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활동경험담

꿈꾸는 의대생의 발칙한 여행기
글쓴이 홍종원     소속 관동대학교 의학과 4학년

날짜 10.11.11     조회 3672

국제활동 경험담
  • 서울시립청소년문화교류센터 미지
  • 2010년 10월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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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의대생의 발칙한 여행기

 

  • 홍종원
  • 관동대학교 의학과 4학년
  • 2010년 7월 11일 ~ 8월 22일

#나는 왜 그곳에 가는가?

어느덧 졸업반이다. 이해되지도, 외워지지도 않는 우리 몸의 생리와 씨름하며, 둔한 머리 자책하며 보낸 시간들이 대단원의 막을 향해 치닫는다. 의사는 누구인지, 의료는 무엇인지, 나는 어떤 의사가 될 것인지, 충분히 고민 해왔나? 나름대로 열심히 여행하며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책 읽고 공부해 왔지만 언제나 아쉬움은 남는다. 의대 본과 3학년이 되면 임상실습이라고 하여 가운을 입고 병원을 누비며 함께 호흡하게 된다. 강의실에 앉아 알 수 없는 교수님들의 강의를 듣던 것과 다르게 몸으로 부딪히며 배우는 시간은 의대생활의 꽃이 라고 할 수 있다. 1년간의 실습을 거치고 마지막 실습은 선택실습이다. 병원이 아닌 외부 어디든 가서 배우고 싶은걸 배우고 오는 것이다. 거기에 이어지는 여름방학! 그래 떠난다. 고민은 멀리멀리 신입생시절까지 흘러간다. 아프고 소외된 사람들을 돕는 의사가 되겠다는 단순한 다짐은 내 머리 그리고 가슴 속을 떠나지 않았다. 학교 교수님의 지도아래 토요일이면 독거 어르신, 장애인 가정을 찾아 어설픈 진료를 했고, 정신병원에 가서 환자분들 목욕을 시켜드리며 최초의 의사로서의 경험을 어설프게 했었다. 방학이면 농촌이며, 섬이며, 해외 어디든 쫓아다니며 봉사를 다니곤 했었다. 그 중에서도 이주노동자들과의 만남은 새로운 선물이었다. 동남아시아 등지에서 우리나라에 와서 일하며 잔혹한 노동착취, 임금체불, 구타, 모욕을 견디며 살아가는 사람들, 누구보다 인간적이고 웃음을 잃지 않는 착하고 고마운 사람들. 그 중에도 뜨거웠던 여름 동대문 골목 어귀를 헤매며 찾아뵙던 네팔 산재 쉼터 분들, 그리고 버마에서 온 조국의 민주화를 꿈꾸며 활동하는 버마행동 분들은 가슴의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브로커 비용 및 비자 발급을 위해 큰돈을 빚지며 가족의 생계를 위해 한국을 땅을 밟게 된 그들. 몇몇은 코리안 드림을 이루어 가족에게도 그 나라에도 큰 보탬이 되지만, 가옥한 공장인 가운데 산업재해로 인해 손이 잘리고, 다리를 절고, 눈이 멀게 된 분들도 계신 것이다. 치료도 하랴 돈도 벌어야 하니 돌아갈 수 없는 분들이 모여서 지내는 곳이 네팔 산재 쉼터 인 것이다. 그곳에 방문하여 예방접종을 해드리기도 하고, 그분들 모시고 나들이도 하고 한편 식사 대접도 받으며 좋은 친구가 됐다. 그분들의 재활을 돕기 위해 공정무역으로 판매하는 커피를 판매하는 행사도 하였다. 그런 경험들이 나를 네팔로, 태국국경지대 '버마' 난민지역으로 이끌었다.

KOICA 한국 네팔 친선병원 방문
AMDA Nepal 병원 부탄 난민촌 방문 및 실습(3주)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 트래킹(1주)
태국 버마 국경 메솟 Maetao Clinic 버마 난민치료 병원 견학

이렇게 계획을 세우고 뜨거웠던 여름 네팔 그리고 태국으로 떠나게 됐다.

