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활동경험담

친구되기 - 철부지의 영국 자원 활동기
글쓴이 김희곤     소속 CSV, YWCA

날짜 11.03.06     조회 2777

국제활동 경험담
  • 서울시립청소년문화교류센터 미지
  • 2011년 2월 당선작
writer's Photo

친구되기

- 철부지의 영국 자원 활동기

  • 김희곤
  • CSV, YWCA
  • 2010년 3월 14일 ~ 12월 14일

스톤헨지에서▲ 스톤헨지에서

# Intro

5개월의 필리핀 자원 활동(Raonatti), 2주간의 브라질 자원 활동(Happymove), 적지 않은 해외 자원활동 경험에도 불구하고, 마치 마라톤을 방금 마친 사람마냥 해외 자원활동에 목이 말라있었다. 굳이 '왜?' 라고 묻는 다면, 몸의 모든 반사신경이 그 질문에 반응을 하듯이,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그 이유를 구구절절이 설명하고 싶지만 그렇지 못한 것이 나의 현실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까지 내가 경험해 온 해외 자원활동은 내 인생에 필요한 자양분이 되었고 나를 조금씩 자라나게 했다. 이전에 보지 못했던 더 크고 다른 것들을 보고 깨닫게 만들었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화장실 크기만한 집에서도 세상 모든 것을 가진 사람처럼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내 안의 빈 곳만을 보며 채우려 노력하지 보다 내가 가진 것에 만족할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아마 실제로 보고, 듣고, 그들과 함께 생활하지 않았다면, 그저 책에서나 있을 듯한 그냥 그저 믿지 못할 아름다운 이야기 마냥 넘겼을 것들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 약 1년간의 자원활동을 위해 해가 지지 않는 다는 그곳, 영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잦은 휴학으로 인해 근 3년간 대학교 2학년이라는 이름표를 벗어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휴학신청서를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제출하고 달력에 하루 하루를 수백 번씩 세어가며 출국 날을 기다렸던 이유는 아마도 내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것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믿음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1. 기대감

사실 정확히 무슨 생각을 가지고 이 머나 먼 땅, 영국까지 왔는지 알 수 없었다. '영국'과 '자원활동', 마치 자석의 같은 극을 억지로 붙여 놓으려 한 것 같은 두 이질적인 단어의 조합은, 주변지인들로부터 '자원활동'보다 '영국에 간다'라는 사실에만 초점을 맞추게 만들었고, 부러움의 눈초리를 받게 만들곤 했다. 부러움의 눈초리가 싫었다고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니다. 나 스스로도 영국에 간다는 기대감에 들떠 있던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냥 가볍게 들떠 있을 수 많은 없었던 이유는 '자원활동을 하러 간다'는 또 다른 사실 때문이었다. 뭐, 세계평화를 등에 지고 새로운 땅에서 무엇인가 이루고 오겠다는 큰 야망을 품고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미 내가 거쳐온 자원 활동들에서 내가 할 수 있었던 것들은 다른 이의 두 손을 꼭 잡고 '잘 될 거야' 라고 이야기 하는 것 뿐이었다. 그렇기에 이번엔 조금 더 많은 시간이 나에게 주어졌고 조금은 더 무엇인가 할 수 있을 거라는, 적어도 새로운 땅에서 내가 함께하는 이들과 친구가 되어 헤어지는 그 순간에 서로를 부둥켜안고 아쉬운 이별을 나누는 그런 사이가 되길 바랐다.

영국에서 나는 약간의 학습장애를 가지고 있는 친구들과 함께 일하고 있다. 학습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집안에만 웅크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일원으로서, 자발적인 사회 활동 참여를 통해 그들 스스로 독립심을 키우고 사회화를 고취시키는 것을 주 목적으로 두고 있다. 얼마나 멋지고 그럴 듯 한가. 사실 조금 더 쉽고 명료하게 말하자면 그들이 자발적인 사회활동에 참여 할 때, 그들을 격려하는 친구가 되어주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그들이 한국의 아름다운 가게 같은 곳에서 자원봉사를 한다던가, 주말농장 같이 소정의 배정된 땅에서 채소를 키우거나 꽃을 가꾸는 일을 할 때 함께 있어 주고 격려해주는 일을 하고 있다.

