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활동경험담

"하늘과 땅이 맞닿아 있는 그곳"- 태국 쑤언풍의 보석을 찾아서…
글쓴이 구지연     소속 건국대학교 경영학과

날짜 08.10.07     조회 4220

 

인천 영종도 국제공항.
1,2 차 연수회에 이어 안성, 전주, 부산 세 번의 모임을 거쳐 준비하고 다짐해 왔던 태국으로의 봉사활동을 위해 출국 하는 날이다. 어제 한국체육대학교에서 쑤언풍 사람들에게 줄 옷들과 기념품들을 챙기느라 잠을 못자서 그런지 얼굴이 푸석하고 눈밑에는 다크서클이 생겨버렸다. 하지만, 간다고 간다고 말만 하다가 이제 진짜 쑤언풍으로 간다고 생각하니 피곤함은 금세 가셔버렸다. PAS회장직을 맡고 계시는 정동구 단장님, 박성연 부단장님 그리고 우리 21명의 팀원들은 설렘과 기대감으로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이렇게 오랫동안 한국을 떠나있는 것은 나도 처음인지라 많이 설레고 긴장된 기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출국 전, 우리 모두 모여 결의를 다지며 단체 사진을 찍었다. 쑤언풍에 가면 어떤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5시간을 걸려 도착한 방콕은 열대기후에 속하는 지역인지라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후끈후끈한 열기가 내 몸을 감쌌다. 아~! 이제 태국에 도착 했구나 라는 실감이 들면서 쑤언풍에 대한 기대도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공항에서 내리니 단장님과 친분이 있는 선교사님이 오셔서 우리를 버스로 안내해 주었다. 아니 이건! 버스는 우리나라 버스와는 다르게 2층버스만한 높이였고 버스 겉면에는 페인트로 원피스 만화 주인공들이 화려하게 그려져 있었다. 일본 만화영화가 여기에 까지 이렇게 들어왔다는 사실에 조금 놀랍기도 했다. (실제로 마트에 들어가 보니 일본 만화 도라에몽이 큰 인기를 끌고 있었다.)몸도 지치고 날씨도 덥고 해서 피로가 쉽게 쌓인지라 차에 타자마자 바로 잠이 들었다. “와~! 다 왔다!”하는 소리에 잠이 깨어 보니 이제 차는 쑤언풍 마을 입구로 들어서고 있었다. 방콕에서 약 4시간 걸려 도착한 이곳 쑤언풍은 풀벌레 소리와 밤하늘을 수놓은 별들이 살고 있는 조용한 시골이었다. 차에서 내리자 신기하게 쳐다보는 아이들과 약간은 어색해 하는 마을 주민들이 보였다. 우리가 차에서 짐을 내리자 아이들이 짐을 나르는 일을 도와주었다. 그런데, 남자 장정도 들기 버거워 했던 20kg 짜리 고추장 통을 초등학생인 듯 보이는 남자애가 번쩍 들어서 옮기는 것이 아닌가! 별로 무거워 하는 기색도 없이 말이다. 무겁다면서 얼른 뺏어 드니 안 무겁다고 손을 휘젓는 것이었다. (이때부터 여기 아이들을 알아봤어야 했는데 - 강철체력, 무한체력 이었다.) 비행기에 버스까지 약 9시간이 걸린 여정에 우리 팀원들은 모두 기력이 소진해 마무리 회의를 빨리 끝내고 잠자리에 들었다.
 
 
  태국은 91.9%가 불교를 믿는 국가인데, 특이하게도 여기 쑤언풍 지역만은 기독교를 믿고 있었다. 저녁 7시가 되자 Merdy(Joy의 부인)이 아름다운 목소리로 CCM을 부르자 사람들이 한,두명씩 교회로 예배를 드리러 왔다. 우리도 공식적인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전체인원이 모두 모여 교회 예배에 참석하기로 했다. 태국 말이라 예배를 하나도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아이들이 모두 함께 부르는 CCM은 듣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졌다. 예배 후, Joy목사님이 우리를 마을 사람들에게 소개시켜 주셨다. 한국에서 온 PAS봉사단이라면서 각자 자기소개를 부탁했다. 우리는 간단한 영어로 자기소개를 했고 싸와디 카 (태국의인사말 여자는 카, 남자는 캅 이라고 말한다)인사를 하며 그들과의 ‘첫’만남을 마무리했다.
예배를 마치고 나서 마을 주민들과 아이들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우리 모두에게 일일이 악수를 청했다. 우리도 함께 그들과 웃으면서 손을 꼭 잡아주었다. 악수 하는 내내 그들은 밝게 웃으며 우리를 마주했고, 반가운 마음을 그렇게 전하는 듯 했다.