#KOICA 한국 네팔 친선병원 방문

▲ 한국 네팔 친선병원 모습과 그곳에서 근무하는 선생님들과 함께 단체사진 !

네팔에 도착하여 미리 한국에서 연락을 드렸었던 KOICA 소속 국제협력의사(외과)인 전흥만 선생님께 연락을 드렸다. 흔쾌히 선생님께서 한국 네팔 친선병원을 방문하고 자신과 함께 빈민촌 진료를 함께 가자고 하신다. 생각지도 않았던 수확이다. 아침 일찍 박타푸르 티미시(카트만두 근교의 도시)에 있는 한 네 친선병원으로 갔다. 작년 새로 지어서 아주 깨끗한 모습이었다. 그곳에서 우리는 KOICA와 장미회라는 NGO 소속 의사선생님들과 간호사, 임상병리사, 사회복지사 선생님들을 만났다. 그곳에서 뵈었던 KOICA 소속 이용만 선생님은 17년간 방글라데시, 네팔에서 진료하셨으며 대한민국 해외봉사상도 받으셨던 분이다. 함께 점심식사를 하며 네팔 의료 현실에 대한 경험들을 나눠 주셨다. 아직도 예상대로 의료현실은 열악하며 감염성 질환이 사시사철 발생하는 등 기본적인 보건위생이 취약하다고 하신다. 최근 의과대학 설립도 많이 되어 많은 의사들이 배출 될 걸로 기대되나 역시 시골로 갈수록 취약한건 현실이라고 한다. 본격적인 실습에 앞서 좋은 배움이 된 시간이었다. 병원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우리는 전쌤과 그곳 선교사님께서 사역하시는 빈민촌으로 갔다. 진료소를 꾸려서 매주 방문을 하신다고 한다. 진료하는 것도 보고, 그곳 사람들과 얘기하며 뜻 깊은 시간을 보냈다.

#AMDA Nepal Hospital 부탄 난민촌 방문 및 실습(3주)

우리가 실습하게 되는 AMDA(Association of Medical Doctor of Asia) Nepal 은 20년 전 부탄에서 난민이 발생했을 때 그들의 치료하기 위해 일본, 네팔의 의사들이 설립한 단체이다. 우리가 간 병원은 동부 네팔의 Damak 이란 도시에 있으며 동부 네팔지역에 난민촌들이 형성되어 있다. 기본적으로 난민들은 주거, 식량, 의료, 교육무료로 제공받는다. UN산하 단체인 유엔난민기구(UNHCR)의 주도아래 식량은 세계식량계획(WFP), 의료는 AMDA Nepal, 타국으로의 이주는 국제이주기구(IOM)에서 담당하는 것이다. 난민들은 1991년 부탄 정부의 정치적 노선 변경으로부터 생겨났다. 난민들은 사실 네팔인 들로 경제적인 이유 등에 의해 자발적으로 부탄으로 이주한 이민자들이다. 네팔어를 사용하고 있으며, 민족의 구성도 네팔인과 거의 흡사하다. 이들은 부탄에서 농업, 상업 등에 종사하면서 경제활동을 하고 사유재산을 가지고 있던 중 부탄 정부가 단일민족정책노선을 따르기 시작하면서 핍박이 시작되었다. 많은 이들이 재산을 빼앗기고 부탄 정부에 저항하다가 고문, 처형을 당하면서 인근 국가인 인도와 네팔로 넘어오기 시작하였다. 당시 인도정부는 이들을 받아주지 않았고 네팔정부도 적극적으로 이들을 받아줄 형편이 되지 못했다. 사실상 10 만 명 가량의 난민(네팔어를 쓰는 네팔인)이 네팔정부의 입장에서 아주 큰 부담은 되지 않으나 문제는 인도에 거주하고 있는 수백 만 명의 네팔인들 때문이었다. 만약에 이들을 아무런 제제 없이 받아들였다가 인도에 거주하는 네팔 인들이 대거 네팔로 돌아오게 된다면 네팔정부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국가적 문제가 되기 때문이었다. 이 때문에 네팔 정부는 이들에게 시민권을 부여하지 않았고 결국 이들은 난민이라는 국제사회의 미아로 남게 되었다.

