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활동경험담

인연의 점을 찾아 떠나는 여정, 네팔
글쓴이 하선연     소속 한국외국어대학교 부속 용인외국어고등학교

날짜 13.06.20     조회 3287

국제활동 경험담 공모전
  • 서울시립청소년문화교류센터 미지
  • 2013년 당선작

 

인연의 점을 찾아 떠나는 여정, 네팔

 

 네팔로 가는 두 번째 봉사활동, 익숙해 지지 않는 긴장감과 설렘을 가지고 또 다시 네팔을 향해 떠났다.

8월 6일 새벽 5시 부산 버스터미널에서 커다란 캐리어, 묵직한 배낭을 매고 인천공항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모든 걱정과 설렘 따위는 모두 잠에게 줘버렸다. 눈을 감았다 뜨니 인천 공항이었다. 그 눈 깜빡 할 새 5시간이 지난 모양이다.

 

 혼자 의자에 앉아 나머지 봉사 단원들이 오기를 기다리다 보니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네팔로는 두 번째 가는 해외봉사였지만 그래도 긴장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멤버들이랑 어떻게 친해지고 말을 터야 할지, 아이들은 나를 기억해줄지, 또 새로운 아이들과 어떻게 친해질지, 음식은 또 어떻게 적응해야 할지. 머리가 복잡해지고 있을 찰나에 멤버들이 속속들이 도착했다. 언제나 그랬듯이 처음은 정말 어색했다. 괜히 핸드폰만 만지작 만지작거리고, 이번 봉사에서는 정말 열심히 봉사만 해야지 생각하며 아주 형식적인 인사만 나누었다. 총 15명의 봉사팀과 한국말에 꽤 능숙한 몽골에서 오신 팀장님, 만다 까지 다 모이자 출발 기념 사진을 찍고 출국 준비를 했다.

 

 홍콩공항에서 카트만두로 가는 비행기로 경유하기 전까지 약 세 시간 동안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공항 한 구석에서 네팔에 가서 아이들한테 보여줄 한국 노래랑 춤을 연습하다 보니 많이 창피했지만, 또 창피한 만큼 더 친해지는 것 같다. 한국에서도 춤이라곤 춰 본적 없는데, 기껏해야 올챙이 송에 율동만 할 줄 알았었는데, 내가 홍콩공항에서 보핍보핍을 추고 있었다는 사실이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난다. 또, 기다리는 시간에 멤버들이랑 아이들이랑 놀 때 쓰려고 가지고 온 공기로 음료수 내기를 하다 보니 점점 더 친해지고 멤버들이 좋아졌다. 멤버들과 친해진다는 것은 정말 큰 변화였다. 이 멤버들과의 봉사활동이 기대되었고, 봉사활동뿐만 아니라 나의 인생에서 아주 멋진 사람들을 열 다섯 명이나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되었기 때문이다.

 

카트만두에 도착했을 때는 깜깜한 밤이었다. 새벽 다섯 시부터 시작된 이동에 지친 나는 공항을 볼 새도, 주변을 둘러 볼 새도 없었지만 이제는 익숙한 그 네팔만의 냄새가 내 코를 자극했다. 그 퀘퀘한 공기, 후덥지근한 날씨, 미친 듯이 짖어대는 개들이 네팔을 증명해주었다. 두 번째 네팔, 더 이상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소, 개, 닭, 원숭이는 무섭지 않았다. 하지만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 앞으로 내 인생에서 이어나갈 점들을 넓혀간다는 것은 절대 익숙해지지도 않고 익숙해져서도 안될 것이다. 언제나 시작은 조심스럽게, 신중하게, 설렘을 가득 품고.

 

