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활동경험담

교과서 밖으로 뛰쳐나간 여고생
글쓴이 채예슬     소속 고등학생

날짜 13.06.20     조회 2406

국제활동 경험담 공모전
  • 서울시립청소년문화교류센터 미지
  • 2013년 당선작

 

 

 

Willkommen, zu Deutschland !!
독일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 Motiv
독일, 교환학생, 나.
고등학생 2학년, 다가올 입시, 결코 함부로 도전할 수 있었던 시기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의 허락과 지지를 받아 대한민국 반대편 나라에 있는 독일의 교환학생으로 지원하기까지에는 나의 큰 동기가 필요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일단 한국의 ‘책상 공부’가 너무 지겨웠다. 성적이 나쁜 편은 아니지만, 누군가가 시켜서 하는 공부, 눈치 보면서하는 공부, 친구들과도 보이지 않는 경쟁을 하면서 해야하는 그것들이 너무나 싫었다. 미국은..... 이렇게 공부한대, 유럽은 .... 이렇게 공부한대.
귀로만 듣던 그 말들을 몸으로 느껴보고 싶었다. 그러던 중 ‘국제학생’이라는 프로그램을 접하게 되었고, 스스로 몇 번이고 생각하고 고민하고 결단을 내린 후, 부모님께 여쭤보았다. 나를 믿고 지지해주실 수 있냐고. 부모님은 내게, 스스로 책임질 수 있다면 나를 지지해주신다고, 허락을 받았다.
이렇게 한 발 한 발, 나의 국제학생에 대한 열망과 준비가 진행되었다.

 

#
출국 전, 인터넷 상에서 다녀왔던 사람들의 후기나 관련 글들을 찾아 읽어 보았다. 함께 올려져 있는 사진들의 주인공들이 행복해보였다. 나도 어서 유럽 땅에서 나의 새로운 가족들(호스트 가족)과 새로운 학교에서의 생활들을 즐기고 싶다는 마음이 마음 속에서 계속 샘솟았다.


#
유럽, 독일 땅에 도착하고 호스트를 만나 인사를 나누고 학교도 등록하고 새롭고 흥미진진한 하루 하루를 보냈다. 호스트 가족도, 학교 친구들과 선생님, 모두들 내게 친절하였다. 아무래도 부족한 독일어지만 여러 사람들의 도움 속에 커다란 힘겨움 없이 좋은 시간들을 보냈다.
출국 전에 인터넷 상의 후기들을 보면, ‘힘들었지만, 돌아와 돌이켜 보면 좋은 경험이였다. 돌아가고 싶은 적도 있었지만, 누구나 쉽게 경험할 수 없는 유익한 시간이였다.’ 등의 문장들이꼭 있었다. 당시에 읽을 때는, ‘왜, 힘들지? 물론 가족을 떠나 고국을 떠나 생활하는 건 힘들지만 아무나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은 아닌데, 가족이야, 스카이프 통화하면 되고, 한국이야 교환 학생 일정 마치고 돌아올 수 있는 것인데 왜 저렇게들 난리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유럽 땅에 와 실제로 교환 학생을 경험해 보니 그 사람들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있었다. 나의 진짜 가족이 아닌 호스트 가족, 새로우며 부족한 언어, 완전히 새로운 환경과 문화, 180도 다른 식생활 등 사방 곳곳에서 스트레스가 튀어나왔다. 말하자면, 슬럼프가 온 것이다. 그 때가 되면, 별 거 아닌 작은 것에도 스트레스 받고 짜증내고, 호스트와의 교류는 줄어 들고 방에 있는 시간, 컴퓨터로 한국 사이트를 접속하는 시간, 휴대폰으로 친구들과 메시지 주고 받는 시간이 늘어난다. 나 같은 경우는 어머니께 거의 매일 아침, 저녁으로 스카이프를 요청하였고, 어머니께 투정부리고 한국에 돌아가고 싶다고 졸랐다.

 