 
 
  아직은 어색한 마을 아이들과 친해지기 위해 우리는 한국에서 준비했던 공연을 계획했다. 마침 일요일이라서 마을 사람들도 쉬고 아이들도 학교를 가지 않아서 점심 식사 후, 공연을 하기로 했다. 첫 번째 순서는 태권도 시범이었다. 남자분 다섯명이서 풍선터트리기와 송판격파 시범을 보였다. “팍”하고 풍선 터지는 소리에 아이들이 놀라면서 박수를 쳐주었다. 멋진 기합소리와 함께 태권도 시범을 보이는 우리 한얼팀 다섯 남자들이 정말 늠름해 보였다. 두 번째 공연은 단소공연으로 아리랑, 도라지 타령, 은하수 세곡을 불렀다. 부단장님과 우리 한얼팀 여자분들이 참여한 단소 공연은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부단장님이 처음 여기에 참여하신다고 할 때 솔직히 조금은 놀랐다. 우리만 공연준비를 하게 될 줄 알았는데 이렇게 적극적으로 우리를 도와주시고 함께 행사에 참여하시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세 번째 공연은 지난 2차 연수회에서 장기자랑 1등을 한 동방신기 ‘풍선’춤 공연이었다. 나를 포함한 우리 팀원 중 여덟명이서 공연을 했다. 우리가 듣기로는 태국도 원더걸스, 동방신기 등 한국의 유명 가수들이 인지도가 높다는 얘기를 들어서 공연을 기획했는데, 아직까지 쑤언풍에는 한류열풍의 열기가 전해지지 않았나 보다. 우리들은 앞에서 춤을 열심히 췄는데 객석의 반응은 마치 남극에 온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공연이 끝난 후 큰 박수를 주셔서 기분은 좋았다. 네 번째 공연은 팀장 오빠의 마술쇼 였다. 분명히 손에 있었던 동전인데 갑자기 사라지기도 하고 아무 것도 없던 손에서 꽃가루가 나오기도 했다. 아이들도 신기한지 앞으로 우루루 몰려들어 이리보고 저리보면서 따라하기도 했다. 마지막 공연!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CCM노래를 우리가 다 함께 노래로 불렀다. 까까(JOY의 여동생)가 이 노래를 아는 지 무대 맞은 편에서 따라 부르고 있었다. 솔직히 노래를 부르면서 까까가 이 노래를 아는 것에 대해 사실 조금 놀랐다. 그래서 혹시나 틀릴까봐 긴장도 많이 했었다. 모든 행사가 끝나고 아이들과 함께 즐겁게 노는 시간을 가졌다. 페이스 페인팅을 해 주려고 아이들을 불렀으나 얼굴에 무언가를 그리는 것이 거부감이 들었는지 처음에는 안하려고 뒷걸음질을 치더니 한명이 하니까 또 우르르 몰려들어 자기 먼저 그려달라고 졸랐다. 나머지 아이들을 데리고 강강술래도 하고 무궁화 꽃이 피었 습니다 노래도 하고 술래잡기도 하면서 신나게 놀았다. 점점 체력이 고갈되는 나와 달리 아이들은 무한 체력이었다. 같이 옆에 있던 친구가“야 아무래도 여기 애들은 아침에 일어나서 건전지 양 팔과 다리에 하나씩 달고 다니는 거 같아. 무한 체력이야 어휴~!”
아이들이 신나게 어울려서 노는 모습과 밝게 웃는 미소를 보니 내가 조금 지치고 힘든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언제나 이렇게 밝게 웃는 아이들이 모습이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그날이 왔다. 바로 교육봉사 나가는 첫날 ! 약간은 떨리는 마음으로 어떤 아이들을 만날까하는 설레임에 두근거리며 집(숙소라는 것보다 집이라는 생각이 더 들었다. 마마-짜렌파치 목사님 부인-께서 너무나 잘해주셔서 꼭 우리 외할머니 같았다.)을 나섰다. 트럭보다는 조금 작은 차 뒤 화물칸에 우리들은 옹기종기 모여 앉아 춤촌반버 초등학교를 향해 달렸다. 두근두근~아 ! 드디어 도착했다. 생각보다 학교 시설이 좋았고 규모도 생각보다 컸다. 유치부와 초등부로 나뉘어져 있고 운동장을 마주보고 왼쪽에는 초등학교가 오른쪽에는 유치원이 있었다. 춤촌반버 초등학교의 학급은 한 학년당 3개 학급으로 구성되어 있고 학급당 인원 수는 약 30~40명 정도였다. 학교가 지닌 기자재의 수준은 생각보다 좋았고 책걸상을 비롯하여 수업환경도 좋았다. 아이들도 깔끔한 교복 차림으로 환하게 웃으며 우리들을 맞이해 주었다.
춤촌반버 초등학교는 이번 PAS12기 하계팀이 처음으로 간 곳이다. 기존에 교육봉사를 해왔던 타마캄 초등학교와 이곳 두 군데를 모두 교육봉사 나가기로 한 것이다. 교장선생님께서도 이렇게 봉사를 하러 온 우리들을 정말 잘 대해 주셨고 점심까지 제공해 주시면서 우리가 마치 귀한 손님처럼 그렇게 대해 주셨다. (점심식사를 똥양꿍-세계3대 수프 중 하나-으로 대접해 주신 건 정말 감사했지만, 강한 향신료 때문에 샴푸 냄새가 나서 맛있게 먹을 수가 없었다.) 여기에 봉사하러 온 건 우린데 정말 더 많은 것을 받아 돌아가는 느낌이 들었다. 선생님들도 항상 밝게 웃으시면서 우리를 대해 주셨고 우리의 편의도 많이 봐 주셨다. 더 고마웠던 건 수업시간 내내 항상 밝게 웃으면서 우리를 쳐다보는 아이들의 맑은 눈망울이었다. 호기심과 기대감으로 가득 찬 아이들의 눈빛을 보니 나도 힘이 불끈불끈 솟아서 정말 열정적으로 수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 수업이 끝나자 아이들이 우리들 주변으로 우르르 몰려와 싸인을 해 달라고 펜과 종이를 내밀었다. 조금 당황스러운 마음이 있었으나 내 이름 석자와 KOREA이렇게 써 주니 “코쿤캅”하면서 두 손을 합장하면서 인사하고 공손히 받아갔다. 한,두명을 해주고 나니 이제는 전교생이 우르르 몰려들어 싸인을 해달라고 왔다. 정말 이 순간만큼은 한류스타들이 전혀 부럽지 않았다. 대한민국의 그냥 평범한 대학생인 내가 싸인을 해 줄 정도로 유명인사가 되다니 참 감격스러웠다. ^^ 싸인 연습 좀 해 둘 걸 하는 생각과 함께 차가 올 시간이 되어 아이들과 아쉬운 작별인사를 했다.
 

