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활동경험담

You will be addicted to Esplanade! - 인턴쉽 체험기
글쓴이 김혜수     소속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날짜 08.10.28     조회 2900

 

  2007년 7월, 싱가포르 국립대학교의 교환학생 자격으로 한 학기를 시작했을 무렵, 고작 4과목을 수강하면서도 친구들을 사귀고 각종 파티에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너무나도 꽉 찬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면서 할 것 없이 기숙사에서 혼자 보내는 날들이 많아지면서 “이렇게 멍하니 앉아있기 위해 교환학생을 온 것이 아닌데, 좀더 얻어갈 것이 있는 날들을 보내고 싶은데, 다음 학기도 이렇게 있어야 하나” 하는 생각에 걱정이 앞섰습니다. 한국 유학생들에게 과외도 했었고, 가끔 KOTRA에서 들어오는 아르바이트도 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흘려 보내려고 온 교환학생이 아니라는 생각을 늘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방학 때 한국에 들어가서 공부를 해야 하나, 여행을 다녀야 하나, 걱정을 하던 도중 교환학생에 지원할 때 면접관 교수님들께 말씀 드렸던 인턴 활동이 생각났습니다 싱가포르 교환학생에 지원하며, 장차 공연 홍보 전문가가 되고자 하는 꿈을 가지고 있으며, 싱가포르에는 Esplanade라는 멋진 공연장이 있어 그 곳에서 일하며 선진 공연 경영 문화를 경험하고 싶다고 말씀 드렸었습니다. 그리고 우선 부딪혀 보자,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환학생으로 오기 전 싱가포르에 방문했을 때부터, Esplanade라는 공연장이 있고 하루에도 여러 개의 문화 행사가 열린다는 것을 알고 마음 속으로 막연히 동경하고 있었습니다. 고등학생 시절에는 재즈밴드에서 활동했었고, 대학교에 들어와서는 응원단에서 활동하면서 평소 공연 기획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7월에 싱가포르에 도착하자마자 Esplanade에 이력서를 보냈습니다. 하지만 그 때는 답이 없었고, 한동안 학교 생활에 잊고 있다가 무료한 하루하루에 질려 고민하던 중, 혹시나 하는 마음에 9월쯤 한번 더 이력서를 보냈습니다. 그러자 그 다음날 커버레터 형식의 질문이 몇 가지 회신되어 왔습니다.
  Esplanade에서는 직원으로서 활동을 경험하게 하는 데에 목적을 두기 때문에 인턴에게 월급을 지급하지 않으며, 의식주와 관련된 모든 제반 사항을 제가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내용이 들어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내용에 동의한다면, 어떤 직업 활동을 해보고 싶고 무엇을 배우고 싶은지, 얼마나 오랫동안 활동을 하고 싶은지 알려달라고 했습니다.
  확실한 허락의 뜻은 아니었지만 매우 긍정적인 느낌을 받았고, 교환학생으로서 이미 기숙사에 살 수 있었기 때문에 바로 답장을 보내고 인터뷰 날짜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인터뷰는 채용 담당자와 저를 직접 담당하게 될 직원분과 함께 이루어졌습니다. 약 30분간 진행된 인터뷰에서는 ‘배울 준비가 되어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 주를 이뤘습니다. 새로운 음악을 접하는 데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것이 뭐라고 생각하는지, 낯선 사람을 만나는 것에 두려움은 없는지, 생각했던 것과 일은 조금 다를 수도 있는데 그건 괜찮은지, 등 이미 합격한 사람에게 이야기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또한 인턴이 직접 일을 하는 사람인 줄 알았지 배우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저는 조금은 낯설었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는 전제 하에 새롭게 시작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습니다. 아무래도 영어의 한계에 부딪혀 유창하게 하고 싶었던 말을 다 하진 못했지만, 처음으로 사무실에 들어가 보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며 여기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은 더 커졌던 것 같습니다.
  인터뷰를 보고 돌아온 뒤 한동안 아무런 연락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불안하고 초조한 날들이 계속되었습니다. 인턴에 합격한다면 겨울 방학 동안 지낼 기숙사도 신청해야 하는데 아무런 말이 없으니, 답답해서 재촉 메일을 보내고는 싶고, 하지만 어떻게 해야지 공손한 표현인지 몰라 답답한 마음만 커져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같이 일하게 되어서 기쁘다는 말과 함께 인턴 활동 계획서, 비자 변경 신청서 등이 포함된 이메일을 받았습니다.