 아침 일찍 일어나 버스를 타고 약 30분간 카트만두 시내를 지나 산속으로 들어가 어느 칼란키스쿨에 도착했다. 약 삼사십 명 정도 되는 아이들이 교문 앞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익숙한 하늘색 교복을 입은 아이들을 보니, 지금 또 다시 내가 네팔에 아이들을 만나러 왔구나 하고 실감이 났다. 우선 멤버들과 홍콩공항에서 쪽 팔림을 무릅쓰며 열심히 연습했던 보핍보핍 공연을 하고, 아이들의 장기자랑을 보며 아이들과 친목을 쌓았다. 약 한 시간도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바뀐 아이들의 눈빛과 태도를 보며 아이들의 순수함을 다시 한번 느꼈다. 첫 시간 봉사에는 아이들에게 한국 동요와 영어로 된 동요를 가르쳐 주고, 뜻을 가르쳐 주고, 함께 노래 부르고, 율동을 함께 해하는 활동을 했다. 처음은 쭈뼛쭈뼛 하던 아이들도 나와 다른 봉사 멤버들의 격정적인 노래와 율동에 마음이 움직였는지 수업이 끝날 때쯤에는 수줍어하던 여학생들도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며 함께 하고 있었다. 여러 차례 봉사활동을 다니며 깨달은 교훈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자기 자신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씻지 못하는 것, 쪽 팔린 것 따위 생각할 필요 없이 그저 이 아이들과 함께하고 이 아이들과 같이 시간을 보낸다는 점에 의의를 두고 나를 버려야 아이들도 빨리 마음을 열고 다가올 것이다. 점심을 먹은 후에는 교실 벽 페인트 칠을 했는데, 창문 밖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고 우리를 바라보던 아이들, 우리가 가르쳐 줬던 노래와 율동을 자랑하던 아이들이 얼마나 사랑스러웠는지 모른다. 손에 장갑을 끼고 있지 않았다면 달려가서 꼭 안아주고 싶었다. 페인트를 어느 정도 칠하고 하루 일과가 끝난 후에 숙소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이틀 사이에 얼마나 많은 일이 생겼는지를 생각하며 잠이 들었다

 <아이들과 첫 대면 후 환영식>

 

그 다음 날, 또 다시 학교로 왔다. 이번에는 아이들이 버스 소리가 들렸는지, 학교 바깥까지 나와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첫 날과 같이 오전에는 교육 봉사로 둥글게 둥글게와 동대문 놀이를 가르쳐 주었고 오후에는 페인트칠이 진행되었다. 전 날과 달라진 점이 있었다면 아이들의 장난이 조금 더 심해졌고, 리마라는 아이가 마음을 열었다는 것이다. 리마는 학교에서 가장 어린 아이로, 수업을 듣지 못하는데도 그저 학교에 있는 것이다 사실 학교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학교에 있을 수 밖에 없었고, 다른 아이들과 차이점이 또 하나 있다면 그 아이는 하루 종일 학교에만 있었다. 밤이 되어도 돌아갈 집이 없었다. 어머니와 아버지 모두 어디로 갔는지 모르고 혼자 남은 리마를 학교로 데리고 오긴 했지만 그 누구도 리마를 데리고 가 키울 수 있는 형편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제 겨우 네 살 밖에 안 된 리마는 하루 종일 학교에서, 밤이 되면 혼자 학교에 남아있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첫 날, 나를 포함한 많은 멤버들이 리마를 웃게 만들려고 갖은 노력을 했지만 리마는 그저 시크한 표정으로 우리를 쳐다볼 뿐이었다. 이렇게 시크한 리마 성격 덕분에 둘 째 날 본 리마의 웃음이 더욱 값지게 느껴졌던 것 같다. 그래서 어떻게 하다가 리마가 웃음을 지었느냐? 언제부터인가 리마한테서 시큼시큼한 냄새가 나서 치마를 만져보니 치마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그렇다. 그런 것이었다. 얼른 리마를 수도가로 데리고 가서 일단 다리만 씻기고 다시 교실로 데려와 기증할 물품 중에 있었던 티셔츠와 바지 하나를 꺼내 입혔다. 티셔츠가 너무 커서 의도치 않게 어깨가 훤히 드러나는 오픈 숄더 드레스가 되어 버려, 또 기증 물품 상자에서 담요 하나를 꺼내 리마 키에 맞게 자른 후에 리마 어깨에 돌돌 싸맨 후에 예쁘게 묶어줬다. 그제서야 리마가 환하게 웃었다. 그 웃음이 얼마나 예쁘던지, 또 그 예쁜 웃음 때문에 얼마나 마음이 아프던지.

  

<환하게 웃는 리마>

 

봉사 셋 째날, 그리고 아이들과 헤어지는 날. 역시나 아이들은 우리보다 먼저 와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 없었기 때문에 아이들과 함께 교실 꾸미기에 나섰다. 색종이를 열심히 자르고 붙이고 해서 벽을 장식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난 것 같지도 않은데 벌써 가야 할 시간이 왔다. 나를 포함한 다른 멤버들은 지금 가면 언제 또 이 아이들을 보러 올 수 있을까, 그 때까지 아이들이 지금만큼만 잘 자라주고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아이들과의 이별을 준비하고 있는데, 정작 아이들은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이 아이들이 우리가 내일은 여기에 오지 못 한다는 사실을 알기는 한 걸까 궁금해질 찰나에 나이가 조금 많은 여학생이 눈물을 보였다. 그제서야 다른 아이들도 우리의 손을 꼭 붙들며 다음에 또 오라는 약속을 받아냈다. 난 이 다음 해에도, 그 다음 해에도 네팔로 와야 할 운명인가보다.