함께 일하는 친구와 함께▲ 함께 일하는 친구와 함께

하루에도 수백 번씩 손가락을 하늘로 치켜 올리며 '라~'라는 소리는 내거나 'HAPPY'라고 말하는 친구가 있다. 이 친구가 'HAPPY'라고 말 할 때, 자신이 행복한 것인지, 내가 행복한지를 묻는 것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이 소리는 듣는 이로 하여금 얼굴에 미소를 번지게 한다. 정말 이런 사소한 것들에 기쁨을 느끼는 내 모습을 보고 있자면 조금은 우습다. 마치 달리는 것이 미덕인양 살아온 나에게 이처럼 소소한 것에 만족하며 웃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초자배기 자원활동가인 나에게 모든 일들이 쉬운 것만은 아니다. 특히 감정기복이 심한 친구들과의 관계에서는 내가 그들을 얼마만큼 좋아하는가는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어느 날, 한 학습장애를 가진 친구가 나에게 'I am in trouble with your English(네 영어를 잘 못 알아 듣겠어)'라고 이야기 했다. 평소에 워낙 친근하고 누구보다 나와 잘 맞았던 그 친구의 입에서 이 말이 튀어 나오는 순간, 나는 초특급 강력 펀치를 얼굴 정면으로 받은 듯한 충격에 순간 눈앞이 깜깜해 지는 순간이었다. 사실 그 순간 내 머릿속을 강타했던 것은 영어 때문에 이 친구와 멀어 질지도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한참을 고민했다. 자원활동을 시작하기 전, 수없이 들었던 트레이닝들이 머릿속을 맴돌았지만 어느 하나 딱히 들어 맞는 것이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반문하며 동시에 나 스스로 공황(Panic)이 되지 말자 돼내었다. 입 밖으로 가장 먼저 튀어 나온 말은,

'I like you and it's one of my favorite times a week, just being with you. So it would be better, if you cannot understand what I am saying, you just ask me to repeat.
I would like to believe on that we can be good friends to each other and I already like you so much.'
(난 네가 좋아, 너와 함께하는 이 시간이 내가 좋아하는 시간중의 하나야. 그리니 만약 네가 알아 듣지 못했다면 나에게 다시 말해 달라고 부탁했으면 좋겠어. 우린 서로에게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거고, 난 이미 네가 참 좋아.)

한국어로 쓰고 나니 손발이 오글거리는 이 말은, 정말 거짓 하나 안 보태고 너무나도 진심이었다. 누가 그러지 않던가 '진실'은 언제나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쉽고 정확한 방법이라고. 내 진심을 보이자, 그늘져 있던 그 친구의 얼굴에 다시 환한 미소가 찾아왔다. 이 자원 활동을 하면서 내 감정을 이 친구들에게(학습장애우) 내 보이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배경으로 질문을 한다면, '잘 모르겠습니다' 가 나의 대답일 것이다. 온갖 배경, 지식 따위를 떠나 인간 대 인간으로서 그들과 진실된 관계를 맺어가는 것이 인간관계에서 우리가 가야 하는 최선의 길이 라는 것이 나의 작은 소견이다. 그럼으로 그들도 다른 이들의 감정을 느끼는 것을 배우고 진실된 관계를 형성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이것 또한 사회참여의 일부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시간을 되돌아 보자면, 무엇인가를 더 이뤄내고자 했던 나의 거대한 야망은 좌절되었다. 내가 이곳에서 할 수 있었던 것들은, 다시 한 번, 누군가가 필요한 이들의 손을 꼬옥 잡아는 것이었다. 하지만 손을 잡아 줌으로써 정을 매개체로 한 친구라는 관계를 형성하였다. 이만하면 만족할 만한 약 1년간의 영국에서의 자원활동이 아닐까?

