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활동경험담

두 국민국가 사이의 틈, 그 틈새에서 숨쉬고 있는 씨앗
글쓴이 배윤상     소속 홈스쿨

날짜 09.06.04     조회 2606

 2009년 1월 15일 새벽 1시, 태국의 방콕 국제 공항에 대한항공 항공기 한대가 착륙하였다. 이윽고 “Arrival”이라는 글씨가 커다랗게 쓰여져 있는 문을 지나 나온 사람들. 웃옷을 벗으며 날씨에 대해 투덜대고 있는 사람, 잠이 덜 깼는지 한쪽 눈을 비비며 하품을 하고 있는 사람, 일행을 찾기 위해 이 와중에도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던 사람. 바로 태국에 도착한 우리들의 첫 모습이었다.
  이번 여행은 국제 앰네스티 한국 지부가 주최한 2009 난민 연구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국내외 난민과 관련 주제들에 관한 6주간의 공부를 마치고, 종이 속에서 배운 내용들의 사실 여부를 확인하고 직접 몸으로 느껴보기 위한 여행이었다. 난민이란 박해로부터의 공포를 피해 국적국이 아닌 국가에 비호를 요청한 사람들을 뜻하는 말이다. 전 세계 곳곳에서 매년 수만 명의 난민이 발생하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우리의 목적지는 군사 정권의 통치 하에 있는 미얀마 소수 민족 출신 난민들이 정착하고 있는 메솟(Mae Sot)이라는 태국의 국경 마을이었다.
태국과 미얀마의 국경은 남북으로 길게 뻗어있어 국경을 따라 난민 수용소와 정착 마을이 분포되어있다.
 방콕에서 두 층짜리 심야버스를 타고 수 시간을 달린 우리들은 다음날 새벽, 메솟에 도착하였다. 국경 마을은 무언가 다를 거라는 우리의 생각과 달리 메솟 또한 밤 새 버스를 타고 지나온 태국의 다른 마을과 다를 것이 없었다. 오히려 낮에 가게들이 문을 열면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커다란 마을로 변하였다. 하긴, 그곳에 누가 살던지 간에 사람 사는 곳이 다르면 얼마나 다를까. 비교적 한적하긴 했지만 우리가 방문했던 많은 NGO 단체들도 메솟에 활동 기점을 두고 있었고 숙소 근처엔 편의점이 있어 밤에도 사고 싶은 물건을 쉽게 살 수 도 있었다. 가게들이 대부분 오전 늦게 영업을 시작하고 이른 저녁이면 문을 닫아버려 바쁜 일정을 보낸 우리에게 구경을 할 기회가 많지는 않았지만 차를 타고 이동하며 본 풍경들 속엔 다양한 가게들과 물건들, 또 그곳에서 생활하는 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생생히 담겨있었다.
숙소 맞은편의 메솟 거리

난민캠프에 가다.