 

 다음 날, 버스를 타고 다음 학교인 부미마타 학교로 출발했다. 카트만두 숙소에서 버스로 두 시간, 내려서 걸어서 한 시간 반 등산을 한 후에야 마침내 도착한 부미마타 학교는 사실 두 번째 방문이었다. 2011년 여름에도 네팔로 봉사활동을 왔었는데 그 때도 같은 학교에서 활동을 했었다. 환영식을 하는데 어디선가 계속 누군가 나를 빤히 바라보는 느낌이 들어 고개를 돌려 봤더니 2011년에 봤던 꼬마아이가 나를 알아보고 눈인사를 건네고 있는 것이었다. 나를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하고 기대는 하고 있었는데 진짜로 나를 알아봐주니 너무 고마웠다. 이 맛에 봉사를 오는구나 싶었다. 짧은 눈인사를 나누고 곧 바로 자매결연식이 시작되었는데, 나는 지난번 왔을 때 자매결연을 맺었던 프래틱샤의 동생 자무나라는 친구와 자매결연을 맺었다. 자매결연을 맺은 친구의 집에서 홈스테이를 하게 되는데, 지난 번에 갔던 집이라 긴장보다는 설렘과 즐거움이 앞섰던 것 같다. 자매결연식 후에 간단히 학교를 둘러 보는데, 나를 알아보는 더 많은 아이들이 나를 반겨주었고 학교에 새로 생긴 도서관과 책들을 소개해주었다. 이렇게 많은 사랑스러운 아이들과 함께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한국에서 받았던 여러 가지 스트레스들이 모두 치유되는 것 같았고, 왜 또 네팔로 오게 되었는지 또 올 것인지 다시 상기시켜 주는 듯 싶었다. 학교가 마칠 때쯤에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졌다. 한 손엔 생수, 다른 한 손엔 침낭, 또 등에는 무거운 배낭을 매고 이끼가 낀 돌과 좁은 산길을 약 45분간 또 열심히 등산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찔해졌다. 다행히도 금방 비가 그치고, 자무나와 함께 집으로 나란히 걸어갔다. 또 옆에는 아즈미타라는 작년에는 보지 못한 어린 여자아이가 같이 걸어가고 있었는데, 집이 가까워서 가는 김에 같이 가고 있었다. 내 한쪽 손에 들려 있던 침낭을 빼내서 자기가 들고는 내 손을 꼭 잡는데 얼마나 내 딸이었으면 좋겠다 싶은 마음이 들만큼 너무 사랑스러웠다. 그래서 자무나와 아즈미타와 함께 자무나네 집까지 왔다. 자무나가 아즈미타에게 네팔어로 뭔가 말하더니, 아즈미타가 나에게 “빠이빠이~” 하고는 집으로 후다닥 뛰어갔다.

 <아즈미타와 나>

 