처음에 나를 위해 배려해주던 것 같던 호스트 가족들도 본래의 생활 방식과 성격으로 돌아와하루를 살아갔다. 처음이니, 나를 위해 배려해주고 신경써주었던 것 뿐이였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였던 것이다. 1년 간의 독일 호스트 가족을 두 가족을 만났다. 첫 번째 가족은 나의생각 선에선 굉장히 힘들었고, 상식적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던 가족이였다. 돌이켜 생각하고싶지 않을 만큼. 결국엔 서로 큰 소리까지 내며 싸우게 되는 상황까지 치달았다. 내가 소속되어 있던 기관에 새 호스트로 옮겨 달라고 요청을 보냈고, 기관에서도 상황을 인지하고 내 요청을 승낙해주었다. 호스트와의 슬럼프와 빠질 때쯤, 학교 생활에도 문제가 발생하였다. 나쁜 일은 한꺼번에 온다고 하지 않았던가, 친했던 친구들이 점점 멀어지고 대화 수도 점점 줄어들었다. 학교 측에 반 변경이 가능한 지 문의하였고 담당 선생님께 허락받고 관련 서류를 작성하면 가능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서류를 작성하여 제출하였고 반이 변경되고 며칠 후 호스트맘께서 나를 부르셨고 다짜고짜 화를 내셨다. 내가 제출한 서류에 문제가 좀 있었던 것이다.
그 후로 우리(나와 호스트맘 사이)는 한 동안 대화 조차 없는 냉냉한 분위기 속에 하루하루를지냈다.
첫 번째 호스트와는 반 개월 정도 넘게 함께 지냈다. 위에 적은 것처럼, 적은 것 이외에도 서로 여태껏 살아온 생활 방식이 너무나 달라 많이 부딪히고, 밤 늦게 깊은 대화가 오가고, 울기도 하였다. 부모님과 함께 살 때는 내가 저지를 실수나 잘못도 보통은 부모님께서 책임지시거나 적어도 호된 결과는 없었는데, 아무도 없이 나 혼자 지내고 모든 일을 해결해야 하니 여간 힘겨운 것이 아니였다. 도중에 실수라도 하면 엄청난 후폭풍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당시에는 너무 힘들고 모든 걸 다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들도 있었지만, 푹 자고 다음 날 아침 씩씩한 마음으로 하루를 다시 시작해나갔다.
나는 확신한다. 이렇게 힘든 경험이였어도, 한국 학교, 책상 위에서 공부하는 것 이외에 많은 것을 배웠다고. 나의 잘못된 습관부터 홀로서기까지.
후엔 호스트를 바꿨고, 두 번째 호스트와는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 타국에서 맞는 첫 번째 내 생일!
1년 간 지내다 보면 생일 날짜가 돌아오기 마련이다. 나 역시도 예외는 아니였다. 여태껏 내생일을 챙겨주던 가족들도, 사랑하는 내 친구들도 곁에 없는 생일이지였지만, 그 못지않게 축하받으며 잘 지냈다. 함께 생활하는 호스트에게는 바이올린 공연 티켓을 선물받았다. 내가 클래식에 흥미있는 지 어떻게 알았는지. 학교 친구들에게는 정성 가득 담긴 작은 선물들이나 독일어 편지를 선물로 받았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았던 선물은 친구가 직접 만든 한국어 내이름이 적힌 초코케익이였다. 최고였다. 친구가 생일 전부터 생일 케익 만들어 줄거라고 계속이야기는 했지만 한글 이름까지 새겨줄 줄은 생각도 못했던 터인지 감동이 2배가 되었다. 다른 친구들도 축하해주고 기뻐해줘서 가족과 한국 친구들이 없는 생일이였지만 외롭지 않은 즐거운 생일을 보냈다.

 

 

# 축제(Fest)

독일은 주마다 특색, 휴일, 규칙(?) 같은 것이 조금씩 다르다. 내가 살았던 Nordrhein-Westfalen 주는 카니발이 개최되었다. 거리 행렬이 시작되기 전 상인들이 곳곳에 자리를 잡고 맥주와 먹거리들을 팔기 시작하였고 곧이어 재미있는 거리 행진들, 정치적 풍자 퍼레이드들이 줄지어 행렬하였다.
우리 나라에는 이런 형식의 축제가 드문지라 신선한 경험이였다. 노래도 사방팔방에서 울리고, 다들 아무걱정 없이 그 날 만큼은 맥주에 취해, 분위기에 취해, 사람해 취해 실컷 노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나라도 저런 분위기가 점점 형성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은 주변 분위기, 눈치를 보면서 놀아야하니까.

 

# 틀린 것이 아닌 ‘다를’뿐인 문화 차이
나는 원체 눈치를 많이 보는 편이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독일 직항으로 가는 ‘루프트 한자’를 이용했으니 승무원들도 대부분 외국인(독일인)이고 탑승객들도 상당 수가 외국인이였다. 내 옆에는 외국인이 먼저 앉아 있었는데, 날 보더니 “Hi”라고인사한다. 독일에서 생활하면서 알게 되었는데, 독일(다른 외국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은 지나가다가 눈을 마주친다면 얼굴을 휙 돌리는 것이 아니라 “Hi”라고 인사한다는 것. 모르는 사람에게는 인사하지 않는 우리의 문화와는 다른 작은 차이였다. 얼떨결에 나도 인사하고 옆자리에 앉았다.

