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활동경험담

넘치는 화두를 안겨준 유엔인권이사회에서의 경험
글쓴이 허한욱     소속 경희대학교

날짜 13.06.20     조회 3132

국제활동 경험담 공모전
  • 서울시립청소년문화교류센터 미지
  • 2012년 당선작

 

"넘치는 화두를 안겨준 유엔인권이사회에서의 경험"

 

 

일자

2/20

2/21

2/22

2/23

2/24

오전

HRCAC

(유엔인권이사회

자문위원회)

HRCAC

ICRC

UNHCR

CEDAW

(여성차별철폐위원회)

HRCAC

오후

CEDAW

OHCHR

유엔한국대표부

CEDAW

WIPO

WHO

CERD

(인종차별철폐위원회)

일자

2/27

2/28

2/29

3/1

3/2

오전

HRC

(인권이사회)

HRC

UNICEF

HRC

CEDAW

오후

HRC

ILO

WTO

HRC

NGOs

마무리

 

지난 3월 연일 언론엔 유엔 제네바 사무소에서 열린 인권이사회 기사가 보도되고 있었다. 탈북자 강제 송환 문제를 두고 우리 국회 대표단과 북한 대표 사이에 빚어진 마찰이 결국 몸싸움에까지 이르렀다는 기사 한 켠에 자리잡은 회의장 사진이 눈에 들어온다. 낯익은 풍경이 어느새 추억이 되어버린 시간들을 상기해준다. 내가 Room 20에 앉아 있기는 했는지 의심이 들 정도로 익숙한 일상이 다시 시작되어 버렸지만, 이제 난 이런 기사를 볼 때마다 떠오르는 모습들이 있다. HRCAC(인권이사회자문위원회)에서 러시아 자문위원의 호통치는 소리부터, HRC(인권이사회)에서 이의를 제기하기 위해 명패를 들고 손바닥에 치던 쿠바대표의 모습까지. 비록 하룻밤의 꿈처럼 짧은 2주였지만, 지난 2주는 나에게 분명 많은 생각거리들을 선물해준 시간이었다.

 

 

 

 

 

 

 

처음 UN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을 때부터, 나는 본부보다는 현장사무소에 관심이 더 많았다. 언제나 팔레스타인, 르완다와 같은 분쟁지역의 현장사무소에서 일하는 모습을 꿈꿔왔던 나에게, 본부는 항상 그저 편안하고 소모적인 논쟁이 오가는 곳으로 인식되기도 했다. 때문에 처음 제네바 인권연수 공고를 보았을 때는 많이 망설였던 것도 사실이다. 과연 내가 이곳에 가서 ‘국제법 교과서, UN과 관련된 여러 서적들에서 보았던 내용 이상의 무언가를 얻어올 수 있을까?’하는 물음표가 머리를 떠나질 않았다. 그러나 어느새 기대와 설렘을 안고 지원서를 작성하고 있는 나를 보았다. 마음이 변한 것은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처럼, 국제인권메커니즘의 정점이자 핵심인 인권이사회와 OHCHR(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을 직접 경험하지 않고는 그에 대한 어떤 평가도 선입견에 불과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나는 지난 2년간 내가 관심을 가지고 나름대로 공부도 해보았던 인권, 특히 국제인권법에 대해 직접 체험을 하기 위해 제네바로 떠나게 되었다.
 
유럽에도 처음인 내가 첫발을 유엔 사무소에 내딛게 된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찬데, 웅장한 모습의 유엔 건물과 광장 높이 솟은 Broken chair가 나를 더 작게 만들었다. 매일 UN에 들어가기 전 마주하였던 이 조형물은 미처 잠이 덜 깬 나에게, ‘지금 네가 앉은 회의장의 의자가 이처럼 한 다리가 부러졌다고 생각해봐라. 자칫 쓰러질까 정신을 바짝 차리는 것처럼, 지금 이순간에도 세계 곳곳에서 다리가 잘려나가는 이들이 있음을 잊지 말아라. 그게 인권의 최후의 보루인 유엔 제네바 사무소에 네가 발을 딛은 목적일 것이다.”라고 일깨워주는 듯했다.
 
첫 주에 접한 자문위원회에서 식량권이며, 전통적인 가치와 인권의 관계 등을 주제로 한 회의를 보면서, 내가 접하는 인권 주제들의 국제적 표준이 이곳에서 만들어지기 시작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비록 자문위원회의 성격상 많은 국가들이 참석하여 목소리를 내지는 않았지만, 자문위원들의 조사와 보고, 그에 따른 참석한 국가들의 발언과 NGO의 비판 등이 어우러져 하나의 국제적 표준을 탄생해 나가는 과정을 볼 수 있었다. 특히 NGO들이 오히려 더 많은 자료를 가지고 논리적인 비판을 하는 것을 보고 오늘날 시민사회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실감하고, UN에서 시민사회의 역할을 느낄 수 있었다. 본격적으로 인권이사회가 시작되면서, 지난주와는 다르게 빽빽하게 들어찬 회의장을 보며 깜짝 놀랐다. 자리를 잡지 못해 많은 사람들이 회의장 주변을 서성거리기까지 했고, 각국의 대표들은 조금이라도 더 발언하려고 하다 정해진 발언 시간을 넘기기 일수였다. 실로 인권이 평화, 개발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유엔의 삼대 기본 가치 중 하나임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특히나 이번 이사회에서는(내가 참관한 기간 동안) 인터넷상에서의 표현의 자유와 그와 관련하여 리비아와 시리아를 비롯한 중동의 민주화가 상당히 자주 언급되었다. 일전에 표현의 자유에 대하여 모의재판을 준비했었던 나로서는 배경지식을 활용하여 많은 점들을 배울 수 있었다. 특히 3일차에 열린 Panel discussion은 인터넷상에서의 표현의 자유란 주제로 기존의 형식적인 논의에서 나아가 적극적인 난상 토론을 지향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런 모습들을 보며 권위주의로 대변되는 내 머릿속의 UN의 모습에서 UN 역시도 스스로의 한계점들을 극복하고자 노력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또한 탈북자와 관련한 우리 정부의 발언에 대한 북한 대표의 국가보안법 공격과, 전시 성노예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반박, 탈북자 강제 송환에 대한 중국 정부의 반박은 평생 잊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우리 만의 문제라고 생각했던 주제들이 정작 우리 국민들이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순간에도 국제 회의장에서 논의가 되고 있으며, 이로 말미암아 다시 국민들은 이러한 주제에 관심을 갖게 되리라 생각하니 새삼 회의장의 힘이 느껴진다.