“안녕 얘들아~ 내일 또 올게 !”

 
 
  오늘은 교육봉사를 나가지 않는 날이라 오전에는 점심 준비를 하고 오후에 밭 개간 노력봉사를 하러 나갔다. 부단장님이 내 복장을 보고 완벽한 복장이라고 칭찬해 주셨다. 위로는 챙이 넓은 모자에 바지는 개미가 무는 것을 막기 위해 긴 고무바지를 입고 신발은 보기만 해도 완벽히 모든 것을 차단할 수 있는 운동화 차림이었으니 말이다. 남자 분들이 하는 노력봉사를 말만 듣고 나가보지 않아서 잘 몰랐었는데 말 그대로 단순 노동이었다. 하지만 작고 빨간 불개미들이 신발을 타고 올라오고 물면 잘 떨어지지 않고 따가워 슬리퍼를 신었으면 큰일 날 뻔 했다. 날씨가 더우니 짧은 바지를 입어야 하는데 개미는 물고 떨어지지는 않고 따가우니 남자 분들이 정말 고생이 많았다. 여기 사람들은 우리가 너무 열심히 일한다면서 좀 천천히 쉬라면서 일하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엔 여기 사람들이 너무 태평해 보인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무래도 열대 지방이다 보니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와는 다르게 느릿한 면이 많았다.
밭 개간을 끝내고 더위를 식히러 수로에 갔다. 물에 들어가니 너무 시원하고 기분도 좋아졌다. 그 때 마침 부단장님의 제안 “야~ 씨름 한판 해라 !” 그 말에 갑자기 벌어진 쑤언풍배 수로 씨름판이 벌어졌다. 난 당연히 빠질 줄 알았으나 오빠들이 “야 ~ 막둥이 끼리 붙어봐~!”하는 말에 나와 경진이는 당황해 하면서 서로를 마주보았다. 막상 씨름판이 벌어지니 나도 모르게 내 힘을 모두 다 써버렸나 보다. (힘이 쎈 거 자랑하는 것도 아니었는데 이겨버렸다.) 오빠들이 “오~”하면서 나를 바라보는데 음.. 이겼다고 결코 좋았던 건 아닌 것 같다. ㅠㅠ
노력봉사를 끝내고 먹는 저녁밥이 왜 그렇게 맛있던지 정말 최고의 밥상이었다. 오늘 하루 뿌듯했다는 생각을 하며 눕자마자 잠이 들어버렸다. 그리고 그날 밤 나는 또 씨름을 하는 꿈을 꿨다. -_-

 
 