 자무나네 집으로 들어가기 전에 작년에도 보았던 버팔로, 염소, 닭, 개 등의 별로 반갑지 않은 동물들이 나를 반기고 있었다. 동물 떼를 지나고 나서야 반가운 자무나네 가족들이 나를 반겨주었다. 자무나네 어머니, 할아버지, 프래틱샤, 자무나네 오빠, 그리고 작년에도 있었던 이웃인 쑤렌까지. 비교적 영어를 잘하는 자무나네 오빠와 쑤렌이 통역을 해주며 일 년 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학교 생활은 어떤지 등등을 이야기했다. 사실, 처음에 홈스테이 하러 왔을 때는 너무 긴장해서 처음에는 가족들과 어색했다. 종종 어색한 침묵이 흐르기도 했고, 어색한 웃음으로 그 시간을 무마하려고도 했지만 헤어질 때쯤이 되어서야 친해질 수 있었는데, 두 번째로 오니 훨씬 마음도 편하고 즐거웠다. 저녁을 먹기 전까지 나는 ‘제로’나 ‘프라이팬 놀이’ 같은 한국 게임을 소개해주고, 자무나네 오빠와 쑤렌, 프래틱샤, 자무나는 나에게 네팔어 단어 몇 가지를 가르쳐 주었다. 사실 거의 일 년이 다되어가는 지금은 기억이 가물가물 하지만 그 때 당시에는 열심히 노트에 필기까지 해가며 열심히 배웠던 것 같다. 네팔의 식사시간은 굉장히 늦다. 준비는 이른 시간부터 하지만 거의 8시나 되어야 저녁을 먹는다. 메뉴는 언제나 그래왔든 달밧. 우리나라로 치면 백반 같은 가장 전통적이고 대표적인, 밥과 콩죽, 그리고 여러 가지 향신료로 이루어진 반찬 같은 것들이 나온다. 그리고 내가 갔을 때는 항상 닭을 잡아 주셨는데, 나중에야 알았지만 그게 특별한 손님이나 경사가 있을 때만 닭을 잡는다고 한다. 올해 여름 다시 네팔을 갈 계획인데, 이번에 가면 꼭 너무 감사하다고 말씀 드려야겠다. 자무나네 어머니의 정성 덕분인지, 입에 발린 말이 아니라, 자무나네 집에서 먹는 달밧이 어느 식당에서 먹었던 밥보다 맛있었다. 카트만두 시내의 식당에서 먹었던 달밧은 향신료 향이 너무 강해서 다 먹기가 힘들었는데, 자무나네 집에만 가면 밥을 한 그릇 뚝딱 해치울 수 있었다. 그리고 밥을 다 먹고 주는 호박만한 오이는 정말 맛있다. 한국에서도 맛 볼 수 없는 맛이다. 네팔에 가면 꼭 먹어보길 추천한다! 밥을 다 먹고 나면 방에 앉아서 도란도란 이야기 하다가 잠이 든다. 양치, 세수, 그런 것은 홈스테이 하는 동안은 잊는 것이 최고의 방안이다. 세수는 내일 아침에 하고, 양치는 다음 날 학교에 가서 하면 된다! 다른 사람이 보면 조금 더러워 할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직접 홈스테이를 하다 보면 그런 생각이 쏙 사라질 것이다. 사실은 내가 이렇게 된 데는 비화가 있다. 작년에도 자무나네 집에서 홈스테이를 했는데, 그 때는 뭣도 모르고 자기 전에도 깨끗하게 세수와 양치, 아침에는 심지어 머리까지 감았다. 내가 물을 너무 많이 써서 자무나네 어머니가 설거지를 못하셨다는…… 슬픈 이야기가 있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등교길>

 