 

 

  

 

 


유엔 인권 헌장기구 및 조약기구 외에도, 제네바에 소재한 다른 국제기구들을 방문할 수 있는 기회도 있어 좋았다. ILO와 WHO뿐만 아니라 WIPO와 같은 기구를 방문함으로 하여 짧은 기간 내에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그 중에서도 나는 WTO에서 근무하시는 이준영 박사님(왼쪽 사진)과의 시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이는 박사님의 바람처럼 WTO에 대한 그간의 나의 선입견을 없앨 수 있는 시간이었다. 박사님께선 WTO의 설립의 근간이 된 마라케시 협정의 전문에는 human right와 environment의 보호에 대한 내용이 담겨있음을 주지하시며, 전문은 그 기관의 설립정신이며, 이는 곧 WTO의 설립정신은 인권과 환경의 보호도 아우름을 의미한다고 하셨다. 무엇보다 ‘UNDP에서 근무하셨던 분이 WTO에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하는 질문에 답을 얻은 점이 크게 다가온다. UNDP와 WTO를 서로 반대의 영역에 존재하는 기구로 인식했던 나의 사고에 큰 전환이 다가왔다. 자유와 평등, 개발과 인권은 결코 시소의 맞은편에 앉아 있는 가치들이 아니었다. 당장 빵을 먹지 못하면 죽는 이들에게 말할 권리를 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는 수많은 개발도상국에서 인권이 시민들 스스로들로부터도 경시되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회원국간의 분쟁에 법적 구속력이 있는 제한을 부과할 수 있는 유일한 국제기구인 WTO가 매력적이란 생각이 들었고, 박사님 역시 그런 점에 자부심을 많이 느끼시는 듯 했다.
 
많은 사람들, 심지어 나에게 국제법을 가르쳐주었던 교수님들 중 어떤 이 조차도 UN과 국제법의 기능에 회의를 품곤 한다. 특히나 인권에 있어 UN의 기능은 선진국에게는 실효성이 없는 것으로, 개발도상국에게는 정치적 간섭의 수단으로 여겨지곤 한다. 그러나 이번 연수의 시작을 이와 같은 물음표로 시작했던 나는 제네바에서의 시간을 통해 분명한 답을 얻고 돌아왔다. UN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인권이사회와 같은 인권을 논의하는 장이 없고, 각 기구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과연 지구의 모습은 어떨지를 생각하면 답은 의외로 쉽게 나온다. 당장의 큰 성과와 결실을 바라는 이들에게 이러한 논의의 장, 그리고 그들이 채택하는 결의문은 하찮은 것일지 모르지만, 이것은 하나의 시대적 방향타이다.
 
주말에 방문했던 바르셀로나의 항구에서 아메리카를 가리키고 있는 콜럼버스의 동상을 보았다. 유럽의 수많은 이들이 콜럼버스의 손가락을 따라 배에 올랐고, 그곳이 비록 인도가 아닌 아메리카였을 지라도, 이러한 시행착오의 과정들이 모여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입증하는 계기가 되었다. 마찬가지로 유엔의 헌장과 국제인권조약, 그리고 인권이사회가 있기에 선진국들과 개발도상국, 서방국가들과 러시아-중국간의 이견과 마찰이 있더라도 그들이 공통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이 어느 정도 정해지는 것이 아닐까.
 
모두가 귀국하고 홀로 남았던 제네바에서 마지막으로 유엔을 방문해보았다. 다른 여느 날과는 다르게 광장이 온통 사람으로 가득 차있었고, 확성기 소리와 높이 솟은 깃발들이 광장을 가득 메웠다. 카슈미르 분쟁에 따른 인도 군의 인권 유린을 알리고 항의하기 위한 파키스탄 사람들의 시위였다. 이들이 이곳에서 이렇게 평화적인 방법으로 의견을 표출할 수 있는 것도 UN이 있기 때문 아닐까. 만약 UN이 인권이사회가 없었다면 이들은 카슈미르에서 총을 들거나 폭탄을 몸에 두르고 인도의 한 도시로 돌진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마천루는 멀리서 볼 때는 매우 작고 낮게 보여 실망을 하기 마련이지만, 가까이 다가가보면 끝도 보이지 않는 높이에 깜짝 놀라게 된다. 나에게는 이번 연수기간 UN이 그런 존재였다. 허울 좋은 껍데기라고 생각했던 인권이사회에서 흔히 접했던 시리아, 팔레스타인, 북한 인권 문제들부터 생각지도 못했던 스리랑카 내전과 아제르바이잔-아르메니아 전쟁까지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인권침해의 현장을 보고 듣게 되었다. 국제사회와 인권에 관심이 있는 이라면 누구든 제네바 인권연수를 통해 앞으로의 인생에 충분한, 오히려 넘치는 화두를 안고 돌아오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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