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활동경험담

신 짜오 베트남- 한국국제협력단(KOICA) 국제협력요원 파견
글쓴이 김효성     소속 성균관대학교 경제학과 3학년

날짜 08.10.28     조회 5303

 


  모든이에게 최근 지나온 몇년간을 되돌아 보고, 표현하라고 한다면 그 일은 아마 쉽지 않을 것이다. 그동안 셀 수 없이 보고, 듣고, 경험했던 것들을 단번에 떠올릴 수도 없을 것이고, 심지어는 복합적인 그것들을 단숨에 표현할 수 있는 단어도 이 세상에 많지 않을 것이다.
 

 

  나에게 베트남이 그랬다. 2006년 여름에 베트남으로 떠나, 꼬박 2년을 보내고 다시 고국 땅을 밟은 나에게, 그 2년이라는 시간은 한마디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피붙이 하나 없는 이역만리에서 그 사회의 구성원으로 편입되어 살아간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2년 동안 온갖 일들을 겪으면서 나는 베트남이더 이상 타자他者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보통 사람들은 외국에 나가서 지내는 시간들을 흥밋거리로 생각하지만 적어도 나에게 베트남에서의 2년은 희노애락. 바로 삶 그 자체였다.

 

 

  나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16기 국제협력요원으로 베트남에 파견되었다. 군복무에 대한 고민과 새로운 경험을 하고 싶다는 욕구 아래 선택된 결과물이었다. 하지만 준비과정은 녹록치 않았다. 경제학이라는 나름 말쑥한 학문을 공부하고 있던 나는, 코이카의 일원이 되기 위해 자동차정비라는 전혀 다른 공부를 준비하기로 결정했다. 낯선 환경,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반년간의 피나는 노력 끝에 결국은 베트남으로 떠나는 티켓을 잡을 수 있었다.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하노이 국제공항에 도착했을 때 그 후덥지근한 날씨 탓에 온몸이 땀에 흠뻑 젖어버렸던 그 축축함을. 베트남이라는 나라는 생소함 그 자체였다. 공항에서 도심으로 향하는 도로는 마치 우리나라 어느 촌구석 시골길 같았고 미국을 이겨낸 나라의 수도, 하노이는 공사판처럼 여기저기가 패이고 뜯긴 모습이었다. 게다가 거리에는 수많은 오토바이와 그 속을 비집고 다니는 사람, 승용차, 시클로로 정신이 없었다. 나와 같이 베트남에서 2년간 복무하게 될 10명의 동기들이 하나같이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던 것이 기억난다. 우리가 만약 단기 여행을 온 사람들이라면 그 모든 광경이 신기하고 재밌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2년 넘게 이곳에서 지내야할 우리들에게 그것은 악몽과도 다름없었다.
 
 

  약 9주동안 수도 하노이에서 ‘현지적응훈련’을 받았다. 이 훈련 기간의 핵심은 바로 현지어 교육인데, 코이카 베트남 사무소에서는 하노이에 위치한 국립대학인 [언론방송대학 Academy of Journalism and Communication]에 위탁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나를 포함한 동기들은 이곳에서 기숙생활을 하면서 오전에는 베트남어 강의를 듣고, 오후에는 학교에서 소개해준 베트남 친구들에게 1:1 학습을 받았다.
 
  베트남에서는 오전 7시에 거의 모든 하루가 시작되기 때문에 우리는 6시에 일어나 길거리에서 퍼(pho,쌀국수)나 반 미(banh mi, 프랑스식 바게트에 갖가지 채소,고기, 양념을 넣은 샌드위치)로 아침을 해결하고는 부랴부랴 강의실로 뛰어가곤 했다. 한가로운 저녁시간이면 하노이 시가지로 나가서 이국생활을 정취를 느끼곤 했다.
 
  베트남 친구 흐엉 쟝(Huong Giang)은 하노이에서 지내는 동안, 나의 베트남어 선생님이었다. 나보다 한 살 어린 그 친구는 박학다식함으로 나에게 베트남의 언어, 문화,생활 등 전반적인 공부에 큰 도움을 주었다. ‘향기로운 강’이라는 예쁜 이름을 가지고 있던 그 친구의 도움으로 현지훈련기간 동안 3차례 치른 베트남어 시험에서 나는 1등을 차지할 수 있었다.
 
  짧은 현지훈련기간 동안, 낯설었기만 했던 베트남에 정을 붙이기 시작한 것 같다. 쎄옴(xe om, 오토바이 택시)기사와의 실랑이도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베트남에서는 공안경찰 다음으로 쎄옴 기사가 가장 거칠다고 한다) 식당에서 음식을 먹을 때 머리카락이나 날파리가 들어 있어도 군말없이 대충 치워내고 먹는 대범함을 보이기도 했다.
 
