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활동경험담

Rosa Meets Rosa
글쓴이 박로사     소속 배화여자중학교

날짜 13.06.20     조회 3334

국제활동 경험담 공모전
  • 서울시립청소년문화교류센터 미지
  • 2013년 당선작

 

Rosa Meets Rosa

 

1. 봉사활동을 하게 된 계기

누구나 자신의 이름에 대한 특별한 이야기가 있다. 나의 부모님은 젊은 시절 미국 앨라배마에서 공부를 했고, 그 곳에서 처음으로 Rosa Parks라는 인권 운동가의 이야기를 들으시고는 관심을 갖고 로사의 삶에 대하여 알아 보셨다. 부모님은 로사 파크스의 삶에 큰 감동을 받으셨다. 그리고 10여년이 지난 뒤 심한 황달과 함께 저체중으로 태어나 중환자실에 있던 나에게 로사라는 이름을 지어주신 것이다. 로사 파크스와 같은 강한 의지로 병을 이겨내기를 바라는 의미로 말이다. 다행히 나는 다시 건강을 되찾았고 튼튼한 여학생이 되었다. 당시 앨라배마는 인종차별이 심해서 부모님이 다녔던 대학에도 흑인학생의 입학이 허용되었던 해가 1963년이며, 흑인학생의 첫 등교 때에는 이를 반대하는 백인들의 비난과 조롱이 이어졌고 흑인학생의 신변에 위협을 느낀 케네디 대통령은 불의의 사태에 대비하여 흑인학생을 보호하기 위해 무장한 연방군을 보내 흑인학생을 호위한 후에야 등교가 가능했던 곳이다. 미국남부의 고질적인 인종차별에 맞서 로사 파크스가 보여준 용기는 부모님을 감동 시켰고 평범했던 여인이 이끌어낸 위대한 결실과 영향력은 전 세계에 감동을 주었으며, 나의 부모님도 흑인 인권운동의 어머니인 로사 파크스를 존경하게 되셨고 그녀의 이름을 따서 우리 집의 셋째인 나에게 로사라는 이름을 지어주신 것이다.

2013년 2월 겨울방학을 이용해 나와 부모님은 앨라배마의 몽고메리 시에 있는 로사파크스의 박물관을 다녀오는 계획을 세웠다. 여정은 몽고메리의 로사 박물관과 버밍햄의 인권연구소를 보는 것이다. 이것을 계기로 로사 파크스가 인권운동사에 어떤 기여를, 어떻게 했는지를 알아보고, 당대를 살았던 많은 사람들의 발자취와 피와 땀이 흐르던 장소를 직접 보며, 그곳에서 나와 같은 관심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경험하는 것이다.

 

2. 봉사활동의 준비

가기 전에 계획과 사전 조사를 해야 했다. 미국의 공민권운동에 관계된 책을 읽고 영화도 보았다. 인터넷을 통해 미국의 교육방송인 PBS와 미국회도서관(Library of Congress)에서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또한 개인 블로그들의 공민권 운동(Civil Rights Movement)에 대한 글도 많이 읽어 도움이 되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 엄마가 말씀하셨는데, 그 말처럼 공민권운동이나 인권문제에 접근 할수록 궁금증과 흥미가 생기면서 앞으로의 내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함께 생겼고, 진로에 대한 생각도 할 수 있었다.

워싱턴 D. C.에 있는 National Park Service (NPS)본부로 메일을 보냈다. 메일을 통해 나를 소개한 뒤 내가 왜 로사 파크스 박물관에 가고 싶은지를 설명했고, 일회성 관광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기여를 하면서 몽고메리 버스보이콧에 대해 공부하고 싶다는 나의 생각을 전했다. 그런데 미국국립공원본부의 담당으로부터 답이 왔다. 내 이름에 대한 이야기가 그녀의 관심을 끌었나 보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캐롤은 내셔널파크본부에서 상당한 지위에 있는 사람이었다, 몽고메리에서는 워싱턴에서 로사 파크스 박물관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과 나를 박물관에 연결해 준 것도 뉴스였다. 캐롤은 박물관에 근무하는 캐서린을 소개시켜주어 나와 직접 메일을 주고받으며 준비를 하게 도와주었고, 박물관 측에 미리 이야기를 해주어 일주동안의 봉사도 허락 받을 수 있었다. 이것은 정말 뜻하지 않은 기회였다. 비행기표와 몽고메리에서의 숙박을 위한 호텔과 차를 예약했다. 비행기와 숙박과 차는 모두 어머니가 경매로 가격을 제시하는 Priceline을 통해 하셨고, 조지아주의 애틀란타에 도착하여 그 곳에서 렌터카로 몽고메리로 이동하였다.

