 하며 4일 동안 릭샤 타령을 하다가 드디어 릭샤를 타게 되었다. 우리 인원이 시용, 정식오빠를 포함해서 총 8명이기 때문에 3대에 나누어탔다. 나는 재현이, 민준이와 같이 탔는데 좁았지만 나름 재미있었다. 질서 아닌 질서가 있는 교통상황은 릭샤 안에서 보니 더 스릴 넘친다. 이렇게 운전하는데 사고가 안 나는 게 신기하다. 다들 Best Driver이다. 릭샤를 타고 5분정도 달리니 눈이 따갑고 코가 매워 눈을 자꾸 깜박거리게 된다. 이 많은 차들에서 나오는 매연에 휩싸여서 그렇겠지. 그래도 릭샤를 타서 인도를 더 가까이 느낄 수 있었다. 바로 옆에 지나가는 릭샤 운전사에게 인사도 하고, 어떤 여자 2명은 재현이의 볼을 쓰다듬고 가고, 한 소년은 내 팔을 잡아 댕기며 스티커 좀 사 달라 하고. 릭샤에서 만난 인도. 정겹다.
 

8월 1일

#24시간 달리는 기차

   뱅갈로르로 가는 기차에 탔다. 24시간의 긴 여행이다. 어제 차표 예약 소에 가서 표를 사려는데 대기자 명단에 있어서 서서 가야할 까봐 걱정을 많이 했는데, 다행히도 자리가 났다. 비록 6자리가 모두 붙어 있지 않고 둘씩 떨어져 있었지만, 누워서 갈 수 있는 것만으로도 어디야! 기차 안에서 밖을 바라보니 다양한 인도가 내 눈앞에 펼쳐진다. 강가에서 벌거벗고 목욕하는 아이들. 우리나라 시골같이 밭이 넓게 펼쳐진 곳. 호주 카카두 사막 캠프에서 본 것같이 척박한 땅. 옹기종이 모여 풀을 뜯고 있는 염소들. 정차 역마다 그 모습이 다르고 또 다르다.
   기차 여행에서 가장 좋은 점은 인도인들과 많은 교류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단체로 움직이는데다가 자동차를 타고 다녀서 인도인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 근데 기차 안에서는 서로 마주보고 24시간을 가니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다.
   민준이, 재현이 앞자리에 앉은 분들은 할머니, 아저씨, 아주머니 그리고 귀여운 애기 리샤다. 친해지고 싶어서 아침식사를 하고 계시는데 “이거 뭐에요? 먹어봐도 되요?” 여쭈어 보니 흰 쌀가루 빵에 토마토소스라며 흔쾌히 건네주신다. 그 이후로 우리는 리샤 가족과 기차여행 내내 단란한 시간을 보냈다. 리샤 가족은 집은 뭄바이에 있고 아저씨 직장이 뱅갈로르에 있다고 한다. 애기 리샤는 그 큰 눈이 얼마나 똘망똘망한지 깨물어주고 싶을 정도로 너무 사랑스럽다. 내가 눈을 깜빡거리자 자기도 눈을 깜빡거리고, 아저씨가 리샤에서 작은 소리로 “Don't tell anyone" 이라고 하니까 그 조그만 입술을 내 귀에 대고 무언가를 소곤거린다. 진짜 너무 사랑스럽다.
   아저씨와 할머니가 한국에 대해 많은 관심을 보이셔서 즉석 기차 안 한글 강습소를 차렸다. 할머니가 naughty girl 이 한국어로 뭐냐 물으시기에 ‘장난꾸러기’ 라 가르쳐 드렸다. 그러니 할머니께서 ”리샤 장난꾸러기“ 하셨다. 그 김에 심화 학습겸 기차 안에서 계속 자고 있는 재현이를 예로 들어 ”꾸러기 means she is good at something. 장난 means naughty things. 리샤 is good at 장난, so 리샤 is 장난꾸러기“ ”재현 is good at sleeping. 잠 means sleeping, so 재현 is 잠꾸러기“ 가르쳐 드렸더니 할머니께서는 헤어질 때까지 그 단어를 잊지 않으시고 쓰셨다. 또 내가 리샤를 보면서 제일 많이 외친 ”귀여워“를 가르쳐 드리니 ”리샤 귀여워“를 너무 사랑스럽게 말하신다.
   할머니께서는 우리가 귀엽고 친근하셨는지 가방에 싸온 주전부리들을 나누어 주셨다. 기차가 출발하기 전 백 목사님께서 인도인이 주는 음식은 마음대로 먹으면 안 된다 하셨는데, 우리 외할머니 같이 친절하고 상냥하신 분이 주시는 것을 거절 할 수 없었고, 또 인도인들의 간식은 어떨까 궁금해 받아먹었다. 카레 맛이 나는 콘푸라이트, 망고 맛 젤리. 땅콩 엿. 다 너무 맛있다. 할머니의 인정이 듬뿍 담겨서 더 맛있는 것 같다. 할머니는 잘 먹는 우리가 뿌듯하셨는지 자꾸 주시고 우리는 감사해서 자꾸 먹고……. 결국 너무 많이 먹어서 그날 점심, 저녁 다 먹을 수 없었다.
   경아와 보현이 옆자리에는 어떤 남자, 여자 분들이 계셨다. 우리가 뜨거운 태양에 지친 피부를 진정시키려고 마스크 팩을 할 때 옆에 여자 분이 가위도 빌려주시고 우리가 팩 하는 것도 흥미롭게 바라보시기에 팩의 일부를 드렸다. 이거하면 피부가 좋아져요 말씀드리니 팩을 얼굴 여기저기에 떼었다 붙였다 하면서 좋아하신다.
   기차에서 만난 이 사람들에게 우리가 첫 번째 한국인이었을 것 같다. 지나다니는 사람들마다 우릴 보면 ‘차이니즈’라고 할 정도로 한국에 대한 인지도가 낮으니까. 마음이 따뜻했던 이 사람들에게 우리가 마음이 따뜻한 한국 아이들로 기억되면 좋겠다. 그래서 언젠가 다시 이들이 한국을 만날 때, 따뜻함을 느낄 수 있도록…….
 