  태국 쑤언풍 봉사활동의 전통 행사 Korean Food Festival을 위해 우리들은 아침부터 분주히 움직였다. 며칠 전부터 만든 메뉴들 중에서 엄선된 김밥, 닭도리탕, 오이소박이, 양배추 찜, 미숫가루, 과일화채, 잡채, 고구마 샐러드 등 11가지 메뉴를 준비 했다. Korean Food Festival행사는 PAS 봉사활동 중 가장 크고 중요한 행사이다. 쑤언풍 지역뿐만 아니라 다른 마을의 사람들도 방문하며 이번 Festival에는 약 100명 정도 손님을 초대했다고 하니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었다. 더구나 이번에 교육봉사를 나갔던 춤촌반버 초등학교와 이제 나가게 될 예정인 타마캄 초등학교 교장선생님들께서도 오실 예정이었다. (이 두 분은 서로 부부이시다.) 더구나 이 행사에 참여하시기 위해 온 단장님이 계셨고 단장님이 초대하신 손님들도 많으셨기에 이 행사가 얼마나 큰 자리를 차지하는지 알만했다.
음식을 만드는 내내 환풍기도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목사님 댁의 부엌에서 요리를 했더니 가스의 열기와 우리 몸의 열기가 합쳐져 땀이 비 오듯 흘렀었다. 또한 워낙 많은 양을 해야 했기에 끝이 나지 않는 음식 만들기로 인해 우리 모두 지치고 힘들어 했다. 더구나 음식 페스티벌에 앞서 우리들의 공연도 준비해야 했기에 심적 부담감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하지만 다들 지치고 힘들 텐데도 웃으면서 일을 하고 서로 농담도 주고 받는 모습을 보니 내 마음도 밝아졌다.
드디어 6시, 시작시간! 우리는 떨리는 마음을 안고 본격적으로 행사를 시작했다. 마을 주민들과의 첫 만남 때 보여준 공연이 미비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를 더 보완하여 철저하게 공연을 준비하기로 하였다. 동방신기의 ‘풍선’,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수화와 함께), 호신술 공연(태권도), 태국어로 된 CCM 노래, 한국 찬송가 등으로 구성된 공연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마지막으로 부른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을 수화와 함께 노래를 부르는 동안 이 모든 것을 기획하고 진행했던 우리 한얼 팀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되었다. 그리고 뭔가 모르게 저 깊은 곳에서 밀려오는 뿌듯함과 자랑스러움으로 눈에 눈물이 고이기도 했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전혀 다른 곳에 살고 있어도 뭔가 모르게 쑤언풍 사람들과 처음으로 통했다는 느낌이 들어서 일까? 오로지 내가 아닌 남을 위해 이렇게 노력해 본적이 있었던가에 대한 생각이 들면서 봉사활동의 참된 의미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던 날이었다.

 
 
  태국에 봉사를 하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대학생들의 문화교류와 증진을 통해 이들을 세계인으로 양성하고자 하는 PAS의 취지에 따라 일요일을 택해 문화탐방을 하기로 했다. 좀 더 재밌는 지역으로 갈 수도 있었지만 태국을 좀 더 알고자 하는 마음에 제 2차 세계대전의 아픔이 느껴지는 그곳 콰이강의 다리에 가기로 했다.
콰이강은 태국 칸차나부리 지역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 다리는 제 2차 세계대전 중 일본 군대의 지휘, 감독하에 연합군 전쟁포로들이 투입되어 건설 되었다고 한다. 옛날에 콰이강의 다리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본 기억이 있는데 이 다리는 영화와 소설 등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해져 죽음의 철길(Death Railway)라고도 불린다고 한다. 하지만, 맑은 강물이 흐르고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나고 있는 그 광경을 보니 결코 죽음의 다리와는 전혀 상관이 없어 보인다. 아무래도 세월이 많이 지나고 이 지역에서 전쟁이 없어졌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콰이강의 다리를 뒤로하고 우리는 코끼리 공연을 보러 갔다. 일인당 500바트(한국돈 16000원, 1바트 = 32원)씩 주고 들어간 이 곳은 엄청난 규모를 자랑했다. 시간이 없어 서둘러 뛰어 들어간 코끼리 공연장에 앉자마자 바로 공연이 시작 되었다. 처음 코끼리를 어떻게 포획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재연을 하고 나서 코끼리를 이용해 싸웠던 옛날 전쟁터를 재현을 해 주었다. 다음으로 노랫소리에 맞추어 코끼리들의 춤을 관람했었는데 이 때 코끼리가 너무 불쌍하게 보였다. 저 넓은 초원을 뛰어다녀야 할 야생 코끼리들이 붙잡혀 이렇게 좁은 곳에서 엉덩이를 흔들고 귀를 팔락거리며 사람들의 박수를 받는 모습이 너무나 불쌍하게만 느껴졌다. 더 큰 초원에서 여유롭게 풀을 뜯으며 친구들과 가족들과 함께 살 수도 있었을 텐데 하면서 갑자기 나도 한국에 있는 가족들과 친구들이 너무나 보고 싶어졌다. (왠지 코끼리의 아픔이 느껴졌다.)
 
