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활동경험담

머리보다 가슴으로 느끼고 왔던 나라, 태국!
글쓴이 조용완     소속 대원외고졸업, 미국유학예정

날짜 09.05.02     조회 5063

방콕자매도시청소년 프로그램? 그래, 한 번 해보자!

처음에 미지센터의 홈페이지에서 “제 1회 방콕자매도시청소년 프로그램 서울시 청소년 대표단 모집”이라는 문구를 보고 호기심으로 클릭을 했던 것이 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사실 나는 2월 초에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마땅히 내자신을 열정으로 적실 일거리가 없었다. 8월에 미국으로 유학을 갈 때까지 시간을 그냥 아깝게 허비하고 싶지않아서 내자신을 헌신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그런데 이 문구가 다시 내 안의 작은 불씨들을 활활 타오르게 한 것이다. 이 프로그램의 주제는 도시의 지속가능한 개발이었다. 평소에 개발경제학에 관심이 있었던 나는, 평소에 의문점을 가지던 문제들이 체계적으로 정리되어서 프로그램에서 다뤄질 생각을 하니 알 수 없는 흥분에 휩싸였다. 스크롤을 내리면서 천천히 프로그램에 관한 설명과 모집요강을 읽은 후, 나는 망설임없이 지원서를 다운로드했다. 알수 없는 흥분에 쌓인채말이다. 몇 달 전만해도 고등학생이었던 나로써는 사실 이와 같은 문화교류 경험이 별로 없었지만, 그래도 나는 내가 왜 이번 방콕자매도시청소년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싶은지 정성을 지원서를 다해서 작성했다. 그리고 이틀 뒤 문자와 함께 메일이 도착했다. 운좋게도 일단 서류면접에서 합격한 것이다! 떨리는 가슴으로 2월 27일 결전의 면접날만을 기다렸다.
드디어 면접 날이 왔다. 나는 미지센터까지 가면서 지하철 안에서 방콕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들를 되뇌었다. “태국 전체 인구의 1/8을 차지하는 800만 인구의 대도시 태국, 불교가 95이상을 차지하……” 떨려서 머리 속에 잘 들어오지도 않아서 그냥 MP3로 경쾌한 노래를 들으면서 산 속에 위치하고 있는 미지센터까지 갔다. 도착하니 이미 많은 지원자들이 와있었고, 사람들을 보니 그나마 가라앉은 가슴이 다시 떨리기 시작했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곧 내 차례가 왔고, 나는 다른 4명의 지원자들과 함께 면접실로 들어갔다. 정말 이상하게도 막상 면접실에 들어가니 뇌가 무의식적으로 체념을 한 것일까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면접관님(윤지혜 선생님)께서 질문을 하시면, 답이 바로 생각이 안나도 제일 먼저 대답하려고 노력했다.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나로써는 대학생 형, 누나들을 머리로 따라잡을 수 있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해서, 내 가슴 속의 열정을 보여주기로 했다. 지금까지도 면접 당시 내가 했던 말 중 열정을 잘 표현한 것으로 기억되는 부분이 있다. 고등학교 때, “하는 것을 좋아해야만 하는 살아지는 삶”을 사는 것에 회의를 느껴서, 이제는 “좋아하는 것을 하는 살아가는 삶”을 살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어떻게 보면 단순하면서도, 당시 복잡했던 내 심정을 가장 잘 표현했던 말이었다. 면접이 끝나고 나와서는 내 속에 있는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았기에 후회는 없었다. 게다가 ‘서류면접에라도 통과했던 것이 어디인가’ 생각하면서 결과가 나올 때까지 마음을 비우기로했다. 집에 도착해서 조금 늦게 저녁을 먹고 9시쯤이 되었는데, 핸드폰 벨소리가 울렸다. 모르는 번호였지만, 일단 전화를 받았다. 전화 저편에서 면접에서 합격했다는 소리가 들려왔을 때, 나는 갑자기 머리 속이 하애졌다. 기뻐서 소리칠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차분하게 전화를 받았다. 오리엔테이션 안내를 받고, 전화를 끊은 나는 그제서야 아무도 없는 집에서 우리집 강아지를 안고 마루를 펄쩍펄쩍 뛰었다. “이제가 진짜 시작인 것이다!” 아직도 그 당시 흥분은 잊을 수 없다.

방콕 가기 전 3주간의 철저한 준비!

면접에 붙은 후, 미지센터에서 처음으로 서울시 대표단 세 분과 인천시 대표단 두 분을 대면했다. 윤지혜 선생님이 오리엔테이션을 진행해주시기 위해 평화의 방으로 들어오시고, 오리엔테이션을 시작하기 전에 여섯명의 멤버들이 돌아가면서 자기소개를 했다. 내 또래가 있기를 내심 기대했지만, 다들 대학생 형, 누나들이셔서 조금 긴장이 되었다. 윤지혜 선생님께서는 BroSis Project의 취지와 전반적인 설명을 해주시고, 작년 여름에 서울에서 진행되었던 BroSis Project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해주셨다. 설명을 들으면 들을수록, BroSis Project의 연장선인 방콕자매도시청소년 프로그램에 대한 기대는 높아져만 갔다. 선생님은 방콕시의 정책을 알아보고, 평가를 하기 위해서는, 우리 서울시의 정책을 먼저 조사하고 공부해볼 필요가 있다고 하셨다. 모두들 동의했다. 게다가 문화공연 준비도 해야하니, 매주 두 번씩 만나서 회의할 것을 추천하셨다. 우리는 서로의 스케줄을 조정하여,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에 만나기로 하였다. 나도 이제 대학생 형, 누나들과 함께 일주일에 두 번씩 만나서 회의도 하고 해외로, 그것도 내가 한 번도 가본적이 없는 태국의 중심지 방콕으로 간다니……! 생각보다 일이 커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긴장감과 기대감이 적절히 조화된 기분은 나를 알 수 없는 행복한 기운으로 감쌌다.
주제토의를 하고, 문화공연 연습에
열중하는 서울시와 인천시 대표단!
이 후로, 우리는 3주 간 만나서 각자 맡은 주제에 대해 서울시 정책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을 하고, 토론식으로 서로 의견을 주고 받았다. 사실 이때에 각자 한 사람 한사람 발표한 서울시의 정책이나 현황으로 인해 배운 것보다는 서로 의견을 던지고 받으면서 여러가지 문제에 대해 더 심도있게 생각해볼 수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서울시의 주된 환경정책 세가지를 소개했을 때, 주형이형의 날카로운 질문으로 인해 내가 환경이란 주제를 지속가능한 개발이라는 더 큰 주제와 연결하지 못했던 부분을 깨닫고, 논제의 핵심을 좀 더 제대로 파악할 수 있었다. 서로의 의견을 공유할 때도, 대학생 형, 누나들에게 폐를 끼치면 안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나도 내 나름대로의 의견을 열심히 피력했다. 가끔씩 서로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있을 때는 윤지혜 선생님께서 적절하게 중재해주셨다. 매번 토론할 때마다, 각각 주제의 본질을 더 확실하게 깨달을 수 있었음에는 모두의 적극적인 참여와 윤지혜 선생님의 적절한 중재가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 각자 주제에 대한 서울시의 정책발표보다 우리가 더 걱정한 것은 문화공연 준비였다. 사물놀이를 할지, 판소리를 할지, 부채춤을 추어야할지 계속된 고민 끝에 결국 우리는 연지곤지를 하기로했다. 인터넷에 올라와있는 연지곤지 동영상들을 보면서 우리만의 독특한 공연을 완성해나갔다. 우리는 그렇게 방콕에 조금씩 조금씩 가까워 지고있었다.