  때마침 베트남에 한류 열풍이 몰아쳐서 어디서든지 한국 사람이라고 하면 베트남 사람들은 호의적으로 보아주었기 때문에 여러모로 정을 붙이는 참 많은 도움이 되었다. 어디서든지 환영받는다는 것은 참으로 기분좋은 일이기 때문이다.
 
 

  본격적인 활동을 위해서 내가 파견된 곳은 베트남 중남부에 있는 뀌년(Quy Nhon)이라는 도시였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이 도시의 매력은 바로 시원한 바다가 있다는 것이었다. 이 도시에 있는 작은 직업훈련대학(Quy Nhon vocational training college)이 내가 앞으로 2년간 일하게 될 곳이었다.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군에 의해서 지어졌다는 학교를 처음으로 둘러봤을 때 나는 이 학교와 학생들을 위해서 많은 일을 할 수 있겠구나 하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그러나 나는 당분간 베트남어 공부에만 열중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학생들을 가르칠 수도 없었고 동료교사들과 업무에 관한 이야기도 나눌 수 없었다. 그런데 업무가 없으니 성과가 있을 리 만무하여 나는 점점 조급해지기 시작했다.‘내가 여기서 무얼하고 있는 걸까?’라고 하는 패배주의마저 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 그러한 경향은 모두 한국인들의 고질병.‘성과주의’에서 온 것 같다.
 
 
  그러나 의사소통에서 오는 문제는 심각하여 나에게 많은 정신적 스트레스를 안겨주었다. 생활전반에 걸쳐서 베트남어를 사용해야했기 때문에 아직 베트남어 실력이 미비한 나에게는 집밖에 나가는 순간부터가 전쟁이었다. 심지어는 주위에서 무슨 말을 하는지 나는 도통 알 수가 없으니 이 사람들이 내 욕을 하는 건지 내 칭찬을 하는 건지 알 수 없어 홀로 속앓이를 하곤 했다. 전혀 다른 사회에서 전혀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이루다 보니, 당연히 겪을 수 밖에 없는 문제였다.
 
 
 

 

  내가 학과에서 함께 일했던 선생님은 총 7명이었다. 그 중에서 가장 각별한 관계를 유지했던 사람은 학과장이신 탄(Thanh)선생님과 일반교사인 빈(Vinh)이었다. Thanh 선생님은 내가 늘 ‘삼촌’이라고 불렀는데 그만큼 우리는 참 친밀했다. Thanh 선생님은 우리 아버지 나이 뻘이었고 정말로 나를 자식처럼 잘 대해주셨다. 나의 게으름과 소심함을 꾸중하시면서도 한편으로는 감싸주셨고 한국에서 온 이 자존심 센 아이를 어떻게 다뤄야하는지도 잘 아셨던 것 같다. Vinh은 나보다 나이가 8살이 많았는데 30대 초반인데도 불구하고 대머리여서 내가 가끔씩 놀리기도 했다. 말이 많고 명랑쾌활하여 이 친구와 함께 있으면 지루할 줄 몰랐다. 내 베트남어를 가장 잘 알아듣는 친구이기도 했다. 그 외에도 타오(Thao), 통(Thong)선생님 등이 나에게 늘 도움을 주었다.
 

 

 

  베트남어 실력도 어느 정도 늘어 친구들도 사귀고 또 생활하는데 불편함이 없자, 본격적인 활동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코이카 베트남 사무소에서는 사실상 봉사단원 개개인이 파견기관과 조율하에 업무를 정하도록 관장하고 있기 때문에 업무량이 얼마이며, 무슨 일을 하는지는 해당 봉사단원의 역량과 마음가짐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나도 욕심이 참 많았다. 다른 젊은 선생님들처럼 온전히 반 하나를 맡고 30여명의 학생들을 관리하는 담임교사를 맡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평소에 학생들은 내가 말할 때마다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내가 말하는 것을 도저히 알아 들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가장 친한 동료인 Vinh의 1학년 반에 일주일에 1번 정도 들어가서 3~4시간 강의를 하는 것으로 만족해야했다.
 

 

  내가 가장 중점적으로 다뤘던 부분은 자동차 정비의 기초적인 실습이었다. 가장 기초적인 것이 가장 기본적이듯이, 자동차정비를 하는데 있어서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들을 숙지시키기 위해서 노력한 것이다. 베트남의 정비기술 수준은 한국에 비하면 많이 떨어졌지만, 실업계 학교에서 배우는 정비기술은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한국에 비해 시설이 많이 낙후하다는 것이 흠이었다.

