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활동경험담

내 생애 가장 따뜻했던 6개월
글쓴이 박지영     소속 동덕여자대학교 영어과

날짜 09.03.02     조회 3477

 

"저 떠나요!"

2007년, 21살의 대학교 2학년생이었던 나. '학교-집-학교-집'이라는 다람쥐 쳇바퀴같은 생활에 지루해져 온 몸에 가득 차있는 에너지를 분출하지 못하던 중, 학교 게시판에서 나의 에너지를 쏟아 부을 수 있을만한 포스터 한 장을 발견했다. 나의 이목을 집중시킨 것은 바로 'COPION 해외 청년 봉사단 모집 포스터!' 떨리는 마음으로 서류심사, 면접을 마치고 설레는 마음으로 한국의 NGO기관들을 방문하여 다양한 교육을 받으면서 중·고등학생 때의 시간 채우기 식 봉사활동에 참여할 때와는 전혀 다른 마음가짐을 갖게 되었다. 주위 사람들은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힘들 것이라고 다시 생각해보라며 말리기도 하였고, 부모님은 하나 뿐인 딸 걱정으로 출국하는 날 아침까지 어두운 표정이셨지만 나는 그런 이들 앞에서 활짝 웃으면서 "파이팅!"을 외쳤다. 그리고 2007년 8월, 젊음과 열정으로 가득 차 있던 내가 그렇게 필리핀으로 떠났다.

가나, 캄보디아, 우즈베키스탄, 필리핀 등 여러 국가로 파견된 COPION 17기 단원들

▶ 가나, 캄보디아, 우즈베키스탄, 필리핀 등 여러 국가로 파견된 COPION 17기 단원들

 

“I live in Tondo.”

쓰레기 산이 있는 필리핀의 빈민촌 '톤도'를 아는 사람이 한국에서 몇이나 될까? 나도 파견 기관을 배정받기 전까지 필리핀에 톤도라는 지역이 있는지 조차 몰랐고, 그곳이 쓰레기 산과 고약한 냄새가 나는 쓰레기 강이 흐르는 빈민촌이라는 것은 상상하지 못했다. 공항에서 내가 활동할 기관인 SRD Konkokyo Center가 위치해 있는 Tondo의 Balut이라는 동네로 들어서는 순간, 매케한 냄새가 코를 찔렀지만 하루 만에 그 냄새도 내 생활의 일부로 들어와 버렸다. 내가 생활하고 있는 톤도를 벗어나 다른 지역에 가면 종종 현지인들이 어디에서 왔느냐, 필리핀에 왜왔느냐, 마닐라의 어디에 살고 있느냐 라며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물어보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한국에서 온 봉사자로 톤도에 살면서 유치원에서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고 대답했는데 대부분의 현지인들은 내 대답을 다 듣기도 전에 톤도라는 단어만 듣고 왜 그렇게 위험한 곳에 살고 있냐며 눈살을 찌푸렸다. 이렇게 필리핀 현지인들에게 조차 반갑지 않은 지역이 내 마음속에는 잊지 못할 아름다운 추억들을 만들어준, 가장 따뜻하고 소중한 곳으로 남아있다. 외국인이 한명도 살고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필리핀을 소개하는 여행 가이드 책에서도 '톤도는 위험지역이니 절대로 가지 말 것!' 이라고 소개된 곳이라 외국인들이 방문조차 하지 않는 곳에 내가 도착하는 날부터 동네 사람들의 모든 관심은 나에게로 쏠렸다. 길을 지나다닐 때에는 쓰레기를 줍는 아이들에서부터 은행을 지키고 서있는 경찰까지 내 이름을 부르며 인사를 건넸고, 음식을 파는 아줌마는 뭐든지 먹고 가라면서 내 손목을 붙잡기도 하였다. 한국에서는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관심에 부담도 되고 어색하였지만 시간이 지나자 그 곳에서의 생활이 익숙해졌고, 그들과 한 동네에 사는 이웃사촌으로서 내가 먼저 다가가 반갑게 인사할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 학교에 갈 돈이 없어서 하루 종일 길거리에서 같은 처지의 아이들과 공놀이를 하고 있지만, 여기저기 구멍 난 옷을 입고 쓰레기를 모아서 내다 팔며 근근이 생활하고 있지만, 10평도 채 안 되는 집에서 6식구가 살고 있지만 그들은 모두 밝았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톤도 주민들의 밝은 모습을 보면서, 조금만 곤란한 일이 생겨도 인상을 찌푸리며 짜증부터 냈던 한국에서의 내 모습이 떠올라 한없이 부끄러웠다. 양 볼에 욕심 가득했던 나에게 소박한 웃음을 지닌 그들이 작은 것에도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일깨워 주었다. 누가 톤도가 사람이 살만한 곳이 못된다고 했을까? 이렇게 활력이 넘치고, 따뜻한 사람들이 가득한 정겨운 동네인데 말이다.

