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활동경험담

Namaste, India! 찬란했던 인도와의 목하열애
글쓴이 하아련     소속 덕성여대 사회복지학과

날짜 09.07.31     조회 4601

  진부한 표현이지만 인도를 다녀온 지 1년 반이 다 되어가는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인도를 잊지 못하고 있다. 나는, 여전히 인도와 목하열애중 이다. 내 삶에 잊을 수 없는 찬란한 추억을 안겨주었던 인도에서의 3개월간의 삶. 파란하늘, 뭉게구름, 풀벌레 소리, 작렬하던 햇빛, 깔깔 거리던 아이들의 웃음소리, 너무나도 친절했던 동네 주민들. 지금부터 그 눈물겹게 행복했던 이야기를 들어보실래요?

Part. 1 ; Namaste, Incredible INDIA!

인도 수도 델리에서 국내선을 타고 뱅갈로르에 도착하던 순간, 왜 인도를 Incredible 이라고 부르는 지 알 수 있었다. 1분에 100번은 족히 울리는 경적소리, 정말 길에는 소가 걸어 다니고 있었고, (물론 사람들은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 도로의 중앙선이 실선이 아닌 점선이다. 그래서 차들이 마주보고 달리다가 급하게 피한다. 추월도 멋대로 하고, 신호등은 찾아보기 힘들다. 차나 오토바이에 부딪혀도 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정말 Incredible 이다. 서울이 아무리 복잡하고 시끄럽다 하여도, 인도를 따라오려면 아마 100만년은 족히 더 걸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인도를 그렇게도 동경하던 나에게도, 인도의 첫 인상은 가히 충격적이고 무섭기까지 했으니까. 한국의 IWO에서 연결해 준 인도 단체인 IVT 관계자를 공항에서 만나, 숙소로 이동했다. 우기가 아직 끝나지 않아 날씨는 습했고 밤마다 폭우가 내렸다. 안내해 준 숙소에서 3일 정도를 머물렀는데, 첫날부터 벼룩과 모기들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첫 날, 눈을 떴을 때부터 온 몸이 가렵기 시작하더니, 결국 몸 전체에 두드러기처럼 벼룩, 진드기, 모기들의 처절한 공격의 흔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도저히 긁지 않고는 참을 수 없었고, 결국 다리에서 피가 날 정도로 상처는 심해졌다. 아- 인도에서의 생활. 왠지 쉽지만은 않을 것 같다. 첫날부터 벌써 이러잖아!

Part. 2 ; 10시간 만에 도착한 프로젝트 지역, 그러나...

 뱅갈로르에서 3일 정도 오리엔테이션을 받고, 나와 내 친구는 뱅갈로르에서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10시간 정도 가야 하는 ‘쉬모가’ 라는 작은 도시로 이동했다. 프로젝트 장소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밤 10시가 훌쩍 넘은 시간이었고,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고 인도의 시골 비포장도로를 달려왔기에 온 몸이 지친 상태에서 우리는 3개월 동안 머물 홈스테이 가정을 방문했다. 너무 늦은 시간이라 커리와 밥을 대충 먹고, 홈스테이 아저씨께서 우리가 3개월 동안 지낼 곳이라며 방으로 안내했다. 하지만 그 곳의 문을 여는 순간... 나와 내 친구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홈스테이 아저씨께서 안내해 준 곳은 아저씨네 가족이 사는 집이 아니라 자신의 집 뒤편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일 하는 남자 하인(?)이 사는 곳이었다. 방이라기보다는 거의 마구간 같았다, 우리가 지낼 방은 먼지가 한가득 쌓여있었고, 여기저기 쥐똥과 죽은 벌레들이 있었으며, 우리에게 덮고 자라며 주신 이불은 족히 10년은 씻지 않고 묵혀 둔 것 같았다. 게다가 창문은 열리지 않아 햇빛 한줄기조차 들어오지 않을 것 같았고, 문은 잠기지 않았으며, 화장실은 가히 공포영화 세트장 같았다. 뿐만 아니라, 벽 하나를 두고 바로 옆방에는 남자 하인(?)이 지내고 있었는데 밤새 코 고는 소리가 들려 고통스럽기까지 했다. 주인아저씨 앞에서 뭐라 말은 할 수 없었고, 다시 뱅갈로르로 되돌아가기에는 밤이 너무 깊었고, 어쩔 수 없이 친구와 함께 그 방에서 꼴딱 밤을 지새웠다. 대책을 세워야했다. 이대로는 지낼 수가 없었다. 시골에서 19년을 살았고, 이미 네팔을 두 번이나 다녀와서 산전수전 다 겪어 본 나이지만, 그리고 인도에 부귀영화를 누리러 온 것은 아니지만, 솔직히 나는 이곳에서 3개월을 지낼 자신이 없었다. 너무 피곤하여 잠은 쏟아지는데, 설상가상으로 손바닥만 한 도마뱀이 방 안으로 들어와서 우리 앞에서 메뚜기를 잡아먹기 시작하는데..... 우리는 쥐 죽은 듯이 움직이지도 못한 채 그렇게 밤을 지새웠다. 한국 시간으로 아침 9시가 되자마자 우리는 한국의 IWO에 전화를 해서 현재 상황을 이야기 했고, 결국 프로젝트 장소를 바꾸기로 하였다. IWO, IVT, 홈스테이 아저씨께 죄송했지만, 지금도 친구와 함께 그때 이야기를 나누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사람이 살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는 것을 거듭 강조하며!
다음날 아침 아저씨와 IVT 직원이 통화를 한 후, 우리는 또 다시 10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그것도 단 둘이, 인도에 온지 4일 만에, 뱅갈로르까지 돌아갔다.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한 없이 내 자신을 자책하고, 울기도 하고, 내가 이것밖에 안 되는 인간이었나, 이 정도도 견디지 못할 것 같으면 왜 인도에 왔는가, 수 없이 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Part. 3 ; 새로운 프로젝트! 새로운 만남!