드디어 방콕으로! 가는거야~

3월 22일은 방콕으로 떠나는 날이었다. 나는 그 전날부터 방콕에 갈 준비로 부산을 떨었다. 먼지에 쌓였던 여행가방을 창고에서 꺼내서, 그 안에 반팔과 반바지를 차곡차곡 개서 넣을 때, 계속해서 가슴이 설레었다. 당시 서울은 아직 날씨가 꽤 선선하고, 어떤 때는 정말 추었기에 여름 옷을 준비하면서 마치 미래로 가는 준비를 하는 기분이 들었다. 수첩에다가 준비물을 쭉 쓰고, 짐을 싸면서 하나하나씩 지워나면서는 방콕에서 어떤 활동들을 할까 잠시 상상에 빠져보기도했다.
서울시 대표 4명과 인천시 대표 2명으로 이루어진 우리 한국팀은 3월 22일 아침 10시까지 미지센터에 모여서 마지막으로 춤 연습을 했다. 연지곤지 춤은 이제 파트너랑도 호흡이 어느정도 맞았지만, 주현이누나가 준비한 노래파일에 우리의 공연이 딱 맞지 않아서 몇 부분을 수정해서 전체적으로 공연을 좀 늘리기로 했다. 우리가 빌린 한복도 처음으로 입어보고 연습을 해보니 감회가 새롭고, 서로의 모습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사실 연지곤지는 유치원생들이 주로하는 춤인데, 어른인 우리들이 이런 춤을 춘다고 생각하니 너무 재미있었다. 이 때에 누나들은 원더걸스의 노바디라는 노래에 맞추어 안무연습도 했는데, 특히 주현누나의 열정에 박수를 보내주고 싶었다. 정말 적극적으로 계속해서 안무를 반복해서 암기하셨다. 처음에는 주현이형도 누나를 말리려다가 나중에는 혀를 내두를정도 였으니 누나의 열정이 엄청난 사실은 부정할 수 없었다. 12시 쯔음에는 미지센터 1층에 있는 직원식당에서 선생님과 우리 6명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점심식사를 했다. 방콕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지는 않았지만, 다들 방콕에 갈 기대에 가득 부풀어 있는 눈치였다. 나 역시도 기대를 숨기지 못했다. 식사 후, 슬아누나와 석영이누나는 다음 날 출발하셔서 다시 집으로 돌아가시고, 우리 서울시 팀은 마지막으로 춤연습을 몇 번 더 한 후에 윤지혜 선생님과 함께 세종 호텔 앞의 공항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버스에서 곤히 잠들었다가 일어나니 인천공항에 금방 도착해있었다. 잠기에 취해있던 나는 인천공항에 들어가자마자 잠이 확 깼다. 공항에 가면 나는 특유의 냄새가 내 코를 자극한 것이다. 우리는 짐을 부치고, 태국의 Baht로 돈을 환전한 후 비행기를 탑승하러 발길을 옮겼다.
Suvarnabhumi 공항 밖의 전경
5시쯤 드디어 방콕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비행기 안에서 영화 한 편보고, 기내식을 먹고, 책을 조금 읽고 나니 내 앞 자그마한 모니터에서 방콕의 도착을 알리는 문구가 나타났다. 나는 방콕으로 출발하기 전에 서점에서 산 포켓태국어 책에서 태국어 인사말을 형, 누나들과 함께 급히 외웠다. 비행기에서 내려 Suvarnabhumi 공항 안으로 가니, 우리를 반기러 온 태국 분들께서 기다리고 계셨다. 우리는 외웠던 태국어를 바로 써먹었다. “Sa-wad-dee-krab!”(“안녕하세요!”) 우릴 반기러 온 분들이 갑자기 깔깔대며 웃으시면서 무척 좋아하셨다. 그 후 짐 찾는 곳에서 짐이 나오길 기다리면서 서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를 맞이하러 오신 태국분들의 성함을 알게 되었는데, Lek, Peter, May, May Jiw였다. 사실 May와 May Jiw는 둘 다 May지만, May Jiw가 몸집이 더 작아서 태국어로 작다의 의미를 가진 “Jiw” 를 이름 뒤에 붙인거라고 했다. 짐을 수령하고, 공항 밖으로 나가보니, 눈 앞에 펼쳐진 방콕의 모습은 서울과 매우 흡사했다. 그러나 기온이 서울보다 높았고, 습도가 높은 것도 한 순간 느껴졌기 때문에 방콕에 왔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서울에서는 계속 입고 있던 자켓을 한순간에 벗게한 그 열기는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우리는 조그마한 벤을 타고 Siam City 호텔로 향했다 . 벤 안에서 May Jiw 바로 옆에 앉았는데, 처음에는 조금 서먹했지만, 여러가지 이야기를 하면서 매우 가까워졌다. May Jiw는 방콕에서 Chulalongkorn이라는 대학(우리나라의 서울대에 해당하는 일류대학)에서 국제관계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을 서울대로 지원해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고했다. 태국에서 우리나라에 유학을 온다고 하니 무엇가 감회가 새로웠다. 우리나라도 이제 다른나라에서 조금씩 인정을 받는 것 같아서 한국인으로써 뿌듯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May Jiw가 원더걸스 노바디 춤을 흉내 냈을 때는 나뿐만 아니라 차 안의 우리 모두 놀랐다. 매일 TV에서만 보고듣던 한류를 체험하는 순간이었다.
호텔에 도착해서 더위를 피하러 호텔 안으로 헐레벌떡 들어갔을 때에는 5성 호텔답게 로비에서 분수가 물을 시원하게 뿜어대고 있었다. 게다가 호텔 안은 냉방이 잘 되어있어서 무척 시원했다. 우리는 짐을 컨시어지에게 맡기고, 각자 체크인을 했다.
편의점 입구에 진열된 책들과 안쪽의
여러가지 먹을거리들
카드키를 받고 보니 서울 대표단 4명 중 나만 7층이고 형, 누나들은 4층이어서 좀 아쉬웠다. 그래도 윤지혜 선생님이 나와 같은 층이니 안심이 되었다. 우리는 각자 방으로 돌아가서 샤워를 하고, 호텔 주변을 둘러보기 위해 다시 모이기로했다. 호텔 방안은 생각보다 무척 만족스러웠다. 태국인 룸메이트는 다음 날 오기 때문에 나 혼자 방을 써서 더 커보였던 것 같다. 샤워를 하고 나오니, 문 앞에 작은 편지봉투가 놓여져 있었다. 방콕에서 주의할 사항들과 프로그램에서 지켜할 규율들이 적혀있었다. 주의깊게 읽은 후 형, 누나들을 만나러 나갔다. 우리는 호텔에서 50m쯤 거리에 있던 세븐일레븐으로 향했다. 편의점 입구에서는 여러가지 책을 팔았는데, 역시 불교국가답게 불교에 관한 책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편의점에서 파는 과자, 음료수 등은 한국이랑 매우 비슷하고, 오히려 더 좋아 보이는 식품들도 많았다. 한국에 비해 가격도 싸서 매우 만족스러웠다. 우리는 태국어를 하지 못했지만, 바디랭귀지를 사용해서 각자 컵라면 한 개와 음료수 한 병씩을 사서 주형이형 방으로 향했다. 방에서 방콕의 첫인상, 우리를 반겨주었던 분들 이야기 등 여러가지 재미있는 이야기를 했다. 태국 분들의 호의와 호텔의 높은 질에는 우리 모두 높은 만족감을 가지고 있었다. 태국 온지 겨우 두 시간 남짓되었는데 이렇게 좋다면 앞으로의 8일은 어떨까 너무 기대가 되었다. 라면을 맛있게 먹은 뒤 다음날의 일정을 위해 모두들 각자 방으로 가서 잠을 청했다. 태국에서의 첫날 밤은 그렇게 깊어갔다.