 

3. 봉사활동 일정

아틀란타 도착

2013년 2월 10일

한국에 오랜 비행 끝에 조지아 주의 수도인 애틀랜타의 하츠필드 국제공항에 내렸다. 여행객들이 긴장하는 입국수속을 밟는 시간이다. 특별한 잘못이 없어도 모두 긴장하는 순간으로 지문과 사진을 찍는다. 엄마에게 공항직원들은 현대 혹은 기아에서 일하냐고 물었다. 현대와 기아 자동차가 이곳에 있으니 그 회사의 가족인줄 알았나보다. 무슨 일로 몽고메리를 가냐고 묻던 중 입국사무관중 한명이 자신을 소개하며 앨라배마 출신으로 로사 파크스가 태어나고 유년기를 보낸 터스키기(Tuskegee) 대학을 나왔다면서 우리를 환영한다. 한국인인 우리가 전혀 예상치 않게도 로사 파크스에 대한 공부를 하고 그녀의 이름을 딴 박물관에서 자원봉사를 하러간다는 것에 놀란 모양이다. 나는 이번 여정의 첫 관문에서의 만났던 입국심사관의 말대로 좋은 공부 많이 하고 돌아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몽고메리로 가는 길>

미국의 관문을 통과하고 미리 예약해둔 렌터카를 찾으러갔다. 사무실의 흑인아저씨도 역시 같은 질문을 한다. 같은 이유를 설명하자 눈이 휘둥그레지며 너희는 더 좋은 차를 탈 자격이 있다며 엄마가 한국에서 예약한 차보다 좋고 큰 차로 업그레이드를 시켜주었다.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가는 길엔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남부의 겨울은 따뜻하고 좋은 날씨인줄 알았는데 예상과는 다르게 춥고 비바람도 몰아쳐서 낮인데도 어두워서 우리나라의 겨울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비는 계속 내리고 좋은 날씨를 기대했던 나에게 우울함을 준다. 생각해보니 버스보이콧이 시작된 시기가 12월 5일 부터니까 이 춥고, 어둡고 비바람 몰아치는 길을 몽고메리의 흑인들은 한가지의 염원으로 381여일을 걸었던 것이다. 아틀랜타는 대규모의 플랜테이션 농업으로 남부의 부를 이끌던 주이다. 역시 흑인 노예들의 값싼 노동력이 부의 원천이었다. 백여 년이 지난 지금 옛날 노예의 자손들은 자유민이 되어 각자의 능력에 맡는 직업을 가진다. 이제 흑인은 제 자리를 잡은 것일까?

 

Rosa Meets Rosa 프로젝트

2013년 2월 11일

오늘은 나의 Rosa Meets Rosa 프로젝트의 첫날이었다. 밤새 비가 퍼붓더니 아침에도 비가 오고 멀리 보이는 산에는 눈이 덥혀있다. 아침을 먹으며 뉴스를 보니 생전 눈이 오지 않던 지역에 큰 눈이 왔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아침이 춥게 느껴진다. 한국인이 주인인 호텔이라 식사로 백김치와 흰밥이 있어 무척 반가웠는데 미국인도 먹는 사람이 여럿 있는걸 보니 그들도 우리의 김치의 맛을 아는 것 같다. 몽고메리는 오래된 도시로 남북전쟁당시 남부 수도였던 곳이다. 도로에 오랜 깔린 자갈이 도시의 나이를 말해주는 것 같았다.

  