▲ 난민들을 돕고 있는 국제기구 사무실 모습, 유엔난민기구, 국제이주기구, 세계식량계획

#난민이라는 이름

수도 카트만두에서의 짧은 일정을 마치고 병원이 있는 Damak 이라는 지역으로 비행기를 타고 이동했다. 우리는 3주간 외래진료실, 수술방, 병동 응급실을 오가며 실습했다. 그리고 난민캠프에 가서 그곳에서 하고 있는 Primary Healthcare Center 에 방문했다. 난민촌은 총 7곳이 있고 한곳에 대략 10,000명 이상 현재 총 난민은 70,000명 정도 있다. Resattlement 라고 하여 미국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등지로 많이 이주하는 추세이다. 많이들 이주하는 것들을 기대하고 있지만 그곳에서의 삶이 장밋빛인 것만은 아닌 듯하다. 때론 자살이라는 비극적은 최후를 맞기도 한다고 합니다. 먹을 것과 의료등 모든 것이 공짜로 제공되는 난민촌 생활과 달리 그곳에 가게 되면 모든 것을 스스로 해쳐나가야 할 텐데 가난한 나라에서 온 그들에게 선진국에서의 삶은 높은 벽처럼 느껴질 것이다. 그럼 모든 것이 제공되는 난민촌의 생활은 행복할까? 20년째 난민이란 지위로 살고 있는 그들에겐 뚜렷한 삶의 목적도 방향도 없어 보인다. 방항성과 목적을 상실한 삶 그런 것이 그들에겐 큰 독이다. 그래서 술에 빠져 사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난민촌은 형성 된지 벌써 20년 이 흘렀다. 난민촌을 방문해보니 하나의 마을을 형성한듯했습니다. 애초에 그 사람들은 네팔 사람들이기 때문에 네팔의 한 마을이라고 해도 다름없어 보였다. 네팔에서 일하는 건 불법이지만 건설현장 곳곳에서 마치 이주노동자처럼 일하고 있습니다.

AMDA Nepal 에서 제공하고 있는 의료는 훌륭했다. 의사들은 난민촌마다 한명 정도(의대 졸업한 의사)배치되어있고, 여러 의료보조 인력들의 교육을 함께 하여 배치함으로써 훌륭한 1차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건강 교육 등 예방사업을 충실히 하고 있는듯하며 잘 조직된 지역사회의료 현장을 보는 듯 했다. 그리고 우리가 많은 시간을 보냈던 2차 진료를 담당하는 병원의 의료진도 실력이 뛰어났다. 난민촌 사람들을 우리와 인사하려고 하고 모두 친절하게 맞이해 주었다. 같이 얘기도 나누며 차를 얻어 마시며 그곳 사정에 대해 조금씩 듣게 되었습니다. 난민들 뿐 아니라 현지 네팔리(네팔사람)들과 뜨거운 정을 나눈 시간들이었다. 한국에서 온 의사들을 신기하게 생각하고 친해지고 싶어 했다. 매우 친절하게 대해줘서 고마웠다. 이곳에서의 짧은 시간 동은 우리는 네팔에 배우기에 푹 빠졌다. 같은 숙소에서 머물렀던 닥터 Ramesh (근처 큰 도시의 대학병원에서 파견 나온 가정의학과 2년차 선생님)가 말해주길 저희가 전혀 예상치 않게 네팔어를 해서 그곳사람들이 깜짝깜짝 놀란다고 얘기해줬다. 모두가 선생님이기 때문에 쉽게 배울 수 있었다. 사실 엄청 적은 단어들이지만 말이다. 네팔이 좋게 느껴졌다. 네팔어도 더 배우고 싶고 꼭 다시 오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가능하다면 이곳에서 진료를 하면 좋을 거 같다. 나중에 전문의 되서 일하러 올 수 있겠냐고 했더니 물론이라고 한다.