첫번째날(3월 23일 월요일): 일찍 도착한 자들의 여유!

내 방에서 바라본 방콕의 아침과
방 앞에 놓여져 있던 Bangkok Post
전날 잠이 들기 전에 아침 8시에 만나서 아침식사를 함께 하기로 했것만, 주형이형과 주현이누나가 오지 않아 나는 소희누나와 먼저 호텔식당으로 향했다. 아침은 호텔뷔페였다! ‘앗 이런, 아침부터 뷔페라니……!’ 갑자기 어제 밤에 컵라면 먹은 것이 너무 아깝게 느껴졌다. 처음 먹을 때는 조금 부담스러웠지만, 이내 적응해서 이것저것 접시에 담아서 우물우물 먹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태국음식이 향이 좀 강해서 걱정했지만, 뷔페음식 중 태국음식들은 향이 강한 것이 별로 없었다. 아마도 호텔에 묵는 많은 외국인들은 배려한 것이라는 추측을 해보았다. 소희누나와 내가 식사를 거의 마쳤을 쯔음에 주형이형과 주현이누나가 식당 안으로 들어오셨다. 주형이형과 주현이누나와 이야기를 조금 하다가 나는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방으로 돌아와서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은 문을 열자마자 보였던 Bangkok Post였다. 1면의 기사는 방콕의 실업문제를 다루고 있었다. 방콕에서도 우리나라처럼 실업문제가 사회문제의 큰 부분으로 대두되고 있는 것 같았다. 씁쓸함을 뒤로하고, 나갈 준비를 하고 밑으로 내려가니 선생님을 포함한 모든 멤버들이 다 모여있었다. 로비에서 컨시어지분에게 방콕 시내의 지도를 얻고 태국 스테프, 인턴분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모두들 우리를 환한 미소로 반겨주었다. 정말이지, 부처님의 미소처럼 처음 본 우리를 따뜻하게 반겨준 태국분들때문에 내가 태국에 더 쉽게 적응할 수 있었다고 과언이 아니다.
여러 사람들과 인사를 나눈 뒤, 서울 대표단 팀은 어제 우리를 공항에서 반겨주었던 May Jiw와 함께 10시쯤에 벤을 타고 태국 시내를 돌아보러 호텔을 떠났다. 벤을 타고 가면서 여러가지 재밋는 것들을 보았다.
Ananta Samakhom Throne Hall과
UN Convention Center
1974년까지 의회의 역할을 하다가 지금은 박물관이 된 Ananta Samakhom Throne 홀, UN 컨벤션 센터, 가끔씩 볼 수 있는 불상과, 길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왕을 상징하는 노란색 깃발 등이 쉴새 없이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벤을 타고 30분쯤 가서 우리는 Wang Lang 마켓에 도착했다. 이 곳에는 간단히 군것질할 것들부터 실크로 짠 옷까지 없는 것이 없었다. 사람들이 부산하게 움직이고, 즐비하게 늘어선 상점들은 마치 우리나라의 동대문 시장 같았다. 주형이형과 나는 방콕의 뜨거운 햇빛을 막아줄 모자가 없어서, 여기서 밀집모자를 하나씩 구입했다. 수작업으로 만든 모자의 가격은 80 Baht. 우리나라 돈으로 3,200원 정도의 가격이다. 값도 싸고, 아주 근사한 모자였다. 우리는 May Jiw를 따라다니면서 Wang Lang 마켓의 구석구석을 구경하면서 다녔다. 계속 걸어서 모두가 지쳤을 쯔음에 우리는 태국의 상징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과일인 코코넛으로 만든 아이스크림을 발견했다. 선생님께서 첫 날이라시면서 우리 모두에게 아이스크림을 사주셨다. 다른 화학첨가물 안넣고, 진짜 코코넛으로만 만든 아이스크림 같았다. 단맛이 강하게 나지않고, 코코넛의 맛만 은은하게 났다. 사실 단 것을 기대했던 나는 조금 실망했지만, 그래도 유기농 코코넛 아이스크림 맛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코코넛 아이스크림말고도 Wang Lang 마켓에는 여러가지의 과일을 자주 볼 수 있었다. 그 중에 제일 자주보는 과일들은 망고, 구아바, 파파야, 파인애들 등이었다. 마켓의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던 우리는 택시보트를 타고 Chao Phraya강을 건넜다. 택시보트를 한 번 타는데는 3 Baht. 우리나라 돈으로 120원정도 하는 가격이다.
왼쪽부터 망고, 구아바, 파파야, 파인애플
(이쯤에서 잠시 태국 바트에서 한국 원으로 환산하는 법은 간단히 소개하겠다. 말 그대로 간단하다. 태국의 바트 가격에 40을 곱하면 얼추 우리나라 원 가격으로 환산된다. 태국 어딜 가든지 우리나라 돈으로 환산해서 우리나라 물건이랑 값을 비교해보곤 했다.) 택시보트를 타고 Chao Phraya 강 반대편으로 건넌 우리는 Thammasat 대학으로 향했다. Thammasat 대학으로 향하던 우리는 정체불명의 모금함을 발견했다. 호기심이 발동한 나는 May Jiw에게 도대체 이것이 무엇이냐고 물었고, May Jiw는 그것은 불교사원을 짓기위해 사람들이 돈을 자발적으로 기부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모금함이라고 설명해주었다. 불교나라인 태국에서 왕 다음으로 존경받는게 승려라고 하는데, 불교사원을 짓는데 자발적으로 돈을 내는 태국인들도 마침 목격할 수 있었다. 나도 그들의 문화에 경의를 표하기 위해서 20 Baht짜리 지폐 한 장을 모금함 속으로 쏙 넣었다.
택시보트 위에서 May Jiw와 함께
길을 조금 더 걸어가니 Thammasat 대학의 입구에 다다를 수 있었다. Thammasat 대학은 서울의 연고대에 해당하는 명문대라고 했다. Thammasat 대학은 Sanam Lung과 Rangsit이란 두 곳에 캠퍼스가 있는데, 우리가 간 곳은 Sanam Lung에 있는 캠퍼스였다. (Rangsit에 있는 캠퍼스는 방콕에 위치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리 먼 곳에 위치하고 있지도 않다. 요즈음 추세는 Rangsit으로 많은 프로그램들이 옮겨가고 있고, Sanam Lung에서는 학부의 인터네셔널 프로그램들과 몇몇 석사, 박사학위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고 한다.) Thammasat 대학의 입구에는 건물의 벽에 커다란 비석의 모양으로 태국어가 새겨져있었는데, 이는 지금 은 쓰이지 않는 태국의 고대문자라고 한다. 사실 이 비석은 다른 곳에 원문이 있고, 이는 그것의 사본을 뜬 것이라고 했다. 왠지 입구에서부터 학구적인 분위기가 풍기는 것이 Thammasat 대학에 다니는 젊은이들의 학구열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입구에 들어서자 바로 앞에 Thammasat 대학의 상징인 “The Dome”이라고 불리우는 첨탑이 눈에 띄었다.
Thammasat 대학의 상징인 "The Dome"
(실제모습과 자동차 스티커)