박물관은 트로이 대학 안에 세워져있었다. 1955년 로사 파크스가 버스를 탔던 엠파이어극장을 헐고 박물관을 지었다. 대학은 박물관의 건립을 위해 학교의 땅을 기부했고, 행정과 관리도 모두 대학이 하고 있었다. 정문을 열고 들어가면 입구의 좌측에 지난주에(2월 4일) 있었던 로사의 100회 생일을 맞아 로사와 레이먼드재단의 후원을 받는 아이들이 직접 손으로 제작한 대형 조각보가 걸려있었다. 아이들이 한 땀씩을 이어붙인 조각보는 미국인들의 서민 문화중에 하나인 퀼트를 말하는데 미국인들은 한 조각마다 자신의 소원이나 희망을 담아 바느질을 하고 그것을 이어 붙여 하나의 큰 완성품을 만든다. 아이들은 자기의 조각마다 로사 파크스에 대한 감사와 더 나은 미래의 희망을 담았을 것이다. 내가 일주일 더 빨리 왔더라면 100주년 기념식에 참석 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캐서린도 아직 오지 않아서 나와 엄마는 건물을 둘러보았다. 박물관에 들어가니 로비에서 근무하는 리키가 나를 맞아 주었다. 서로 인사를 나누었는데 리키도 내가 오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고 나에게 기대가 크다고 반갑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박물관 내부는 잠시 후에 단체 관광 팀과 함께 보기를 권하면서 우선 부대시설을 둘러보라고 했다. 기념품을 파는 곳도 있었고, 소극장과 세미나실이 여러 곳이 있었다. 전시실도 있었는데 그 곳에는 아모스 케네디라는 사람의 판화전이 열리고 있었다. 그는 로사 파크스의 어록 중에서 여러 글귀를 뽑아 판화를 만들었는데 나중에 죠젯은 나에게 풀세트를 주며 서울시에 기증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전시장 한편에는 로사가 보이콧운동이 끝난 후 버스에 탄 모습을 동상으로 만들어놓았다. 이 동상은 내가 읽은 책의 표지에도 있었는데 내가 그 자리에 함께 있으니 역사의 현장을 갔다는 느낌이 더욱 생생했다.

  

캐서린과는 메일로 글을 주고받았는데 이제부터는 나의 스페셜리스트가 되어 나를 지도하게 됐다. 캐서린은 박물관의 스텝에게 나를 소개하고 내가 할 일들을 일러주었다. 박물관은 단체 관광 형태로 관람을 하는데 투어 팀을 이끄는 일과 설명은 리키가 맡아서 했다. 리키는 두 아이의 아빠이며 트로이 대학을 졸업한 흑인으로 단체관람객에게 박물관에 전시된 것을 설명하는 것이 주요 업무이다. 매번 같은 내용을 설명하면서도 유머나 위트를 발휘하는 재미있는 아저씨이다. 설명도 그냥 외워서 하는 것이 아니라 적절히 아이들을 돌아보며 실감나게 한다. 관람객은 아이와 어른이 섞여있는데 항상 아이들이 우선이다. 리키의 설명은 역사적인 사실과 함께 아이들이 지루할 틈 없는 이야기로 구성되는데 듣는 아이들은 집중하며 열심히 듣고 있었다. 박물관은 데인(Dane) 아저씨를 제외하고는 모든 직원이 흑인이었다. 오후에 온 마지막 팀은 Evangelist Christian School의 학생들로, 두 분의 선생님들과 몇몇 학부모들, 그리고 학생들이 왔는데 미국답게 정말 온갖 인종이 다 있었다.

1955년 당시의 몽고메리시를 재현한 전시시설이 버스보이콧이 일어난 시간의 흐름과 함께 펼쳐지는데 버스가 있는 방을 떠나 모두 함께 12월 5일 에 앨라배마의 흑인들이 보이콧에 대한 첫 모임을 가졌던 홀트교회로 들어가게 된다. 교회는 킹 목사의 연설이 들리고 참석한 흑인들의 대답과 호응이 가득 찼다. 다른 방에는 킹 목사가 고심에 빠져 자신의 집 부엌에서 기도하는 모습의 모형이 있는데, 여기서 킹 목사의 집 벽에 걸려있는 간디의 액자를 볼 수 있었다. 간디는 킹 목사에게 정신적인 스승이었으며 온 인류에게 비폭력과 평화는 불변가치란 것을 알려준 사람으로 두 사람은 인류의 가치를 실현하다가 동족의 손에 암살을 당하는 공통점도 갖고 있다. 설명하던 리키가 간디의 사진을 가리키며 킹 목사의 비폭력운동에 대해 말하자 한 꼬마아이가 되묻는다. “간디가 누구예요?” 듣고 있던 모든 관람객이 이 물음에 재미나게 웃었다.