▲ 수술방에서 하루 일과가 끝나고 퇴근하는 선생님들

▲ 함께 일하며 가족처럼 지내며 많은 것들을 가르쳐준 선생님들과 함께

▲ 척수천자 시술을 직접 실행하는 모습

#네팔과의 우정의 기록

네팔의 진심으로 가난한나라이다. 이곳 사람들의 평균적인 소득은 크게 잡아서 500불 정도라고 한다. 우리 돈으로 하면 60만원 쯤 되는데 한 달이 아니라 일년이다. 일년에 60만원의 돈으로 의식주를 해결하고 살아간다. 우리는 한 달에 100만원을 벌면 한참 부족한데, 그들은 그 돈을 벌기위해 우리나라에 일하러 많이 들 온다. 네팔어로 하면 대충 "네팔리 꼬리아마 깜 거르누 훈차" 인데 (네팔사람이 한국으로 일하러 와요). 배워서 많이 써먹은 말이다. 이곳의 가난을 생각하면 한국에서 한 달에 100만원 버는 돈은 엄청난 것입니다. 이것은 이곳의 의사들이 버는 것에 버금간다. 잠시 얘기하면 의사들은 초 엘리트 그룹이며 부유하다. 실제로 한국에 오랜 기간 일하고 온 사람도 몇 사람 만나고 일하러 가려고 한국어 공부하는 사람도 만났다. 지방의 아주 작은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한국의 이주노동자들의 생활을 보면 한국행을 썩 추천해주고 싶지는 않지만 그들의 사정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한국에 대해 매우 좋게 생각한다. 우리가 한국인이라서 좀 더 좋게 말해주는 것도 있을 듯 하나 부자나라 싸우스 코리아는 모두가 가고 싶어 하는 곳이다.

부유한 나라에서 온 내가 과연 네팔 사람들과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우리 사이엔 극복할 수 힘든 엄청난 장벽이 가로막혀 있는 듯 했다. 실습을 마치고 저녁이 되면 어김없이 정전이 된다. 전력사정이 좋지 않다는 얘기는 익히 들어와서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 인지는 몰랐다. 하루 반나절이상이 정전이다. 깊은 시골지역은 전기가 전혀 없기도 한다고 한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건 참 귀한 경험이다. 24시간 전기가 낭비되는 곳에서 살다보니, 그것이 너무 당연했었다. 낭비가 생활화된 사회다보니, 절약에 대한 감수성을 모두 잃어버린 것 같다. 절약을 한다는 건 너무 특별하고, 어려운 일이 되어 버렸다. 그 밤의 시간들이 너무 좋았다. 정전은 답답하기도 했지만 내면을 돌아보게 했고, 즐거운 이야기 꽃이 피게 해주는 좋은 선물이었다. 하지만 슬슬 시간이 지나자 무료함도 밀려고 오고 인터넷도 핸드폰도 그리워졌다. 네팔사람들과 무슨 얘기를 나눌 수 있을까? 우리가 공감대를 형성하고 마음을 터놓는 막역한 사이가 될 수 있을까? 우리 돈 약 800원이면 달밧 이라는 훌륭한 저녁식사를 배 가득하게 먹을 수 있다. 리필이 무한대이기에, 매일 같이 두 그릇 깨끗하게 비우곤 했다. 800원에 푸짐한 저녁을 해결 할 수 있는 이곳과 어려가지 경제적은 이유가 있겠지만 어찌됐든 5000원이 있어야 한 끼 식사를 해결 할 수 있는 나라어디가 더 살기 좋은 나라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곳의 가난이 행복해 보인다고 말 할 수 있을까? 이곳 사람들은 부자 나라 한국을 엄청나게 부러워하는데 말이다! 가난한 나라에 와서 돈을 펑펑 써대며 천국을 누리는 부자나라 여행객과 부자나라에서의 천국을 꿈꾸는 가난한 나라 사람들이 자못 대조적이다. 가난하지만 순박한 이곳 사람들을 보며 많은걸 느끼고 배우게 된다. 네팔사람들에게 그들이 우리와 피부색이 다르단 이유로 그렇게 못살게 굴 수는 없다. 알고 보면 정말 미안한 일이다. 과연 그들과 진정 친구가 될 수 있을까? 그렇게 되길 바란다. 앞으로 더 고민해 봐야겠다.