8월 2일

#맑고 밝은 뱅갈로르

   뱅갈로르에 도착했다. 뭄바이는 덥고 습한데 뱅갈로르는 고원지대라서 날씨가 선선하다. 딱 기분 좋은 날씨다. 기차역에서 4일 동안 우리를 가이드 해 줄 아빌라쉬 오빠를 만났다. 아빌라쉬 오빠는 우리가 묵을 교회에 다니는 분인데, 법을 공부해서 몇 개월 후면 변호사 자격증을 받는 엘리트이다. 친절하셔서 즐거운 여행이 될 것 같다. 차를 타고 숙소로 이동하면서 뱅갈로르를 보니 뭄바이와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형형색색의 건물들은 훨씬 더 서양적이고 지나다니는 사람만 다르지 마치 유럽에 온 듯한 느낌이다. 매연은 뭄바이보다 훨씬 심해서 조금만 밖에 있어도 안경이 뿌예진다. 뭄바이에 있었을 때는 살고 싶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는데, 뱅갈로르는 매연이 심한 것을 제외하고는 날씨도 선선하고 주변 풍경이 예뻐서 살 수 있을 것 같다. 앞으로 뱅갈로르에서 펼쳐질 일들이 기대된다.

#큰 눈을 가진 예쁜 인도 아이들

   뱅갈로르에서는 교회에 묵었다. 교회에 도착하니 한국 분들과 교회 선생님들, 아이들이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셨다. 기차에서 3끼를 굶어 배가 고팠는데, 우리를 위해 맛있는 음식을 준비해 주셨다. 꿀맛이다. 김 목사님 아들 요한, 요셉, 죠슈아와 장난꾸러기 두 형제 티모티, 아브라함은 쑥스러워하면서도 우리를 잘 따라다닌다. 너무 귀여워서 나보고 “예쁜 누나” 라고 부르라니까 무슨 뜻인 줄 아는 아이들은 절대로 그렇게 부르지 않겠다고 한다. 역시 애들은 거짓말을 못한다. 그래도 결국에는 한국에서 챙겨온 비장의 무기 새콤달콤으로 아이들을 유인하여 억지스러운 내 팬클럽을 형성하였다.
   방에 짐을 정리하고 유아부 주일 예배에 참가했다. 인도 교회는 어떻게 예배를 할까 궁금했는데, 우리나라처럼 같이 찬송가 부르고, 율동하고,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다. 내 옆에 선 쁘리랑카와 쁘리티는 춤추는 내가 신기한지 날 쳐다보며 계속 웃는다. 눈웃음이 너무 예쁘다. 쁘리티가 쁘리랑카에게 날 보면서 귓속말을 하기에 “왜? 무슨 말 했어?” 물어보니 쁘리랑카는 수줍어하면서 “She said you are a heroine." 라고 한다. 귀여운 것들
   티모티와 아브라함은 교회에 살아서 심심할 때마다 우리 방에 놀러와서 장난을 쳤다. 처음에는 너무 귀여워서 잘 놀아주었는데, 우리 물건을 망가뜨릴 뻔하고, 없는 초콜릿을 자꾸 달라고 해서 귀찮아 지기 시작했다. 밀린 수기도 써야하는데……. 그래서 티모티와 아브라함에게 “너희 9시 반인데 안자? 우리 잘 거니까 너희도 가서 자.” 라고 거짓말을 하며 아이들을 방에서 내보냈다.
   뱅갈로르를 떠나는 날, 티모티와 아브라함을 더 이상 못 본다고 생각하니 너무 슬펐다. 티모티, 아브라함이 귀찮아서 내쫓은 것도 미안하고, 초콜릿 타령을 하는데 초콜릿을 못 사준 것도 미안하고. 그래도 누나, 오빠들 좋다고 조금 할줄 아는 한국어로 “누나. 누나. 이거 뭐야? 누나 거야? 잠만 줘봐.” 하며 따라다니던 아이들인데……. 언제 한국에 놀러올 거야 물었을 때 “몰라” 했지만, 언젠가 티모티와 아브라함이 한국에 모녀 초콜릿도 많이 사주고 재밌게 놀아줄 거다.
 

8월 3일

#자연과의 만남

   Trinity School 방문이 끝나고 근처에 이용범 목사님이 세우려 하시는 국제 대학원 터에 갔다. 아직 건물의 형태만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만 공사가 진행 되었고, 건물 다 짓고, 내부를 꾸미고 하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몇 년 뒤 이 국제 대학원에 모여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을 학생들을 생각하니 이 목사님이 하시는 일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가 느껴진다. 강성모 선생님이 항상 말씀하시는 ‘남이 나를 위해서 무엇을 해줄까가 아니라 내가 남을 위해서 무엇을 해줄까를 생각해라’ 라는 것처럼 이 목사님의 일도 목사님 자신이 아닌 앞으로의 미래를 이끌어 나갈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나도 커서 내 공부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실컷 배울 수 있도록 좋은 일을 하고 싶다.
   건물 앞에는 넓은 들판이 펼쳐져 있는데, 내가 오랫동안 바라던 곳이다. 호주에서 돌아온 이후로 학교생활에 치이고, 기계, 사람, 도시에 지쳐있었다. 엄마에게 ‘엄마, 우리 자연가자. 휴식이 필요해’ 노래를 불렀지만, 정작 또 바빠서 실천에 옮기지 못했다. 그런데 이렇게 인도에 와서 내가 바라던 자연과 만나게 된 것이다. 다른 아이들이 옆에 있는 집의 강아지, 오리, 닭과 노는 동안 나는 들판 위의 돌에 걸터앉아 자연을 즐겼다.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면서, 아주머니가 주신 달콤한 음료수를 마시면서, 예쁜 하늘과 들판을 바라보았다. 너무 좋다. 날아갈 것 같다. 나중에 이런 곳에 창문이 넓은 집을 하나 지어서 예쁘게 살고 싶다.
 