홈스테이 둘째 날, 아침 일찍 닭이 우는 소리에 깼다. 얼른 대충 물로 세수한 후에 옷을 갈아입고 학교로 가려고 나갔는데, 아즈미타가 나와 자무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학교 가는 길은 더 짧게 느껴졌다. 가는 길에 과일들도 따 먹고, 다른 등교하는 아이들과 만나며 가다 보니 학교에 도착할 때쯤에는 거의 열 명에 이르는 아이들과 함께 걷고 있었다. 학교에 도착하니 다른 봉사 멤버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하루 떨어져 있었을 뿐인데 이렇게 반가울 줄이야! 반가운 것도 잠시, 오전과 오후에 진행될 봉사활동에 대해 이야기하고 준비하느라 아이들과 함께 있을 시간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 새부터인지 아즈미타가 나의 뒤만 졸졸 따라다니고 있었다. 그러고는 나의 등을 콕 찌르고, 내가 쳐다보면 먼 산을 바라보는 척, 또 콕 찌르고, 먼 산 바라보는 척. 어찌나 귀여운지! 수업시간이 되어 나는 고학년 친구들에게 음계와 박자에 대해 가르쳐주고 있었다. 수업을 한 시간 동안 진행하는데, 이 한 시간은 생각보다 훨씬 길었다. 시간이 조금 남아 아이들과 같이 운동장에서 게임을 하고 있는데, 또 어느 샌가 아즈미타가 내 등 뒤에 서있었다. 이렇게 아즈미타는 정말 하루 종일 내 곁에 있었던 것 같다. 사실 아즈미타랑 많은 이야기를 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함께 있는 것 만으로도 웃음이 나오고 재미있고 행복해지는 시간이었다. 오후에는 새로 생긴 도서관에 페인트 칠을 하고 있었는데 역시나 아즈미타가 스윽 다가오더니 나에게 빨갛고 네모난 뭔가를 줬다.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네팔 아이들이 먹는 일종의 불량식품이라고 나중에서야 전해 들었다. 사실 학교에 오기 전 가이드가 아이들이 주는 음식이나 물은 배탈날 위험이 있으니 먹지 말라고 하는데, 어떻게 이렇게 예쁜 아이가 주는데, ‘안돼. 배탈이 날수도 있기 때문에 먹을 수 없어’라고 단호하게 거절하겠는가. 처음에는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며 ‘No, I’m full’ 이라고 말했지만, 아즈미타가 계속 권하기에 어쩔 수 없이 한 입 베어 먹었다. 이 맛은 형언할 수 없는 신비와 미지의 맛이었다. 매운데 시고, 신데 짜고, 짠데 달았으며 씹으면 씹을수록 맛이 강해졌다. 내가 손으로 입을 부채질 하며 ‘Hot! Spicy!’ 하고 외치자 아즈미타가 나를 데리고 수도가로 갔다. 마음속으로는 ‘아즈미타, 안되’를 되 내이고 있었지만 아즈미타에게 거절을 할 수 없었기에 아즈미타가 보여준 것처럼 수돗물을 마셨다. 원래 알고 있긴 했지만, 이 날 다시 깨달았다; 나의 장은 굉장히 튼튼하다. 아이들의 불량식품과 수돗물을 마셨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배는 굉장히 멀쩡했다. 학교 수업이 마치고 또 다시 자무나네 집으로 가는 길에, 이번에는 더 많은 아이들이 함께했다. 굉장히 시끌벅적하고 정신 없는 하굣길이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 즐거웠고, 집으로 가는 길이 짧게만 느껴졌다. 이 날 자무나네 집에서, 저녁을 기다리며 ‘멘디’라고 불리는 일종의 헤나를 자무나가 해줬다. 나의 손에 여러 그림과 글자를 그리고, 말린 후에, 레몬즙과 오일로 닦아내면 갈색 무늬가 생긴다. 다 하고 나니 내 양 손 가득 갈색 ‘Jamuna & SunYeon’ 라는 글자, 하트와 꽃으로 가득 찼다. 멘디를 하느라 꽤 오랜 시간이 걸린 모양인지, 곧 밥 먹을 시간이 되었다. 손이 네팔화 된 기념으로 밥도 네팔사람처럼 숟가락 없이 먹기에 도전했다. 원래 네팔 사람은 밥을 오른손으로 먹는데, 외국인인 나를 배려해 식사 때 마다 숟가락과 포크를 줬었다. 하지만 이번엔 내가 괜찮다며 숟가락과 포크를 다시 돌려주었고, 가족들은 호기심에 가득 찬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처음 손을 밥에 갖다 댔을 때에는 너무 뜨거워서 나도 모르게 움찔하고 손을 떼어 버렸다. 그러자 가족들은 웃음을 터뜨렸고 모두가 어떻게 하면 밥이 잘 퍼지는지 손 모양으로 가르쳐 주었다: 마치 손으로 국자를 만들 듯 손을 잘 오므리고 옴폭하게 접어서 콩죽과 잘 섞은 밥을 듬뿍 퍼서 입으로 쏙~. 하지만 이 과정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우선 밥과 콩죽은 굉장히 뜨거웠고, 밥이 한국에서 먹던 쌀과는 다른 펄펄 날리는 쌀이라 손으로 뜨는 순간 내 손가락 사이로 줄줄 세어나갔다. 입에 넣었을 때에는 밥 알 몇 개 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내가 이렇게 고전을 하는 동안, 나를 관찰하고 있던 가족들은 웃음을 터뜨렸고, 다시 나에게 손 모양을 가르쳐 주었다. 이 날 저녁밥 먹기는 시간도 오래 걸리고 밥도 유달리 짭짤하게 느껴졌지만, 가장 유쾌하고 재미있는 식사시간이었다고 감히 자부할 수 있다.

 

 홈스테이 셋째 날, 아침에는 역시 세수만 대충 하고 자무나, 아즈미타와 함께 학교로 출발했다. 가다 보면 역시 다른 친구들도 함께 하고, 어느 샌가 내 손에 들려있던 짐 대신에 내 손을 꼭 잡고 있는 아이들의 손이 있었다. 이 날은 유달리 날씨가 좋아 산 저~쪽에서 걸어오는 노란 셔츠를 입은 다른 봉사 멤버와 파란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학교로 걸어오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학교에 도착하면 얼른 수도가로 가서 세수와 양치를 한 후 다른 멤버들과 다시 반갑게 인사를 한 후 봉사활동 준비를 했다. 아이들에게 이 날은 아리랑을 가르쳐 주었다.