  사실 싱가포르 현지 기업에서 외국인 인턴을 반기지 않는 이유 중에 하나가 비자 문제라고 합니다. 외국 학생들이 인턴쉽을 구하게 되면 보통 호주의 워킹 할러데이 비자와 유사한 Work & Travel 비자를 신청하게 되는데, 우리나라 학생에게는 싱가포르에서 그 비자를 발급해주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Esplanade는 1980년대에 싱가포르에 대규모 공연을 할만한 장소가 없다는 것에 문제 의식을 가지고, 싱가포르인을 위한 예술회관을 설립하자는 수상의 제안으로 시작되었습니다. 1992년 싱가포르 예술회관 회사가 설립되어 그 계획을 구체화하였고, 1994년, Esplanade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습니다. 1998년 첫 공사를 시작하여 2001년 완공, 2002년 10월 12일에 공식 개관 행사를 진행하였습니다.
  싱가포르의 중심가인 City Hall 역과 Raffles Place 역의 한 중간, 싱가포르 만 변두리에 위치한 Esplanade는 2개의 큰 공연장 (Concert Hall, Theatre)과 소규모 공연장 (Recital Studio, Theatre Studio), 그리고 야회 공연장과 전시장, 휴식 장소, 예술 도서관에서 연일 유,무료 공연을 펼치는 싱가포르 최고의 종합예술회관입니다. 특이한 외관 때문에 더 화제가 되고 있는 싱가포르의 대표적인 건축물이기도 합니다.
  두리안이라는 과일이 있습니다. 크기는 수박을 꾹 눌러놓은 듯한 타원형인데, 겉은 뾰족뾰족하고 냄새가 정말 지독합니다. 저는 근처에 가는 것도 싫어했었는데, 싱가포르 사람들은 한번 먹으면 중독이 될 만큼 좋아하는데, Esplanade의 애칭이 바로 이 두리안입니다.
 
 
  첫 출근부터 늦어버렸습니다. 출근이 8시 30분인데, 첫날은 ‘조금’ 늦게 와도 된다는 말을 그냥 ‘늦게 와도 된다’는 말로 알아듣고 늦장을 부린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저 말고도 2명의 신입사원이 더 있었는데, 처음으로 방문한 곳은 CEO의 사무실이었습니다. 저보다도 작은 키에 머리가 살짝 벗겨지신 CEO 아저씨는 까만 반팔 티셔츠에 면바지를 입은 수수한 모습이셨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노들섬 프로젝트 발표에도 참여하셨다며 관심을 보여 주시고는, 신입 사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We get up to come here, and we don't want to go back. I hope you learn many things from us. Our aim is not getting profit but serving people better. Make people happy and make them enriched. I'm sure that you will get addicted to Esplanade. ”
  매우 인상 깊은 말이었고, 정말 출근하기 위해 일어나는 사람이 몇 있겠냐고 생각했지만 몇 달 뒤 새벽 6시 출근에 5시에 번쩍 눈을 뜨는 제 자신을 발견하고는 슬며시 웃음짓게 되었습니다.
  CEO 사무실을 나와 지하부터 3층까지 돌아다니며 온 회사 사람들에게 일일이 저를 소개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제가 근무할 당시에도 새로 들어온 사람들이 있으면 인사과 직원이 데리고 다니시며 하나하나 소개를 해 주는 모습이 참 정겨웠습니다. 인사를 끝내고 각종 컴퓨터와 시스템에 대한 교육을 받고는, 제가 속한 Programming 부서로 갔습니다. 책상과 컴퓨터 자리를 배정받고, 그날 있었던 소규모 공연 (우리나라로 치면 ‘천원의 행복’ 같은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을 보고는 퇴근했습니다. 첫날이라 그런지 낯설었지만 가벼웠고, 사무실 하나하나 사원증에 붙어있는 보안 카드를 통해 출입하는 것이 재미있고 은근한 자부심을 갖게 하였습니다.