많은 자동차에 이 첨탑의 모습이 그려진 스티커가 붙여져있고, 심지어는 오토바이에도 붙여져있었다. 우리는 Thammasat 대학의 멋진 첨탑을 감상한 후 캠퍼스를 가로질러 Pridi Banomyong 도서관으로 향했다. 계단으로 내려가는 중간에 유리로 되어서 도서관 안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어있었는데, 여름방학임에도 불구하고, 학업에 열심히 정진중인 대학생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을 방해하지않도록 최대한 조심스럽게 계단을 내려갔다. 도서관은 학생카드가 있어야지만 들어갈 수 있었으므로 우리는 그 앞 휴게소에서 계속 걸어서 피로해진 다리를 쉬어주면서 시원한 물로 목을 축였다. 휴게소의 벽에는 어떤 사람의 초상화가 그려져있었는데, Thammasat 대학을 세운 창시자 분의 모습이었다. 소파가 놓여진 곳 근처에 유대인과 시오니즘 관련된 서적이 전시되어 있는 모습을 보니 휴게쇼에서조차 학생들의 학문을 향한 열정이 느껴졌다. Thammasat 대학의 학구열에 뜨겁게 달아올랐던 우리는 Khao San 거리로 발걸음을 옮겼다. 카오산 거리는 마치 한국의 이태원거리를 연상시키는 곳이었다. 거리에 상점들이 빼곡히 늘어섬은 말할 것도 없고, Wang Lang거리보다 외국인들도 훨씬 많았다. 대충 눈짐작을 해봐도 길거리를 행보하는 사람들 중 반 정도는 외국인들인 것 같았다. 활기넘치는 상점, 개성넘치는 모습을 한 젊은이들과 많은 외국인들로 인해 Khao San 거리는 이국적인 분위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이 곳의 물건 가격은 Wang Lang 마켓보다 조금 비쌌지만, 독특한 티셔츠가 많이 눈에 띄어 나는 티셔츠 3개를 500 Baht를 주고샀다. 매우 만족스러웠다. 길을 조금 더 걷다가 태국의 전통적인 인사법인 “Wai”를 하고 있는 맥도날드 모형을 발견했다. 이 모형이 어찌나 신기하던지 나는 기어이 사진을 찍고 말았다. Khao San 거리를 활보하던 우리는 태국음식을 하는 음식점에 들어가서 점심을 해결했다.
태국식 인사법인 "Wai"를 하면서
나는 향이 강한 그린카레 같은 것은 시도해보지 못하고, 비교적 향이 강하지 않은 음식들 위주로 배를 채웠다. 그 중에서도 주형이형은 태국 현지인처럼 음식이 잘 맞는다고 하셔서 정말 부러웠다. 우리 모두 복스럽게 모든 음식을 시도해보는 주형이형을 놀라운 눈빛으로 볼 수 밖에 없었다. 점심을 다 먹고, May Jiw는 우리를 Siam Paragon으로 데려가주었다. Siam Paragon은 방콕에서 매우 유명한 백화점 같은 곳이었다. 주로 고급스럽고, 가격이 높은 물건을 파는 곳이었다. 우리는 지하로 가서 Swesen’s라는 유명한 아이스크림점에서 디저트를 시켜먹었다. 나는 Strawberry Stripe이라는 아이스크림을 시켰는데, 길쭉한 컵에 많은 양이 담긴 아이스크림이 79 Baht라니……! 가격에 한 번 놀라고, 달콤한 맛에 한 번 더 놀랐다! 그 후 우리는 Siam Paragon 안의 상점들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는데, Wang Lang 마켓이나 Khao San 거리보다 비싸서 왠만해선 물건을 살 염두가 나지 않았다.
새로산 팔찌를 착용하고
그와중에 내 눈에 띈 아주 근사한 팔찌가 있어서 조금 비싸긴 했지만, 나는 눈을 질끔감고 구입했다. 팔찌를 착용하니 주형이형이 무슨 현지인 같아 보인다고 해주셔서 계속 웃었다. 그 후 Jim Thomson이라는 태국에서 유명한 실크전문점을 방문했다. 나는 아버지를 위해서 코끼리가 그려진 손수건 하나를 구입했다. 손수건 말고도, 가방, 포스트잍 보관함, 립스틱 보관함, 스카프 등등 눈을 휘둥그레 하게 하는 여러가지 물건들이 눈을 즐겁게 해주었다. 쇼핑을 마치고 5시까지 호텔로 돌아와야했기에 우리는 Sky Train을 타고 호텔로 돌아왔다. 태국은 Sky Train (BTS - Bangkok Mass Transit System)과 지하철 (MRT - Mass Rapid Transit이 있는데, Sky Train이 좀 더 비싸다고한다. 그리고 Sky Train과 지하철의 교통카드가 따로 분리되어있었다. 우리나라는 버스, 지하철, 택시를 이용하는 교통카드가 T-Money라는 카드 하나로 통합되어있다는 설명을 하니 May Jiw는 놀란 눈치였다. 지하철에 내려서 호텔에 오면서 여러가지 색깔의 택시를 보고, May Jiw에게 차이점이 뭐냐고 물었는데, 택시색깔이 다른 것은 회사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가격은 다 같고, 서비스 면도 비슷하다고 했다. 한국에서는 모든 택시의 색깔이 동일해서 (모범택시와 일반택시의 구분을 제외하고) 나에게 태국의 택시는 무척 신기해보였다. 호텔에 들어와서 로비에서 스테프들에게 지금 각자 방에 태국친구들 룸메가 도착했다고, 지금 위에 가보면 태국인 룸메들이 있을 것이라고했다.
게임시작 전에 규칙을 설명하는 Taa와 Neung
나는 한시라도 빨리 내 룸메를 보고 싶어서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엘리베이터를 타고 방으로 서둘러 갔다. 방에 들어가니 Ben이라는 태국친구가 짐을 풀고 있었다. 송승헌 눈썹처럼 진한 눈썹을 가지고 있는 Ben은 무척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는 신사였다. 왠지 매우 쉽게 친해질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우리는 인사를 하고, 가벼운 이야기를 하면서 저녁을 먹으러 함께 갔다. 저녁식사를 하러 식당에 가니 태국친구들 말고도, 여러나라에서 온 친구들이 다 도착해있었다. 여러 친구들과 인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후 우리는 작은 강당 같은 방으로 가서, “Ice Breaking” 시간을 가졌다. “Chicken White Butt”이라는 재미있는 노래와 율동을 배우고, 술래잡기 같은 게임도 하면서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과 친해질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내가 태국에서 1,500장이 넘는 사진을 찍었는데, 이 때는 너무 재미있게 노느라 찍은 사진이 한 장도 없다. 이 시간에 나는 그만큼 재미있게 놀았다. 여러 배경에서 온 사람들을 사귀어서 좋았고, 여러가지 문화의 공존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어서 뜻깊은 시간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나는 한국에 있을 때, 알게모르게 외국인에 대한 공포심이 있었는데, 이 기회를 통해 외국인에 대한 편견도 깰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모두가 마치 몇 년동안 알아왔던 친구들처럼 친해졌을 쯔음에 게임은 이미 모두 끝났고, 우리는 다음날 일정을 들었다. 사회자였던 Ball이 내일 아침 6시까지 에어로빅을 하러 호텔 로비로 나오라는 말에, 모두들 기겁을 했다. Ball은 장난스럽게 말헀지만, 분명 에어로빅도 일정의 한 부분임은 부정할 수 없었다. 방으로 돌아와서 나랑 Ben은 한국, 태국에 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내가 오늘 방문한 장소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Thammasat 대학에 놀러갔던 이야기를 하니까 Ben은 나에게 태국의 대학에 대해서 간단히 소개해주었다. 태국에도 한국처럼 대학이 서열화되어있는데, Chulalongkorn, Thammasat, Kasetsart 순서로 인정을 해준다고 하였다. 그리고 각 대학마다 유명한 학문분야가 있는데 Chulalongkorn 대학은 언어학과 경영학, Thammasat 대학은 정치학과 역사학, Kasetsart 대학은 이공계쪽 학문과 농과대에서 강 세를 보인다고 하였다. 그리고 종교이야기를 하다가 Ben 또한 불교신자라는 사실을 알게되었는데, 2009년은 태국의 달력으로는 2552년이라고 하였다. 기준년도는 부처께서 돌아가신 해라고 알려주었다. 그 후 한시간동안 Ben에게 오늘 갔던 곳 이야기와 질문들을 하고, 내일 아침의 에어로빅을 위해 우리는 잠자리에 들었다.