 

< 아리랑을 부리는 아이들의 모습>

 

 아이들과 삼일 동안 꽤 친해져서 수업시간에도 적극적으로 아이들이 따라 해주고 참여해주어서 이제 수업시간도 쉬는 시간과 다를 것 없이 즐거운 시간이 되었다. 그리고 이 날 오후 수업이 삼박 사 일 간의 활동 중 마지막 수업 시간이 될 것 같아 아이들과 의미 있는 활동을 준비 했는데, 종이 한 쪽에는 되고 싶은 것, 하고 싶은 일, 사랑하는 사람을 쓰고 풍선 한 쪽에는 방해가 되는 것, 싫은 것을 써서 종이는 교실 벽에 붙여 장식하고 풍선은 터뜨려 날려 버리는 것이었다. 생각했던 것 보다 아이들이 진지하고 신중하게 활동해 주어서 더 마음이 찡했던 순간이었던 것 같다. 아이들이 사랑하는 사람은 부모님, 가족, 남자친구, (내 이름도 있었다!)등등 많았고 하고 싶은 일도 많았다. 흐뭇하게 그 종이를 바라보다가 문득 풍선을 보니 아이들이 모두 풍선에 쓴 것은 거의 한 단어 밖에 없었다. Money. 어느 나라를 가든, 어느 지역을 가든, 돈이라는 것은 많은 것을 가능 하게 하지만 많은 것을 못하게 하기도 한다. 이렇게 사랑스럽고 선하고 똑똑한 아이들이 돈이라는 것 때문에 많은 것을 이루지 못하게 된다는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아이들이 순수하고 밝고 늘 행복한 것은 돈이라는 것이 아직 이 아이들에게 침투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닌가 싶어 다행이기도 했다. 이 아이들은 누구보다 행복한 삶을 살고 있고 선하다, 정말 그 누구보다도.

 

 

 그날 밤, 홈스테이에서 마지막 밤을 보내는 날, 그 어느 때 재미있고 신나게 보냈다. 식사시간 전 까지 아이들과 노래를 틀어 놓고 열심히 춤을 췄다. 작년에 왔을 때에도 비슷한 상황이 있었지만 작년에는 창피하고 춤을 춰본 적이 없던 터라 계속 거절만 하고 제대로 놀지 못했었다. 하지만 올해에는 나를 버리기로 마음을 먹고 왔기 때문에 내 몸이 어떻게 움직였는지는 모르지만 가족들과 그리고 이웃들도 다 같이 모여서 웃고 떠들고 춤추며 즐거운 밤을 보냈다. 너무 열심히 춤을 췄던 터라 머리와 옷에 땀이 축축하게 젖어 홈스테이 하는 동안 처음으로 머리를 감게 되었다. 지난 번 경험을 떠올리며, 최대한 빨리 머리를 감으려고 다 젖지도 않은 머리에 샴푸를 열심히 칠했다. 그리고 깨끗이 씻고 난 후에 또 졸졸 흐르는 물에 세수를 하는데 그 시원한 물이 개운하기도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시원한 샤워가 정말 절실했다. 그 다음 날이면 카트만두 시내로 돌아가서 샤워를 할 수 있겠지만 그 전에 아이들과 가족들과 이별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혼란스럽기도 하고 개운하기도 하고 마음이 복잡했다.

 