#2. 하늘에서 내려 온 동아줄

하루에도 수백 번 흐렸다 맑았다 하는 것은 변덕쟁이 영국날씨뿐만이 아니었다. 사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아늑한 집, 너무나 사랑스러운 친구들(Service users and Flat mates), 뭐 어느 것 하나 트집 잡을 것 없이 완벽한 상황 속에서 나를 힘들게 했던 것은 나 자신이었다. 나름 언어에 자신이 있던 나의 개똥같은 자존심은 주위에 태반으로 널린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비참하게 좌절되었고, 온 종일 사용해야 하는 영어에 나는 조금씩 지쳤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쉴 틈 없이 행복에 젖어 있었어야 하는 나는, 어느새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작아졌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23년 한 평생을 살면서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단어들이 들릴 때, 언어라는 벽에 부딪힌 내 스스로에게 화가 났고 이 세상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내 모국이 아닌 다른 땅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큰 관심이 없던 나에게, 이곳에서 내가 나누는 대부분의 대화들은 '새로움' 이라는 명찰들을 달고 내게 다가왔다. 이것은 마치 내 무지함을 드러내는 것만 같아 또 한 번 스스로에게 화가 났다. 한국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이 모든 생각과 감정들은 새로운 문화충격이라는 이름으로 나에게 다가왔고 다시 한 번 나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내가 얼마나 거만한 사람이었는지, 오만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 이곳에 오기 전에 모든 것이 나에게는 쉬울 것이라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빠져 나오지 못할 깊은 구렁텅이에 빠진 것처럼 허우적거리던 나는, 이 감정을 혼자서는 도저히 극복하지 못하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여긴 한국이 아니고,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 속에서 누군가에게 내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옳고 그른가의 판단할 여부가 없을 정도로 내 감정은 극에 달했었고 누군가가 필요했나 보다.

같이 일하는 다른 봉사자들에게 내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이야기했다. 그러자 친구가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나와 함께 생활하는 봉사자들은 독일인이거나 영국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언어의 벽을 나만큼 절박하게 느끼지 않을 것이고, '유럽연대 (European union)' 라는 공통분모를 그들은 품고 있기에 나와는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게 웬일인가 같았다. 내가 느껴온 반갑지 않은 그 감정들을 이 친구도 영국에서 자원활동을 시작됐을 때 똑같이 느꼈고 그 사실을 알았다는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충분한 위로가 되었다. 마치 혼자 잘못된 길로 가는 줄 알았는데 앞에 먼저 앞장서서가 친구를 만난 것 마냥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것처럼.

자원활동가 하우스 파티 ▲ 자원활동가 하우스 파티

공감대를 형성한 우리는 하루 종일 수다를 떨었다. 나보다 한 참 어린 이 친구(19세)는, 인생의 어떤 한 길을 먼저 지나온 선배마냥 모든 것에 친절했고 그 친절함은 내가 힘들 때 언제든지 무엇이든 내 마음속에 있는 것을 이 친구에게 말할 수 있다는 믿음을 나에게 심어 주었다. 나오지 못할 구렁텅이 빠진 나를 단번에 밝은 세계로 인도하였다.

지금 돌아보면 굉장히 새롭고 즐거운 일들을 시작 했는데, 왜 그렇게 난 힘들었는지 모르겠다. 감정이라는 것이 얼마나 간사한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든다. 시간이 지나면 내 우둔한 머리는 그저 모든 것을 미화시키고, 내 가슴에 격했던 그 감정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평온하게 되 돌아 오겠지만, 그 힘든 시간들을 상대로 타지에서 홀로 당당히 맞서는 내가 배운 한가지 좋은 방법은, 수화기를 들고 한국에 전화를 거는 것이 아니라, 주위에 있는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어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다.

#3. Horribly expensive, 영국에서 살아남기!

가난한 재정상태로 모든 사고 싶은 물건들이 장바구니까지 왔다가 다시 본연의 자리로 되돌아 가야 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반복되는 상황에서도 쇼핑을 즐기는 요즘이다. 마치 10년차 노련한 주부라도 된 듯이 여러 마트를 들락거리며 가장 저렴한 물건들만 잽싸게 골라 집으로 돌아오며 항상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영국에 오기 전에 가장 걱정했던 것 중 하나는, 가히 끔찍하게 비싸다는 영국의 물가였다. 그러나 생각과 다르게 영국의 물가는 생각했던 것만큼 비싸지는 않았다. 한국의 경제성장과 최근 몇 년간의 물과 상승률을 비교 했을 때, 한국은 더 이상 다른 나라를 이야기 할 때 '물가'를 뜨거운 감자로 두기에 무리수가 있다는 것이 나의 작은 소견이다. 50원했던 쌍쌍바가 지금 700원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을 생각해 볼 때 말이다. 물론 한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비싼 물건들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치즈, 시리얼, 파스타, 빵 등 내가 좋아하는 많은 것들은 한국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어. 돈이 없는 요즘도 든든히 건강 챙기며 한국인답게 3끼 다 챙겨 먹고 밥심 아닌 빵심으로 살아가고 있다.