 코끼리 공연이 끝난 후에 바로 악어 공연을 보러 갔다. 가만히 있기만 해도 땀이 흐르는 더운 날씨에 아슬아슬한 악어 공연을 보려고 하니 땀이 정말 비 오듯이 흘렀다. 악어의 벌린 입 사이로 조련사가 머리를 집어 넣는데 빼자마자 바로 악어가 “쾅”소리를 내며 입을 닫았다. 조금만 더 지체했더라면 목이 물려 죽을 수도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면서 소름이 끼쳤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공연들을 보고 나서 동물원에 들렀다. 동물원이라고 하긴 하지만 주로 악어들이 많았다. 갓 태어난 악어서부터 나이가 30인 악어까지 그 종류와 수가 엄청났다. 다리 위를 지나면서 바로 밑에 몰려 있는 커다란 악어들이 있다고 생각하니 너무 소름이 돋아 얼른 뛰어 나왔다. 이 다리가 무너지게 되면 어떻게 하지 ? 하는 생각 때문에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걸음을 재촉했다.

 

 
 
  오전에 춤촌반버 초등학교에서 마지막 수업을 진행한 후 아이들과 아쉬운 이별을 했다. 마지막이라는 말을 몇 번이고 한 뒤에 Good bye 라고 인사를 하며 헤어지기를 몇 번이나 한 끝에 우리는 학교를 나왔다. 마지막이라는 말이 이렇게 아쉽고 목구멍으로 나오지 않는 건 처음인 듯 하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이미 며칠간 함께 했던 아이들이기에 너무나 그리울 듯하다. 하지만, 끝의 마지막은 처음이라는 생각에 그리고 타마캄 초등학교 아이들과의 첫 만남이라는 생각에 아쉬운 마음은 잠시 접어두기로 했다.
첫 만남 ! 이번 아이들은 어떤 아이들일까라는 기대감과 설렘으로 타마캄 초등학교에 들어갔다. 우리나라 읍정도 되는 전형적인 시골 초등학교의 모습이었다. 춤촌반버의 황톳빛 교복과는 달리 여기 아이들은 눈처럼 새하얀 모시 적삼 같은 흰 옷을 입고 있었다. 여기는 인원수가 적어서 한 학년에 한 반씩 있고 학교가 일층건물로만 되어 있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들어간 5학년 교실, 우리팀은 아이들에게 각자 소개를 하면서 준비해 온 영어수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 아이들이 너무 잘 아는 것이 아닌가 ? 속으로 깜짝 놀라며 아이들의 영어책을 보니 단어수준이 생각했던 것 보다 높았다. 아이들의 수준을 너무 낮게 잡은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과 함께 어떻게 이 난관을 헤쳐가야 할 지 정리가 되지 않았다. 그럼 헥맨 개임을 할까? 라는 생각에 손짓 발짓으로 아이들에게 이 게임을 설명해 준 다음 게임을 진행했다. 그랬더니 또 이번에 너무 잘 하는 것이 아닌가 ? 그 때 갑자기 팀장 오빠가 해 주었던 말이 생각이 났다. 여기 아이들은 결코 못살거나 동정받아야 할 아이들이 아니라고 불쌍하다는 표정으로 대하지 말라던 얘기가 생각이 났다. 그렇다 여기 아이들은 내가 한국에서 생각하고 왔던 교육보다도 더 나은 환경에서 교육을 받고 있었고 그 수준 또한 한국보다 현격히 낮은 것은 아니었다. 아이들은 마치 스펀지가 물을 흡수하듯이 우리가 가르치는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바로 외우고 습득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초등학교 교육만 받는 다는 것을 감안 할 때 이 아이들이 중,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교까지 교육을 마친다면 정말 노벨상을 받는 차세대 미래 인재는 여기 아이들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장난도 많고 말썽꾸러기 들이 많지만 학습에 대한 열정은 정말 대단했다. 주어진 환경 속에서 열심히 노력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나도 반성을 많이 했다. 한국에서는 결코 풍족하다고 말할 수 없는 환경이지만 여기서 한국을 바라보니 정말 내가 풍족한 환경에서 살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과 그 환경에서조차 최선을 다하지 못한 자신이 부끄러웠다. 아이들에게서 오히려 내가 더 많이 배워간다는 생각이 든다.

 
 