 다시 뱅갈로르로 돌아온 뒤, 며칠 휴식을 취하고 새로운 프로젝트 장소로 이동을 했다. 이미 첫 번째 프로젝트에서 실패를 맛보고 돌아온 나와 내 친구는 한껏 풀이 죽어 있었고, 새로운 프로젝트에서도 적응하지 못 하면 어떻게 하나라는 생각에 설렘보다는 걱정이 앞서있는 상태였다. 그렇게 뱅갈로르에서 버스로 2시간 정도 떨어져있는 할라수르라는 작은 시골 마을에 도착을 했다. 파란 하늘, 뭉게구름, 끝없이 펼쳐진 들판과, 간간히 보이는 작고 아담한 인도식 집들, 그리고 멀리 작은 학교가 하나 보였다. 전형적인 시골 학교였고, 자연과 함께 어우러져 있는 그 모습이 너무 예쁘고 마음이 편해졌다. 교장선생님께 인사를 드리고, 우리가 지낼 호스텔로 이동을 했다. 학교 건너편에 있는 호스텔은 우리가 막 도착했을 때 즈음 완공이 되었고, 뒷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었다. 처음 도착했을 당시 화장실을 전혀 쓸 수 없었고, 뜨거운 물은 고사하고 물이 나오지 않아 씻지 못하는 날도 많았다. 또한 하루에 12시간 정도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촛불을 켜 놓고 지내야 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불편하긴 했지만 왠지 모르게 나와 내 친구는 이곳이 참 마음에 들고, 편안하다는 생각을 했다. 게다가 여 선생님들과 함께 머무르는 곳이기 때문에 선생님들과 더 친하게 지낼 수 있다는 생각에 들뜨기도 했다. 그렇게 짐을 풀고 학교 구경을 하고, 첫 날이 저물어가고 있었다. 3개월 동안, 우리가 울고 웃으며 부대끼며 지내야 하는 이 곳. 할라수르에 있는 작은 시골학교! 프리야다르쉬니 세바 켄드라 아쉬람 스쿨! 잘 부탁해!

Part. 4 ; 울고 웃으며 부대낀 3개월간의 인도 생활

 우리가 지냈던 프리야다르쉬니 스쿨은 유치원부터 10학년까지의 (고등학교까지)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였다. 나와 내 친구는 유치원 반 보조 선생님 역할 및 예체능 활동을 담당 하였다. 선생님과 아이들 모두 너무나 호의적이었고, 시골에서 외국인을 잘 볼 수 없었기에 마을 주민들, 학부모님들까지도 우리에게 친절하게 대해주셨다. 우리 학교 학생이 아니더라고, 우리가 읍내 길을 지나다니면 모두들 “폴인 미스~ 폴인 미스~ (외국인 선생님!)” 라며 우리를 부르곤 했다.