두번째날(3월 24일 화요일): 빡빡한 일정의 시작!

아침 5시 45분쯤에 약속이라도 한듯이 Ben과 나의 핸드폰이 동시에 울렸다. 일어나서 고양이세수를 한 후, 벤과 나는 부랴부랴 호텔 로비로 갔다. 딱 6시에 맞추어서 나갔건만, 많은 사람들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었다. 에어로빅을 하는 작은 강당으로 가서, 에어로빅을 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이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Kasetsart 대학 교복의 넥타이와 벨트
너무 피곤했던 나는 에어로빅을 그만두고 들어가고 싶었으나, 생각보다 노래가 경쾌하고 에어로빅에서 한 번도 보지못한 신기한 동작들이 많아서 열심히 따라했다. 동작이 중간에 틀린 부분도 많았지만 상관하지 않고 내 몸을 노래에 맡겼다. 40분 간의 에어로빅이 끝난 후 Ben은 나에게 어깨 동무를 하면서 왜 이렇게 에어로빅을 열심히 하냐고 물었다. 나는 대충 하다간 너무 졸려워서 에어로빅 중간에 잠들어 버렸을 것이라고 하니까 Ben은 내 진담을 농담으로 알아 듣고 깔깔 웃었다. 나도 그냥 머쓱한 웃음을 지으며 함께 방으로 돌아갔다.
방에서 간단히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었는데 Ben은 학교 교복을 입었다. 태국에서는 대학생들도 교복을 입는데 학교마다 넥타이, 벨트, 벳지에 새겨진 문양이 다 달라서 그 문양으로 학교를 구분한다고 하였다. 우리는 아침을 먹으러 부랴부랴 식당으로 향했다. 어제 먹었던 식당과는 다른 곳이었지만, 여전히 뷔페라서 너무 좋았다. Ben과 나는 오믈렛, 베이컨, 볶음밥 등 맛있는 음식들을 접시에 가득 담고, 태국친구들이 있는 테이블에 앉았다. 테이블에는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태국친구들이었는데, 태국아이들도 아무래도 태국어가 모국어이다 보니까 태국아이들끼리 있을 때는 영어대신 태국어를 사용하였다. 나는 그럴 때 마다 태국어 발음을 따라하거나 “Jing ror?”(한국어로 “진짜?”라는 의미)라고 장난기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럴 때마다 태국아이들은 지금 무슨이야기를 했는지 영어로 말해주고, 이런이런 이야기 때문에 웃었다고 말해주었다. 태국아이들이 태국어로 말할 때마다 내가 계속 참여하고 싶어하는 의사(?)를 장난으로 표현하니까 조금 후에는 태국아이들이 그냥 영어로 말해주었다. 영어가 그렇게 말하고 싶었던 적은 내 인생에 처음이었을 것이다.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8시까지 로비에 모여서 Grand Palace에 갈 준비를 하였다.
왼쪽에 있던 웅장한 전통태국양식의 궁전
버스를 탈 때에는 그룹별로 나뉘어서 탔는데 환경그룹이었던 나는 2번째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않아 Grand Palace에 도착을 했다. 버스 안에서도 그 웅장한 모습을 가늠해볼 수 있을 정도로 궁전은 컸다. 냉방이 잘 되었던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다시 엄청난 더위가 우리를 엄습했다. 게다가 Grand Palace에 오기위해서 긴바지와 운동화를 신어야했기 때문에 방콕의 더위가 더 얄밉게만 느껴졌다. 왕궁의 입구를 지나가는데, 입구에서부터 근위병이 지키고 있어서 왕궁의 위엄이 더욱 강하게 와닿았다. 입구를 지나자마자 왼쪽에는 태국의 전통적인 왕궁이 들어서 있었고, 오른쪽에는 서양과 현대미가 어우러진 건물이 들어서 있었다. 양 쪽 건물들을 배경으로 계속 사진을 찍은 후, 병사들 행진을 구경했다. 표정에서부터 엄한 위엄이 느껴지는 동시에, 더운날씨에도 온 몸을 덮는 군복과 모자를 쓰고 있는 병사들을 향해 존경심이 들었다. Grand Palace 안을 돌아다닐 때, 가이드 옆에 거머리처럼 붙어서 설명을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는 노력을 했다. 조각상 하나라도 설명을 들으니 새롭게 보이고, 태국의 왕실에 대해서 더욱 알고 싶어졌다. 내 옆에 같이 다니던 주현의 누나의 룸메였던 Nam에게 나는 계속해서 질문을 했다. Nam은 내가 너무 질문을 하자 좀 당황했지만, 친절하게도 자신이 아는 것을 최대한 알려주려고 노력했다. 나는 Grand Palace에서 제일 유명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에메랄드 부처 또한 보았다. 신전 안에서는 사진을 찍을 수 없었기에 하는 수 없이 밖에서 사진을 찍었다.
서양식 현대미와 전통태국 양식이 어우어진 건물
에메랄드부터는 생각보다 크기는 작았지만,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강한 힘을 내뿜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에메랄드 부처상 앞에서 부처와 그의 가르침을 향한 존경을 표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옆에서 부처상을 향해 절을 하면서 존경을 표했다. 태국인들은 이러한 절이 한 사람으로 하여금 좀 더 이타적이고, 자기 자신 대신에 부처의 가르침에 좀 더 집중하도록 도와준다고 믿는다고 하였다. 나도 신전 안에서 그 고귀한 존경심을 조금이나마 느껴볼 수 있었다.
Grand Palace의 구경을 마치고, 우리는 환영회를 참석하러 시청으로 향했다. 시청에서는 시장님이 방콕자매도시청소년 프로그램의 개최를 환영해주시고, 각각 도시 대표(우리의 경우 윤지혜 선생님)에게 존경의 의미로 쟈스민 화환을 선물해주셨다.
전통태국 악기로 경쾌한 리듬을 연주하고 있는 악단
그리고 각 나라마다 연단 위에서 시장님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시청에서 환영식을 마치고 나오니, 전통적인 태국 연주단이 연주를 해주었다. 마치 우리나라의 사물놀이처럼 경쾌한 리듬이었다. 태국의 전통 춤을 나도 배워서 연주단 앞에서 신나게 췄다. 연주가 끝났을 쯔음에는 뜨거운 햇볕에 서계셨던 연주자분들 모두가 땀을 뻘뻘흘리고 계셨다. 우리를 위해 이렇게 고생해주시고, 호의를 베풀어주신 태국인 연주자분들에게 너무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시청에서 돌아와서는 휴식시간도 없이 바로 다음 스케줄이 진행되었다. 에어로빅을 했던 작은 강당에서 시청에서 우리가 팔 가방에 그림그리기를 하는데 이 때부터 각자의 주제별로 그룹이 나뉘어 진행되었다. 그림의 주제는 방콕, 지구, 사랑 이 세 가지중 한 가지를 고르는 것이었다. 나는 환경그룹이었기때문에 지구라는 주제를 선택해서, 숲을 그리고 그 안에 “EARTH”라는 단어를 숨겨서 표현했다.
지구라는 주제를 가지고 그린 그림의 모습
1시간이 주어졌는데 나는 1시간 후에도 그림을 완성하지 못해서 할 수 없이 남아서 계속 그렸다.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나름대로 철학적으로 표현하기위해서 나무의 뿌리를 인간모양으로 해서, 나무(=자연)을 보호하려면 인간들이 함께 노력해야한다는 메시지를 담은 그림이었다. 그림에 너무 몰두를 해서 그런지 나는 방으로 돌아가자마자 곯아떨어져버렸다.
7시쯤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서 일어나보니, 주형이형이었다. 아뿔싸! 오늘밤 호텔에서 환영회가 있는데, 내가 늦은 것이다. 급히 일어나서, 자켓을 챙겨입고 환영회가 열리는 곳으로 서둘렀다. 도시마다 도시대표와 참가자들이 연단 위로 가서 한마디씩 하고 있었는데 다행이도 한국은 K로 시작하기 때문에 아직 순서가 오지 않았다. 아직 잠기운이 조금 남아있던 나는 곧 한국의 순서가 올 것을 대비해서 마음 속으로 할말을 정리하고 있었다. 마침내 서울시 차례가 왔고, 윤지혜 선생님과 주형이형 후 내가 말할 차례가 왔다. 나는 모두들 반갑고, 어제 나의 질문에 성심껏 답변해준 나의 룸메 Ben에게 고맙고, 여러 나라에서 온 많은 친구들과도 친해졌으면 좋겠다는 말을 남기면서 Khob-khun-krab(감사합니다)하고 인사를 하고 끝냈다. 내 차례를 성공적으로 넘겨서 가슴을 쓸어내리고, 다시 뒤로 와서 서있었다. 주현이누나, 소희누나의 순서도 끝나고 우리는 이제 한시름 놓고 음식을 조금씩 먹기시작했다. 정말이지, 도착한 이후로 계속된 부페이지만, 정말 먹을 때마다 맛있고, 질리지 않았다. 음식을 먹다가 태국전통 인사법인 “Wai”를 May와 Fah가 설명해주어서 집중해서 보았다.
11가지의 태국의 전통의상
이는 태국 어디서든지 상대방에 존중을 표할 때 사용하는 인사법으로 두 손을 모은다음 고개숙여 인사를 하면 된다. 여담이지만, 나는 이후에 방콕에서 어딜가든 “Wai” 인사법을 유용하게 사용했다. 그다음에 진행된 태국전통의상 패션쇼도 구경했는데, 내 룸메 Ben을 포함한 11명의 태국친구들이 태국전통의상을 멋지게 소개해주었다.
행사의 모든 순서가 끝나고, 우리는 서로 음식을 즐기면서 대화도 하고 함께 사진도 찍었다. 나는 태국의 의상을 입은 11명 모두에게 사진을 찍자고해서 결국엔 Jaja가 저녁을 마치고 방으로 돌아가려할 때 마지막으로 찍어서 11명과의 사진 모두를 간직하게 되었다. 마치 우표수집가가 진귀한 우표를 모으고 뿌듯한 기분이 들듯이 나도 사진들을 보면서 뿌듯했다. 저녁을 마치고 우리는 방으로 돌아가 다음날의 일정을 위해 최대한 빨리 잠자리에 들었다.