  전체 인구의 91.9%가 불교를 믿는 태국답게 춤촌반버 초등학교에서 주최하는 불교행사 Festival이 열렸다. 오전수업만 한 후에 아이들이 화려한 전통 의상으로 갈아입고 불교 Festival행사를 시작했다. 북과 아코디언과 여러 가지 다양한 악기들이 약간은 엇박자 같으면서도 씩씩하고 신나는 음악을 연주했다. 마을 주민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엉덩이를 씰룩 쌜룩 흔드시면서 두둥실 어깨춤을 추시면서 도로를 행진했다. 행진을 하던 도중 갑자기 내리는 스콜로 인해 우리들은 아이들의 손을 잡고 사원으로 뛰었다. 여기 스콜은 정말 마른 하늘에 갑자기 비가 사정없이 내린다. 빗물의 굵기도 보통 굵기가 아닌지라 짧은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옷이 흠뻑 다 젖었다.
태국의 불교 사원은 한국의 절과는 많은 차이점이 있다. 우선 마을 인근에 사원이 위치하고 있고 일반적인 시멘트 건물에 불상 세 개가 정 중앙이 아닌 왼쪽 가장자리에 위치하고 있고 불상 가장 근처에 제일 높은 스님이 앉으시면서 순차별로 일렬로 앉아계셨다. 우리나라의 조용하고 적막한 절과는 달리 여기는 어찌 보면 약간은 소란스러운 분위기에서 의식이 거행되었다. 스님들의 옷도 더운지방이다 보니 우리나라의 법복과는 달리 인도, 티벳 등지의 법복과 비슷했다. 또한 여기의 스님들은 여자가 몸에 손을 대거나 근처에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파계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들은 몸가짐을 조심히 했다. 같은 팀원 언니가 말하길 길을 가다가 스님이 마주보고 오고 있었는데 한국에서는 그냥 지나가면 되지만 갑자기 스님이 막 소리를 지르더라는 것이다. 혹여나 스님 몸에 스쳐 지나갈까 그것이 파계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게 여자를 멀리한다는 것이다. 같은 사람인데 왜 여자는 그런 취급을 받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여자인 장군도 있고 생각보다 여자들이 높은 지위에 올라 있는 여성도 많은데 왜 이렇게 불교에서만큼은 차별을 받는지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두둥~!!! 우리 한얼팀과 쑤언풍 아이들과의 마지막 일정인 체육대회가 다가왔다. 지금까지의 추억과 기억들을 마음속에 묻는 의식(?)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체육대회면 다들 신이 나고 즐거워야 하지만 준비하는 동안에 헤어진다는 아쉬움이 묻어나와 조금은 조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헤어지는 것은 며칠 뒤고 지금은 아이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야 하는 생각에 마음을 다잡고 준비를 했다. 마을 아이들과 함께 팔찌를 만들기 위해 비즈를 챙기고 마실 물을 챙겨 밖으로 나갔다. 준비하느라 시간이 걸려서 약속 시간보다 조금 늦어서 허둥지둥 바삐 나갔다. 아이들은 어느새 다가와 우리들의 손을 꼭 잡고 운동장으로 향했다. 옆 마을에서도 아이들이 체육대회를 같이 하기 위해 놀러왔다. 거의 50여명에 달하는 아이들과 함께 우루루 운동장에 갔다. 남자 아이들은 우리 팀 남자분들과 함께 축구를 했고 아직 어린 아이들과 여자아이들은 우리들과 함께 팔찌를 만들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비즈를 꺼내 놓으니 역시나 우루루 몰려들어 아이들로 북새통을 이루었고 고사리 같은 손으로 비즈를 집어가 구석에서 혼자 꿰고 있는 아이들도 있었다. 아직 끈을 묶는게 서툴러서 그런지 꿰자마자 구슬이 빠지기 일쑤여서 아이들이 만드는 것을 도와주었다.
이제 거의 다 만들었다 싶을 즈음 역시나 디카를 좋아하는 아이들이 그냥 넘어갈 리가 없었다. 연신 자기들이 만든 팔찌를 카메라에 들이대면서 사진을 찍자고 그 넓은 운동장을 뛰어다녔다. 내 손을 끌고 운동장 방방 곡곡을 누비며 사진을 찍어대는 아이들이 귀엽기도 했지만, 나이가 있는지라 체력이 부족한 나에게 조금은 힘이 들었다. 축구를 하고 난 남자분들도 헉헉 대면서 지쳐있었지만, 역시 여기 아이들은 조금도 지친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정말 대단한 아이들이야 ^^) 덕분에 나도 아이들과 함께 사진을 찍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축구를 마치고 저녁시간이 되었을 무렵 우리는 체육대회 일정을 마치고 운동장을 나왔다. 이젠 며칠 후면 여기를 떠난다는 생각에 아이들과 많이 이야기를 해 보려고 했다. (하지만 꼬마들은 영어조차 통하지 않았다. 흑...!) 그래서 그냥 꼬옥 껴안아 주었다. 말 한마디보다 이렇게 안아주는 것이 더 따뜻하고 포근함이 느껴졌다. 아직도 아이들의 체취가 남아있는 듯 하다.