▲ 출퇴근할 때 통근버스에서. 우리는 어설피 배운 네팔어와 네팔 노래를 하며 웃음을 주었다.
모두가 우리의 네팔어 선생님이다 ^^

▲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맑은 눈망울의 난민촌 아이들. 보고싶다 얘들아 !▲ 네팔과 인도 국경지대에 잠서 들러서, 병원 직원들과 함께 사진 !▲ 네팔과 인도 국경지대에 잠시 들러서, 사진 한 컷!

#안나푸르나의 품에 안기다

드디어 트레킹이다. 네팔에 왔는데 히말라야 가지 않을 수 없진 않겠는가? 오랜 꿈이었던 히말라야 드디어 왔다. 구름이 가려 보이지 않던 설산들이 아침이면 화안하게 모습을 비춘다. 마차푸차레, 히운출리 안나푸르나 사우스 등,,, 설산을 보며 이곳이 정말 히말라야 구나 하고 느꼈다. 사진기로 연신 담아 보지만 역부족 인 듯. 머리 속에 집어 넣으려는 것도 썩 열심히 감상하는 수밖엔 없다. 우기다 보니 설산 보는 게 쉽지 않은데 대성공이다. 가슴이 뿌듯했다. 트레킹까진 나름 강행군 이었다. 실습을 마치고 비행기를 타고 수도 카트만두로 날아와 입산허가를 받고 학교과제와 안부를 남긴답시고 인터넷을 4시간이나 하고 아침 일찍 비자 받고 와 입산허가서를 받고 로컬 버스를 타고 8시간의 이동 끝에 포카라에 도착. 그리고 7일간의 트레킹. 여차저차 감격적인 트래킹을 마쳤다. 핫 스프링(온천욕)과 휴식을 겸한 마지막 밤은 뜨거웠다. 산은 정말 정직하다. 내 두발로 딛지 않고선 오를 수 없다. 그리고 대자연 앞에선 나도 모르게 겸손이란 두 글자가 떠오른다. 욕심을 부릴 수가 없다. 그렇게 나와 네팔의 뜨거웠던 우정을 막을 내렸다. 잠시. 다시 만날 것을 기대하며,,, 페리 베떠웅라! (다시 만나요!)

▲ 정상에서 함께 뜨거운 밤을 보낸 친구들과 함께. 스페인과 프랑스에서 온 친구들 ▲ 안나푸르나베이스캠프에서 바라본 설산. 장엄한 광경이다.▲ 트레킹 중에 한컷 !▲ 네팔사람들의 전통 공연을 함께 보며 스페인 친구들과 그들의 가이드, 그리고 우리