내 방이 있는 Konkokyo Center 옥상에서 내려다본 우리 동네내 방이 있는 Konkokyo Center 옥상에서 내려다본 우리 동네

▶ 내 방이 있는 Konkokyo Center 옥상에서 내려다본 우리 동네

고마운 이웃사촌들고마운 이웃사촌들

▶ 고마운 이웃사촌들

 

"You look like a Philipino!"

마지막 비자연장을 하기 위해 이민국에 가서 여권을 내밀자 이민국 직원이 내 여권을 보고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정말 한국인이냐며, 필리피노인 줄 알았다면서 자꾸 쳐다보았다. 그렇다. 필리핀의 강렬한 햇볕에 타서 피부색도 점점 어두워진데다가 날씨가 너무 더워서 땀에 젖은 옷을 입고 누구의 시선도 개의치 않고 돌아다니다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필리피노가 되어버린 것이다. 거울에 비친 5개월 전 한국에서의 나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에 깜짝 놀랐지만 Konkokyo센터의 스탭들, 그리고 동네 사람들은 모두 내가 필리피노가 다 되었다면서 굉장히 좋아하였다. 한 학부형은 막내아들이 아직 결혼을 안했다면서 집에 초대해 막내아들 사진을 보여주며 남편감으로 어떠냐고 물어 나를 곤란하게 만들기도 하였다. 일상으로 돌아온 나에게 반 필리피노가 된 이후로 필리핀에서 겪은 당혹스러운 상황들은 모두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는 추억이 되었기에 소중하기만 하다. 잠시나마 필리피노가 되어서 나와 다른 삶을 살아온 이들과 더 쉽게 가까워질 수 있었고, 거리낌없이 그 사람들과 더 많은 것을 함께 할 수 있었다. 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처음 만났을 때 눈에 보이지 않게 쌓아놓은 벽을 자연스럽게 허물 수 있었고, 마음으로 소통하는 법을 배웠다. 비록 나는 한국에 돌아왔지만 아직까지 톤도의 이웃사촌들에게는 SRD Konkokyo center 옥탑방에 살았던 필리피노 지영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SRD Konkokyo Center의 사회복지사 Gina와 그녀의 아들, 그리고 필리피노 지영

▶ SRD Konkokyo Center의 사회복지사 Gina와 그녀의 아들, 그리고 필리피노 지영

 

“Teacher Jee-young!"