  그렇게 2008년 2월부터 5월까지 Esplanade에서 인턴으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평일 오전 8시 30분부터 6시까지 근무를 하고, 주 3회씩은 7시부터 10시까지 학교에서 수업을 들었습니다. 업계 특성상 근무 시간이 일정하지 않아 야근을 하게 되면 수업에 들어가지 못하거나 새벽 2-3시가 되어서야 집에 들어오는 날도 꽤 자주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만두기 일주일 전부터 눈물이 나왔을 정도로 정이 많이 들었었고, 오히려 학교생활보다 제 싱가포르 생활을 만들어준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굉장히 자유로운 분위기 입니다. 회사가 길을 잃을 정도로 크고 복잡한 데에도, 모두가 가족 같고 서로 챙겨줍니다. 집에서 맛있는 케이크를 만들어 와서 부서 냉장고에 넣어 두고 먹기도 하고, 생일 파티도 다같이 하는 등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유동적인 출근 시간과 퇴근 시간에 적응 하는 데에 시간이 걸렸습니다. 8시 30분 출근이고 보통 9시 30분쯤 부서 회의가 시작되는데 출근을 하면 제가 제일 먼저 불을 켜게 되는 경우가 다반사였고, 회의 중간에 들어오는 경우도 굉장히 많았습니다. 그것은 회의가 자유로운 분위기의 열린 장소에서 열리기 때문에 제한이 없어서이기도 하고, 퇴근 시간이 늦게 되면 아침에 그만큼 늦게 와도 된다는 신고 제도가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제가 속한 Programming 팀은 아티스트들의 스케줄, 계약, 초청 등 전반적인 행사를 주관하는 부서였기 때문에 그런 일이 더욱더 많았고, 부서 사람들의 스케줄만 따로 관리하시는 분이 있었을 정도입니다.
  복장도 자유로워서, 오히려 정장을 입고 가면 모두들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보곤 했습니다. CEO나 Chief of Programming 도 캐주얼을 입고 출근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씩은 사무 업무를 보는 사람들이 전부 모이는 팀 미팅이 있었고, 한 달에 한번 씩 제작본부 사람들까지 아울러서 한 달의 보안, 회계, 행사, 기술 전반적인 보고를 하는 전체 회의가 극장에서 열렸습니다.
  제가 일하던 파트는 Programming Team으로서 공연을 기획하고 초청하고 진행하는 전반적인 예술행정 분야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이 볼수록 감각을 익힐 수 있다는 회사 방침에 따라 원하는 만큼 공연작품을 가장 좋은 자리에서 관람할 수 있었습니다.
  출근 첫 달은 개관 이후부터 지금까지의 계약서를 정리하고 이메일을 훑어보면서 전반적인 아티스트 초청의 과정을 볼 수 있는 사무업무를 주로 했습니다. 또한 우리 팀 사람들이 아티스트를 초청하는 주요한 곳이 세계의 각종 축제였기 때문에, 축제의 날짜와 참가 요강을 확인하고 리스트를 작성하는 업무도 맡게 되었습니다. 저를 담당하는 분이 오랜 출장을 떠나 있었기 때문에 직접적인 일을 배울 기회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하루하루 졸아가며 6년간의 계약서를 살펴보면서 감각을 익힐 수 있었고, 후에는 직접 계약서를 검토하고 작성할 수 있었습니다. 계약서를 직접 작성하게 되었을 때 담당자가 찾아내지 못하는 것들도 발견해서 칭찬을 받았습니다.
 
 
  우리나라와 다르게 싱가포르는 축제 중심으로 운영되는 체제였습니다. 매일매일 자그마한 공연들이 이어지는 한편 한 두 달마다 약 열흘간에 걸친 테마가 있는 축제가 펼쳐집니다.
  2월에는 Chinese Festival이 있었습니다. 구정이 있는 기간과 맞물려 중국인 예술가들이 참여하는 혹은 중국 전통 예술에 관한 공연들이 약 5일간 이어졌습니다.