#밍글라바 버마

태국 '버마' 국경지대는 400만 명의 가까운 버마 인들이 살고 있는 곳이다. 본국의 군부독재에 항거하여 난민이 된지가 벌써 20년이 흘렀다. 지금은 가난한 본국의 사정 때문에도 많이들 넘어오고 있다. 메타오 클리닉은 닥터 신씨아가 세운 난민 치료 병원이다. 80년대 후반 군부독재에 항거하여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던 당시 갓 의대를 졸업한 의사였던 선생님은 민주화 운동에 가담하여 활동하다 이곳으로 넘어와 난민들을 치료하기 위해 클리닉을 열었다. 버마 민주화 운동의 상징인 아웅산 수지 여사와 많은 상을 공동으로 함께 수상하였다. 아웅산 수지 여사에 대해 잠시 얘기 하자면, 그녀의 아버지 아웅산은 영국식민지배 당시의 지도자였는데 약 31세의 젊은 나이로 암살이 된다. 그 후 아웅산 수지는 어머니와 인도에서 자라고 영국에서 공부를 했다고 한다. 그 후 네윈의 군부독재의 맞선 민족지도자가 필요했던 버마인들은 아웅산 수지를 선택한다. 한편 네윈 또한 영국식민정국에 맞선 지도자 중 한사람이었다고 한다. 그 전 까지 정치의식이 전혀 없었던 아웅산 수지는 민중의 선택을 받아들이고 선거에서 90%이상의 승리를 거둔다. 하지만 국사 정권은 정권을 이양하지 않았고 아웅산 수지 여사는 여전히 가택에 감금 된 채 지내고 있다. 올 11월 7일에는 버마 총선거가 실시된다고 한다. 하지만 결과는 기대하기 힘들 거라 얘기한다. 약 일주일여를 이곳에 머물며 클리닉과 난민촌 등지를 둘러 다니며 이곳의 많은 활동가들과 조우했던 좋은 시간 이었다.

▲ 국경지대 곳곳에서 볼 수 있는 버마 민주화의 살아있는 상징 아웅산 수지 여사▲ 메솟에서 만났던 자원활동하는 친구들, ▲ 해맑은 난민촌 아이들

#방랑을 마치며

나마스떼! 사왓디 캅! 밍글라바! 할라겐!

각각 네팔, 태국, 버마의 버마족, 버마의 카렌족의 인사말이다. 네팔과 버마 모두 우리나라와 다르게 많은 민족들이 어울려 살고 있는 다민족 국가이다. 민족들 간에 말도 다르고 문화, 풍습도 조금씩 다른 모습을 띄고 있다. 수많은 언어 가운데 혼란스럽기도 했지만 그런 다양성이 너무 신비로웠다. 네팔에서 지내면서 네팔어를 많이 배우게 됐는데 그건 또 색다른 경험이었다. 네팔 어디에 가도 우리는 네팔어를 통해 그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다. 아무도 혁명을 꿈꾸지 않는 시대의 아이콘 체 게바라는 의대생 시절 남미대륙을 여행하며 민중들의 아픔을 몸소 느끼고 혁명가의 길로 접어든다. 훗날 의대생들에게 강연을 하며 "나는 점차 가난, 기아, 질병 그리고 가진 게 변변치 않아 아이를 치료할 수 없는 사람들과 밀접히 접촉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당시 나는 유명한 연구자가 되거나 의학 발전에 어떤 중요한 기여를 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일이 있음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그들을 돕는 것 이었지요 " 라고 하였다고 한다. (1960.08.20 의과대학생들에게 한 연설 중) 감히 체게바라의 여행과 치기어린 나의 어설픈 여행을 비교하겠는가? 다만 체게바라의 말처럼 그런 의사의 길을 걸어보겠다고 생각했다. 거짓말처럼 나는 다시 한국에 왔다. 꿈같았던 6주간의 짧은 여행은 막이 내렸다. 함께 산다는 건 무엇일까? 언어를 배우기 위한 작은 노력처럼 그들을 이해하려 노력하고 이해하기 위해서 공부하는 것, 함께 밥 먹고, 함께 일하고, 함께 즐기며 친구가 돼는 것이 아닐까? 훗날 졸업하고 트레이닝을 마친 후 네팔 어딘가에서 혹은 버마 어딘가에서 그들을 진료하고 있을 내 모습을 상상해 본다. 어릴 적 새 학기가 되어, 새로운 친구들, 새로운 선생님을 만날 때 느꼈던 설렘! 오랜만에 그런 설렘을 시간을 가져다 준 모든 친구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Never Ending Peace And Love!