8월 5일

#동네 한 바퀴

   밖에 나가 동네를 거닐고 싶어도 내가 익숙하지 않은 다른 나라라는 두려움 때문에 나가지 못하다가 용기를 내서 아이들과 함께 동네투어를 나섰다. 동네 투어라해서 엄청 협소해 보이지만, 길이 복잡한 인도에서는 간단한 일이 아니다.
   아침 햇살을 맞으며 바라보는 인도는 더 정겹고 사랑스럽다. 자기 생일 날짜에 맞는 행운의 색으로 칠한 파스텔 톤의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은 마치 인형나라에 온 듯하다. 길에는 질퍽한 소똥이 여기저기 놓여 있고, 게으른 개들은 아침 10시인데도 잠을 콜콜 자고 있다. 우리들이 신기한지 어떤 가족은 가족 전체가 문 밖까지 나와 우리에게 인사를 하고 미소 짓는다.
   동네투어를 하며 발견한 점은 집마다 문 앞에 흰색 분필로 문양을 그려 놓았다는 점이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잡귀를 쫓거나 복을 부르는 종교적인 것이 아닐까한다. 이런 것 하나하나에서 찾는 문화 차이. 이런 차이를 발견하고 의미를 찾는 게 여행의 즐거움이다.
   기억력이 좋은 아이들 덕분에 길을 잃지 않고 숙소에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다. 동네를 한 바퀴 돌고나니 진짜 내가 이 마을에 사는 것 같은 친숙함이 느껴진다.

#남을 위한 나

   만난 지 4일 된 사람에게, 그것도 앞으로 더 만날 기회가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컴퓨터를 사주는 것. 전혀 생각해 보지 않은 일이고 내가 그럴 용기가 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런데 이 일을 강성모 선생님이 하셨다. 아빌라쉬 오빠가 공부하는데 도움이 되라고 컴퓨터를 사주신 것이다. 아빌라쉬 오빠는 계속 안 받으려고 했고 나에게 “Jessy. 네가 안 된다고 선생님께 말씀드려” 하셨다. 그런데 그러기가 싫었다. 선생님의 뜻을 이해했고 존중하고 싶었다. 아빌라쉬 오빠를 4일 보았지만, 굉장히 책임감 강하고 믿을만한 사람이라는 것, 그래서 장래에 큰 인물이 될 거란걸 느낄 수 있었다. 선생님도 오빠의 그런 점을 발견하고 나중에 인도와 한국 사이에 큰 사람이 되라고 사주신 것이다. 그래서 오빠에게 “오빠. 열심히 공부해서 훌륭한 사람 되요. 그래서 그 때 우리한테 컴퓨터 한 대씩 사주면 되잖아요.” 라고 설득시켰다.
   강성모 선생님은 정말 대단하신 분이다. ‘남이 나에게 무엇을 해줄까가 아니라 내가 남에게 무엇을 해줄까를 생각해라’의 선생님 철학을 그대로 실천하고 계셨다. 오늘 선생님의 행동을 보며 많은 것을 배웠다. 나도 남을 위한 내가 되어야지.
 

8월 7일

#마지막 식사

   백 목사님은 하느님의 뜻을 따라 20년 전 인도에 오신분이다. 지금이야 인도가 많이 발전했지만, 20년 전 인도의 상황은 어땠을까? 백 목사님은 인도 생활에 대해서 한 마디 불평도 않으셨지만, 20년 전 인도 땅에서 백 목사님이 얼마나 큰 고생을 하셨을지 느껴진다. 인도를 여행하는 동안 백 목사님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숙소를 잡아주신 것도, 멋진 가이드 오빠들을 만나게 해주신 것도 다 목사님이 하신 일이다.
   인도에서 마지막 날, 우리는 목사님과 함께 저녁식사를 하면서 인도 여행을 마무리 지었다. 360도 회전하여 온 뭄바이를 바라볼 수 있는 호텔 고급 레스토랑 12층에서 식사를 했다. 위에서 바라본 뭄바이는 아래에서 본 뭄바이와 달랐다. 넓게 펼쳐진 바다. 전등이 길을 따라 늘어져 있는 모습이 진주목걸이를 닮아 진주 목걸이라 불리는 길. 반짝반짝 빛을 내는 건물들. 너무 아름다워서 여기가 내가 지금까지 본 뭄바이와 같은 뭄바이인가 의심이 들게 한다.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고, 맛있는 식사를 즐기며 백 목사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렸고, 약 2주간의 인도 여행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백 목사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모두 다 다른데, 언어, 생김새, 종교가 다 다른데 We are one in India 하며 사는 인도를 만나며 참 행복했다. 따따(안녕) 인디아!
 