  또한 3월에는 열흘간 Mosaic라는 음악축제가 펼쳐집니다. 장르와 국적을 불문한 가수와 연주자들이 전 세계에서 모여듭니다. 전체 극장을 통틀어 공연을 할 수 있는 6개의 장소에서 하루 종일 세미나와 공연, 참가 이벤트가 펼쳐지기 때문에 제가 겪었던 3개의 축제 중에서 가장 활기차고 즐거운 축제였습니다. Mosaic에서 저는 Artist Liaison Officer라고 해서 외국에서 오는 아티스트들을 수행하고 보조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24시간 아티스트가 공연과 관련된 활동을 하는 기간에는 항시 붙어서 뭐 필요한 것은 없나, 아프지는 않은가, 없어지지는 않는지 주시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피곤하면서도 약간은 무료한 활동이었습니다. 첫 아티스트는 영국에서 온 KODE9 & SPACEAPE였는데, 일렉트로닉 DJ와 랩 음악을 하는 그룹이었습니다. 매우 소박하고 뭐든 긍정적인 그룹이라 대하기는 쉬웠지만, 막상 2시간이면 넉넉하다던 리허설은 6시간이 넘게 계속되었고 그것도 찌지직 거리는 기계음을 리허설 후 바로 이어진 공연까지 약 10시간을 넘게 듣다 보니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이었습니다. 심지어 모든 스탭들이 귀마개를 끼고 음악회에서 일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그 다음에 이어진 그룹은 MUM이라는 아일랜드 가수였습니다. 그들은 매우 귀여웠지만, 9명이나 되는 가수와 매니저가 제각각 행동하는 바람에 사람들을 찾느라고 고생했던 기억이 납니다. 1시간 30분 동안 연주회를 하고, 2시간 동안 사인회를 열어서 아무도 퇴근하지 못하고 새벽까지 기다렸었습니다. 더구나 멤버들을 챙겨야 할 매니저가 항상 약속에 늦고 잠을 자고 덤벙거리는 사람이어서 우습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당황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역시 제일 기억에 남는 사람은 마지막 손님 크라잉 넛 이었습니다.
특별히 통역 겸 수행자로 초빙된 저는 유난히 특별난 이 분들과 재미있는 경험을 많이 했습니다. 유창하지 않은 영어로 장난끼 어린 말을 계속 해서 공연 기획자들을 당황시켰던, 공연 끝나고부터 12시간 동안 연락도 없이 관광을 다니시고 느즈막이 나타나셔서 무사히 비행기를 탈 수 있을까 걱정하게 한 유난스러운 분들이었지만, 밤늦게 야외에서 진행된 공연은 그 어떤 가수보다 큰 호응을 이끌어내며 멋진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공연에 오르기 약 10분 전까지만 해도 얼굴이 붉으락 푸르락 화가 나 있었던 저도 무대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크라잉 넛을 보며 참 기분이 좋았습니다. 일이 없을 때에는 또 많은 가수들의 공연을 보러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많은 친구들을 사귈 수 있었습니다. 같이 수행을 다녔던 친구들, 스폰서 자격으로 들어왔던 하이네켄 마케팅 매니저, 평소에는 잘 만날 수 없었던 기술직원… 이렇게 열흘간의 대장정이 끝나고, 달콤한 하루 휴가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4-5월 매주 목, 금, 토에 진지하고도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독립 연극제 기간이었습니다. 월요일이나 화요일에 극장에 들어와서 무대 설치를 하고, 리허설을 하고, 수요일에는 저의 보스와 제가 직접 총 리허설을 보면서 최종 점검을 한 뒤 공연을 올리는 방법으로 약 7주간 계속되었습니다. 이 기간에 프로덕션 미팅에 참여해서 어떻게 기술적인 부분을 지원받고 조정하는지 알게 되었고, 관심이 없던 독립연극도 나름 재미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크라잉 넛이 왔을 때는 한국 가수에 대한 통역사로 활동했습니다. AAPPAC (아시아태평양지역 공연회관 협회) 회의가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4월까지는 한국 사무국과 싱가포르 본부의 통역 겸 준비 요원으로 활동했습니다. 6월에 열릴 Flipside 축제에 초청될 한국 그룹의 홍보를 위해 광고지 번역과 한국 대사관, 공보관, 기업의 전화 연락을 담당했습니다. 그를 계기로, 싱가포르에서 공연하고자 하는 한국 그룹들은 다 저에게 연락을 시도하셨고, 그들을 적절한 담당자에게 연결하고 초청받을 수 있도록 포장해서 포장하는 일 역시 저의 몫이었습니다.
  또한 제가 일했던 3층 사무실과 1층 제작팀과는 그리 좋은 관계가 아니었는데, 한국인이고 어린 여자아이가 고생한다면서 제작팀 사람들이 예뻐해 주셔서 사무실과 제작팀 사이에서 일어난 많은 일들을 제가 담당하여 처리하게 되었습니다.