프로그램
하계단기해외연수(관동의대)
참가국
네팔, 태국
기간
2010년 7월 11일 ~ 8월 16일 네팔
2010년 8월 16일 ~ 8월 22일 태국 총 42일
비용
항공권 네팔항공 인천 - 카트만두 (방콕 경유) 90만원
국내선 항공권 Yeti Airline 230달러
체제비 및 이외 준비 비용 약 90만원
총 경비 약 200만원
Tip!
난민 관련 유엔난민고등판무관(UNHCR) http://www.unhcr.or.kr
국제이주기구 http://www.iom.int
태국버마 국경 난민치료병원 http://www.maetaoclinic.org
네팔 부탄난민치료병원 AMDA-Nepal:Association of Medical Doctors of Asia
http://www.amda.org.np
이주노동자건강연구회, 이주노동자들의 건강문제를 고민하는 모임
http://club.cyworld.com/migranthealth

네팔에 가는 항공권중 저렴한 항공권은 네팔항공과 타이항공이다
할인항공권을 이용하자 !
대한항공에서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로 가는 직항이 있으니 참고

트레킹하기 좋은 시기는 보통 10월부터 다음해 2월 까지라고 한다
여름 시즌은 6~8월까지는 우기시즌이라 트레킹을 추천하지 않으나
여러가지 얘기를 듣고 인터넷을 뒤져본 결과 가도 괜찮겠다는 결론을 내렸고
실제로 가보니 트레킹하는데 전혀 무리가 없었다.

태국과 버마 국경지대인 메솟에 가는 방법은
방콕 북부터미널에서 버스를 타는 방법이 있고
치앙마이에서 버스를 타고 오는 방법이 있다.

난민치료병원인 maetao clinic 이 있으며
버마인들이 많이 넘어와 주거하고 있으니
버마 민주화의 열기를 느껴보기 원한다면 방문해보자 !
일정
7월 11일 출국 방콕 경유
7월 12일 네팔 카트만두 도착
7월 13일 KOICA office 방문 및 국제협력의사 선생님과의 만남
7월 14일 카트만두 AMDA 오피스 방문
7월 15일 국내선 비행기 카트만두 -> Damak
7월 16일 ~8월 6일 (3주)
병원실습(외래, 수술장 등) 부탄 난민캠프 방문
8월 7일 Damak -> 카트만두
8월 9일~8월 17일 카트만두 -> 포카라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래킹 일명 ABC 6박 7일
8월 14일 포카라 -> 카트만두
8월 16일 카트만두에서 방콕
방콕에서 태국 북부 메솟 이동
8월 17일 ~ 22일
메타오 클리닉(버마 난민 치료) 방문, 버마 난민캠프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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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되기 - 철부지의 영국 자원 활동기
김희곤CSV, YWCA
11.03.06hit 2777

슬프지만 행복한 그 곳, CITY OF JOY - INDIA, KOLKATA, Mother Teresa's House
홍지선한국외대 독일어통번역학과
10.12.03hit 3820

꽃사슴 언니와 함께한 튀니지 홈스테이- 여성가족부 2010년도 국가간 청소년교류
김은혜한국외국어대학교 스칸디나비아어과
10.12.03hit 3301

꿈꾸는 의대생의 발칙한 여행기
홍종원관동대학교 의학과 4학년
10.11.11hit 3673

오늘도 커피 한잔하셨습니까? - 2010 서울희망누리 체험담
백수안서울전동중학교 2학년
10.10.04hit 3734

윤리적 소비와 공정무역 - 2010 서울 희망누리 체험담
최지석청담중학교 3학년
10.09.08hit 2569

우리만의 특별한 Nile Story
정세연연세대학교 경영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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