세번째날(3월 25일 수요일): 본격적인 그룹스터디의 시작!

프로그램 셋째날의 아침도 에어로빅으로 열었다. 나는 너무 피곤해서 침대에 계속 파묻혀있고 싶었지만 Ben의 계속되는 설득으로 인해 눈을 반정도 감은 상태에서 운동화만 챙겨신고 에어로빅을 하러 갔다. 그런데 또 막상 에어로빅을 할 때는 적극적으로 따라했다. 나중에서야 Ben과 이야기를 하다가 알게된 사실이지만, 내가 피곤해하면서도 에어로빅을 할 땐 막상 열심히 따라해서 Ben은 내가 에어로빅을 좋아하면서 일부러 하기 싫은 척했다고 생각했었다고한다. 간단히 샤워를 하고, 또 같이 아침을 먹었다. 아침시간은 나와 같은 그룹에 있지않은 사람들과 사귀기 좋은시간이어서 나는 아침을 열심히 먹으면서도 테이블에 있는 모든 사람과 이야기를 하려고 노력했다. 그 결과 여러나라에서 온 많은 친구들과 친해질 수 있었다. 그런데 무슨 그룹인지 물을 때마다 환경그룹인 사람이 없어서 좀 아쉬웠다.
방콕시 환경부에서 환경정책 이야기를 들은 후
프로그램의 셋째날부터는 그룹스터디가 시작되는 날이었다. 총 여섯가지의 주제인
Tourism Sustainable Promotion, Health Promotion in Metropolitan Areas, Education Management, Encouragement Participation in Environment Preservation, City Recreation Promotion, Occupational Promotion 중에서 나는 4번째 주제인 환경에 속해서 환경그룹원들과 함께 움직였다. 방콕시의 구석구석을 살펴보기 전에, 우리는 일단 방콕시의 환경정책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서 방콕시의 환경부 건물을 제일 먼저 방문했다. 거기서 방콕시의 환경정책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를 순차적으로 들을 수 있었다. 설명을 들으면서 몇 가지 신기하고 인상깊었던 부분들이 있었다. 첫번째로, 내가 면접날 반복해서 외웠던 “인구 800만의 도시 방콕”은 옳지 않은 사실로 드러났다. 공식적으로 등록된 인구는 7,800만이 맞지만 사실은 다른 지역에서 몰려온 사람들이 도시의 주변가에 살고있어서 비공식적인 집계는 1200만정도라고 하였다. 두번째로, 우리나라에서 볼 수 없는 “Vertical Garden”과 수 많은 정원과 공원이었다. 방콕에는 Sky Train이 다니는 길이나 다리 위의 고속도로를 지지하는 기둥에 꽃이나 식물을 심어서 오염정도를 완화시키고, 시각적으로도 보다 나은 모습을 추구한다는 점이 인상깊었다. Vertical Garden은 우리나라에도 많이 사용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방콕에는 왕족을 기리는 정원이 많은데 이는 생태학적 가치뿐만 아니라 심미적인 가치또한 가지고 있었다. 방콕시 내에 국립공원만 25개가 이미있고, 8개는 새로 조성하고 있다고 하니 방콕시가 정원을 얼마나 중시하는지 알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두마리의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정원들이 많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동시에 땅이 좁은 대한민국에서는 무리인 부분도 없잖아 있을 것 같다는 우려도 함께 들었다.
환경부 건물 내에서 이루어지는 분리수거에 대해서
설명해주시고 계신 환경부 직원분
세번째로, 바이오디젤과 같은 친환경적인 에너지원을 개발하려는 노력이 돋보였다. 방콕에서는 폐식용유를 가지고 오면, 시민들에게 일정한 액수의 돈으로 보상하여 폐식용유를 그냥 하수구로 흘려보내지 않을 충분한 인센티브를 제공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렇게 보인 폐식용류들은 방콕에 있는 3개의 쓰레기 처리장 중 한 곳에서 바이오디젤을 만드는데 원료로 쓰인다고 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몇 가지 아쉬운 부분도 있었다. 하루에도 막대한 양의 쓰레기가 배출되는 방콕에서 점점 쓰레기를 묻는 땅의 면적이 늘어나고 쓰레기 처리장 주변의 주민들은 집값이 떨어지는 것을 우려해서 님비현상이 여기저기에서 나타난다고 했으나 방콕시는 이에 대한 대책을 강구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모든 설명이 끝나고, 이에 대한 대책이 있나 질문을 했으나, 아직은 마땅한 정책이 없다고 하였다. 나는 그래서 우리나라의 뚝섬을 예로 들어서, 놀이공원이나 시민들의 레크리에이션 장소를 쓰레기 매립지에 세워보는건 어떨까하는 의견을 조심스럽게 말씀드려보았다. 직원분께서는 작년에 서울에서 한달간 머물다 가셨다면서 그 때 뚝섬을 봤더라면 아는 아쉬움을 나타내셨지만, 쓰레기 매립지를 레크리에이션 장소로 바꾼다는 것은 기발한 생각이라고 참고하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또 한가지 내가 아쉬웠던 점은 Chao Phraya 강을 충분히 살리지 못하는 것 같았다. 방콕 시의 중심부를 관통하는 Chao Phraya 강을 환경보존 정책과 함께 관광자원으로도 잘 살리면 방콕시의 상징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서울시에서 추진하고 있는 “한강르네상스”와도 일맥상 통하는 부분이 많아서 나중에 단체사진을 찍은 후, 설명을 해주셨던 직원분과 이야기하면서 이야기를 꺼내니 좋은 의견이라고 칭찬해주시면서 무척 반겨주셔서 감사했다. 아직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나의 의견에는 다소 이상적인 부분도 많았으나 직원분은 오히려 적용될 수 있는 부분을 봐주신 것이다. 이 후에 우리는 환경부 건물에서 이루어지는 분리수거 실태를 점검하고, 직원들이 일회용 컵대신에 스테인레스 컵을 휴대하면서 사용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환경부 건물은 많이 낡아있었지만 환경부 건물에서 일하시는 분들의 생각과 사고는 그 누구보다도 진보적이고, 세련되었었다.