 

  동료교사들은 그러한 점을 해결하기 위해서 교재를 직접 만든다거나 고장난 자동차부품들을 수시로 들여와서 교재로 사용하기도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특히 베트남에서도 경제발전으로 인해 최신식 수입차량이 많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임에도 교육현장에서는 아직도 90년대식의 자동차를 배우고 있으니 그 괴리가 적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코이카 베트남 사무소에 요청하여 10,000불 가량의 현대식 정비기기 3대를 지원받아서 학과에 설치했다. 교육환경 향상에 큰 도움이 되었지만, 코이카 봉사단원의 물품지원은 현지 교육시설 낙후라는 문제점의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했으므로 앞으로 베트남의 직업교육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많이 고민하고 노력해야할 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베트남은 아열대기후이기 때문에 낮에는 몹시 더워, 이른 아침과 해진 후 사람들의 활동이 더욱 빈번하다. 나는 낮에는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으므로 집에 와서는 크게 할 일이 없었다. 오토바이를 타고 시내를 둘러보거나 친구들을 만나 시원한 맥주를 한잔하는 등 따분함을 해소시키려고 했지만 그것도 한 두번이면 족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베트남어 공부였다. 아는 사람의 소개로 지역사범대학교에서 베트남어(우리 나라로 치면 국문학 교수)여교수님 한분을 소개받아 매주 3번 정도 베트남어를 공부했다. 선생님의 으름은 하(Ha)였다. Ha 선생님은 나를 꼰(con, 어른이 아이를 친근감있게 부르는 호칭)이라고 부를 정도로 나를 아끼셨다. Ha 선생님 덕분에 나의 베트남어 실력은 나날이 늘었고, 이제 예전처럼 일상생활에서 어려움을 겪지 않아도 되었을 뿐더러 매사에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
 
 

  베트남에서의 두 번째 뗏(Tet, 베트남의 음력설)이 지나고, 마지막 학기가 개강하였다. 나는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한국자동차 정비법을 틈나는대로 가르쳤다. 한국의 유수 자동차 기업의 제품들이 베트남의 거리를 활보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대비책이었다.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는 부분이 많아 흐지부지 된 경향이 있었다. 그 부분은 지금도 아쉽다. 비로 자동차의 기본적인 원리가 대동소이하다고 하지만, 나의 학생들이 한국자동차에 대해서 많은 지식을 쌓을 수 있었다면 졸업 후에 취업을 하는데에도 큰 도움이 될 수 있었을텐데 말이다.

 

 

 

  2년간의 시간은 참으로 빨랐다. 2006년 여름에 베트남에 처음으로 발을 디뎠을때는 ‘아 언제쯤 한국에 갈 수 있을까?’하며 한숨을 쉬었는데, 어느새 귀국이 코앞에 놓이게 된 것이다.
 
  나는 그동안의 사귀었던 친구들을 만나서 작별의 정을 나누었다. 학교에서 나를 자식처럼 아껴주었던 학과장 Thanh 선생님, 그리고 Vinh을 포함한 동료교사들. 술친구 뚜언안(Tuan Anh)과 집주인이었던 낭(Nang). 나에게 베트남어를 가르쳐주신 은사 하(Ha)선생님. 베트남 호치민 인문사회대학교에서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는 베트남 친구들. 베트남전쟁에 대한 올바른 시각을 심어주셨던 구수정, 원선아 선생님과 만나면 늘 반가웠던 시민단체 굳윌(goodwill)의 친구들. 그리고 늘 살갑게 지냈던 코이카 단원들까지. 모두 언제가 될지 모를 만남을 기약하고 헤어질 수 밖에 없었다.
 
  사실 나는 그들과 헤어짐을 말하는 순간까지도 내가 곧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 심지어는 인천공항으로 향하는 아시아나 항공기 안에서도 나는 귀국을 전혀 실감할 수 없었다. 한국으로 돌아와 신촌 골방 친구집에서 귀국 후 첫날밤을 보내던 그때서야 나는 ‘내가 베트남을 떠났구나’ 하며 그리움의 눈물을 흘렸다.
 