내가 필리핀에 있는 동안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자 6개월 동안 나에게 가장 큰 힘이 되어주었던 말, 바로 "Teacher Jee-young!"이다. 동네의 하나밖에 없는 은행 앞을 지키고 있는 경찰관 아저씨부터 필리핀 현지어인 따갈로그어도 잘 못하는 3살짜리 아이까지 또박또박 "Teacher Jee-young!"이라고 불러줄 때의 뿌듯함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로 느낄 수 없다! 필리핀에서 영어 수업을 했다고 하면 주위 사람들은 흔히 "필리핀은 영어권 국가니까 영어 수업 하면서 영어 공부도 많이 했겠네." 라며 부러워한다. 하지만 유치원에서 내가 맡은 아이들은 영어를 거의 모르는 4살~6살 아이들이었고, 이 아이들을 상대로 수업을 진행하는 것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어려웠다. 수업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말도 안 통하는 이 아이들에게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주어야 하나 하는 생각, 이 곳 에서 나를 정말 필요로 하는가라는 생각이 뒤섞여 한동안 머릿속이 복잡하고 몸도 마음도 힘들었다. 그러나 진심은 통한다고 했다. 아이들은 나의 이런 마음을 알았는지 어설픈 현지어로 진행했던 나의 수업을 잘 따라주었고, 시간이 지나자 아이들과 눈빛만으로도 대화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수업시작하기 훨씬 전인데 아침 일찍부터 와서 다른 선생님들을 붙잡고 나를 찾던 아이들, 나의 무릎에 앉아 손짓, 발짓까지 동원하여 따갈로그어로 이야기를 해주던 고마운 아이들, 내가 지쳐있을 때마다 티 없이 맑고, 예쁜 웃음으로 활력소가 되어주었던 아이들, 길을 가다가 우연히 마주치면 동네 떠나가도록 큰소리로 내 이름 부르며 한걸음에 달려와서 안기던 아이들이 내가 그곳에 있어야만 하는 이유였다. 아이들 생일에 초대받아 아이들과 같이 케익의 촛불을 끄는 것도 아이들과 나의 즐거움이자 선생님과 학생, 외국인과 현지인으로서의 벽을 허물 수 있는 값진 시간이었다. 기관에서 혼자 살고 있어 평소에 제대로 끼니를 챙겨먹지 못하는 나를 위해 기관으로 돌아갈 때, 아낌없이 음식을 싸주시던 학부형들 덕분에 눈물을 훔치면서 역시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 마음은 모두 따뜻함 그 자체라는 것을 느꼈다. 떠나기 전 날, 더 있으면 안 되겠냐고, 보고 싶을 것이라며 눈물을 흘리던 우리 아이들을 안고 같이 울었다. 지금도 “Teacher Jee-young!”이라고 부르면서 나에게 안기던 175명의 아이들 모습이 눈에 선하다. 가슴 벅찬 사랑을 가르쳐준 아이들이 지금도 내 마음 속을 가득 채워주고 있다.

말썽꾸러기들이 가장 많은 오전 Prep반 아이들

▶ 말썽꾸러기들이 가장 많은 오전 Prep반 아이들

나를 엄마라고 부르며 따르던 Zealin과 함께

▶ 나를 엄마라고 부르며 따르던 Zealin과 함께

매주 금요일마다 있던 체육 시간에

▶ 매주 금요일마다 있던 체육 시간에

매주 금요일마다 있던 체육 시간에

▶ 장난감 안경을 쓰고 쉬는 시간에

Manila Zoo로 소풍가던 날

▶ Manila Zoo로 소풍가던 날

우리는 영어 공부 중

▶ 우리는 영어 공부 중

가장행렬 하던 날 Nursery반 아이들

▶ 가장행렬 하던 날 Nursery반 아이들

한국에서 온 어린 선생님을 잘 챙겨주신 학부형들

▶ 한국에서 온 어린 선생님을 잘 챙겨주신 학부형들

 

 

"달콤한 휴식"

첫 번째 비자 연장은 마치고 10월 중순 쯤 타 기관에 파견된 단원들과 함께 휴가 기간을 맞추어 필리핀 루손섬 북부로 여행을 떠났다. 12시간 동안 새벽버스를 타고 루손 섬의 북부로 향하면서 시작된 10일간의 여행은 다녀온 지 2년이 다되어 가는 지금도 내 머릿속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분명 갈 수 있는 길이 없는데도 출구를 찾아 나가기 위해 길을 만들면서 가야만 했던 사가다의 동굴 탐험은 나를 펑펑 울게 만들었고, 활동한지 2달 만에 필리피노가 된 우리 단원들에게 길을 묻는 현지인들은 나를 박장대소하게 만들었으며, 돈을 아끼기 위해 내 덩치만한 배낭을 메고 한없이 걸었던 3~4시간은 필리핀에서의 가족과도 같은 단원들과의 정을 더욱 돈독하게 만들어 주었다. 필리핀 대부분의 지역과는 다르게 기온이 현저하게 낮아 반팔만 챙겨갔던 우리를 꽁꽁 얼게 만들었던 사가다의 매서운 날씨, 바타드의 산꼭대기에 살고 계시던 Simon아저씨께서 만들어 주신 볶음밥, 마음속까지 뻥 뚫어버릴 듯했던 파구풋의 푸른 바다.. 이 모든 것들이 필리핀에서의 남은 활동 기간 동안 웃음을 잃지 않게 만들어 주었던 추억이었고, 지금까지 나 박지영이 어떠한 어려움이든 이겨내면서 앞으로 힘차게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바나우웨에 도착하여

▶ 바나우웨에 도착하여

루손섬 북부 바나우웨의 계단식 논 앞에서 필리핀 팀 단원들과 함께

▶ 루손섬 북부 바나우웨의 계단식 논 앞에서 필리핀 팀 단원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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