다음에는 흑인의 현실이 재현되는데 공공시설의 분리부터 보이콧과정에 흑인의 발이 되었던 카풀과 Rolling Church(흑인들이 사용한 교통수단)가 설치되었고 자유를 위해 걷는 시민들의 모습이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방에는 381일간의 보이콧을 끝낸 흑인 지도자들이 차별이 없어진 버스에 앉아있는 방이 나온다. 킹 목사를 비롯한 흑인 지도자들과 백인 지도자 스마일리가 함께 탄 버스에서 아이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이제 투어는 마지막 동영상이 나오면서 끝을 맺는데 1990년 빌 클린턴 대통령이 로사 파크스에게 대통령 자유메달을 수여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이 메달은 민간인으로서 받는 최고의 메달로 ‘각 분야에서 탁월한 공적을 쌓은 인물에게 미국 대통령이 매년 수여하는 상이다.’ 미 의회 역시 그녀에게 의회의 ‘골드메달’을 증정하는데 클린턴 대통령은 로사 파크스의 용기 있는 행동과 함께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고 한다. '당시 나는 매일 흑백분리 버스를 타고 다녔던 9살 난 남부 백인 소년이었다.'라고 하면서 '로사가 흑인들이 더 이상 뒷좌석에 앉을 필요가 없음을 보여줬을 때 나는 그녀의 행동을 열렬히 지지했다. 그래서 나와 친구 두 명은 더 이상 버스 앞좌석에 앉을 필요가 없다고 결론 내렸다' 고 말하며 당시의 행동을 '평범한 세 소년의 작은 행동'이라면서 ‘로사 파크스의 용기에서 비롯된 이런 작은 행동들이 인권 운동을 통해 반복됐고 확대 되었다‘라고 말하고 있었다. 30여분 동안 진행되는 투어는 아이들의 자부심을 가득 채워주는 시간이 되었고, 아이들은 로사에게 박수를 쳤다. 함께 했던 일반 관람객들도 역사를 이끌어 낸 사람들에게 박수를 보냈다.

단체견학을 오는 학생들과 관람객은 박물관과 어린이관(Children’s Wing) 두 곳을 보게 되는데 투어내용은 각각 달라서 지루할 틈이 없다. 투어가 끝난 뒤 아이들은 그날 본 내용을 퀴즈형식으로 풀어보고 게임도 하면서 즐겁게 마무리 짓는다. 정말 신기하게도 오늘 견학 온 아이들은 떠들지도 않고 질서를 정말 잘 지켰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미국 사회의 교육의 한 면인 것 같다. 미국의 꼬마아이들이 떠드는 일없이 집중을 해서 듣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오늘 하루의 아름다운 모습은 백인 소녀와 흑인 소녀가 손을 잡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들의 조상들이 만들어 낸 평등한 세상에서 그 아이들은 제약 없이 성장하는 모습이 진심으로 아름다웠다. 그러한 순수한 동심이 성장해서도 계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관람 후 퀴즈 게임을 지도하고, 틱텍토놀이를 도왔다.

   

(초등학생들이 활동을 하고 있는 모습)

 

2013년 2월 12일

 

오늘도 비가 무척 많이 내린다. 오늘 일과는 박물관과 함께 위치한 어린이관에서 시작되었다. 어린이관은 1800년대 노예가 매매되던 시대로부터 오늘 날의 사회까지를 타임머신을 타는 것처럼 안내한다. 여러 기업체가 후원을 하여 만들어진 것인데 우리나라의 ‘현대자동차’도 그 중의 하나이다. 겉으로는 기계설비가 노출되어 있고 적당한 소음도 함께하며, 기계실과 같은 분위기에 마치 넓은 버스처럼 만들어져 사방에서 비디오를 이용한 기록물과 상황극이 방영된다. 그야말로 살아있는 타임머신인 것이다.

비가 오는데도 박물관에 여러 팀의 학생들이 왔다. 아이들은 조용하고 진지하게 극에 빠져 조용히 타임머신에 앉아 경청을 한다. 그 중에 눈에 띄는 사람이 쌍둥이 아이들을 데리고 온 젊은 여성이었다. 혼자서 아기 둘을 유모차에 태우고 왔는데 미시시피의 주립대학 올미스(Ole Miss)에서 왔다고 했다. 나는 아이중의 하나를 잠시 안아주었다. 올미스라는 곳은 미시시피의 주립대학교가 있는 곳이고, 그 대학은 큰 인기를 모았던 Blind Side라는 영화에서 주인공이 선택하는 학교로 미식축구가 유명하다. 그 곳 역시 인종차별로 악명 높았다. 심지어는 예배 중이었던 흑인 교회가 통째로 불탄 비극이 일어난 곳이기도 하다.