화창한 봄 날, 피크닉을...▲ 화창한 봄 날, 피크닉을..

나는 영국의 자원활동 기관(CSV; Community Service Volunteer)으로부터 무료 숙소와 한 달에 약 400 파운드 정도 월급을 받는다. 사실 작은 액수라 월급이라기 보다는 용돈(Pocket money)이라고 불리고 있다. 왠지 한국의 화폐 단위가 크기 때문에 같은 금액을 달러나 파운드를 환산해 보면 괜히 내가 받는 돈이 적은 것만 같았다. 한국에서 약 1,800원이 영국에서 1파운드 정도니, 굳이 설명을 덧붙일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영국에 오기 전부터 '과연 내가 저 돈으로 한 달을 살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부모님께 손을 벌리고 싶지는 않고 이런 저런 출국준비로 통장의 잔고는 바닥을 치고 있는 상태에서 그것은 고민 아닌 고민이었다. 물론 내가 영국에서 어떤 삶을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400파운드라는 금액이 충분할 수도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은 의논할 여지가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가슴 한 구석에서는 영국에서 온갖 궁상을 다 떨면서 살고 싶지는 않다는 마음이 힘껏 소리치고 있었다. '가난해도 외국에만 있으면 행복할 것이다' 라는 생각은 잦은 외국 생활로 잊혀져 가고 있었고, 무엇보다도 원하고 하고 싶은 것들, 한국에서는 경험하지 못하는 것들을 돈이라는 이유로 포기하고, 내 자신과 타협하고 위로하며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았다.

나름의 경제관을 가지고 합리적인 소비를 하려 노력한 결과 일주일에 대략 20파운드 정도를 소비한 것 같다. 영국에는 참 편리하게도 2끼 정도의 샐러드를 포장해서 판다. 가격은 1파운드 안팎의 정도이다. 난 저녁마다 샐러드를 먹는다. 물론 샐러드만 먹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주일에 20파운드 안밖에 쓰지 않은 이유는, 포장된 샐러드를 선택하지 않고 각 재료를 선별한 후 그것으로 직접 샐러드를 만들어 먹기 때문이다. 항상 냉장고에는 3일 정도는 더 먹을 수 있을 정도의 샐러드가 락앤락스에 고이 모셔져 있다. 가끔 버리고 싶을 정도로 혐오스럽게 많은 샐러드지만 직접 만드는 것이 돈을 아낄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을 알기에 편리보다는 조금은 부지런해 지기를 선택했다.

또 하나의 팁을 주자면, 모든 마트에는 'Reduce 상품' 이 있다. 이월되기 직전의 상품을 싼 가격에 판매하여 마트 입장에서는 상품이 이월되기 직접에 판매되기에 반품하거나 폐기하지 않아도 되고 고객입장에서는 필요한 물건을 값싼 가격에 구매할 수 있어 합리적인 소비를 가능하게 만드는 아름다운 제도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이 곳에는 온갖 종류의 상품들이 진열되어있는데 대개 진열기간이 짧은 채소, 과일, 인스턴트 식품들이 많다.

TESCO, MORRISON, Sainsbury's, 영국에는 참 많은 종류의 마트들이 있다, 마치 한국의 E-mart, 하나로 마트처럼. 이중에서도 내가 가장 선호하는 마트는 독일 마트 중의 하나 인 'ALDI' 이다. 모든 제품이 다른 마트에 비해 조금씩 더 저렴하기에 현명한 소비를 할 수 있을뿐더러 값싼 가격에 좋은 과일을 구매할 수 있어, 싫어할래야 싫어 할 수 없다.

파운드에 나름 익숙해진 나는 더 이상 가격을 봤을 때, 한국 돈에 빗대어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 1이나 2라는 숫자는, 아까 언급했던 것처럼 우리에게 작디 작은 숫자이다. 그래서 1, 2파운드 하는 것을 보면 혹해서 막 사들이고 싶지만, 그럴 때마다 정신 똑바로 차리려 냉장고에 있는 양배추 샐러드 양을 생각한다. 누군가가 '넌 영국에 가면 이것 저것 참 많이도 사들 일거야' 라고 말했을 때, '난 아닌데' 라고 말했던 그 당당함이 어디서 나왔는지, 지금에야 와서 의심스럽다.