메솟에서의 첫 일정은 그곳에서 가장 가까운 난민 캠프인 움삐엠(Um Piem) 캠프를 방문하는 것이었다. 난민 캠프는 보통 태국 정부와, UN 산하의 난민 기구인 UNHCR, 그리고 많은 NGO들에 의해 운영, 지원되는데, 태국의 정책으로 인해 2년 전부터 UNHCR은 태국 내 난민들에게 직접적인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으며, 태국 정부 또한 필요한 도움이 아닌 여러 제한만을 겹겹이 두고 있어, 움삐엠 캠프는 TBBC(Thai-Burma Border Consortium)를 중심으로 한 NGO들에 의해 사실상 많은 NGO들에 의해 유지되어 오고 있었다.
미얀마 출신의 난민 분들이 직접 동행하며 도움을 주셨다.
  캠프로 향하는 길은 일정의 가장 고된 일과 중 하나였다. 차로 금방 도착하는 거리에 있을 것이라는 예상이 또다시 어긋나 버린 것이다. 여덟 명쯤 앉기 적합해 보이는 차의 뒤 칸에 열명이 다리도 피지 못하는 상태로 세시간이 넘도록 산길을 달렸다. 지금에서야 드는 생각이지만 사실 우리야 고생을 자처하고 간 것이지만 우리를 도와주겠다고 선뜻 나오신 분들은 도대체 무슨 죄가 있길래 그런 벌을 받아야 했을까. 당시의 나는 하지 못했던 생각이지만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일행 중 한 명이 “태국 정부가 이들을 마을로부터 최대한 격리시키고, 또 새로운 난민 인구의 유입을 막기 위해서 이렇게 산 속 깊은 곳으로 캠프를 가져다 놓은 것은 아닐까?”라는 의문을 던질 정도였다.
겉에서 보기와는 달리 너무나도 컸던 마을
  난민 캠프에 도착하자 마자 입구에 있는 사무실에서 담당자와 인사를 나누고 안내에 따라 캠프 안으로 들어 갈 수 있었다. 사무실 뒤에 있는 작은 언덕을 넘자 나무와 흙으로 지어 놓은 집들이 사방에서 끝도 없이 나타났다. 겉에서 보기완 너무 다른 모습이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만 구천여명에 가까운 인구가 그곳에 살고 있었다. 모퉁이를 돌 때 마다 나타나는 또 다른 수백 채의 집을 보면서야 겨우 그 숫자가 실감이 났다.
캠프 안에서 만난 사람들
다른 무엇보다도 마을의 한 교실에 나이 또래의 아이들과 모여 앉아 오랜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는데,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삼삼오오 모여 앉아 서로 궁금한 것을 묻고 답하며 그 동안 알 수 없었던 많은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간 가장 궁금했던 것이 이러한 제한된 환경 속에서 어떤 생각을 갖고 살아갈까 하는 궁금증이었는데, 놀랍게도 제한된 환경과 기회에 대해 잘 알고 있으면서도 대부분의 아이들이 나와 같은 꿈을 꾸고 살아가고 있었다. 선생님이 되거나, 다른 난민들을 위한 NGO에 들어가거나, 혹은 메딕(의료 보조원)이 되거나, 많은 꿈들이 있었고 이 모든 꿈들이 이루어 질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주어진 환경 속에서 자신들의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한 꿈을 꾸고 있었다. 또한 이들에게 의료권, 교육권, 주거권 등 대부분의 기본적인 권리조차 주어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친구들이 자유롭게 뛰어 놀 권리에 대해 이야기 하였다. 조금이라도 거주자를 더 받기 위해 집들이 빼곡히 들어선 캠프 안에는 아이들이 자유롭게 뛰어 놀 수 있는 공간이 부족했다. 건강하게, 올바르게 사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행복하게 사는 것 또한 이들이 원하는 한가지 라는 당연한 사실을 그 동안은 생각도 못하고 있었던 자신이 부끄러워지기도 하였다. 아이들과 이야기 하던 도중 이 대목에서 영화 패치 아담스에서 헌트의 대사가 떠올랐다. 치료는 병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환자를 돕는,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라는.
 또 재미있었던 것은, 미얀마를 통치하고 있는 군사 정권의 박해를 피해 나온 난민들이라 그런지 지난 반세기간 민주화를 이룩해온 우리 나라, 대한민국에 관해서도 많은 것을 알고 있었고 그에 관한 많은 것들을 내게 물어오며 관심을 표현했다. 민주화 운동의 순간들에 대해 묻기도 하였고, 남한과 북한의 관계에 대한 질문과 대답도 오고 갔다. 비슷한 나이 또래의 학생들은 거의 보지는 못하지만 한국 드라마에 대해 알고 있다며 드라마의 이름과 배우의 이름을 말해왔을 땐 한류가 이 험하고 긴 산길마저도 뚫고 지나 왔다는 사실에 나도 한국인이지만 정말 그 인기에 혀를 내두를 수 밖에 없었다.
마지막 캠프를 떠나기 전, 질의 응답에 참여해 주신 자치위원회 임원 분들
 학생들과 헤어진 뒤, 우리는 잠시 캠프를 운영하는 자치위원회 임원 분들과 질의 응답 시간을 잠시나마 가질 수 있었다. 그곳에선 캠프와 관련된 단순한 수치나 사실적인 내용들에 대해 재확인 하거나 다른 관점에서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렇게 캠프에서의 짧지만 긴 일정을 마친 우리는 아침에 왔던 길을 따라 밤늦게야 숙소로 돌아올 수 있었다.