어제는 박물관의 관장인 죠젯이 컨퍼런스가 있어서 만나지 못했다. 그래서 오늘 처음으로 죠젯을 만나는 날이다. 나는 한국에서 준비한 작은 선물과 함께 관장을 만났다. 자료화면과 신문에서 본 모습보다는 나이가 좀 더 들어보였는데, 활발한 모습과 힘찬 말투는 나이를 잊게 했다. 의상도 히피룩과 정장을 합친 듯 아주 멋지게 입은 할머니였다. 죠젯은 이미 나에 대한 이야기를 모두 알고 있었다. 죠젯은 ‘Rosa Meets Rosa’라고 나의 방문을 이름 짓고 나의 이야기에 감격했다면서 몽고메리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가라고 말해주셨다.

죠젯은 로사 파크스 박물관이 프랑스의 몽펠리에와 영국 런던과도 교류중이라는 이야기를 해주면서, 서울에 대한 많은 질문을 했다. 특히 한국에도 로사 파크스와 같은 일을 한 여성 인권 운동가가 있냐는 물음과 그 사람에 관련된 박물관은 없냐고 물었다. 그 순간 생각난 사람은 유관순 열사였다. 그러나 우리나라에 그녀를 기념하는 박물관은 없고 그녀를 기념하는 큰 극장이 모교에 있다고 이야기를 하고나니 기념관 하나 없는 유관순 열사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관장님은 나를 로사 파크스 박물관의 명예대사(International Ambassador)로 임명하며 박물관의 대사 중에서 최연소라고 해주셨다. 박물관의 자료실에서 컴퓨터로 많은 자료를 읽고 인쇄하라며 편의를 제공해주었다. 그러면서 서울에도 박물관을 알리고 싶다는 나의 이야기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며 책과 사진 그리고 당시의 신문 등 자료들을 선물로 주었고 전시실에서 전시했던 판화도 가장 좋은 문구를 골라 갖도록 해주었다.

그리고 내일은 이곳의 신문과 인터뷰가 잡혔다고 준비하라고 했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일이 생겼다. 미국의 신문과 인터뷰를 한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우연하게 시작된 나의 여정에 이런 행운이 생긴 것에 감사함을 느꼈고 나를 위해 여러 기회를 마련해 주려고 노력하는 박물관분들께 고마웠다. 이곳에 와서 좋은 기회를 얻었으니 기회는 더욱 책임감을 갖게 되었다.

 

2013년 2월 13일 

 

오늘은 리키와 캐서린이 쉬는 날이다. 그래서인지 단체관람객이 없다. 로비에는 어제 사무실에서 자원봉사에 대한 교육을 받고 있는 흑인 아주머니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는데 자세한 이야기는 안했지만 어떤 잘못을 한 후에 반성의 의미로 사회봉사 명령을 받은 것 같았다. 가끔 해외뉴스에 나쁜 일을 한 연예인들이 봉사명령을 받아서 이런저런 단체에서 봉사를 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아마 그녀도 이런 경우인 것 같다. 처벌보다는 계도를 통해 자신을 반성하고 다시는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를 바라는 의미인 것 같다. 박물관은 한가해서 그녀도 자리에 앉아 과자를 먹으며 나에게도 권한다. 원래 미국인들은 자기가 먹는 것을 잘 나누지 않는데 나에게 먹으라고 권하니 역시 남부의 정서이다. 이것을 미국에서는 Southern Hospitality(남부의 친절) 이라고 하는데 구수한 남부 사투리와 함께 남부를 수식하는 정서이다.

오후에는 학예사 데인과 자료정리와 복사를 도왔다. 데인은 박물관의 유일한 백인으로 ‘과거는 지났다, 우리는 과거의 잘못을 반성했고 이런 박물관도 지어주게 해줬기 때문에 충분히 흑인들에게 베풀고 위로도 했으니 우리는 더 이상 흑인에게 부채는 없다.’ 라는 일부 백인들의 주장을 내게 전했다. 나는 이 말을 듣고 큰 실망을 했다. 물론 일부 백인들의 생각이지만 흑인들에게 해줄 만큼 해줬다는 식의 생각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의 조상과 후손이 있는 같은 땅에 사는 한, 상처와 피해의식은 영원히 남을 것이고, 만약 과거가 정리되었다고 누군가 말을 한다면 그러한 평가는 상처를 준 가해자가 하기 보다는 피해자였던 흑인을 통해 나올 때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데인과의 대화는 몽고메리 지역에 사는 흑인들의 이야기로 이어졌고 아직도 존재하는 인종차별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이러한 것도 더 평등한 사회로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며 피부색이 아직도 편견의 이유가 되는 것이 마음이 아팠다.