 

  1년간 나에게 베트남어를 가르치셨던 Ha 선생님은 가끔 이렇게 물으시곤 했다. ‘낌(kim, 내가 베트남 사람들에게 불리던 호칭)은 왜 베트남어를 공부하려는 거야?’나는 차마 심심해서 하는 것이라고는 대답하지 못했고‘한국에 가서도 베트남 사람들을 돕고 싶어서요’라고 거창한 대답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베트남을 떠난지 두달이 지난 지금, 신기하게도 Ha선생님에게 대답했던 것처럼 나는 작은 이주노동자센터에서 베트남 친구들을 돕는 일을 하고 있다. 비록 많은 도움을 주지는 못하지만, 이제는 한국에서 약자가 되어버린 이 친구들의 입을 대변하는 것만으로도 이 친구들이 어려움에서 조금씩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베트남에 대해서 말한다. 베트남 이주노동자와 이주여성을, 베트남 전쟁과 한국군 참전을, 그리고 베트남의 경제발전을 서스럼없이 말한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베트남을 올바른 시각으로 보는 한국 사람은 아주 드문 것 같다. 한국에서는 6,70년대부터 전쟁이라는 도구를 통해서 베트남이라는 나라에 처음으로 관심을 가졌고, 90년대에는 ‘도망 안가는 베트남처녀’로 베트남인을 접했으며 최근에는 ‘펀드와 투자로 점철되는 경제발전’으로 베트남의 가치를 점쳐왔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나는 이러한 현실이 참 슬프다.
 
  베트남이라는 나라는 우리나라만큼이나 유구한 역사를 가졌고, 또한 유교, 불교는 물론 기독교의 전래와 발전도 우리보다 앞서거나 비슷한 추세를 보였다. 아직까지도 베트남에서는 유교적인 전통이 내려오고 있으며 한국 전통 문화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는 그 나라의 부강함을 따져서 그 나라의 국민성과 문화마저 평가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그런 부분은 반드시 고쳐야 할 점이 아닌가 싶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2년간의 베트남 생활동안 내가 얻은 것 중에서 가장 값진 것을 꼽으라면 나는 단연 ‘베트남에 대한 편견이 어느 정도 해소되었다’라는 점을 꼽고 싶다. 내가 만약 한달 정도의 비교적 짧은 봉사활동을 다녀왔다면 베트남 사람들이 마냥 불쌍하게 보였을 것이다. 반대로 내가 아주 오랫동안 베트남에 살았다면 베트남사람들과 전방위적으로 치열하게 경쟁하는 위치에 있어 제3자로서의 균형있는 시각을 잃었을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봤을 때 코이카 봉사단원으로서 활동했던 2년간의 시간이 나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값진 것이었다. 코이카 봉사단원으로 활동하면서 얻게된 다양한 정보와 경험을 통해서 나는 앞으로 베트남에 관련된 일을 하기로 마음먹을 수 있었다.
 
  만약에 단기봉사활동에서 뭔가 빠진 것이 있는 것 같다라고 느껴본 분이나, 좀더 가치있는 군복무를 고민하고 있는 젊은이에게 코이카 봉사단원은 의미있는 선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활동 일정
날 짜
활 동 내 용
비 고
2006.6.27
  • 인천공항 출국, 베트남 하노이 도착
  • 9주간의 현지적응훈련 시작
    (교육기관 : Academy of Journalism and Communication)
  • 2006.7.31
    ~ 8.4
  • OJT(사전에 예정 임지에 부임하여 업무 적합성 등을 확인하는 일정)교육 실시
  • 2006.8.21
  • 현지적응훈련 수료
  • 임지 파견(중남부 해안도시 뀌년 Quy Nhon)
  • 파견기관 :뀌년직업훈련대학 (Quy Nhon vocational training college)
    2006.9월
    ~ 2007.2월
  • 2006학년도 후반 학기
  • 현지어 학습 및 파견 기관 적응에 중점을 둔 활동
  • 2007.3
    ~ 6월
  • 2007학년도 상반 학기
  • 자동차 기초정비 실습 강의
  • 2007년 4월, 파견기관이 전문대학으로 승격됨
    2007.6월말
  • 사무소 주최 봉사단원 현지평가회의 개최(3일간, 호이안, 참석자 30여명)
  • 2007.9월
    ~2008.2월
  • 2007학년도 후반 학기
  • 자동차 기초정비 실습 강의
  • 10,000불 가량의 활동물품지원으로 교육 장비의 현대화 추진
  • 2008.2
    ~ 6월
  • 2008학년도 상반 학기
  • 자동차 기초정비 실습 강의
  • 한국산 자동차 정비 실습 강의
  • 2008년 6월말
  • 사무소 주최 봉사단원 현지평가회의 개최(3일간, 뀌년, 참석자 30여명)
  • 2008년 8월 21일
  • 귀국
  •  
     
    * 활동 비용
    • 본인 부담금 없음
    • 코이카 지급
      - 생활비 매달 500불 (국가마다 차이가, 정해진 규정에 따름)
      - 주거비 매달 200불 이하 (국가, 도시마다 차이가 있음, 정해진 규정에 따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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