 
한국에서 내 생활은 거의 방에서 이루어졌다. 내가 방에만 있어도 동생이나 부모님께서 내가필요하거나 대화를 나누고 싶다면 내 방으로 오시거나 밖에서 나를 불렀다.
하지만, 독일은 달랐다. 나는 한국에서 생활하던 것처럼 대부분의 시간을 방에서 보냈고 아무도 내 방으로 올라오지 찾아오지 않았다. 나중에는 호스트맘에게 꾸중을 들었다. ‘너는 방에서지내는 시간이 너무 많다고.’ 알고 보니 독일(유럽)은 굉장히 사생활을 중시하는 분위기라, 방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으면 정말 급하지 않는 이상 가족이라도 방에서 나올 때까지 부르지 않는다. 내가 다른 식구를 부르러 올라간다고 하니, 내려올 때까지 냅두라던 호스트맘의 목소리가 아직도 나는 선명하다. 여태껏 이런 방식으로 살아온 나는 독일의 방식에 적응하기까지 적잖은 시간이 걸렸다. 의식적으로 방에 있는 시간을 체크했고, 할 일이 없어도 한 번 쯤은 거실에 나가기도 하였다. 다른 문화를 경험한다는 것, 실천하는 것은 나의 이런 작은 생활 습관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이는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학교 첫 날, 아시아인 친구가, 그것도 독일어도 서툴러 어버버하던 친구가 학교에 오니 당연히나는 모두의 관심사가 되었다. 옆에 앉았던 같은 반 친구는 신기한 듯 한국에서 가져온 내 학용품들에 관심을 보였고, 복도를 지나다니면 선생님께서 ‘너’ 안다고, 우리 학교에 교환학생으로 온 학생아니냐고 여러 번 질문받았었다. 하지만 이도 초기의 잠시뿐일뿐, 내가 어리버리하게 행동해도, 무엇인가 잘 몰라도, 그 누구도 내게 ‘먼저’ 도움주지 않았다. 한동한 도움 받지못해 여러 시행착오를 거쳤지만, 그 사이에 나는 깨달았다. ‘사생활’에 대해서.먼저 도움을 주진 않지만, 내가 도움을 요청한다면 누구든지 ‘기꺼이’ 나를 도와주었다. 유럽에 와, ‘사생활’에 대해 참 많은 것을 배우고 간다.

 