 
 
 

#함께해서 행복했던 사람들

   이번 인도 여행이 더 행복하고 즐거웠던 이유는 함께한 사람들 덕분이다.
   먼저, 우리 팀 ‘in’ 의 인솔자, 강성모 선생님. 처음 선생님을 뵌 것은 오리엔테이션 날 인솔자 소개에서였다. 여러 인솔자들 중 털이 덥수룩한 선생님을 딱 보고서 ‘아 저 선생님만 아니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던 게 떠오른다. 대화를 나누는데도 철학적인 이야기만 하셔서 ‘이분 평범하신 분이 아니다. 앞으로의 일정이 평탄하지는 않겠다.’ 라고 생각했다. 내 예상대로 선생님은 우리가 질문을 해야만 말씀을 해주셨고, 모든 것을 우리에게 맡기셨다. 어디를 갈지 정하는 것, 사전 조사를 무엇을 할지 정하는 것을 다 우리가 해야 했고, 애들이 늦어도 화내시기는커녕 “천천히 오세요. 박사님” 하시는 선생님을 보며 한 때는 너무 스트레스 받은 적도 있다.
   그런 선생님에 대한 이미지를 바꿔준 것은 선생님의 지금까지의 태도가 선생님 편하자고 하신 것이 아니라 다 우리를 위해서 그러신 것이라는 걸 깨달은 때이다. 만약 모든 것을 다 선생님이 준비하셨다면, 나중에 우리가 다시 이런 여행을 할 때 우리는 또 다시 누군가에게 의존해야 한다. 직접 우리가 해봄으로써 독립심을 기르는 것이다. 또 선생님이 항상 하시는 철학적인 이야기도 내가 더 많이 생각하게 하는 동력이 되었다. 살면서 꼭 필요한 말인데, 학교 수업의 일방적인 정보전달에만 익숙해져서 철학적 이야기가 지루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선생님과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뚜렷한 꿈 없이 막연하게 공부만 하던 나를 되돌아보게 되었다. 선생님을 만나면서 많이 생각하게 되었고, 많은 것을 배웠다. 교육자 강성모 선생님을 만난 것은 행운인 것 같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그리고 함께 해준 민준이, 재현이, 경아, 보현이. 다들 살아온 환경이 너무 다르고 개성도 강해서 친해질 수 있을까 걱정했다. 실제로 인도 가기 직전까지도 서로에게 닫힌 듯 한 어색함이 있었다. 그런데 인도 여행하는 동안에 서로 같이 웃고, 같이 고생하면서 남매들처럼 너무 편하게 지냈다. 겁 많은 나에게 의지가 되어주고, 한 밤중 조용히 내 고민을 들어주고, 애꿎은 내 장난도 웃으며 받아주던 친구들. 친구들이 함께해서 이번 여행이 더 행복했고 웃음으로 가득 찼다. 이 인연이 평생 이어져, 20년 후 우리가 꿈꾸는 사람이 되어 웃으며 만났으면 좋겠다.