 

?지역신문과의 인터뷰

 

오후에 인터뷰를 하기위해 소극장에서 트로이 대학 신문사의 맷(Matt)을 만났다. 트로이 대학은 학교 내에 라디오방송국과 신문사가 있어 이 지역안의 라디오와 신문을 발행한다. 그리고 라디오는 지역 NPR (National Public Radio Broadcast)뉴스를 송출하기도 한다. 

맷과 인사를 하고, 인터뷰를 시작했다. 기자들의 상징인 스프링이 있는 수첩을 꺼내고 나에게 몇 가지 질문을 했다. 이곳에 오기까지의 이야기와 나 자신의 소개, 그리고 나의 장래희망 등을 물어보았다. 엄마에게도 1987년의 기억과 추억을 물었다. 인터뷰가 끝난 후 사진을 여러 장 찍고 바로 내게 보여주며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면 그것을 신문에 싣겠다고 했다. 사람 좋은 미소로 지갑에 지닌 아내와 아이들의 사진을 보여주며 나에게도 추억을 많이 만들라는 덕담을 해주었다. 나는 한국에서 준비한 한복 입은 곰돌이 인형과 누비지갑을 기념으로 주고 혹시 한국에 오면 연락하라고 했다.

  

(인터뷰 사진)

 

2013년 2월 14일

 

 다음 주부터 박물관에선, 남부전역에 소재한 여러 박물관 전체가 모이는 컨퍼런스가 있다. 그래서 오전에 15가지 종류의 기념품을 가방에 넣는 작업을 했다. 관장인 죠젯은 나에게 두 세트를 선물로 주었다. 일이 끝나자 죠젯이 나를 박물관 건너에 있는 트로이 대학에 데리고 갔다. 라디오 인터뷰는 죠젯과 캐롤린에 의해 이루어졌다. 캐롤린은 나를 보자 다음 3월이 여성의 달(Women’s History Month)이라며 특집으로 당장 인터뷰를 하자고 했다.

로사가 로사를 만나러왔으니 정말 좋은 특집이 되겠다고 나를 쳐다보았다. 엄마는 좋은 기회라며 해보라고 하셨다. 트로이 대학 내에 위치한 방송실은 지역의 NPR(National Public Radio)뉴스를 녹음하는 곳이었다. NPR뉴스는 미국 내에서 방송되는 공영 뉴스채널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듣고 신뢰하는 방송이란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와 엄마는 더욱 놀랍고 신기하였다.

캐롤린은 지역 NPR의 프로듀서로 우리에게 마이크를 사용하는 방법 등을 상세하게 알려줬다. 인터뷰를 시작하자 우리의 방문 목적과 여기까지 오게 된 이유를 묻고 무척 신기해하였다. 인터뷰는 시작이 되었고 3월이 ‘여성의 달’임을 설명한 뒤 마이크를 죠젯에게 넘겼고 Rosa meets Rosa에 대한 설명을 했다. 이어 엄마에게 질문이 있었는데 나의 이름에 대한 이야기며 1987년 앨라배마의 이야기를 하셨고 왜 나를 이곳에 데리고 왔는지를 말씀하셨다. 나에게도 많은 질문을 했는데 끝나고 나서는 더 잘할 수 있었는데, 하는 후회도 있었다.

나는 인터뷰를 마친 후 이런 경험을 할 기회를 준 것에 감사를 표했다. 나의 인터뷰는 3월 12일에 미국에서 방송이 되고 나는 3월 23일 이 후에 인터넷으로 인터뷰를 들을 수 있다고 했다. 인터뷰가 끝난 후, 엄마와 나는 꽃가게에 가서 보랏빛 수국을 한 다발 사서 로사 파크스의 흉상에 놓았다. 나도 내가 존경하는 로사에게 밸런타인데이 꽃을 주고 싶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조젯은 오늘은 오후에 봉사 대신, 버밍햄에 있는 공민권운동 기념관(Birmingham Civil Rights Institute)에 가볼 것을 권유했다. 그 이유는 주말에는 몽고메리와 버밍햄을 잇는 고속도로가 붐비기 때문이다. 기념관에는 우리가 갈 것임을 전화해주고 정보도 주어 우리는 버밍햄에 가기로 했다.