친환경적 비료 제조과정을 설명하고 계신 센터장님
그 후로는 정부주도로 친환경적 비료를 전문적으로 만드는 장소를 방문했다. 이 곳에서는 친환경적 비료를 직접 생산에서 농부들에게 싼 값으로 팔고있었다. 게다가 비료는 음식물 쓰레기를 이용해 만들어지기 때문에 환경보존에 많은 부분 기여하고 있었다. 이 센터에서는 비료를 어떻게 만드는지 그 순서를 차례차례 재현하면서 우리들에게 설명해주었다. 센터장님이 영어를 하실 수 없어서 환경그룹의 총괄자인 Taa가 태국어를 영어로 번역해주었다. 요구르트, 정제되지 않은 간장, 발효된 콩을 흑설탕 물에 넣거나 포도, 오렌지, 사과, 파파야 같은 과일 껍질을 소금물에 담근 후 일주일간 발효시켜 발효된 액체를 만드는 것이 첫번째 단계였다. 백설탕 대신에 흑설탕을 사용하는 이유는 설탕의 질 차이가 아니라 단순히 가격의 차이때문이라고 했다. 그리고 쌀을 정제하고 남은 쌀의 껍질과 지푸라기더미에 이 발효된 액체를 함꼐 섞어서 또 3일간 숙성시키면 비료가 완성되는 것이었다. 중간중간에 자세한 부분도 있었지만, 비료를 만드는 큰 그림은 이러한 단계를 거치면 되는 것이었다. 사실 이러한 비료를 만드는 방법은 방콕에서 처음 고안된 것이 아니라 일본에서 농업분야에서 연구 중인 교수님들이 와서 방법을 전수해주시고 간 것이라고 센터장님께서 설명해주셨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가 센터를 견학할 것을 아시고, 미리 우리에게 보여주려고 각 단계마다 미리 준비해놓은 점은 정말 감동적이었다. 더운 날씨에도 우리에게 친환경적 비료를 만드는 과정을 설명해주시려고 웃음을 잃지 않고 노력해주신 센터장님 외 다른 직원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잊지 않았다.
나비를 사육하는 곤충생태관의 내부 모습
이 후에 우리는 많은 나비를 보호하는 센터가 위치해있는 Vichirabenjatit 정원과 Sirikit 여왕 식물원(Queen Sirikit Botanical Garden)을 방문하였다. 두 정원은 자그마한 다리를 하나 두고 바로 옆에 붙어있었다. 먼저 방문한 Vichirabenjatit 정원에서는 나비보호센터를 방문했다. 유리로 된 커다란 돔 안에는 나비들이 자유롭게 날아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애벌레들이 영양섭취를 충분히 하고, 무사히 나비로 변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시설도 있었다. 나비들이 어떤 식으로 관리되고, 보존되고 있는지 설명을 들으면서도 주위에서 나비들이 계속 날아다녀서 정말 야생정글에 와있는 느낌이 들었다. 이따금 나무에 붙어서 움직이지 않는 나비들이 있었는데 이는 나비가 아니고 나방이라고 하였다. 이 나방들은 밤이 되어서 빛이 사라지면 비로소 활발히 날아다닌다고 하셨다. 그 후에는 Sirikit 여왕을 기념하는 정원에 갔다. 이 곳에서는 조그만 카트차를 타고 다니면서 정원 이곳저것을 구경하고, 여왕님의 업적이 정리되어있는 정보관 같은 곳도 방문했다. 정보관에서 여왕님의 업적을 살펴보니 평생동안 태국인들을 위해 열심히 일하신 흔적을 볼 수 있었다. 현재 태국의 국모인 Sirikit 여왕님은 충분히 기념하고도 남을 정도의 덕을 쌓으신 분인것 같았다.
일정이 끝나고 우리는 저녁을 먹으러 Siam Niramitr라는 뷔페를 방문했다. 나는 하루종일 팀원들과 영어를 사용한지라 한국어를 너무 사용하고 싶어서 일부러 주현이누나와 같은 테이블에 앉았다. 정말 재미있던 것은 태국인 2명, 한국인 2명, 인도네시아인 2명이 같은 테이블에 앉았는데 각각 나라사람들이 자신의 모국어로 둘이서만 이야기했다. 나중에 우리 6명은 이러한 사실을 깨닫고, 엄청 웃었던 기억이 난다. 모두들 충분히 모국어로 스트레스를 풀었는지 그 후에는 영어로 6명이서 다함께 대화를 했다. 저녁을 먹은 후 우리는 Siam Niramit이라는 태국에서 굉장히 유명하다는 쇼를 보러 발걸음을 옮겼다. 이 쇼는 관람한 거의 모든 사람이 극찬할 정도로 매우 훌륭하다고 해서 공연을 보기도 전에 나의 공연에 대한 기대가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공연 후 연기자 분들과 함께!
드디어 공연시간이 다가오고, 공연이 시작될 때에는 모두가 숨을 죽이고 있었다. 공연이 시작하기 전에 스크린에 태국의 과거 왕조에 대한 설명이 나왔는데 한국어로 쓰여있는 설명이 나올 때 무척 뿌듯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이 공연이 정말 대단하다고 해서 높은 기대치를 가지고 공연을 관람했다. 그러나 공연은 내 기대치를 뛰어넘어서 정말 멋졌다. 가격도 비싼 공연이었지만 모두들 제 값을 한다고, 어떤 사람들은 정말 가격을 매길 수 없는 공연이라고까지 칭했다. 태국의 왕조를 한 눈에 볼 수 있어서 무척 교육적이었고, 게다가 무대스케일이나 무대효과의 수준도 정말 대단했다. 공연 중간에는 관중석에 앉아있던 관람객도 공연의 일부로 참여시키면서 공연의 몰입도를 높였다. 마치 엄청난 블록버스터 한 편을 본듯이 나 역시도 공연 후 감동에서 헤어날 수 없었다. 그러나 공연의 감동이 채 가시기도 전에 우리는 시간이 더 늦기 전에 그룹마다 벤을 타고 다시 호텔로 돌아와야만 해서 조금 아쉬웠다. 돌아오는 길에 환경그룹 친구들과 호텔에 도착할 때까지 각자 공연에서 제일 마음에 들었던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정말이지 태국의 눈부신 문화 예술 유산을 이런 장엄한 공연을 통해 배울 수 있다는 사실이 정말 감사하게만 느껴졌다. 여러군데 견학을 다녀서 몸은 조금 고단했지만, 행복하게 잠들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네번째날(3월 26일 목요일): 방콕의 구석구석을 파헤쳐보자!