#글로벌 리더 양성 프로그램을 참가하며

   누군가가 나에게 ‘고등학교 때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무엇이니?’ 하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 않고 “고등학교 2학년 때 참여한 글로벌 리더 양성 프로그램이요.” 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만큼 글로벌 리더 양성 프로그램을 열심히 준비했고, 내 인생의 중요한 한 부분이 되었다.
   이 프로그램에 참가하면서 즐겁기도 했지만 걱정도 많았다. 학교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는데, 사전 교육을 하면서 일주일에 한 두 번 씩 만나고, 또 시험 이주일 전에도 모임을 가져서 ‘이것 때문에 공부에 투자하는 시간이 적어져서 성적이 떨어지면 어떡하지?’하는 고민을 많이 했다.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다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도서관에 앉아 교과서 책보고 달달 외우는 것보다 직접 현장에 가서 전문가들을 인터뷰하고, 학교 친구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하고, 다른 나라의 영화를 보고, 전문가들의 강연을 듣고, 인솔자 선생님과 철학적인 이야기를 하면서 내 자신이 더 성장했다. 평소 학교에서는 할 수 없는 진정한 교육이었다. 내 속에 차곡차곡 싸인 이 모든 것들은 내가 어른이 되어서 또 다른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직업을 갖고, 사람을 만날 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내년에 내 동생, 사촌동생에게 이 프로그램에 꼭 참여하라고, 고등학생 생활 때 학교 공부 열심히 하는 게 전부가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다.
   인도에 가기 전 나는 이번 인도 탐방이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한국에 와서 변화된 나를 발견했다. 나는 항상 시간에 구속받으며 살았다. 예민하고 계획적이라서, 모든 일을 하나하나 내가 직접 확인하고, 일도 정해진 시간 전에 끝내야 속이 시원했다. 전형적인 ‘빨리빨리’의 한국인이었다. 이런 여유롭지 못한 성격 때문에 팀 활동을 하면서 나 스스로 많이 힘들었다. 다 같이 일을 제때 끝냈으면 좋겠는데, 팀 친구들이 너무 여유로워서 답답한 적이 많았다. 그럴 때면 팀원들에 대한 아쉬움도 있었지만, 내 성격이 더 답답했다. ‘난 왜 이렇게 여유롭지 못한 거지? 좀 편하게 살면 안 되나?’ 그런데 인도에 가서 인도 사람들의 여유로운 모습을 보면서, 약속 시간에 늦어도, 기차가 늦어도 “괜찮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어느새 “괜찮아” 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아직도 다른 친구들처럼 느긋하고 여유로운 성격은 아니지만 그래도 한결 여유로워진 내 자신에 뿌듯함을 느낀다. 인도에서 돌아와 친한 친구와 이야기 하는데, “상언아 너 애가 여유롭고 느긋해진 것 같아. 인도 가더니 인도 사람 됐구나!” 하는 이야기를 듣고 기뻤다. 인도가 날 변화 시켰다. 느긋하게 살자.