  싱가포르 최대 공연장의 유일한 한국 직원으로서, 정식 직원은 아니었지만, 한류의 열풍이 불고 있는 국가 중의 하나인 싱가포르에 한국을 대표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개인적인 욕심도 큰 몫을 했겠지만, 한국을 대표하는 사람으로서 열심히 하는 모습, 능력 있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 많이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스스로도 그러한 역할을 정말 즐겼고, 다문화를 인정하는 싱가포르 공연장에서 ‘특별한’ 대우보다는 ‘또 하나의 문화’를 소개하는 사람으로서 자부심을 느꼈습니다.
 
 
  보스와 저는 대체로 친구 같이 잘 지냈습니다. 말레이 싱가포리언 이었던 제 보스는 평소에는 장난도 잘 치고 easy-going person이었지만 일을 할 때는 감정 기복이 너무 심해서 대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우리들이 흔히 생각하는 서구화된 외국인 답지 않게 저의 친구관계에 대해서 관심이 많고 꼬치꼬치 캐묻고 팀원들에게 소문을 내서 곤란하게 만들곤 했습니다. 특히 제가 일이 없을 때에도 눈에서 보이지 않을 때는 계속 전화를 하고 일을 갑자기 몰아서 주는 바람에 화가 많이 나기도 했었습니다. My Slave라고 하면서 자기가 해야 할 일도 미루고 잡다한 일이 있을 때마다 데리고 다녀서 조금 귀찮기도 했지만, 따라다니면서 사람들에게 귀여움도 많이 받고 협상과 대화 방식에 대해서는 많이 배울 수 있었습니다. 많이 표현을 하진 않았지만 한국에 돌아가는 날 예고도 없이 공항에 나오는가 하면, 한국에 오는 싱가포르 친구에게 선물을 바리바리 싸서 보내는 등 섬세한 면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연극제가 열린 2달간 보스와 저의 스트레스는 정점에 달해 있었습니다. 혼자 그 큰 행사를 담당하던 저의 보스는 있는 대로 짜증을 부렸고, 학교 기말고사와 행사가 겹친 데다가 한국을 떠난 지 1년 정도 되자 한국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점점 커졌습니다. 게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기숙사에서 더 이상 살 수 없다는 통보를 받고는, 충동적으로 5달의 인턴쉽 예정 기간을 3개월로 줄이고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한 곳에 진득하게 눌러있지 못하는 성격이 그 때도 발휘되고 만 것입니다.
 
 
  그만 둘 때에는 냉정하리만큼 돌아섰습니다. 회사에서 싼 집을 구해주겠다고 제안했는데도 돌아가겠다고 했으니까요. 그때는 그냥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 뿐 이었습니다. 하지만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부터 싱가포르에서 조금 더 있을 수 있었을 텐데, 6월 행사는 더 재미있었을 텐데, 보스가 나를 필요로 할 텐데 등등 많은 생각과 성급한 그만둠에 대해 후회를 했습니다.
다투면서 정이 든 보스, 같이 아티스트 수행을 하며 친해진 친구들, 호텔 부페에 데려가서 멋진 점심을 사준 동료, 출근 할 때마다 연락해서 자기를 보러 오라고 했던 기술팀 오빠, 사무실 커피가 맛이 없다고 징징댔더니 맛있는 커피를 사다 주셨던 팀장님… 지금 생각해보면 고맙고 보고 싶은 사람이 정말 많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와서 International Programming Officer가 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래서 UNESCO 예술팀 인턴도 하고, 국립극장 자원봉사도 하고, 간간히 해외 인턴쉽도 찾아보면서 꿈을 키워갔습니다. 하지만 일을 그만둔 지 5개월쯤 지난 지금은, 싱가포르와 너무나도 다른 한국의 공연 경영 환경을 알아가며 충격과 적응 그리고 저의 미래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해봅니다.
  앞으로 저의 미래가 어느 쪽으로 기울던지 간에,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전 세계를 누비며 소통하겠다는 기본적인 생각 만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리고 Esplanade에서의 경험이 저를 어떤 면으로든 성장할 수 있게 해 주었다는 사실도 변함이 없습니다. 첫 회사생활의 기억을 잊지 않고, 그 분위기, 열정, 노력을 잊지 않을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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