# 한국? Süd Korea?
독일과 같은, 분단의 국가 KOREA.
생각 외로, 꽤 많은 독일인들의 관심 국가였다. 독일에서 지내는 동안 수 십번 질문 받았던내용이다.
'남북 관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니? 김정은에 대해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독일인들은 별 감정 없이 그저 궁금함에 물어봤을지 모르지만, 사실 나는 창피했다. 저멀리 아시아에 있는 한국이란 나라를 알고 있고, 관심 있어 함에 있어서는 고마웠지만 왠지 모를 창피한 감정이 있었다.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는, '우리는 항상 서로를 위해 배려하고 있고 매번 대화를 시도중이라고.', 하지만 나의 이런 긍정적인 대답에도 불구하고, 많은 독일인들은 굉장히 우려스럽게 생각한다. 한 때, 북한에서 미사일 발사 위협을 할 때, 잠시 한국에 다녀올 일이 있어 친구들에게잠시 다녀오겠다고 인사를 하니, 친구들이 '지금 가도 되니? 안전한 거야?', '지금 미사일 쏜다고 난리던데..' 등등의 굉장히 우려스럽다는 표정과 말을 전했다. 내겐 자랑스럽고 멋진 고국, 대한민국인데.
독일에 지내면서도 단 한 번도 대한민국을 잊은 적이 없는 내가 사랑하는 고국인데.정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하루 빨리 두 국가의 관계가 나아지길 바라는 마음이 굴뚝 들
면서, 내 꿈에 대해 조금이나마 확신이 들었다. 큰 목표를 잡자면, '대통령'이라는 국가 원수가 생각났고, 그 외에는 외교관, 국가 안보관 등 나라를 변화시키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들었다. 더불어 이런 멋진 경험을 하게 도와주신 부모님의 감사함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 문화 전도사
한국에서 가져온 학용품부터 언어, 한복 등 친구들은 다양한 부분에서 한국의 관심을 나타냈다. 독일은 학용품들이 획일적이라고 해야할까? 한국처럼 다양한 일러스트 배경의 공책, 형형색색의 칼라펜이 아니라 모든 노트의 배경이 같고 필기구의 종류도 한국처럼 아기자기하고 여러 종류가 있지 않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나의 학용품들에 관심이 쏠릴 수 밖에 없었고, 나또한 기꺼이 내 학용품들을 친구들에게 나눠주며, 친구들의 이름을 한글로 적어주었는데 굉장히 폭발적인 반응이였다. 학교 제 2외국어라고 해도 유럽 국가이기에 영어를 제외하고 배우는언어는 스페인어, 프랑스어, 라틴어 등 주변 국가의 언어뿐이였다. 한국어는 유럽어처럼 알파벳이 아닌 고유 문자로 쓰여지니 이 또한 친구들의 관심거리였다. 몇몇 친구들은 깊은 관심을보여 'ㄱ, ㄴ, ㄷ, ……. ㅏ, ㅑ, …….' 표도 만들어 주었다. 읽는 방법도 알파벳으로 적어주고. 학교 책상 위 영어나 제 2 외국어를 배울 때는 우리 나라도 모국어가 영어였다면 내가 이렇게힘들게 영어(외국어)에 매달리지 않아도 될거라는 생각을 했었지만, 독일 친구들에게 한글을알려줄 당시에는 한국어가 그렇게 자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언어 관련 과목 선생님들이 특히많은 관심을 보여주셨다. 특히 영어 선생님은, 영어 문장 중 하나를 적으시고 이 문장을 한국어로 적어달라 하시고 한국어 발음까지 요청하셨다. 주변 친구들도 우르르 몰려들어 구경하였다. 그만큼 뿌듯할 수가 없었다. 그 날은 하루 종일 웃음이 입가에서 떠나지 않았다. 어느 한 날은 호스트 가족의 굉장히 중요한 행사가 있었다. 가족 모두 무엇을 입을까 고민하고 드레스, 양복 등을 구입하였다. 나도 무난하게 드레스를 사 입을까 생각하다가, 한국에서 가져온 한복이 생각났다. 한복 정도면 분위기에 맞출 수 있는의상이고 무엇보다 돋보이는 의상이지 않은가.
더 이상 고민할 것 없이 한복을 꺼내 다리고 예쁘게 걸어놓았다. 그 날을 위해. 그리곤 당일에 한복을 입고 행사에 참석하였다. 이동 중 거리에서는 물론, 행사장에서 나는 모든 이의 모델이였다. 사방에서카메라 요청이 들어왔고, 기꺼이 나는 그들의 모델이 되어 주었다. 어릴 적부터 나는 한복을 굉장히 좋아하였다. 한복 입고 유치원 가고 싶다고 조른 적도 있으니. 내가 이리도 사랑하는 한복을 머나먼 독일 사람들도 좋아해주고 관심 가져 주니 정말 뿌듯했다. 마음 같아서는 학교도 한복 입고 등교하고 싶었으나 자제하였다.

 

 

# 정리하면서

홀로 서기를 한다면, 그것도 외국에서 혼자 한다면, 적어도 첫 3-4개월은 굉장히 힘들고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 거라고 한다. 나는 당연히 믿지 않았고 처음부터 잘 적응할 것이라 믿었지만 공항에서 가족과 인사를 하고 출국장에 들어서는 그 순간부터 '멍' 해졌다. 돌아가고 싶었고, 내가 왜 구지 이렇게까지 공부하려고 할까 등 여러 생각들이 내 머릿 속에 맴돌았다. 독일에 도착해선 호스트와 틀어지고 힘들어하고 하면서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첫 3-4개월을 지내고 나니 정말 신기하게도 점점 나아졌다. 부족했던 언어도 점점 발전해가고, 인간관계, 생활 패턴 등 모든 것이 나아졌다. 학교 책상 위 책 안에서의 공부보다 더 많은 걸 배웠고, 이 것들이 내가 계속 살아가고 자라감에 있어 튼튼하고 견고한 밑거름이 될 것이라는확신 또한 들었다.
주변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과 배려, 스스로 져야하는 책임감에 대해 깨달았고, 불확실 하였던내 미래에 대해서도 조금씩 조금씩 틀이 잡혀졌다. 이 또한 책상 위 책에서는 찾을 수 없었던, 독일 생활에서 생활하며 배운 것들에서 찾았음을 확신한다.
비록 힘든 나날들도 있었지만 그것을 이겨낼 수 있었던 행복했던 날들이 더 많았고 컸기에 독일에서의 교환 학생을 잘 마칠 수 있었다.
그 누군가 내게 유학이나 교환 학생 등 외국 생활에 대해 도움을 요청해 온다면, 나는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도전하라고. 네 인생을 변화시켜 줄 터닝포인트가될 것이라고.
'도전하는 삶은 아름답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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