@ 학교 생활

 학교에서의 생활이 항상 좋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힘든 일도 많았고, 워낙 시골이다 보니 불편한 것도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무엇보다 문화적인 차이에서 오는 생각의 차이와 문제가 많았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시간들 모두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참 행복했던 순간들이었다.
아침에는 주로 아이들 숙제 검사를 하고, 숙제 공책에 숙제를 적는 일을 하였다. 시골이고 컴퓨터를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60명 아이들의 숙제 및 알림장을 하나하나 볼펜으로 다 적어야 했다. 힘들기도 하고 손도 너무 아프고, 일주일에 볼펜 2~3개 쓰는 일은 일상이었다. 문명의 혜택을 받지 않고 살아가는 그들의 삶이 신기하기도 했고, 한국의 컴퓨터가 그립기도 했지만 하루 이틀이 지날수록 그들의 느림의 미학이 매력으로 다가왔고, 하루하루 여유를 가지며 살 수 있었다.
  점심시간이 되면 아이들 점심 먹는 것을 도와주고, 화장실 데려가고, 우는 아이 달래고, 다친 아이 치료해주다보면 그렇게 오전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오후 시간에는 대체로 자유시간이 많았다. 이 시간에 우리가 한국에서 준비해간 물품들로 예체능 활동을 많이 하였다. 한국 동요 CD를 틀어 놓고 율동을 가르쳐 주고, 그림을 그리고,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푸른 잔디가 깔려 있는 운동장에서 아이들과 함께 뛰어 노는 것이었다. “아련 미스~ 아련 미스~” (우리 학교에선 여 선생님을 미스라고 불렀다) 내 이름을 부르며 깔깔깔 웃으며 뛰어 오던 아이들의 모습이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다.
마지막 달에는 전교생을 대상으로 페이스페인팅을 했고, 유치원 아이들과 함께 풍선 터트리기를 하였다. 한국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풍선이지만, 인도 시골 아이들에게는 풍선이 흔히 볼 수 없는 것이었기에 아이들이 참 좋아하였다. 우리가 풍선을 들고 교실로 들어갔을 때, 아이들 모두 일어나 폴짝 폴짝 뛰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예체능 활동뿐만 아니라, 반 아이들의 영어 공부를 위해 ABCD 영어 문자판을 만들고, 색종이로 꽃을 만들어 학교 게시판을 꾸미고, 각 반의 팻말을 만들기도 했다.

@ 여가 생활

 학교에서의 생활도 즐거웠지만, 그 외 다양한 여가 생활들도 즐거웠다. 선생님들과 함께 힌두교 사원을 방문하기도 했고, 우리가 준비해간 젠가(보드게임)로 게임을 하기도 했다. 주말에는 함께 읍내로 나가서 인도 전통 옷을 구입하기도 했고, 교장선생님네 집들이에 초대를 받아 방문하기도 했다.
 그 곳에서 3개월 정도 살다 보니 웬만한 동네 주민들은 다 알게 되었고, 단골 가게도 몇 곳이나 생겼다. 과일가게 아저씨, 문구점 아저씨, 수선집 총각까지, 모두가 친구가 되었다. 수선집을 운영하고 있는 라주는 웃는 모습이 참 순수했고, 마음이 따뜻한 친구였다. 읍내에 나가면 항상 라주네 가게에 들려 이야기를 나누고, 가끔 옷 수선을 공짜로 해 주기도 했다. 문구점 아저씨는 볼펜을 사러 갈 때 마다 맛있는 캔디를 하나씩 주셨다. 그 웃음과 따뜻한 마음이 참 고마웠다.
 또한 주말에 읍내에 나가면 학교 아이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는데, 다들 자기 집으로 놀러 오라고 하여 아이들 집에 가서 부모님들을 뵙고 놀다가 오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었다.
3주간의 방학이 끝나고 학교로 돌아갔을 때, 밥을 해 주시는 안티께서 학교에 오지 않으셔서 학교 선생님들께서 밥을 해 주고, 집으로 초대해줘서 맛있는 음식을 먹었던 것도 잊지 못할 추억 중 하나이다.