   또 인도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내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한국에서 학교가고, 집에 오는 매일 같은 삶을 살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없었다. 그런데 인도에서는 정말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만났다. 중학생 때부터 홀로 배낭여행을 다닌 용감한 시용 오빠. 멀리 인도까지 와서 공부를 하기로 결심한 정식 오빠. 인도인에 대한 편견을 깨준 책임감 강하고 믿음직한 아빌라쉬 오빠. 기차 안에서 만난 사랑으로 가득 찬 리샤 가족. 우리를 가족처럼 보살펴 주신 백목사님. 길거리에서 만난 구걸하는 사람들. 고등학생의 어린 나이에 회사를 차린 CEO 삼약 씨. 외국에 나와 우리나라를 알리는 현대, 두산 직원 분들. 나와 다른 사람들을 만나면서 ‘아 이렇게 사는 방법도 있었구나.’ 깨달았다. 삶이라는 길을 나아가는데, A라는 이 길만 있는 줄 알고 이 길만 보고 걸어갔는데, 인도에서 B라는 길도 보고 C라는 길도 보고……. 앞으로 펼쳐질 내 미래가 더 넓어졌다.
   이번 글로벌 리더 양성 프로그램을 참여하며 보고, 배우고, 느낀 점을 혼자 간직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한 것을 모두와 나누고 싶다. 학교 영자신문 기자로 활동 중이기 때문에, 학교 신문에 내가 글로벌 리더 양성프로그램을 참가하여 인도에 다녀온 이야기를 실어, 학생들이 이 프로그램과 인도에 많은 관심을 가지기를 원한다. 그래서 신문을 보고 친구들이 와서 글로벌 리더 양성프로그램과 인도에 대해 물으면 좋겠다. 그 아이가 내년 이 프로그램에 참가하고,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느낀 점을 또 누군가에게 말하고…….계속해서 그 아이의 이야기를 들은 또 다른 누군가가 이 프로그램에 참가하면……. 계속 해서 더 많은 사람들의 삶이 넓어지고, 미래가 밝아질 것이라 믿는다.
   아직 나의 글로벌 리더 양성 프로그램은 끝나지 않았다. 학교 신문에 신문기사도 쓸 것이고, 팀 친구들과 책도 출판할 것이다. 또 계속해서 팀 친구들, 인솔자 선생님과 한 달에 한 번씩 만나 인도와 우리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것이다. 내 글로벌 리더 양성 프로그램은 2009년 한해로 끝나지 않고, 평생 계속 될 것이다.
프로그램
서울시 글로벌리더 양성프로그램
http://gleader.mizy.net/
참가국
인도
기간
2009년 7월 27일 ~ 8월 8일
비용
항공비 서울시 지원, 현지 숙박비 및 용돈 약 80만원
날짜 변경 일정
뭄바이-27월 오전 출발(비행기 편 - KE655)
뭄바이-28 화 오전 JAI HIND college (뭄바이대학교부속-상경계열)
오후 인도문, 타지마할 호텔 하지마할 사원
뭄바이-29 수 오후 뭄바이대학교 HQ 방문 ‘Mr. Samyak' 인터뷰 뭄바이 슬럼가 탐방
뭄바이-30 목 오전 대조영함 관함식
오후 교수님 인터뷰 영화‘New York'관람
뭄바이-31 금 오전 현대그룹 인터뷰
오후 두산중공업 인터뷰 뭄바이 시내 탐방
뭄바이-1 토 오전 기차 탑승
뱅갈로-2 일 오전 뱅갈로르 도착
오후 뱅갈로르 시내 탐방
뱅갈로-3 월 오전 Trinity school 인터뷰
오후 국제학교 공사현장 방문
뱅갈로-4 화 오전 ‘love Aaj Kal’ 관람
오후 Vijaya Film Institute 인터뷰
뱅갈로-5 수 오전 뱅갈로르 마을 탐방
오후 기차 탑승
뭄바이-6 목 오후 뭄바이 도착
뭄바이-7 금 오전 뭄바이 시내 투어
뭄바이-8 토 오전 출발
오후 인천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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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떠나보면 알게 될 거야
정민호남서울대학교 호텔경영학과
09.07.06hit 3332