 

 
  처음 여기 쑤언풍에 왔을 때는 너무도 시간이 안 간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왔다. 정들었던 마을 사람들과의 이별, 그리고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르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허전했다. 마지막으로 마을 주민들과 아이들과 다 같이 손을 잡고 짜렌파치 목사님의 기도를 들었다. 22명이나 되는 우리 팀원들이 조금은 부담스럽고 시끄러웠을 법도 한데 마지막 기도 조차 목사님은 우리들의 앞날을 축복해 주고 항상 행복이 가득하라는 말씀을 하셨다. 목사님은 우리 한명 한명을 하나 하나 안아주시면서 또 한번 기도를 해 주셨다. 맨 마지막으로 내가 목사님과 포옹을 했는데 목사님은 나에게 이런 말을 하셨다. “You're a strong man!" 다른말도 하셨던 것 같은데 이 말이 너무 충격적(?)인 탓에 기억이 나지 않았다. 음.. 역시 목사님은 날 여자로 안보셨구나~ 흑..! 이미 울음 바다가 된 이별의 분위기를 조금은 밝게 해 보자 내가 이 말을 했더니 여기저기서 쿡쿡 거리며 웃는다. 울다가 웃으면 X구멍에 털 난다고 그랬는데…!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면 마지막일 수 있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이렇게 순수하고 착한 사람들과 함께한 3주가 꿈만 같고 헤어지기 싫었지만 내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다시 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이라는 말은 이 세상에서 볼 수 없을 때에 하는 말이지 같은 세상에 살면서 볼 수 있는 사람들이지 않는가! 언제나 내 마음속에 남아있을 사람들이기에 난 결코 마지막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나도 그들도 우리 팀원들도 다 같이 서로를 생각하고 있다면 마음속으로 그들을 그릴 수 있다면 그들과 헤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안녕 쑤언풍, 항상 마음속에 있을 쑤언풍이기에 지금의 이별은 결코 마지막이 아니야.”

 
 
 
  카렌족은 지금까지 태국 사람들, 미얀마 인들에 의해 침략을 받아왔습니다. 카렌족 조상들이 인간에 대한 얘기를 해 주었습니다. 신, 창조에 대해 얘기했습니다. 우리가 보는 모든 것은 신에 의해 창조되었고 하나의 같은 종족을 창조하였습니다. 카렌족도 한국인들과 같이 몽고 반점이 있습니다. 카렌족 조상과 한국 조상은 같은 민족입니다. 한국에 갔을 때 부산, 광주, 대구를 갔는데 음식을 먹는 것을 보면 공통점이 많습니다. 인도, 미얀마 인들이 카렌족을 가야라고 부릅니다.
 
  카렌족은 큰 제국을 건설하고 잃어버렸습니다. 카렌족은 양쯔강 중심으로 동남아 전반적으로 다 카렌 땅이었습니다. 하지만 역사를 잃어버렸습니다. 카렌족의 진짜 역사는 태국, 미얀마인들에게 묻혀지고 지워져버렸습니다. 그들은 진짜 역사가 밝혀지는 것을 두려워 합니다. 전체 카렌족이 모여 싸우게 되면 엄청난 힘을 가집니다. 카렌족의 사고 방식은 다른 사람에게 먼저 기회를 주고 우리 자신을 낮춥니다. 항상 남들에게 먼저 주고자 합니다. 역사적으로 억압받으면 피합니다. 이것은 신으로 부터의 명령입니다. 이후, 우리의 이웃들에 의해 억압을 받았습니다. 우리 카렌족이 왜 다른 나라로 떠나야 했는지, 이웃들로부터 억압받았는지는 우리가 신을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신으로부터 축복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땅, 돈, 금 모든 것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미움을 받았습니다. 미얀마 민족이 카렌족을 밀어 내고 죽이려 하는 이유는 카렌족이 많은 토지에 쌀을 경작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1년 경작하면 미얀마인들이 10년 먹을 식량을 생산할 수 있습니다. LPG, 가스, 석유가 카렌족의 땅에 묻혀있습니다. 카렌민족들이 가진 땅을 차지하기 위해 밀어내고 있습니다. 심지어 한국 회사가 미얀마인들에게 돈을 지불해서 석유 같은 천연 자원 때문에 카렌족을 밀어내는데 동조하고 있습니다. 러시아, 중국, 미국,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태국, 한국, 싱가폴 등 큰 거대 국가들과 싸우고 있습니다. 카렌족은 독립을 원하지만 자금은 미얀마 쪽에만 지급하고 있습니다. 닭 팔고, 재배하고 경작해서 무기를 삽니다. 미얀마는 세계적으로 최신무기를 지원받고 있습니다. 미얀마인들은 1인당 300발의 총알을 보유하지만 카렌인들은 5발의 총알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4발은 적을 죽이고 1발은 자기 자신이 다쳤을 경우에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게 자살하는 데 쓰입니다. 군인들은 소수이며 총알이 없으면 창과 칼로 총검을 사용합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가까이서 싸워야 합니다. 우리는 총알이 없기 때문입니다. 카렌인은 다른 민족과 싸우기 싫어합니다. 침략을 받으면 피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막다른 골목입니다. 그래서 싸우는 것입니다. 스페인인들이 페루의 금을 갈취해가는 것과 비슷한 상황입니다. 녹색뱀이 처음에는 공격을 피하다가 막다른 골목에 몰리면 물게되는 것과 비슷한 상황입니다.
 