  다음 날 아침, 그 어느 때 보다 깨끗한 몸과 마음으로 학교로 향했다. 마지막 날은 아이들과의 운동회를 준비했는데, 과자 릴레이, 림보, 포대 달리기, 제기차기, 단체 줄넘기, 그리고 마지막은 단체 얼음 땡으로 마지막으로 아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운동회 내내 아즈미타가 계속 또 나를 졸졸 따라다녔다. 내 손을 꼭 잡고, 나의 곁을 떠나지 않는 아즈미타는 나마저도 아즈미타처럼 행복하고 밝은 기운으로 가득가득 채워주었다. 그 즐거운 기운으로 모든 게임에 열심히 참여했다. 마지막으로 얼음 땡까지 마치고 학교 선생님들과 봉사 멤버들이 줄다리기를 했는데, 모두가 정말 열심히 온 힘을 다해 줄을 잡아당겼음에도 불구하고 3패의 기록을 세웠다. 땀을 뻘뻘 흘리며 아이들과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이제는 헤어질 시간이 왔다. 트럭이 학교 정문 앞까지 짐을 실으러 왔고 팀장님도 이제 멤버들에게 빨리 가자고 재촉하기 시작하셨다. 운동장을 지나며 차례로 아이들과 인사를 하며 잘 가고 있었는데, 첫 번째 힘든 관문을 만났다, 자무나와 가족들. 그리고 자무나의 어머니와 자무나의 오빠, 그리고 이웃까지 나를 배웅해주기 위해 먼 길을 걸어오셨다. 삼박 사일 나와 거의 함께 했기 때문에 영어를 잘 못해도, 말이 잘 안 통해도, (이런 말은 뻔하지만) 서로의 마음은 이해할 수 있었다. 나도 자무나를, 자무나도 나를 정말 아껴주고 챙겨주었으며 헤어지니 마음이 먹먹했다. 특히나 자무나네 어머니는 작년에도, 올해에도 말 한마디 통하지 않는 나에게 무한하게 베풀어주셨다. 문득 만약에 우리 가족이라면 어땠을까? 과연 자무나네 가족만큼 나를 반겨주고 아껴 줄 수 있었을까? 아직까지도 자무나네 가족에게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겨우겨우 작별인사를 하고 무사히 통과했다. 그런데, 얼마 못 가 아즈미타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작년에, 26살 건장한 오빠가 울 때에도 나는 울지 않고 꿋꿋이 내년에 보자며 인사를 하며 무사히 잘 내려왔는데 올해 아즈미타, 그 조그만 아이가 나를 붙잡으니 어떻게 해야 할 줄을 몰랐다. 나는 이 아이에게 해준 것이 정말 하나도 없는 것 같은데, 이 아이는 첫 날부터 나를 졸졸 따라다니며 나에게 무한한 정을 주었던 것 같다. 또 이 날에는 이렇게 나를 위해 주고, 나를 사랑해준 아이를 울리다니, 너무 미안하고 미안하고 미안했다. 학교에서 카트만두로 가는 내내 멤버들과 이야기하고 농담할 의욕도 나지 않았다. 아즈미타에게 괜한 상처를 준 것 같아 미안한 마음에 그럴 수가 없었다.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다 보면 행복하고 고맙지만, 이렇게 짧은 시간 본 후에 곧 이별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봉사활동을 가는 것이 괜히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 아닐까 걱정 될 때가 많고, 아직도 봉사를 갈 때마다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이제 거의 봉사활동은 끝났다. 약 삼박 사일 간의 관광 일정이 시작되었는데, 학교에서 활동하는 동안 온 힘을 다 써서 너무 지쳤었다. 거기다가 포카라로 이동하는 버스에서 여섯 시간을 보낸 후에는 몸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멤버들도 이렇게 지쳐 했던 터라 팀장님이 우리를 데리고 한식당, ‘서울 뚝배기’로 향했다. 라면, 해물파전, 된장찌개, 김치찌개, 콩국수… 그제서야 멤버들의 얼굴에도 나의 얼굴에도 생기가 살아나며 다시 에너지 100% 충전된 우리들로 돌아왔다. 우선은 페와호수와 근처의 거리들을 걸어 다니며 자유를 만끽했다. 홈스테이를 하며 서로 볼 꼴 못 볼 꼴 다 보여준 사이에 더욱 친해진 멤버들과 너무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얼마 전 한 케이블 방송사에서 한 드라마 ‘나인’에서 포카라에서 내가 멤버들과 걸었던 거리가 나왔는데 너무 반가워서 마음이 아득해졌다. 아직도 멤버와 연락은 수시로 하지만 멤버 다시 그 장소 그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없음에 슬펐지만 그래도 그 한 번의 추억이 있음에 감사했고 새로운 인연을 만나게 해준 아이들과 봉사활동에도 감사했다. 포카라에 있는 ‘YOU & I’숙소에 들어갔다. 숙소는 정말 감격스러웠다. 1인용 침대에 샤워실 에는 따뜻한 물까지 나왔으니 말이다! 처음 숙소에 도착했을 때에는 그저 감격스러웠다. 도착하자마자 짐을 풀고 샤워실로 뛰어들어가 따뜻한 물을 만끽하려 했다. 그런데 따뜻한 물로 머리를 감고 있으니 문득 아이들 얼굴이 하나하나 생각이 났다. 아이들과 그렇게 헤어진 것이 하루밖에 되지 않았는데 이렇게 아이들을 잊고 사치스러운 생활에 빠져들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얼른 머리를 감고 샤워를 하고 나왔다. 그 날 저녁에 멤버들이 다 같이 모여 여태까지 한 봉사활동과 느낀 점을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아이들을 처음 봤을 때 긴장했던 마음, 이 긴장이 점점 사랑으로 바뀌어가는 과정, 그리고 아이들과의 헤어짐. 이야기를 하다 보니 사람마다 얼마나 다양한 사고를 하고 있는지, 또 각각의 사람이 어떠한 꿈을 가지고 있으며 어떠한 생각으로 봉사를 오게 됐는지에 대해 더 깊은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어떤 친구는 엄마가 억지로 보내서 왔고, 어떤 친구는 엄마에게 졸라서 왔다. 어떤 오빠는 여기 오기 위해서 아르바이트를 죽어라 했고, 어떤 언니는 여기 오기 위해 직장을 그만 두었다. 어떤 친구는 아직 꿈이 정해지지 않았고, 어떤 친구는 다음에 이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 꿈이라고 한다. 어떤 오빠는 교육 불평등을 없애는 것이 꿈이고, 어떤 언니는 그저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 꿈이라고 한다. 나는 네팔에 약속을 지키러 왔다. 작년에 아이들과 내년에 다시 오겠노라고 했던 약속. 그리고 나의 꿈은 적어도 교육에 있어서는 모두에게 평등한 기회를 주는 것이다. 경제적으로 내가 이렇게 많은 아이들과 마을을 도움을 줄 만한 능력이 없을뿐더러 경제적 도움은 일시적이라고 생각한다. 교육은 아이들에게 자립할 기회를 주며 아이들이 가족과 마을을 일으킬 수 있는 능력을 줄 수 있다고 믿는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발표를 들으며 이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음에 감사했고, 이런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아이들이 더 행복해 질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포카라에서 남은 이틀을 쇼핑도 즐기고, 경치도 구경하고, 패러글라이딩도 했다. 매 순간이 내가 여기 네팔에 멤버들과 함께 있다는 사실에 행복했다. 포카라에서의 마지막 날 새벽 다섯 시에 일출을 보기 위해 사랑곳으로 갔다. 작년에 왔을 때에는 두 차례나 사랑곳을 갔지만 날씨가 흐려 결국 보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갔다. 이번에도 걱정 반 설렘 반 하는 마음으로 사랑곳을 올랐다. 왠지 느낌이 좋았다. 그렇다. 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저기 저 멀리 높디 높은 히말라야 산 사이로 눈 부신 태양이 떠올랐다. 그제서야 왜 사람들이 히말라야에 오르려고 목숨까지 포기하는지 이해가 될 것 같았다. 히말라야는 대단했다. 말 그대로 대단했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 지 모르겠다. 사진에도 담아보려고 했지만 사진만으로는 설명을 다 할 수가 없다. 웅장하지만 위압적이지 않고 저기 저 멀리 있지만 마음속에서 느낄 수 있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 에게도 꼭 권하고 싶다. 죽기 전에는 꼭 히말라야를 느껴보라고.