메솟의 NGO 탐험

숙소 뒤뜰에 있던 장식. 매일 이 앞에서 모여 차를 탔다.
 여느 난민 발생 지역과 마찬가지로 난민 캠프 밖에도 수많은 난민들이 살고 있다고 한다. 단지 곳곳에 흩어져 살거나 정식 등록 절차를 거치지 않은 사람이 많아 정확한 통계를 낼 수 없을 뿐, 숫자상으론 캠프 내의 난민의 두 배 정도나 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비록 캠프 내의 난민들보다 공간적, 혹은 시간적인 자유는 더 많이 누릴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러한 “도시 난민”들은 종종 경제적으로 더욱 큰 위기에 놓이기도 한다고 한다. 캠프에서 주는 최소한의 배려마저도 이들이 사는 사회 속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람들을 위하여 메솟의 곳곳엔 여러 NGO단체가 있었다. 비록 사진으로 남기진 못하였지만, 마을의 구석, 구석 흩어져 있는 NGO 단체들을 찾아 다니면서 일정에 없었던 관광을 눈으로 나마 할 수 있었다.
난민들의 병을 무료로 치료해주던 메타오 클리닉. 최근 20주년을 맞이하였다.
백팩 팀을 떠나기 전, 남은 질문들에 대답해 주시는 활동가님
 우선, 메타오 클리닉은 경제적인 이유로 다른 병원을 찾아 갈 수 없는 이주 노동자들을 위해 세워진 병원이었다. 주로 외국에서 온 자원봉사 의사들과 미얀마 출신의 의사들에 의하여 진료가 이루어지며, 본인들 역시 난민 출신인 메딕들이 환자들과 의사들 사이의 연결 고리가 되어주는 듯 했다. 우리가 방문을 했던 날도 한편에선 자원봉사자들이 새로 지어진 집 벽을 페인트 칠을 하고 있던 등 활발한 활동이 여기 저기서 눈에 띄었는데, 불행히도 환자들이 많이 몰려 직접 의사 분들은 만나지 못하고 돌아와야 했다. 또 다른 의료 단체인 백팩 팀(BPHWT)은 메타오 클리닉에서 분리되어 나온 단체로, 병원 격인 메타오 클리닉과는 달리 활동가들이 직접 가방을 메고 국경을 넘나들며 도움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 생활하고 있는 난민들에게 의료 지원을 해주고 있었다. 발상 자체도 재미있는 단체였고, 우리가 방문한 날과 활동가들이 본부에 모여 파견 준비를 하던 시기가 겹쳐 직접 활동가분들과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인상이 깊었다.
BLSO School 학생들의 수업이 막 끝나가고 있다.
 BLSO School은 이주 노동자들의 자녀들에게 보호와 교육을 제공해주기 위해 설립된 조그마한 학교이다. 필드 트립을 떠나기 이전 개인적으로 가장 많은 관심을 가졌던 기관이었지만, 학교에 첫발을 딛는 순간 경악을 금치 않을 수 없었다. 바깥의 기온이 30도가 넘었거니와 건물이 철판을 이어 지은 건물이라 건물 내 온도가 더욱 높아져 숨이 막혀 올 정도였다. 학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이전에 아이들의 피부병 등 질병이 걱정이 되었다. 이 곳에서 가장 기억이 남는 것은 선생님들과의 대화가 아닌 한 아이의 방과후 수업이었다. 선생님들이 우리가 앉아있던 건물의 열악한 환경에 대해 설명하는 내내, 수업 중 하던 공부를 마치지 못한 아이가 혼자 앉아 그날 치 공부를 끝내고 있었다. 선생님들이 시킨 것도, 도움을 받기 위한 것도 아닌, 자신의 공부를 끝내고자 하는 아이의 모습이 이들에게 학교가 무엇을 뜻하는지에 대하여 말해주었고, 얼마나 개선이 필요한지를 말해주었다.
Jesuit Refugee Service in Mae Sot 방문
 다음으로 방문한 곳인 Jesuit Refugee Service(JRS)는 캠프 밖에 거주하고 있는 난민들에게 전체적인 지원을 해주고 있는 곳이었다. 예수회의 이름과는 달리, 활동가 분들 모두 다른 신앙을 갖고 있었고, 난민의 지원에 있어서도 종교가 어떠한 역할도 할 수 없게끔 되어 있었다. 때론 경찰들의 부패를 이용한 불법적인 방법을 사용해서라도 도시 난민들의 안전을 위해선 금전적, 물질적, 혹은 정신적인 도움을 제공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모습이 보였다. 함께 준비를 해온 형께서 이 단체를 보고 “메솟의 난민 케이스 중 이 단체를 거치지 않은 경우는 없을 거야”라고 말하실 정도로 다양한 일을 하는 단체였다. 이 외에도 난민들을 위한 보호소 역할을 하고 있는 SAW Safehouse, 미얀마 내의 민주화 운동을 지원하고 있는 AAPP, 민주화 운동을 위한 NGO들의 연합인 FDB등, 여러 단체를 방문하며 그 단체의 역할과 앞으로의 계획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메솟에서의 일정을 마무리 지었다.
SAW Safehouse의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모습
AAPP에서. 알고 보니 광주인권상을 수상했던 단체였다
메솟을 떠나기 바로 전, 그 동안 지냈던 호텔 앞에서