  카렌족은 모든 이들과 친구가 되고 싶습니다. 적들도 심지어 사랑합니다. 공격을 받더라도 3번은 참습니다. 하지만 그 다음에는 화를 냅니다. 카렌족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일을 하려고 합니다. 월급에 관계없이 불평하지 않고 만약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에는 마음에 담아두고 참다가 나중에 모든 것을 놓고 떠납니다. 심지어 주인에게 받았던 옷 조차도 두고 떠납니다. 카렌족은 절대 약속을 깨지 않습니다. 거짓말도 하지 않습니다. 진심으로 싫어지면 70대에 걸쳐 싫어 합니다. 절대로 잊지 않습니다.
카렌족은 도움에 대한 댓가를 받지 않습니다. 생명을 구해주는 댓가를 받는 다는 것을 신체대 대한 값을 매기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생명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고마워서 돈을 주려고 하면 돈을 중시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한국이 힘든일에 처하면 카렌족이 아파할 것입니다. 음식을 권하면 거절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그들은 우리들을 신의 천사라고 믿습니다. 산속에 있는 카렌족 마을을 가게 된다면 거기 있는 카렌족 집 모두를 방문하여 식사를 하여야 합니다. 적게 먹어도 만족합니다. 만약 거절하게 되면 다시 방문할 때에 우리들을 악마라고 생각합니다. 산속에 있는 카렌여자를 사랑하게 되면 그리고 다시오기로 약속하고 떠난다면 죽을 때까지 당신을 기다립니다. 그리고 결코 다시 결혼하지 않습니다. 이는 심각한 문제입니다. 이는 조선시대의 열녀문과 비슷한 것입니다. 다른 남자가 와서 여자를 범하려 하면 자살합니다. 자신의 순결이 더러워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남자친구를 위해 순결한 몸을 유지합니다. 이를 어기게 되었다면 목을 매거나 절벽에서 떨어져 자살합니다. 치마를 걸어둘 때 남자옷보다 위에 두지 않습니다. 여자는 부끄러워 하는 존재이며 남자에 대한 존경심을 보여야 합니다. 음식이란 카렌족에게 있어 중요합니다. 여성분들은 음식을 넘지 않고 높은 곳에 보관하여야 합니다. 남자는 신의 대리인입니다. 남자가 누워 있는데 여자가 그 위를 건넌다는 것은 신을 무시하는 행위입니다. 아내가 남편을 존중해야 합니다. 대신 남편은 자신의 아내를 더 사랑해야 합니다. 이는 산에 지내는 카렌민족의 풍습입니다.
카렌족 아이들은 민주적인 환경에서 자라났습니다. 생각하는 것을 말할 수 있습니다. 만약 그들에게 상처를 준다면 회복할 수 없습니다. 20년 동안 담아둡니다. 만약 약속을 했다면 결코 까먹지 않고 기다립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했던 행동들을 아이들은 그대로 따라합니다. 피아노, 기타 같은 것을 선생님 없이 보기만 듣기만 해도 칠 수 있습니다.
(2시간 동안 짜렌파치 목사님의 카렌족 얘기를 들었다. 점심식사를 할 시간이 되고 우리도 노력봉사와 교육봉사를 나가야 했기에 이 쯤에서 얘기를 끝냈다. 이 글은 짜렌파치 목사님이 영어로 말씀하신 것을 한국어로 그대로 옮긴 것이다.)
 
 
 
일정 :
일/자 활/동/내/용
3일(목) 한국체육대학교 모임
4일(금) 출국&쑤언풍 도착
5일(토) 노력봉사 / 마을주민들과의 첫만남
6일(일) 마을주민첫만남
7일(월)
노력봉사 / 춤촌반버초등학교 교육봉사
8일(화) 노력봉사 / 춤촌반버초등학교 교육봉사
9일(수) 노력봉사
10일(목) 노력봉사 / 춤촌반버초등학교 교육봉사
11일(금) 노력봉사
12일(토) 한국음식페스티벌
13일(일) 단장님 작별인사
14일(월) 문화탐방 칸차나부리
15일(화) 노력봉사 / 타마캄초등학교 첫수업 / 춤촌반버초등학교 마지막수업
16일(수) 노력봉사 / 춤촌반버초등학교 교육봉사 / 불교 페스티벌
17일(목) 노력봉사
18일(금) 노력봉사 / 온천
19일(토)  
20일(일) 쑤언풍 체육대회
21일(월) 노력봉사 / 기증식
22일(화) 노력봉사 / 타마캄초등학교 마지막수업
23일(수) 쑤언풍 작별인사
24일(목) 방콕
25일(금) 자유여행(왕궁,새벽사원,시암,마분콩시장)
26일(토) 짜투짝 시장
27일(일) 귀국

비용 : 학교지원자의 경우 학교부담 45만원 + 개인부담 45만원 / 개별지원자의 경우 전액 본인부담 (90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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