 

 

포카라를 떠나 다시 카트만두로 돌아왔다. 이제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었다. 공항 가는 버스 안. 공항. 출국장. 그리고 비행기.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비행기 안에서 옆에 앉았던 멤버와 이야기를 하면서 네팔에서 있었던 일들을 떠올렸다. 처음 어색했던 순간부터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만난 순간, 홈스테이 할 때, 아이들과 이별할 때, 관광, 그리고 지금까지. 한 순간 한 순간이 정말 잊지 못할 기억이 될 것이라고. 한국에 돌아가면 이번 여정이 그립겠지만 미련도 후회도 아쉬움도 남지 않을 것이라고. 매 순간 매 순간 내 최선을 다했고 그 만큼 행복했기 때문에.

 사람은 한 순간이라도 그 순간이 얼마나 소중하고 행복한 순간인지 느낀다면 남은 평생을 그 기억을 떠올리며 어려움을 헤쳐나가며 그 순간 순간을 소중하게 살 수 있다고 지난 번 봉사 때 만난 언니가 말해준 적이 있다. 나는 참 복을 많이 받은 사람인 것 같다. 한 순간이 아니라 2주를 그렇게 살았고, 거의 일년이 지난 지금도 이 글을 쓰면서 그 때의 기억을 떠올리고 있자니 행복해진다. 이렇게 넘치는 복 평생 아이들과 나누며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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