다시 방콕으로

 메솟에서의 많은 NGO방문 일정이 끝나자, 개인적인 활동은커녕, 단체 일지를 정리할 겨를도 없이 며칠 전 탔던 바로 그 버스를 다시 타고 방콕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사실 메솟에서 할 수 있는 것이 많아 보이진 않았지만 지금 되돌려보니 그곳 지역에 대한 기억이 없는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방콕으로 돌아와서 가장 처음 한 일은 국제 앰네스티의 태국, 미얀마 지역 조사관인 벤자민 자와키(Benjamin Jawacki)씨를 만난 것이다.
방콕 시내의 한 커피하우스에서 만난 벤자민 조사관
 어쩌면 수박 겉핥기 식의 견학을 했을 우리와는 달리 벤자민 씨는 태국에 오랫동안 머무르며 난민 문제를 포함한 많은 인권 문제들에 대해 조사를 마치고 인지하고 있는 분이셨기 때문에, 지난 일정을 통해 우리가 얻은 것들을 간단히 검토해 주실 수 있었다. NGO를 방문했을 때에는 들을 수 없던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고, 우리 또한 그들에게 차마 묻지는 못했던 궁금증들을 해결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재미있게도 만남 도중 이따금씩 소녀시대와 원더걸스의 얘기를 건네는 벤자민 씨를 보면서 나는 다시 한번 속으로 한국의 대중 문화를 향해 박수를 보내야만 했다. 바쁜 일정 와중에 시간을 내주셔서 필드 트립을 정리할 최고의 기회를 제공해주신 벤자민 씨께 늦게나마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돌아오는 길