@ 이별의 시간

 그렇게 3개월의 시간이 훌쩍 지나고 아이들과 헤어져야 하는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나와 내 친구는 일주일 전부터 밤마다 아이들 이야기와, 그동안의 인도에서의 삶을 이야기 하며 울기 시작했다. 울며 잠들고, 다음날 일어나서 아이들과 또 부대끼고, 밤에는 또 울며 잠들고,,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가고 아이들과의 마지막 수업 날. 아침 첫 수업부터 나는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3개월 동안 아침마다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똘망똘망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씽긋 웃으며 “굿모닝~ 미스!” 라고 외치던 아이들. 비록 말은 잘 통하지 않았지만, 3개월 동안 실증 한번 안 내고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웃어주고, 인사해주고, 안기던 아이들. “이별”의 의미를 잘 모르는 아이들은 그 날도 그렇게 해 맑은 웃음으로 나를 맞이했다. 그 모습이 너무 예쁘고, 오늘 이후로는 이 아이들을 볼 수 없다는 생각에 눈물부터 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또 정신없이 하루가 지나가고, 선생님들께 그 동안의 고마웠던 마음을 전하며 한국에서 준비해 온 전통 지갑과, 필통을 선물로 드렸고, 400명 정도 되는 전교생들에게 작은 선물을 전해 주었다. 아이들은 고맙다며 칠판 한 가득 우리 이름을 적어 놓았다.
아이들 앞에서 울지 않으려고 했으나, 아이들과 헤어지던 순간 우리 반 아가들이 모두 일어나 “땡큐 아련 미스! 따따~ 따따 (따따는 까나다어로 “안녕” 이라는 뜻)“ 라고 외치는데 그때부터 참았던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선생님께서는 아련 미스가 울면 아이들도 따라 우니까 울면 안 된다고 하였으나 내가 지금 이 순간 이 아이들과 헤어지면, 언제쯤 다시 이 아이들을 만날 수 있을까. 언제 다시 이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언제 다시 이 아이들을 엎어주고, 뽀뽀해주고, 안아줄 수 있을까 라는 생각에 눈물이 멈추지 않았고, 결국 선생님들까지 울기 시작했다. 비록 3개월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진심을 다해, 온 마음을 다 해 이 아이들과, 선생님들, 이 학교, 이 마을을 사랑했었고, 내가 사랑한 것 보다 더 많은, 넘치는 사랑을 받았기에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더 컸던 것이 사실이다.

Part. 5 ; 언제나 그리움 속에는 ‘사람’ 이 존재한다.

 인도에서 돌아온 지 1년 반이 되었지만, 아직도 인도에서의 추억은 엊그제 있었던 일 마냥 생생하다. 가끔 잠을 자기 전에, 귓전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릴 때가 있다. 인도에서 돌아온 뒤 아이들이 너무 그리워 눈물로 밤을 지새운 적도 있고, 사진과 아이들의 동영상을 볼 때 마다 그리워 눈물을 흘린다. 아이들이 훌쩍 큰 모습으로 꿈에 나타나기도 하고, 아이들을 찾아가는 꿈을 꾸기도 한다. 여태까지 선생님들과 메일을 주고받고, 전화 통화를 하고 있지만 우리가 떠난 뒤 학교를 떠난 선생님들이 많아 아이들의 소식을 접할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인도에서 돌아온 뒤, 1000장 가까이 되는 사진을 인화하여 학교로 보내주었다. 다행이 잘 도착하여 모든 아이들에게 사진을 나누어 주었다고 하니, 한때의 추억이긴 하지만, 아이들이 사진을 보며 찬란했던 그 순간들을 기억해 준다면, 그것만으로도 나는 너무 기쁘고 만족한다. 그리고 상상해 본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다시 우리 아이들을 만나는 그 순간을. 너무 그리워, 눈물이 날 것만 같아 차마 할 수 없었던 말들. 사랑하고, 많이 그리워 한다는 것. 부디 항상 건강하고, 해 맑은 웃음 잃지 말고, 무럭무럭 잘 자라주기를.. 예쁜 우리 아가들!
참가단체
IWO 중장기 해외봉사
참가국
인도 뱅갈로르
참가국
인도 (India) Pondicheery
기간
2007년 9월 3일 ~ 12월 8일 (3개월)
비용
항공편(약 110만원), 참가비 (3개월 약 70만원), 생활비 (3개월 약 30만원),
남인도 여행 (25만원), 한국에서 준비 비용 (비자, 예방접종, 물품 구입 - 약 60만원)
= 총 3개월 약 300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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