#4. 시간을 돌아보다.

자원활동을 하는 약 일년이라는 시간 동안 '도대체 자원활동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스스로에게 수도 없이 던졌던 것 같다. 좀 더 명확히 하자면 내가 살고 있는 경쟁사회에서 남들보다 좀 더 나은, 높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나 스스로를 위해 시간을 더 투자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문을 한참 동안이나 내 안에 품고 있었다. 또래의 친구들은 한국에서 치열하게 그들이 원하는 무언가를 위해 발이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동서남북 사방으로 열심히 뛰고 있을 것이 뻔한데 이곳에서 나는 자원활동을 한다는 명목아래, 바캉스라도 온 마냥 스스로에게 무한의 휴식을 제공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그 질문은 단순히 '하하 호호' 웃으며 간단히 넘길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자원활동의 가치를 과소평가하는 것은 아니다. 자원활동은 진정한 세상과 부딪히며 배워나가는 진정한 교육의 방법이라고 믿고 있다. 그렇기에 내 안에서는 이질적인 두 개념이 서로 격돌하며 자신의 영역을 꿋꿋이 지키고 있었다.

처음에 도착했을 때의 뜨거웠던 자원활동에 대한 열정은 대략 6개월이 지난 시점부터 조금씩 식어갔고 이유 모를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나 자신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할 것만 같은 조바심에 목이 타 들어 갔다. 이런 저런 생각, 참 많이도 했다. 일주일에 30시간 정도의 자원활동을 하는 시간을 제외한 넘쳐나는 여분의 시간에 수업을 듣거나 무언가 나 자신을 위한 것을 하려는 생각만이 머릿속에만 가득했다. 하지만 자원활동가라는 신분은 원하던 원하지 않던, 제약 아닌 제약들을 갖게 만들었다. 예를 들자면 내 비자(VISA)는 자원활동만을 위해 발급된 비자다. 즉 대학교에서 정규 수업을 청강한다거나 '워커홀리데이'처럼 단순히 아르바이트 일자리를 찾아 돈을 버는 일은 일어 날 수 없는 일들이다. 이 모든 상황들은 그저 절망스럽기만 했다.

자원 활동 기간 담당자를 만나는 날이 다가왔다. 한 달에 한 번 있는 이 정기 미팅은 기본적으로 내가 자원활동을 하며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그래서 난 사실대로 털어 놓았다. 담당자의 얼굴이 파랗게 질릴 거라 생각했지만, 담당자는 이미 겪어 본 상황이라도 되는 것마냥 눈썹의 미동하나 보이지 않고 되려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 곳에 온 이유가 무엇인가요?'

까맣게 잊고 있었다. 내가 이곳에 왜 왔는지, 무엇을 기대했었는지. 한참을 말없이 담당장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다 간신히 입을 땠다.
'나와 함께 하는 사람들과 가족 같은 친구 같은 관계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럼으로써 그들을 더 깊숙이 이해할 수 있도록.'
'그럼 희곤씨는 지금 자신의 목표로 했던 그 길에서 어느 정도 와 있나요?'
자다가 찬물을 맞은 마냥 정신이 확 들었다. 다람쥐 쳇바퀴 도는 것처럼 변화 없는 지루한 생활을 보냈다고 생각했다. 그 생활 속에서 나는 나와 함께 하는 이들과 얼마나 많은 것을 나누려 노력했고 지금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는지를 생각하는 순간, 머릿속이 까맣게 변했다. 매일 만나는 친구들은 어느 순간부터 그 자리에 그 시간에 있어야 할 사람들이 되었고 나는 그냥 그렇게 아무 감정 없이 친구들을 대했다. 나는 아무 말도 이어가질 못했다.