 

버밍햄에서

버밍햄은 몽고메리 버스보이콧 이후 가장 극렬한 인종탄압의 현장이 되어 전 세계에 악명을 떨쳤고 많은 사람들이 희생된 곳이기도 하다. “Bombingham”이라고도 불릴 정도로 빈번하게 폭탄 테러가 일어났으며 버밍햄의 인권탄압은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자서전인 “버밍햄 감옥으로부터의 편지”에 잘 나타난다.

시내의 중심가에 위치한 기념관은 켈리 잉그램 공원(Kelly Ingram Park)과 1963년 9월 15일 KKK(Ku Klux Klan)에 의해 폭탄이 터졌고 그로 인해 흑인소녀 네 명이 불에 타 숨진 16번가 침례교회(16th Baptist Church)가 삼각형 모양으로 자리하고 있다. ‘Freedom Walk’라고 쓰인 길을 따라 걸으면 조각들을 만나게 되는데 이는 보는 사람의 마음을 뭉클하게도 분노하게도 한다. 특히 어린 청소년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인상적인데 아이들은 어른들보다 어린 자신들이 행동을 한다면 아무리 악명높은 버밍햄 경찰이라도 함부로 무력을 쓰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하고 인권운동에 참여를 결정했다. 그러나 버밍햄의 경찰은 아이들에게도 몽둥이와 사나운 개, 그리고 물대포로 진압했고, 조각은 참혹했다. 당시 공권력을 가진 버밍햄 경찰의 1/3이 KKK의 단원이었다고 하니 그 만행의 정도는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가장 감동을 받은 조각은 무릎을 꿇고 헌신의 기도를 바치는 세 명의 목회자상이었다. 버밍햄의 목사인 프레드 셔틀스워스(Fred Shuttlesworth)와 인권운동을 위해 찾아온 킹 목사, 그리고 또 다른 한사람은 뉴욕으로 부터 흑인을 도우러 온 라비(rabbi)이다. 라비는 유대교의 지도자의 명칭으로, 남부에서 행해지는 인종차별이 유태인들이 세계 2차 대전 때 당했던 홀로코스트와 대등하다고 결론짓고 흑인들의 인권운동을 뉴욕에서부터 도우러 온 젊은이들이었다. 부끄러운 기억, 네거티브의 역사도 외면하지 않고 드러내고 반성하려는 미국인의 사고에 존경심이 느껴졌다. 아픈 역사도, 부끄러운 과거도 역사로 안고 가는 모습이 부러웠다.

기념관에서도 우리를 친절히 맞아주었는데 죠젯이 미리 연락을 해두어서인지 입구에서부터 가이드가 도와주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가이드의 설명에 의하면 Institute라는 명칭처럼 이곳은 전시시설 이외에도 연구소가 있어서 많은 전문 인력이 연구를 하는 곳이며 정규프로그램과 특별프로그램이 있어 비폭력의 가치와 인권운동을 기념하는 학회도 열린다고 한다. 미국 내의 모든 인권, 민권운동에 관한 박물관과 기념관의 총본부라고 할 수 있는 이곳에도 로사 파크스의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모든 것이 그녀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차별이 없어진 버스에 앉은 로사는 더욱 더 큰 고난이 올 것을 알고 있었을까?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 이후 버밍햄은 소용돌이에 빠지고, 커다란 희생이 있었다. 그것이 버밍햄에 인권연구소가 있는 이유이다. 기념관을 둘러보니 남부를 비롯해 미국에서 인종 탄압의 대상이 되었던 흑인들의 처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연구소에 오기 전에 잠깐 보았던 변두리의 흑인들이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이해도 되고 안타깝기도 했다. 이런 것을 종합해 생각하면 아직도 흑인들의 인권운동은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인그램 공원에 있는 목회자상)

  

(버밍햄에서 일어난 경찰들의 폭행)

 

 