 누군가 내게 어딜 다녀왔냐고 물을 때, 태국에 다녀왔다고 답한다면 굉장히 짧고 평범한 여행 이야기가 되겠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못하다. 일정 내내 태국의 땅에 발을 딛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함께 행동한 사람들은 대부분 미얀마 출신의 사람들이었고, 태국 사람들이 아닌 미얀마 출신 난민들의 행복과 고통에 대해 배웠기 때문이다.
여행사 홈페이지에 있는 이런 태국은 정작 사진으로 조차도 보지 못하였다 ㅠㅠ
 영토는 태국, 거주민은 미얀마인, 그리고 두 국가 중 어느 곳으로부터 방해 받고 싶지 않은 사람들. 태국이라는 이름을 가진 국민국가와, 미얀마라는 이름을 가진 또 하나의 인접한 국민국가. 그 두 나라 사이의 작은 틈에 다녀왔다고 하면 될까? 미얀마의 정부는 동쪽 국경 가까이 살고 있는 소수 민족들을 계속해서 태국으로 밀어내고 있고, 비교적 안정적인 정치 상황을 가진 태국은 그들을 묵묵히 받아내고 있다. 단지 난민 협약에 조인하지 않은 태국 정부는 그들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아, 협약상 주어져야만 하는 기본적인 권리도 제공하지 않고 있었다. 두 국가 모두로부터 외면을 받는 곳이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우리가 그 틈새에서 만난 것은 우울한 계곡이라기 보단, 자신들의 미래를 개척해 나가기 위한 사람들의 노력이었다. 그 노력들은 마치 씨앗과 같아서 속을 단단히 채운 후 터를 잡고 비가 내리기 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안타까운 사실이지만 미얀마의 민주주의, 태국 정부의 난민 지위 인정과 인도주의적 대우, 그리고 그 외 난민들이 원하던 많은 변화 중 어떤 것이 단비로 내려 그들의 씨앗에 싹을 틔울 수 있을 지는 그 누구도 알 방법이 없다. 그것이 무엇이 되었던 간에 우리가 만났던 사람들은 그것을 이루기 위하여 싸울 것이고 그 싸움을 돕기 위해 우린 우리의 몫을 하기로 다짐하였다.
인천 공항 행 비행기 표를 발권 받는 모습
 자정이 넘은 시각, 바쁜 일정을 마친 우리들은 각자의 가방을 끌어 안고 인천 행 비행기에 올랐다. 이윽고 비행기가 큰 소리를 내며 이륙하였고, 좌석 위의 전구들은 하나씩 불이 꺼져갔다. 일행 모두가 하나같이 지친 몸을 불편한 의자 깊이 밀어 넣었다. 어쩌면 그 마지막 비행을 힘들게 한 것은 더웠던 날씨도, 무거웠던 짐도, 빠듯한 일정 끝에 지쳐버린 몸뚱어리도 아닌, 우리의 어깨에 새로 얹혀진 책임감의 무게였을지도 모른다. 비행기 안이 점점 어둡고 조용해 지던 그 순간 나는 속으로 다짐했다. 내가 언제 어디에 있던, 이들의 못다 끝낸 이야기를 세상에 들려주리라고.
프로그램
국제 앰네스티 한국 지부, 2009 난민 연구 프로젝트
참가국
태국
기간
2009년 2월 14일 ~ 2009년 2월 20일
비용
국제 앰네스티 한국 지부 지원
전체 일정표
일자 내용 이동경로 기타
2월 14일 (토) 인천출발(20시)   비행기
2월 15일 (일) 방콕도착(01시)
방콕 공항 → 방콕 시내
택시
숙소Check-in   1박
쉼/ 사전준비 방콕 시내  
방콕출발 (저녁) 방콕 → 메솟 2박(심야버스)
2월 16일 (월) 메솟도착 (아침)

방콕 → 메솟  
숙소 Check-in/쉼
   
난민캠프 이동
메솟 → 캠프 텐트
난민캠프 방문    
숙소 이동 캠프 → 메솟 렌트
NGO방문 준비/쉼   3박
2월 17일 (화) 메솟 현지 NGO 방문 - 메타오 클리닉
- SAW
- BLSO(초등학교)
 
숙소 이동/NGO방문 준비/쉼   4박
2월 18일 (수) 메솟 현지 NGO 방문 - NHEC
- AAPP
 
메솟출발(오후), 방콕도착(저녁/새벽) 방콕 → 메솟(9시간) 오후버스
2월 19일 (목) 숙소 Check-in/쉼   5박
자유여행 (오전) 방콕 시내  
방콕 현지NGO 방문 - 태국앰네스티지부(미정)
- Forum Asia(미정)
- UNHCR(미정)
 
후속활동 모의 & 만찬 방콕 시내  
공항 도착(22시)
방콕 시내 → 방콕 공항
 
2월 20일 (금) 방콕 출발(01시)   비행기
서울 도착(09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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