사람이 고팠다. 다른 생각을 가진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싶었고 그들과 '친구'가 되고 싶었다. 처음의 자원활동을 시작했을 때의 그 각오는 시간이라는 흐름 속에 자리를 잃어가고 있었고 노련한 나의 담당자는 그것을 본연의 자리로 돌려 보냈다. 내가 이 곳에 있는 이유는 내 이력서에 빛나는 한 줄을 추가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기에 한국의 뜨거운 경쟁전선에서 흰 깃발을 던지고 영국 행을 택했던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닌 나 자신이었다. 그렇다면 모든 것은 답은 간단하지 않은가. 삶의 다른 것을 보기 위해 나는 이곳에 와 있고, 지금 내가 하는 일들을 통해 충분히 새로운 가치들을 찾아 낼 수 있으니 모든 필요충분조건이 성립되어 있지 않은가. 위기의 중반기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자원봉사자들과 해변에서▲ 자원봉사자들과 해변에서

사실 아직도 잘 모르겠다. 내가 옳은 결정들을 내리고 있는가? 나는 아마 이 질문을 등에 지고 한 평생을 들먹거리며 살아갈 것이다. 어느 하나 명확한 것은 없지만 내 자원 활동이 의미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헤어질 때 서로가 흘렸던 뜨거운 눈물 때문이 아닐까.

솔즈버리 대성당에서▲ 솔즈버리 대성당에서

참가국
영국
소속
CSV, YWCA
기간
2010년 3월 14일 2010년 12월 14일
비용
참가비 200만원(항공료 제외)


  • 인쇄
  • 트위터
  • 페이스북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라인
  • 구글+

  • 도배방지
  • 도배방지
목록

글쓰기 답글 수정 삭제

현재페이지 1 / 7

우리와 너희 사이의 벽은 높지 않았다!
이성혁동학중학교
13.10.28hit 3812

Give and take -세상에서 가장 따뜻했던 여름-
허안나백석대학교
13.10.28hit 3662

sbs 희망 원정대가 되어 부룬디로 떠난다
임준호총신대학교
13.10.28hit 3173

서로의 눈에 눈부처로 남다
김계원숙명여자대학교
13.10.28hit 3271

240시간의 폴란드 (2편)
김다슬배화여자고등학교
13.06.21hit 3424

240시간의 폴란드
김다슬배화여자고등학교
13.06.21hit 3426

인연의 점을 찾아 떠나는 여정, 네팔
하선연한국외국어대학교 부속 용인외국어고등학교
13.06.20hit 3034

청소년 나라사랑 체험프로그램
조수빈중학교
13.06.20hit 3376

나를 찾아 떠나는 2012 한-인도 포럼
김승찬대학생
13.06.20hit 8009

Feel SD, Act for SF !
고형태중앙대학교
11.12.05hit 3038

열정으로 복원하는 세계문화유산
임은희대전반석고등학교
11.11.07hit 4192

2011 세계시민도전기-몽골 이야기
김재언성남외국어고등학교
11.10.07hit 4256

눈빛만으로도 서로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던 열흘
이하현서울여자고등학교
11.07.01hit 2572

차가운 겨울, 따뜻한 네팔과 만나다
이효주이화여자고등학교 3학년
11.06.04hit 2611

꿈을 다시 안겨준 1월의 캄보디아 - YESiA 청소년 해외봉사단
이윤희상명대학교 사범대학 부속 여자고등학교
11.06.04hit 2499

내 꿈을 한 발짝 다가가게 해준 Vietnam - YESiA 청소년 해외봉사단
조윤주동명여자고등학교 3학년
11.05.03hit 3046

토마토의 아름답고 감동적인 여행
권대혁서원대 윤리교육과
11.04.02hit 2293

친구되기 - 철부지의 영국 자원 활동기
김희곤CSV, YWCA
11.03.06hit 2778

슬프지만 행복한 그 곳, CITY OF JOY - INDIA, KOLKATA, Mother Teresa's House
홍지선한국외대 독일어통번역학과
10.12.03hit 3820

꽃사슴 언니와 함께한 튀니지 홈스테이- 여성가족부 2010년도 국가간 청소년교류
김은혜한국외국어대학교 스칸디나비아어과
10.12.03hit 3301

꿈꾸는 의대생의 발칙한 여행기
홍종원관동대학교 의학과 4학년
10.11.11hit 3673

오늘도 커피 한잔하셨습니까? - 2010 서울희망누리 체험담
백수안서울전동중학교 2학년
10.10.04hit 3734

윤리적 소비와 공정무역 - 2010 서울 희망누리 체험담
최지석청담중학교 3학년
10.09.08hit 2569

우리만의 특별한 Nile Story
정세연연세대학교 경영학과
10.09.08hit 2707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