2013년 2월 15일

오전에 세 팀의 관람이 있었는데 내가 온 이래 가장 붐비는 하루였다. 조젯은 나를 데리고 트로이대학의 부총장(chancellor)을 만나게 하기위해 대학으로 갔다. 대학의 본부는 박물관 앞에 있다. 로사 파크스의 조그만 모형을 선물로 주었다. 부총장과 기념사진을 찍고 학교를 나오는데 한 무리의 사무직 직원들을 만나자 죠젯은 나를 ‘한국에서 온 로사’라고 소개하자 터지는 그들의 함성이 대단했다. 학교는 과거에 호텔이었던 건물을 리모델링하여 써서 긴 복도가 인상적이었다. 대학의 본부에 가자 이제껏 잘 안보였던 백인들이 많았다. 높은 직급으로 갈수록 백인이 많았다. 죠젯이 오후에는 킹 목사가 담임목사로 있던 홀트 교회와 킹 목사가 살던 집을 견학하라고 했다. 킹 목사의 집에서 관람객을 맞는 두 분의 봉사자는 1955년 당시부터 정기적으로 킹 목사의 집에 모여 지역사회 문제와 성경을 공부했던 모임을 갖았던 회원의 한 명이었다고 말하며 그 당시를 회상하며 매우 자랑스러워했다. 조그만 집에 킹 목사 가족의 손길이 묻은 가구들과 흔적이 아직도 남아있고, 더 큰 결과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친 위대한 한 사람의 과거가 있다고 생각하니 경건한 마음이 들었다.

 

(부총장과의 사진)

 

<글을 마치며>

 

‘로사가 로사를 만나다!’라는 프로젝트를 계획할 때는 이것이 성사될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 있었지만 방문으로 시작된 것이 자원봉사로 까지 이어졌고 그곳에서 많은 사람을 만나 인연을 맺게 되었다. 로사파크스 박물관에서 일주일간의 봉사활동을 할 때에는 더 많이 보고 배우려고 노력했다. 봉사시간이 끝나면 몽고메리를 벗어나 흑인인권운동의 또 다른 성지인 버밍햄과 셀마 등의 다른 도시로 이동해 그곳에 있는 다른 박물관과 기념관을 찾았다. 그럴 때마다 박물관장은 도시에 대한 정보도 주고 우리가 갈 기념관에 전화도 해주어 우리의 편의를 돌봐주었다.

아직도 지구촌의 어디에선가에는 다수에 의한 소수의 고통이 존재한다. 강자에 의한 약자의 슬픔도 있다. 이러한 때 우리는 역사 속에서 아름다운 방법으로 승리를 이끌어낸 몽고메리사람들의 슬기와 로사파크스의 단호한 신념을 가슴에 새겨 서로를 배려하고 이끌어 준다면 세상은 좀 더 아름다워질 것이다. 자원봉사라고는 했지만 내가 직접 봉사를 한 것 보다 배운 것이 훨씬 많았고, 박물관의 직원들은 나를 볼 때 마다 자료실에서 공부하고 복사하라며 사무실도 비워주었다. 박물관의 관장님과 식구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느끼며 나는 로사 파크스를 한국에 소개하는 일을 계속할 것이고 지금도 지속적으로 쓰고 있는 책도 완성할 것이다. 소망이 있다면 나의 시도가 이루어져서 로사 파크스의 순회전시가 서울에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조젯은 로사 탄생 100주년을 맞아 주정부가 발행한 금화와 1955년 12월 5일자 몽고메리 신문의 원본을 나에게 선물로 주었다. 내가 과한 선물이라 받기를 주저하자 ‘로사는 이것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하면서, 오히려 이곳까지 로사를 만나기 위해 온 나에게 감사하다고 했다. 그녀는 한국에 돌아가 몽고메리의 시민들과 로사 파크스가 그들의 공민권을 찾기 위해 얼마나 훌륭히 버스보이콧을 성공시켰는지를 알리길 원했다. 또한 나를 통하여 로사 파크스를 기억하는 사람이 전 세계에 있다는 사실을 그의 친구들과 지역사회에 알리고 싶어 했다. ‘여기에서 보고 느낀 점을 많은 한국인들에게 알려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나는 한국에 돌아가서도 박물관과 지속적인 연락을 하면서 내가 제안했던 순회전시가 가능하도록 노력할 것을 약속했다. 자기희생과 봉사의 마음으로 시대를 이끌었던 훌륭한 지도자들과 그들을 믿고 따랐던 다수의 이름 없는 행동가들의 자취를 보면서 그들의 희생과 용감함에 감동을 받았다. 꿈과 희망을 잃어버린 채 살았던 미국의 흑인들은 로사 파크스의 버스 불복종으로 자신들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고민하는 과정과 흑인들이 가장 합리적인 방법으로 백인들이 빼앗아간 권리를 되찾아 왔을 때는 나도 자유의 버스를 탄 것처럼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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