오늘 아침에도 부지런한 Ben은 예외없이 6시 전에 일어나서 나를 깨웠다. 오늘만은 정말 에어로빅을 하기싫어서 Ben에게 살려달라고 소리를 치니 Ben은 알았다면서 먼저 나갔다. 그리고 나는 다시 꿈나라로 가버렸다. 그렇게 마지막 에어로빅을 빼먹은 나는 한시간을 더 잘 수 있었다. 겨우 한시간 더 잤는데 얼마나 개운하던지!
어린 종자들을 돌보는 모습
오늘은 그룹에 관계없이 모두가 Suan Luang Rama IX라는 정원으로 가는 날이었다. 현재 태국의 왕인 Rama 9세 (King Bhumibol Adulyadej)를 기념하는 정원이었는데, 어제 다녀간 Sirikit 여왕 식물원(Queen Sirikit Botanical Garden) 못지않게 멋진 곳이었다. 우리는 길다란 카트를 타고 이동했는데, 공원의 한 부분부분을 지나갈 때마다 공원의 관리자분이 태국어로 설명해주시면 Toom이 영어로 해석해주었다. 그덕에 나는 여러가지 호기심을 해결할 수 있었다. 공원을 둘러보다가 우리는 정원 안에서 씨앗을 발아시키는 곳을 방문해서 씨앗들의 발아를 도와주는 과정을 배웠다. 어제 방문했던 친환경적 비료를 만들던 곳과 같이 이곳에서도 각 단계마다 식물의 표본을 미리 준배해두어 우리들의 이해를 도왔다. 마지막에 떠나기 전에는 애기선인장을 기념품으로 나누어 주었는데 나는 외국의 식물을 한국에 반입하려면 과정이 까다로워서 그냥 포기했다. 대신에 나를 항상 옆에서 도와주면서 가이드해준 Taa에게 잘 키워달라고 하나의 선인장에 내 기를 담아서 주었다.
점심을 공원 내의 식당에서 먹은 후에는 다시 그룹별로 나누어져 환경그룹은 재활용품으로 살아가는 동네를 방문했다. 이 동네를 방문하자마자 꼬마 숙녀 4명이서 태국 전통춤으로 우리를 반겨주었다. 그 후에는 이 마을의 이장님과 미국에서 공부하고 오셨다는 한 통역가 분의 도움으로 마을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볼 수 있었다. 이 마을에는 70가구정도가 살고 있는데, 사실 여기에 살기 전에는 많은 분들이 슬럼가에 사셨다고 한다. 그러나 방콕시에서 슬럼가, 빈민촌 철거작업을 진행하였고 이 분들은 할 수 없이 다리 밑에서 살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했었다고 말씀하셨다. 이 분들은 자신들의 힘으로 재건하기위해서 재활용품들을 모아서 물건을 만들거나 분리수거를 해서 조금씩 돈을 모아가셨다고 하셨다. 처음에는 2, 3가구로 시작한 일이 지금은 전 마을에 사는 70가구 전체로까지 확장되었다고 한다. 여기서 벌어들인 돈은 우리가 설명을 듣고 있던 곳 옆에 있던 연못도 만들고, 여러가지 거주지도 많이 확보했다고 하셨다. 지금은 일본, 미얀마 등에서 배우러온다는 말을 하실 때에는 뿌듯함이 느껴졌다.
태국어로 "Garbage for goods"라고 쓰여있는 식료품점
이장님의 전반적인 설명 후에 우리 환경그룹의 질문공세가 이어졌다. 우리는 이 돈이 어떤식으로 배분되는지 여쭈어보았다. 이장님은 돈은 주주식으로 배분이되며, 한사람당 10개의 주만 보유할 수 있다고 하셨다. 1개 주는 100 Baht의 가치를 지니고 있으므로, 개인당 아무리 많아봐야 최대한 1000 Baht까지만 소유할 수 있다고 대답해주셨다. 또한 이러한 마을을 국가적이고, 국제적인 단계로까지 키워보실 의향을 없으시냐는 우리들의 질문에 이장님은 단번에 없다고 말씀하셨다. 게다가 외국자본이 들어오기라도 하는 날엔 자급자족적인 성격이 많이 약화되고, 외국에 의존하게 된다고 싫다는 의사표현을 분명히 해주셨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이장님이 마을을 이렇게 키울 때까지 생활의 신조로 삼은 규율이 있나 여쭈어보았다. 이장님께서는 세 가지를 말씀해주셨다. 첫번째, 군중을 잊지말라. 두번째, 잘못된 여자관계는 맺지말자. 세번째, 재정은 투명성있게 관리하자. 이 규율에서 볼 수 있듯이 이장님은 훌륭한 리더이셨다. 게다가 이장님은 다음세대의 교육에도 매우 관심이 많으셨는데, 가난할수록 결혼하는 나이가 빨라서 18살 정도면 벌써 결혼해서 아이가 있을 정도라고 하셨다. 그래서 이장님은 결혼시기를 훨씬 늦추고, 아이들이 교육을 더 받을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도록 노력하신다고 하셨다. 이장님의 노력 탓인지, 이 마을은 이 지역에서 문맹률이 제일 낮았다. 계속 지역사회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전시키고 변화시키려는 이장님의 열정에 나는 존경으로 50 Baht를 기부했다. 가난하지만 희망을 잃지않고, 자신들의 상황을 계속하여 개선시켜나가려는 이 마을 주민들이 70가구를 뛰어넘어서 이 지역에 있는 다른 빈민촌에 사는 사람들에게도 이런 희망바이러스를 퍼뜨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방콕자매도시청소년 프로그램의 상징 중 하나였던 신전
호텔로 돌아와서는 잠시 휴식시간이 있었을뿐 바로 저녁식사를 하러 다시 나가야했다. 오늘 저녁은 Chao Phraya 강에서 크루즈를 타는데 크루즈 위에서 한다고 해서 또 많은 참가자들이 흥분했다. 벤을 타고 호텔에서 30분 남짓가서 우리는 크루즈를 타는 곳에 도착했다. 한강에서도 크루즈를 타 본적이 없었던데다가 태국친구들이 Chao Phraya 강은 야경이 정말 멋지다고 하는 바람에 크루즈를 타기도 전에 바람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우리 환경그룹이 제일 먼저 도착한 후, 차례차례 나머지 5개의 그룹들이 각자의 벤을 타고서 도착했다. 모두 모인 후 크루즈에 탑승했는데, 우리 방콕자매도시청소년 프로그램 팀원들은 모두 2층으로 올라갔다. 나는 방콕의 밤하늘을 보고싶고, 시원한 바람도 쐬고 싶어서 환경그룹친구들과 2층에 놓인 테이블 중에 지붕이 없는 곳에 앉았다. 이번 식사 역시도 뷔페였지만 전혀 질리지 않았다. 오히려 계속해서 이런 축복이 주어지는데 너무 행복하고 감사할 따름이었다. 뷔페를 먹으면서 우리는 Chao Phraya 강가 양쪽에 늘어선 신전들, 여러종류의 고층 건물들 등을 보았다. 그 중에는 방콕자매도시청소년 프로그램의 마스코트 문양의 실루엣인 건물들도 몇 볼 수 있었다. 또 크루즈를 타면서 다리 밑으로도 많이 지나갔는데 몇몇의 다리는 정말 너무 근사해서 입이 떡 벌어질 정도였다. 방콕이 정말 많이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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