'도전' 과 함께 떠난 그곳에서 ‘행복’을 만나다.
이수진국제워크캠프기구(IWO)
09.06.04hit 3393

'NAAN & 蘭' 한 줄기의 청초한 꽃이 되다
최영은국민대학교 경영학과
09.05.02hit 2944

머리보다 가슴으로 느끼고 왔던 나라, 태국!
조용완대원외고졸업, 미국유학예정
09.05.02hit 3308

하나의 세계, 하나의 꿈 - 베이징 장애인올림픽
방준호서울고등학교 3학년
09.04.01hit 2567

내 생애 가장 따뜻했던 6개월
박지영동덕여자대학교 영어과
09.03.02hit 3478

이탈리아, 그 뜨거운 만남!- 2007 Workcamp in Italy
주신영성신여자대학교 법학/경영학
08.12.04hit 3911

Sabai Dee! 싸바이디! 라오스
유재연인천대학교 무역학과
08.12.04hit 2725

신 짜오 베트남- 한국국제협력단(KOICA) 국제협력요원 파견
김효성성균관대학교 경제학과 3학년
08.10.28hit 4075

대한민국 해외 청소년 봉사단, [꿈과 사람 속으로]
민혜아서울시립대학교 세무학과 2학년
08.09.12hit 2860

[2008베이징올림픽]말 탄 스포츠외교관!홍콩 샤틴 경기장 속으로~!따그닥따그닥
윤화영경기대학교 서비스경영대학원 스포츠외교전문가과정
08.09.12hit 23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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